성경읽기 0096 : 고린도전서 1장~6장
저자 : 사도 바울
주요 인물 : 바울, 디모데, 디도.
기록 목적과 대상 :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교회 내의 파벌분쟁, 교인들 간의 법적 소송, 결혼 문제, 영적 은사의 남용, 성만찬, 우상 제물에 관한 문제, 부활에 대한 불신 문제 등에 대하여 교리적, 도덕적으로 바른 길을 제시해주기 위해 쓰여 졌다. 본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실생활에서 부딪히던 문제점들을 다룬 실용적인 편지로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오늘날의 교회에도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주고 있다.
1장 12절
여러분이 저마다 “나는 바울을 따른다”, “나는 아볼로를 따른다”, “나는 베드로를 따른다”, 심지어 “나는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말한다니
13절
도대체 그리스도가 나뉘었습니까? 바울이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혔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교회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지라 편이 나뉘고 다툼이 일어난다. 심지어 한 교회 안에서 두 목사님이 편을 갈라 파워게임을 하기도 한다. 순수하고 소박했던 초대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사람을 보고 모이고 건물을 보고 교회를 선택한다. 훌륭하신 목사님과 선한 성도들을 택해 교회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큰 건물, 잘 갖춰진 편의시설을 보고 선택하기도 한다. 심지어 인맥을 쌓기 위해, 사업에 도움을 받기 위해 선택하는 경우도 없다곤 할 수 없다.
각자 가치관과 취향을 갖고 있는 인간인 이상 편안한 사람들, 편안한 교회가 없을 수 없지만 이런 것을 보고 신앙생활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람, 건물, 시설 등은 모두 세상에 속한 것들이다. 오직 하나님을 봐야 한다. ‘하나님과의 동행’, ‘믿음의 성장’ 이외에는 모두가 부차적인 것이다.
1장 22절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절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고 전합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25절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로우며,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23절]은 ‘거리끼는 것’, ‘수긍치 못하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에게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증거, 기적을 보이라고 요구한다. 다른 사람은 구원하고 정작 자신은 구원하지 못한다고 조롱한다.
유대인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그리스인들은 이 ‘어리석은 일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예수님의 희생과 속죄 속에 숨겨진 비밀스런 진리에 다가가지 못한다.
대현(大賢)은 대우(大愚)라. 크게 현명한 것은 크게 어리석어 보인다. 크게 거룩한 것은 크게 소박하게 보인다. 크게 높은 것은 크게 낮아 보인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로운들 하나님의 어리석음을 헤아릴 수 없다. 인간이 아무리 강한들 하나님의 약함을 이길 수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이 이 세상의 표준에 따라 자신이 지혜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거든, 진정 지혜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 어리석은 사람이 되십시오.’[고린도전서 3:18]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지혜 있는 자들을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고린도전서 3:19]
6장 1절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툼이 있을 때, 성도들에게 해결해 달라고 하지 않고 왜 그것을 세상 법정에 고소하려고 합니까?
5절
여러분 중에는 신자들 간의 문제를 해결해 줄만큼 지혜로운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단 말입니까?
7절
이렇게 여러분 사이에서 서로 고소하는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분이 패배했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조직, 어떤 공동체든지 자체적으로 조정, 해결, 정화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허구헌날 큰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집안은 조만간 망할 집안이다. 결국엔 집안싸움이 법정싸움으로까지 번진다. 더 이상 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어떤 문제, 어떤 다툼인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소한 문제 말고 해결이 불가능한 심각한 문제를 집안 혹은 교회 안에서 끙끙 안고만 있을 수는 없다. 어느 경우엔 적극적으로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자칫 쉬쉬하다가 문제가 커지거나 공공에 대해 차단막을 친 채 불의한 사적 심판을 범할 수도 있다.
가정폭력, 학대 등의 범죄까지도 집안일로 여기고 자체해결에 맡겨둘 수만은 없다. 국가법 따로, 교회법 따로, 가족법 따로일 수는 없다. 대개 속으로 곪고 무법천지에다가 결국은 폭발하여 파멸에 이른다. 무턱대고 고소고발에 대해 혀를 끌끌 차며 싸잡아 비난만 할 일은 아니다.
그래도 아름다운 일은 아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은 이미 가족도, 교회도, 사회도 패배했음을 의미한다. 웬만한 일은 법정에서 다투기 전에 서로 원만히 합의하고 화해하는 것이 좋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어야 한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깊게 묵상해야 한다. 성경에는 믿음의 말씀 못지않게 지혜의 말씀도 많다.
교회가 부당하게 차단막을 친 대표적인 경우가 참여정부 때 있은 사학법 개정에 대한 극렬할 반대였다. 사학의 대부분이 기독교 재단인 현실에서 재단이사 중에 외부인을 선임하는 법안에 대해 극렬히 반대한 것이다. 외부이사수를 줄이고 같은 종교인에 한해 선임한다는 양보안이 나왔어도 막무가내였다. 종교자유를 내세웠지만 결국은 재단의 내부사정을 외부에 절대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핵심은 돈이다. 종교인과 종교재단의 돈의 흐름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목사님들이 삭발을 하고 바퀴달린 십자가를 메고 끌고 나왔다. 교회, 사학, 한나라당 인사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공동체의 감시와 통제를 거부하고 성역으로 남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성역에서 나와서 정치계로 진출하려고 한다. 대형교회 목사님들을 중심으로 기독교 정당인 ‘기독자유민주당’을 창당하려고 한다. 이분들에겐 한나라당도 미덥지 못하다는 거다.
1077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는 카노사에 있던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를 방문하여 성 앞에서 사흘 동안 파문을 취소해달라고 빈다. 바로 ‘카노사의 굴욕’이다. 교회와 교황의 권력이 절정에 이른 사건이다. 하지만 교회가 가장 순수했던 때는 오히려 교회가 가장 핍박받던 때였다.
몇몇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꿈꾸는 세상이 이것인가? 교회가 세속을 능가하여 최고의 권력과 부를 누리는 것인가? 지금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핍박받고 있는가? 교회가 갖고 있는 부와 권력이 충분치 않은가? - 이들에겐 충분치 않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가장 많이 갖고 있어도, 대통령이 기도회에 참석하여 공개적으로 무릎을 꿇어도 충분치 않다!
카노사의 굴욕, 대통령의 굴욕
목회자들도, 성도들도, 선거권 피선거권이 있는 시민들이니 정치참여를 무조건 반대할 수는 없다. 세상에 나가선 판사도 될 수 있고, 정치인이 될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 개별적이든, 당을 이루어 참여하든 찬성이다. 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종교의 정치참여가 워낙 민감하여 자칫 극한 갈등을 불러오고 교회전체에 피해가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독교 정당 설립에 참여하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더욱 걱정스럽다.
폭언, 폭력, 독직, 사기, 횡령, 간통... 입에 담기 거북할 정도로 흉한 전력을 가진 인사들이 있다. 이들은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 이들은 21C 바리새파들이다. 설교로, 행동으로, 예수님을 욕보이고 있다.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우겠다고 협박하며 성도들의 건전한 사고력을 빼앗고 있다. 몇몇 대형교회는 확실히 패배했다. 그 패배가 전체 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까지 미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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