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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성경읽기 0093 : 로마서 2장~6장 (부제 : 이신칭의에 대하여)

어멍 2011. 8. 30. 22:01
 

    성경읽기 0093 : 로마서 2장~6장 (부제 : 이신칭의에 대하여)



    저자 : 사도 바울

    주요 인물 : 바울, 뵈뵈, 더디오.

    기록 목적과 대상 : 로마 교회 방문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설명하고 율법주의적인 그리스도인을 권면하기 위해 기록하였다. 그 대상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로마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이다.

    바울의 전도여행을 주 내용으로 한 <사도행전>에 이어 바울이 쓴 <로마서>, <고린도전서>, <후서>, <갈라디아서> 총 4권의 교리서신이 이어지는데 <로마서>는 이중 가장 대표적인 교리서로서 구원은 인간의 공적이나 행위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영문명은 ‘(Epistle to the) Romans’다. Epistle은 서간, 편지로 ‘로마 교회로 보내는 편지’란 뜻.



2장 14절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방인들이 본성에 따라서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행하였다면, 그 사람은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자신이 자기에게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15절

이런 사람들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이 그들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여 주며, 그들의 양심이 그것을 증언하고, 그들의 생각이 그들의 잘못을 고소하기도 하며, 그들 자신을 변명하기도 합니다.


21절

여러분이 다른 사람은 가르치면서, 왜 여러분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도둑질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 여러분 자신은 왜 도둑질을 합니까?

23절

율법이 있다고 자랑하면서도 그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까닭은 또 무엇입니까?

24절

“너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욕을 먹고 있다.”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습니까!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에스키모들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바다에 던져 장사지낸다고 한다. 그대로 고래 밥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래를 잡아서 먹기도 하고 갖가지 일용품을 얻기도 한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의 조상들과 영원히 함께 한다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를 보내신 아버지도 그랬고, 나를 보낼 내 아들도 그럴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관습이고 숭고한 미덕이기까지하다. 이들은 십계명 중 하나인 ‘너희 아버지와 어머니를 잘 섬겨라’를 어긴 것이 아니다. 이들을 불효를 버젓이 저지르는, 윤리와 도덕과 양심도 없는, 야만인이라고 비난할 순 없다.

    어디서는 악수를 하고, 어디서는 큰 절을 한다. 어디서는 도리도리가 예스고, 끄덕끄덕이 노다. 이것을 오해하면 의사소통이 안 된다. 이것을 관용치 않으면 갈등과 다툼으로 번진다. 약속, 관습, (율)법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심지어 도덕과 윤리까지 달라 선과 악이 뒤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무엇이 양심이고 무엇이 율법인가? 무엇이 보편적 선이고 무엇이 고집스런 관습인가? 나누기가 어렵다. 지혜롭게 분별할 수 있다면 갈등과 다툼을 줄이고 하나님의 영광과 평화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율법은 절대적이지 않다. 상대적이다. 법전에 새겨져 있는 율법보다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율법이 더 중요하다. 바로 양심이다. 보편적 양심에 근거한 율법만이 언제, 어디서건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다.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말 하지 마라. - 모두 이런 것들이다.

    살인하고도 털끝만큼의 양심의 가책이 없고, 간음하고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면... 이미 인간이 아닌 괴물이거나 미친 상태다. 괴물이라면 준엄하게 단죄해야 되고 미쳤다면 격리한 후 보호, 치료해야 한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수풀이 빽빽이 우거진 밀림 한복판에서 사람과 맹수가 조우했을 때 맹수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다. 사람에겐 양심, 윤리의식, 신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셨으므로 사람들 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로마서 1:19] 따라서 사람에겐 핑계가 없다. 열악한 환경, 악마의 꾀임에 희생당한 피해자임을 주장할 수 없다. 비루한 세상, 악의 평범성과 진부함에 핑계를 돌리고 방종과 나태로 허송세월할 수는 없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란, 악이란 원래 이런 존재야. 그러니 나보고 워쩌라고?’ - 배째라고 드러누울 수는 없다.

    모든 것을 개인 탓으로 돌려서도 안 되지만 결국 마지막 책임은 자기에게 있다. 각자에게 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법정에선 홀로 선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눈을 피해 달아날 수 없고 숨을 수 없다.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기독교인들이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되새겨야 할 유명한 구절이다. 개역한글판 번역이 더 힘이 있다.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스스로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위선을 버리고 솔선수범하라고 경계하고 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주님을 믿으면서도, 사람들은 허위와 위선을 일삼는다. 자신들만 그런 악한 행동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저지르는 다른 사람들까지 잘 한다고 두둔한다.[로마서 1:32] 그들은 악한 행동으로 한 데 묶여 있다. 서로에게 악한 행동을 권하고 용납함으로서 자신의 악을 감추고 변호하려 한다. 선한 이를 악에 물들이고 스스로 악한 이들 속에 섞여 숨으려 한다. 서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죄의식에서 벗어나 위안을 얻는다. 위안을 넘어 거들먹거리며 호기까지 부린다.

    악한들 사이에 형성되는 이 같은 유대감은 그들을 단단히 엮여주는 동아줄이기도 하고 갈고리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든든한 동지애이기도 하고 달아날 수 없게 서로의 코를 꿰고 있는 약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악인들은 의인을 끼워주지 않는다. 의인과 함께이면 안심하고 일을 도모하지 못한다. 의인을 통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악인들이 끼리끼리 모여 유유상종하는 이유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김영실 작.



    그들은 용감하게 악을 행하고, 대담하게 악을 옹호하며, 담대하게 궤변을 늘어놓는다. 마치 은혜를 더 받기 위해서 더욱 죄를 짓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거짓말을 하여, 그 때문에 하나님의 참되심이 드러난다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데, 왜 내가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로마서 3:7]라고 우기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선한 결과를 얻기 위해 악을 행하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3:8]

    세상의 악인들이 대개 이와 같다. 그들 패거리들이 대개 이와 같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 바깥에서 교회 안으로 들어온다면 하나님이 분노하신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악을 행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빌어 악을 변호한다면 가중 처벌될 것이다. 믿지 않는 살인범보다, 믿는다 하는 좀도둑이 더 매를 맞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출 20:7]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3장 10절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

11절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12절

모두가 곁길로 나가 하나같이 쓸모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3장 20절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21절

그러나 이제는 율법 없이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가 나타났습니다.

22절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옵니다. 이 의는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며,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24절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속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는 판단을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3장 27절

사람이 자랑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랑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어떠한 법으로 사람이 의롭게 됩니까? 율법을 지키는 데서 오는 것입니까? 이런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의 원리에 의해서만 이루어집니다.

28절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31절

그렇다면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율법을 무효로 만들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을 통하여 율법을 더 굳게 세웁니다.

 

    3장의 주제는 이신칭의(以信稱義)다. 다른 말로 이신득의(以信得義)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Justification by Faith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을 의롭다 칭한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움을 얻는다.’는 뜻으로 교계 내외로 숱한 이론과 비판이 있어왔던 어렵고 복잡한 교리다.

    이 교리는 16세기 루터에 의한 종교 개혁의 핵심사상으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선행이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가르침이다. 개신교의 핵심교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용, 남용, 악용할 소지가 큰 교리이기도 하다. 안으로는 면죄부를 남발하거나 밖으로는 불화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바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인하여 산다.[하박국 2:4]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는 판단을 받습니다.[로마서 3:24]

    이신칭의 교리는 하박국에서부터 바울을 거쳐 루터에 이른다. 하지만 하박국과 로마서의 구절은 비슷하면서도 뉘앙스와 강조점이 다르다. 하박국은 의인은 부귀영화, 탐욕과 향락이 아닌 오직 믿음에서 보람을 찾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비루하고 곤궁해도 오직 믿음에 의지하여 기뻐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것을 결심하고 있다. 인간이 주체가 된 순종의 결단이다.

    로마서는 인간의 결단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있다. 인간의 (율)법, 행위, 노력의 무력함과 한계를 말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서 의로움을 얻고 하나님의 은혜로서 구원을 받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의로움, 구원받음)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24절] 누가 먼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서 하나님의 답례를 받는단 말입니까?[로마서 11:35] 아무런 차별 없이, 누구라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움을 얻으면 거저 주시는 것이다. 무상급식이 아니라 무상은혜다.

    ‘차별 없다’함은 민족, 계급, 빈부, 귀천, 남녀, 노소의 구별이 없음이다. 깡패, 도둑, 강도, 사기꾼, 살인자, 선인, 의인, 성인... 할 것 없이 모두 같다는 것은 아니다. 회개치 않고, 믿는다고 말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의로움을 얻는다는 말은 아니다.


    이렇듯 ‘이신칭의’를 말하고 있는 로마서는 신중하고 주의 깊게 읽을 필요가 있다. 몇 가지 들자면...

    첫째, 당연한 말이지만 ‘믿음으로서 의로움을 얻는다.’할 때의 믿음은 옳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옳은 하나님, 그른 하나님은 없어도 옳은 믿음, 그른 믿음은 있다. 잘못된 믿음은 있다. 믿는다고 말하고 주장하는 우리 인간이 죄성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믿음마저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믿음으로서만이 의로움을 얻을 수 있다.’

    둘째, 여기서의 <믿음>은 <율법>, 그리고 <행위, 노력, 선행>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강조되는 측면이 크다. 앞뒤 문맥을 살펴 전체적, 종합적으로 읽어야 한다. 율법, 행위, (인간의) 노력은 불완전하다. 믿음, 은총, (하나님의) 은혜는 완전하다. 인간은 유혹에 약하여 죄를 짓기 쉬운 불완전한 존재다. 바로 아담이 지은 원죄다. 그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씻으셨다.

    한 사람(아담)에 의해 죄와 심판이 시작되었고 한 사람(예수님)에 의해 죄 씻음을 받고 구원의 자격이 주어졌다.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양으로 내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용서를 받았으니 그것을 믿고, 그 뜻을 깊게 새기는 것으로 충분히 의롭다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입니다.[로마서 5:14]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지만, 한 사람의 의로운 행동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낳게 하는 의로움이 발생했습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될 것입니다.[로마서 5:18,19]


    불완전한 율법으로 불완전한 사람을 완전한 의인으로 만들 수 없다. 완전한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 율법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지만 그 자체로 인간의 죄성을 전제로 한 것이기도 하다. 도둑질하지 마라. 도둑질을 전제로 한 것이다. 거짓말하지 마라. 거짓말을 전제로 한 것이다.

    율법이 없다면 율법을 범하는 일도 없다.[로마서 4:15] 율법이 많다면 율법을 범하는 일도 많아진다. - (율)법, 행위, 노력 등이 무의미, 무가치 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를 말하려 함이다.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3:10] 사람이 자랑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랑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어떠한 (율)법으로 사람이 의롭게 됩니까?[3:27] - 바울은 철저히 인간의 나약함, 행위의 불완전함, 율법의 한계를 말하고 있다. 철저히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예수님이 십자가 보혈로 보여주신 지극한 사랑과 의로움을 주장하고 있다.


    믿음에 의지하되 믿음 뒤에 숨지 말아야 한다. 거짓된 믿음, 말뿐인 믿음을 면죄부나 방패막이로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해서 죄를 짓자는 말입니까? 절대 그럴 수는 없습니다.[로마서 6:15]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 안에서는 산 것처럼 우리 기독교인 역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의 죽음에 참여하고, 그분의 부활에 참여해야 한다. 죽음에는 참여치 않고 부활에만 참여하고 싶은 얌체족, 고난은 남에게 미루고 영광만 같이 누리려는 빈대족이어서는 곤란하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도 참여해야 한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아멘. 아멘.’ 립 서비스만으로 얼렁뚱땅, 은근슬쩍 묻어가려고 해선 안 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그분을 닮으려 힘써야 한다.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으로,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있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여러분의 몸을 불의를 행하는 도구로 죄에게 내어 주지 말고,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아난 자들답게 여러분의 몸을 의를 행하는 도구로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로마서 6:13] 이것이 의롭다고 판단 받을 믿음의 증명이다. 의로운 믿음, 참된 믿음의 완성이다.


    올바른 믿음을 통해서만 율법을 더 굳게 세울 수 있고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다. 참된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다. 참된 믿음으로 의로움을 구하라. 그렇지 않으면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으리라.

    그리 되기를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수님께 기도하라. 이것이 나약한 인간이 가장 먼저 할 일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가장 끝까지 할 일이다. 겸손한 인간이 언제나 할 일이다.

    주님. 권능과 사랑과 의로움을 가지신, 완전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주여, 제게 올바른 믿음, 참된 믿음, 완전한 믿음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