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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성경읽기 0091 : 사도행전 7장~9장

어멍 2011. 8. 19. 23:17

    성경읽기 0091 : 사도행전 7장~9장



    저자 : 누가(Luke). 누가복음의 저자이기도 하다.

    주요 인물 : 베드로, 요한, 스데반, 빌립, 바나바, 야고보, 바울, 디모데, 실라.

    기록 목적과 대상 : 유대인들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를 증거하기 위해 기록하였다. 사도행전(使徒行傳)은 말 그대로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으로 역사서로 분류되며 영어로는 Acts (of the Apostles)다. Apostle은 제자, 사도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 사도들이 성령의 인도로 유대에서부터 이방의 땅에까지 널리 복음을 전한 행적과 초대 교회의 발달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7장 48절

(스데반이 말했습니다.) “예언자가 말한 것처럼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손으로 지은 집에 살지 않으십니다.

49절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은 내 보좌요, 땅은 내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 무슨 집을 지을 수 있겠느냐? 내가 쉴 곳이 어디겠느냐?

50절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냐?’

51절

고집 센 사람들이여,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찌 그리 완악하며 귀는 꽉 막혔습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조상들처럼 항상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52절

여러분의 조상들이 핍박하지 않은 예언자가 한 사람이나 있었습니까? 그들은 심지어 의인이 올 것을 예언한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바로 그 의인조차도 알아보지 못하고 배반하여 죽였습니다.”

54절

공의회 의원들은 스데반이 하는 말을 듣고 몹시 화가 나서 스데반을 보며 이를 갈았습니다.

58절

그들은 스데반을 성 밖으로 끌고 나가서 그를 향하여 돌을 던졌습니다.

59절

스데반은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60절

스데반은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주님, 이 죄를 이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을 하고 스데반은 잠들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후 남은 열한 제자들은 맛디아를 새로 사도로 뽑은 후 열심을 다해 예수님을 증언하며 선교에 힘쓴다. 이들은 예수님 이후에 더욱 신실하고 더욱 겸손하고 더욱 소명에 충실해진다. 이들은 회개하고 변화되었다.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이들을 도우시지만 여전히 기존의 유대지도자들과의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 스데반은 열두 사도가 뽑은 일곱 명의 교회일꾼 중 한명이었는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다.

    스데반은 모함을 받고 유대공의회에 끌려간 후 그곳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주장한다. 그리곤 돌에 맞아 죽는다. 스데반은 신실하고 강직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손으로 지은 집에 살지 않으십니다.”(48절)

    공의회에 모인 유대지도자들이 화를 내고 이를 갈 만한 말이다. 한마디로 꼭지가 도는 말이다. 즉, ‘너희들이 지은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이다. 높고 크고 아름다운 성전에서 엄격한 절차와 흠잡을 데 없는 형식을 갖추어 예배를 드린다 해도 너희들의 마음은 완악하여 성령을 매번 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질보다 양을 추구해오며 크고 높고 웅장한 교회건물을 지어온 한국교회도 되돌아봐야 할 점이다. 예수님 당시의 헤롯 성전은 그전에 비해 더욱 아름답고 화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언약궤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도, 예수님의 말씀도 없었다. 오히려 독사의 자식들이 살았던 회칠한 무덤이었다.

    대제사장, 율법학자, 서기관, 성전경비대, 희생제물을 팔고 사던 상인들... 이들 모두가 그곳 성전에서 권력과 명예를 얻었던 자들이다. 그것을 매개로 이권을 챙기거나 그곳에 생계가 걸려있던 자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님을 저주하고 핍박하고 십자가에 매달았던 자들이기도 했다.




1958년 필화사건을 겪은 김성환 화백의 유명한 만평 <고바우 영감>
바알, 아세라, 마르둑, 드라빔, 아데미... 편견, 선입관, 고정관념...
돈, 권력, 명예... 경무대, 청와대, 대검찰청, 대법원, 국회의사당...
타워펠리스, 삼성동 현대아이파크, 서초동 트라움하우스...
루이뷔통, 아르마니, 헤르메스, 구찌...
우상은 많고도 많다.



    아무리 사람을 압도할 만큼 크고 웅장할지라도 한낱 건물일 뿐이다. 물질일 뿐이다. 기술자나 예술가의 공교함, 장인정신, 예술혼, 신에 대한 경외심을 인정하고 평가해주는 것은 좋다. 그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것을 넘어 대상 자체를 떠받드는 것은 우상이다. 본말전도다. 성전, 교회(건물)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모든 것이 땅에 속한 부질없는 것들이다. 땅에서는 좀이 먹거나 녹슬어 못 쓰게 되고 도둑이 훔쳐갈 것들이다.[마태 6:19] 그 어느 것도 사람보다 아름답지 않고, 사람보다 귀할 수 없다.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뜻보다 거룩할 수 없고,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정의로울 수 없다.

    뒷배경을 보지 말고 앞모습을 보라. 겉을 보지 말고 속을 보라. 건물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라. 건물보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됨됨이가 훨씬 중요하다. 아부꾼들에게 장악된 검찰, 사기꾼들이 활개 치는 국회, 거짓말쟁이들이 우글대는 청와대는 없느니만 못하다. 교회 역시 강도의 소굴이 될지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성지가 될지는 사람에 달려있다. 그곳에 임하시는 성령에 달려있다.

    사랑과 정의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신실한 사람,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예수님과 동행하는 온화하고도 강직한 사람이어야 한다.



8장 1절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당한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3절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남자든 여자든 닥치는 대로 끌어내어 감옥에 넣었습니다.


9장 3절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밝은 빛이 사울을 둘러 비췄습니다.

4절

사울은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 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하는 소리가 뚜렷이 들렸습니다.

5절

사울은 “주님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6절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8절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울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습니다.

9절

사울은 삼 일 동안, 앞을 보지 못했으며,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11절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고 하는 거리로 가거라. 그리고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는 다소 사람을 찾아라. 그가 지금 거기서 기도하고 있다.

15절

가거라. 그는 이방 사람들과 여러 왕들과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나의 이름을 전하도록 선택된 나의 도구이다.”

 

    바울의 회심이다. 사울이 곧 바울이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자는데 찬성하고 그가 죽는 현장에 있었던 인물로 직접 예수교 탄압에 발 벗고 앞장섰던 골수 바리새파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다마스쿠스의 여러 회당에 보내는 편지를 가지고 가서 남자든 여자든 예수님의 도를 따르는 사람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붙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라는 임무를 대제사장으로부터 받고 길을 떠난다.




카라바조, <다마스쿠스 가는 길의 회심>, 1600,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다마스쿠스 가까이 이르렀을 때 바울은 그의 운명을 바꿀 이적을 겪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다마스쿠스에 살고 있던 예수님의 도를 따르던 제자 중 한명인 아나니아에게도 예수님이 환상 중에 말씀하신다. 아나니아가 바울을 찾아가 그에게 손을 얹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니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바울은 다시 시력을 회복한다.

    이 일로 회개한 바울은 세례를 받고 성령이 충만해진다.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진 바울은 어둠 속에서 비로소 예수님의 빛을 보고 겸손히 그분을 영접한다. 이제 그의 앞에는 이스라엘을 넘어 먼 이방과 땅 끝까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믿음을 선포하는 영광과 고난의 길고 긴 순례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