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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성경읽기 0092 : 사도행전 16장, 22장

어멍 2011. 8. 20. 21:59

     성경읽기 0092 : 사도행전 16장, 22장



16장 37절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로마 시민인 우리를 재판도 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매질하고 감옥에 넣더니, 이제 와서 슬그머니 우리를 놓아 주려는 겁니까?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이 직접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라고 하시오!”

38절

부하들이 관리들에게 가서 바울이 한 말을 전했습니다. 관리들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이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했습니다.


22장 28절

천부장이 말했습니다. “나는 돈을 많이 들여서 로마 시민권을 얻었소.” 바울이 말했습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인 사람입니다.”

29절

그러자 바울을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물러났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를 결박한 일로 두려워했습니다.

 

    다마스쿠스 사건 이후, 회개하여 기독교로 개종한 바울은 정력적인 전도여행을 시작한다. 바울은 투옥되기도 하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는 등 곳곳에서 반대자들에게 핍박을 당한다. 16장 내용은 전도여행 중 마케도니아의 중심도시 빌립보에서 있었던 일이고, 22장 내용은 몇 차례의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이다. 핍박받고 구금당한 대부분의 경우가 유대(교)의 전통에 반한다는 내용으로, 대부분 모함에 의한 것이었다. 바울은 예수님과 똑같은 이유로 사람들에게서 박해받는다.

    사도행전은 바울 외에 베드로, 빌립 등 예수의 열두 사도와 바울과 동행한 바나바, 실라 등 다른 제자들의 전도 이야기들도 실려 있으나 대부분 바울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이는 바울이 가장 멀리, 가장 오래, 가장 열심히 전도활동을 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반면 베드로와 빌립 등의 전도활동은 대부분 유대 땅에 국한된 것이었다. 바울은 그의 전도시기에 편지형식의 글들을 다수 남기는데 이것은 사도행전 이후 13권의 바울서신으로 신약에 실려 있다.

    바울은 뛰어난 연설가이자, 박식한 학자이자, 주님에 대해 뜨거운 열정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이론과 실기를 모두 겸비한 최고의 신학자이자 전도사였다. 기독교가 유대교의 소 종파에서 벗어나 지금의 세계종교, 보편종교로 발전하게 된 데는 바울의 공이 가장 크다. 그리고 이것은 독특한 그의 출신성분과 이력 때문이기도 했다.


    바울은 소아시아 북서쪽 실리시아 지방의 타르수스 출신으로, 유대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다. 그는 또한 유대인 중에 특이하게도 로마 시민권자였는데 이는 당시에 대단한 특권이었다. 그리고 유대인이면서도 동시에 로마 시민이라는 애매한 위치는 도리어 기독교를 유대로부터 로마제국으로 전파시키기엔 더 없이 좋은 위치이기도 했다. 바울은 갈릴리와 로마를 잇는 다리였다.

    당시 로마 시민이 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였다. 첫째 부모가 시민일 경우, 둘째 로마제국을 위해 큰 공을 세운 경우, 셋째 많은 돈을 주고 시민권을 사는 경우다. 바울은 이 중 첫 번째 경우로 바울의 집안이 로마 시대 상류계급에 속했던 대단한 집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로마법은 조사나 재판 없이 로마인을 체포, 구금하는 것과 채찍질하거나 고문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으며 로마인은 로마 황제의 법정에까지 상소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죄 없는 로마인을 불법으로 처벌한 사람은 상부의 조사를 받아 시민권을 박탈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그러니 바울을 부당하게 처벌하려한 자들이 바울이 로마 시민인 것을 알고는 두려워했던 것은 당연하다.


    유대인이자 고귀한 가문 출신의 로마인이기도 했던 바울은 유대회당에서 바리새파 스승으로부터 엄격한 유대율법의 교육을 받는다. 지금으로 치면 출세가도를 달려온 가장 전도유망한 엘리트였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후, 예수님을 핍박하는 입장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주님의 도구로 180도 변한 것이다. 당연히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를 갈며 죽이려했을 것이다. 그들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사도행전 23:12]고 맹세까지 한다.

    세속적 기준으로 보자면 예수님과 바울의 조합은 대비되는 점이 많다. 예수님은 유대 토종으로 아기일 때 목숨을 구하려 마리아, 요셉과 함께 이집트로 잠시 피신한 것 외에는 한 번도 유대 땅을 벗어난 적이 없으시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이 있는 세계인으로 소아시아, 마케도니아, 이탈리아, 스페인까지 제국 곳곳을 누빈다. 정통, 순혈로 치자면 예수님이 바울보다 더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은 유대교의 관습에 저항했고 바울은 거기에 충실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직관과 쉬운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셨다면 바울은 자신이 배운 지식과 몸에 밴 인격으로 보다 논리정연하고 신학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예수님이 서민이었다면 바울은 학벌과 신분이 훌륭한 엘리트였다. 비유하자면 예수님은 고졸 시골 출신으로 독학하여 일정한 경지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면 바울은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에서 학계의 권위자들에게 수학한 후 미국으로 유학 가서 미국박사학위까지 받고 온 슈퍼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슈퍼엘리트가 토종, 서민출신 대통령 밑에서 참모로 있는 격이니 결코 흔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서로 대비되는 것들의 만남은 시너지 효과가 크다. 서로 멀면 멀수록, 다르면 다를수록 그 에너지는 증폭된다. 어울리지 않을 때는 극한 갈등과 대립을 유발하지만 서로 어울릴 때는 아름답고 화려한 불꽃을 내며 폭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바울에 의해 꽃을 피운다. 제국 내에 교회들이 세워지고 뿌리내려지는 초석을 놓게 된다. 양적 성장뿐 아니라 바울은 여러 서신을 씀으로서 성경과 신학의 골격을 갖추고 기독교의 질적 토대를 튼튼히 한다.


    예수님과 바울. 비유하자면 서민 스승 밑의 엘리트 제자다. 큰 스승 밑의 영리한 제자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홀로 묵상하셨을지언정 그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스승은 없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놀라면서도 “이 사람이 이런 모든 것들을 어디서 터득했을까?”[마태 13:56]라며 의아해하고 의심한다. 반면 바울은 바리새파 스승 밑에서 도제식으로 정식으로 배웠다.

    무엇인가? 무언가의 처음, 시조(始祖), 태두(泰斗)는 스스로 배우고 깨쳐야 한다는 것이다. 날 때부터 깨닫고 처음부터 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다. 극한 고통의 십자가형을 피하지 않으시고 죽음을 맞으셨다.

    반면 바울은 여러 고비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피신하여 도망친다.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여 제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도한다. 처음 시조는 도망치면 안 되지만 나중 제자들은 도망쳐도 된다. 선장은 배를 버리고 도망치면 안 된지만 선원들은 승객들과 함께 안전하게 도망쳐야 한다.

    그것이 선장이 취할 길이고 선원이 취할 길이다. 그것이 스승의 도리고 제자의 도리다. 그것이 예수님의 뜻이었고 바울의 전도여행이었다.


    22장 이후 바울은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여 로마로 호송되게 된다. 지중해를 거쳐 로마로 호송된 바울은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에서 전도, 선교에 힘쓰며 담대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가르쳤다.’[사도행전 28:31]는 내용으로 사도행전은 끝을 맺는다.

    바울의 전도여행의 대부분은 이방이었다. 그는 기독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이방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로서 기독교는 유대교와 분명하게 결별하게 된다.




엘 그레코(El Greco), <성 바울(St Paul)>, 톨레도, 그레코 미술관



    사도행전 이후 바울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바울의 서신들과 초기 기독교 문헌들을 종합해 볼 때 다음과 같이 추측된다.

    투옥 기간이 끝난 후 풀려난 바울은 스페인으로 전도여행을 떠난다. 얼마 뒤 다시 체포되어 로마로 호송된 바울은 마지막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주후 70년경 베드로처럼 로마에서 처형당하여 한 이름 없는 묘지에 묻히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로서 바울은 예수님이 명령하신 전도 사역을 완성하게 된다. 감옥형과 태형, 돌에 맞아 동족의 손에 거의 죽을 뻔했던 사건, 반복되는 도피, 끝없는 해상, 마상, 도보 여행, 굶주림과 목마름도 막을 수 없었던 위대한 여정, 역사적인 전도였다.

    그는 신실한 주의 종이자 위대한 전도사였다.


    사도행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