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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마흔두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 (20221030) - 주님의 진리 안에서 저희를 자유롭게 하소서

어멍 2022. 11. 4. 23:13

 

마흔두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 (20221030)

- 주님의 진리 안에서 저희를 자유롭게 하소서 -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무한히 크고 아름다운 이 세상을 지으시고 저희를 그 속에서 기뻐 뛰놀게 해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주일을 맞아 저희 성도들 주님 앞에 모여 주님의 이 놀라운 은혜를 찬미하오니 이 예배와 기도를 기쁘게 받아 주시옵고 홀로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주님.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결실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저희가 그 열매를 취하여 먹고 마시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주님의 진리 안에서 저희를 자유롭게 하시옵소서. 주님이 주신 선물은 무상이오나 값을 매길 수 없사오니 저희가 헛되이 쓰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주신 자유는 내 돈 내고 내가 산다는 천박한 자유, 내 권력 내가 행사한다는 오만한 자유가 아니오니 저희가 방종과 무절제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주시는 자유와 진리는 넓고 높은 광명의 세계이오니 저희가 좁고 낮은 어둠에서 벗어나 주님께 나가게 하시옵소서.

 

  주님. 추수하기 전에 씨 뿌린 자를 생각하게 하시고, 먹기 전에 준비한 자를 생각하게 하시고, 소비하기 전에 생산한 자를 생각하게 하소서. 작은 씨앗 안에 이 모든 것을 숨기시고 물과 흙, 바람과 태양으로 기르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미하게 하소서. 숨기시고 기르시고 이루시는 것이 모두 주님의 은혜와 권능이오니 저희가 주님을 찬미하고 주님이 주신 선물을 겸손과 감사로 누리게 하소서.

 

  들숨과 날숨, 평범한 일상이 모두 주님의 은혜요 한여름 나무 그늘의 서늘함과 한겨울 따스한 햇볕의 포근함 역시 주님이 주신 선물이오니 세상 어느 것 하나 주님이 주시지 않은 것이 없사옵니다. 세상 어느 것 하나 제 것은 없사옵니다. 집과 차도 제 것이 아니요, 이 팔과 이 다리도 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주님이 주신 것, 세상에서 빌린 것, 언젠간 사라져 제자리로 돌아갈 것들이오니 감사히 아껴 쓰고 온전히 돌려놓게 하시옵소서.

 

  주님. 밤사이 나라에 큰 참사가 있었습니다.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 특히 젊은 청춘들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 생과 삶과 사가 모두 주님의 은혜와 권능 안에 있사오니 저희의 미력함을 깨닫게 하시되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주님! 주님의 목자이신 △△△ 목사님을 축복하사 항상 피곤치 않고 강건케 하여 주시옵고 주님의 말씀을 전할 때 영광 있게 하시옵소서. 목소리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성가대와 각 기관에서 성심봉사하는 성도들을 기억하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항상 저희와 함께하사 성도들 하나하나의 간구를 긍휼히 여기고 들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 모두가 합심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선을 이루는 복된 교회와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내 돈 내고 내가 산다는 천박한 자유, 내 권력 내가 행사한다는 오만한 자유 - 내 돈 내고 내가 사서 내가 즐긴다는데 뭐가 문제냐! 내 힘으로 어렵게 얻은 내 권력 내가 행사한다는데 웬 시비냐! (극단적으론 내가 낳은 내 자식 내가 때린다는데 뭔 상관이냐!) - 천박하고 오만하게 타락한 현 세태를 상징적, 압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특히 ‘내돈내산’은 천민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 향락주의에 최근 많이 언급되는 욜로, 플렉스 등의 유행어까지 맥락이 닿아있다. (※ 원래의 '내돈내산'은 협찬을 받지 않았다는 리뷰어들의 주장에서 유래한 신조어인데 여기서는 그보다는 넓은 의미, 다른 맥락으로 쓴다.)

    이것은 쓸 돈과 권력이 있는 부자, 강자의 자유다. 기본적으로 자유는 억압으로부터의 자유지 억압할 자유가 아니다. 수십만평 농장주가 노예를 수백, 수천명 마음대로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한사람의 노예라도 없게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자유다. 농장주가 채찍으로 맘껏 때릴 자유가 아니라 누구라도 인간이라면 채찍에 맞지 않을 자유라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최근까지 자유를 많이 언급하고 있다. 그의 평소 언행과 스타일로 봤을 때 자유에 대한 특별한 고민이나 철학이 있는 것 같진 않다. 구체성이 결여된 긴 문장 속에 여기저기 난무하는 자유라는 단어에서 하나마나한 공허한 인상만을 받을 뿐이다. 그나마 노동시간연장을 주장한 그의 구체적인 발언으로 봤을 때 노동자의 자유보다 자본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 같다. 확실히 그의 자유에는 부자, 강자의 자유의 냄새가 난다.

    또 한 가지 그의 자유가 함의하고 있는 것은 ‘공산주의’의 대립항으로서의 ‘자유주의’다. 즉 좌우이념대립을 유도하고 환기시키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적 용어다. 얼마 전 윤대통령의 주사파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실재로 이같이 더욱 노골적인 색깔론을 드러내고 마침 남북긴장이 최근 더욱 고조되면서 20%대에 머물던 지지율이 소폭 올랐다. 집토끼인 보수세력이 응집하고 특히 색깔론에 민감한 70대 이상에서 지지율이 대폭 올랐다고 한다. 아울러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표적수사, 정치보복 역시 지지율을 끌어올리지는 못했더라도 더 이상의 하락을 막은 브레이크로 작용하였다고 보여진다.

 

    주님이 말씀하신 자유, 주님이 주시는 자유는 제 한 몸 맘껏 즐겁게 하기 위한 천박한 자유, 제 욕심 맘껏 채우기 위한 비루한 자유가 아니다.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이 제 이익을 위해 제 맘대로 이용하는 오염된 자유가 아니다. 주님이 주시는 자유는 넓고 높은 광명의 세계다. 우리는 좁고 낮은 어둠에서 벗어나 주님이 계신 넓은 곳으로 나가고 높은 곳으로 올라서야 한다.

 

진정 자유롭기 위해선 좌우가 아닌 높은 곳으로 올라가 주님을 만나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스스로 겸손해지며 동시에 위대해지고 한없이 자유로워질 것이다.

 

 

    집과 차도 제 것이 아니요, 이 팔과 이 다리도 제 것이 아닙니다. - 내 몸을 포함하여 이 지상에 내 것은 일체 없다! 엄밀히 얘기해서 내 생각도 내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서 보고 들은 것, 내 밖에서 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읽고 어떤 사람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느냐 하는 것이 실로 중요하다.

 

 

 

    밤사이 나라에 큰 참사가 있었습니다. - 주일 전날(10월 29일 토요일) 기도문을 마무리하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이태원에서 밤사이 150여명이 압사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비통하고 놀란 가슴에 경황없이 새로 추가한 문단이다.

    대표 기도를 할 때 이 대목에서 감정이 격동되어 말을 잇지 못했다. 눈시울이 뜨겁게 아파오고 호흡이 가쁠 정도로 가슴이 먹먹해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다시 이어나갔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울컥울컥 안정적이지 않다. 개인 기도도 아니고 그러면 안 됐는데 ... ㅠ.ㅠ

 

    화난다! 억울하고 원통하다. 어떻게 거리를 걷다가 한두 명도 아니고 150여명의 젊은이들이 서로 눌려 죽을 수가 있는가! 골목 입구마다 한 명씩만 배치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참사다. 그 많은 경찰, 공무원들은 그 시간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가! 세월호 참사도 그렇고 왜 못난 어른들 때문에 꽃다운 청춘들이 느닷없이, 영문없이 죽어가야 하는가!

    아직 모든 것이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조금씩 드러나는  전후사정으로 볼 때 이번 참사는 분명한 인재다. 이것을 포함해 최근 우리사회는 확연히 후퇴하며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대선을 전후로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깊고 넓게 진행되고 있어 당황스러울 정도다. (☞ 대선을 앞두고 지인들께 보내는 메시지대선결과 평가 및 향후 정국 예측)

    재난안전은 물론이고 정치, 외교안보, 경제민생까지 어느 하나 나아진 게 없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나아질 기미가 전혀 없다는 거다. 어떠한 비전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윤대통령과 국민의힘의 무능은 재앙수준이다. Winter is coming! 더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민주주의의 실패, 집단지성이 아닌 집단오판의 후과다. 남녀노소를 포함하여 연고지 프로팀 응원하듯 정당을 응원하고 게임케릭터 선택하듯, 혀끝에 맞는 메뉴 선택하듯 진지한 고민없이 정치인에게 투표한 비용을 지금 우리가 치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너무 격한 마음에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정치적 발언이 길어졌다. 아직도 감정이 추수러지지 않았지만 내 주장이 내 기도를 넘어설까 염려된다. 비통한 마음에 하늘에 대고 고함이라도 치듯이 하고픈 말은 여전히 많고 많지만 여기서 이만 글을 접도록 하자.

    분명한 것은 삶과 죽음이 함께 하듯이 애도는 애도대로 원인규명과 책임추궁은 그것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 한명의 잘못으로 몰아 마녀사냥을 해서도 안 되지만 공동체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특히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그 누구도 이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어린 학생들, 젊은 청춘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런 사회를 만든 어른들의 잘못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먹먹한 가슴으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하나님! 이들의 영혼을 받아주소서. 이들에게 안식을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