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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마라톤

제17회 고창고인돌마라톤대회 : 아홉 번째 풀코스 도전 & 일곱 번째 완주 후기 (2019/11/17)

어멍 2019. 11. 20. 22:43

 

    17회 고창고인돌마라톤대회 : 아홉 번째 풀코스 도전 & 일곱 번째 완주 후기 (2019/11/17)

 

 

    - 대회 참가 전

 

    올해도 게으름만 피다가 벌써 10월이 다 지나갔다. 연초엔 봄철에 적어도 한번 대회를 참가하자 다짐하건만 매번 은근슬쩍 미루다가 개학을 맞아 밀린 일기 쓰듯(예전엔 개학 전날 한달치 일기 아닌 일기를 썼다는 -.-), 시험 앞두고 벼락치기하듯, 늦가을 초겨울에 이르러서야 부랴부랴 시동을 걸고 뛸 채비를 한다.

 

    아홉 번째 풀코스 출전, 작년 1216일 전마협 송년마라톤대회 이후 11개월 만에 출전하는 올해 첫 대회다. 체력도 감각도 많이 떨어져 있으므로 더 일찍부터, 더 꼼꼼히,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일단 저번에 만들어 본 풀코스 대비 훈련일정표(2018 전마협 명품송년마라톤대회)를 참고로 하여 훈련을 소화하기로 한다.

 

    D-36/ 1012일 토요일 / 22.54k 러닝(1:58:55 평균속도 5‘16“/km), 6개월만의 장거리주(LSD) 훈련

    D-28/ 1020일 일요일 / 27.38k LSD(2:22:45 평균속도 5‘13“/km)

    D-21/ 1027일 일요일 / 31.74k LSD(시간 측정 실패)

    • • • 이상 주중엔 별일 없으면 하루 8k 러닝 소화. 10월 누적 러닝 22, 총거리 232.8km, 평균속도 5‘24“/km • • •

    D-14/ 113일 일요일 / 마지막 장거리주로 35k(3:05:48 평균속도 5‘18“/km)를 뛰는 것으로 훈련량을 점차적으로 줄이는 테이퍼링(Tapering) 시작

    D-13/ 114일 월요일 / 휴식

    D-12,11,10/ 115,6,7일 화,,목요일 / 매일 8k 러닝

    D-9/ 118일 금요일 / 휴식

    D-8/ 119일 토요일 / 피킹(Peaking) 트레이닝으로 전력질주 10k(46:31 평균속도 4’39”/km)후 가볍게 조깅 2.5k

    D-7/ 1110일 일요일 / 휴식. 물 하루 2500ml 워터로딩 시작. 수면, 일상 등 섭생 적극관리 시작

    D-6,5/ 1111,12일 월,화요일 / 매일 8k 러닝

    D-4/ 1113일 수요일 / 아침 8k + 저녁 8k 러닝

    D-3/ 1114일 목요일 / 8k 러닝으로 모든 훈련 종료. 탄수화물 위주의 소프트 카보로딩 시작

    D-2,1/ 1115,16일 금,토요일 / 휴식. 스트레칭만 하며 컨디션 조절

    • • • 대회 전날인 16일까지 11월 누적 러닝 11, 총거리 123.6km, 평균속도 5‘11“/km • • •

 

    여름훈련도 변변치 않았고 오랜만의 대회참가라 목표는 너무 욕심내지 않기로 한다. 그래도 너무 단순하면 재미없으니까 옵션을 주자. 1. 완주실패 0/ 2. 완주성공 50/ 3. 400 페이스메이커(평균페이스 km5‘40“)와 동시골인 80/ 4. 400 페메를 추월해 서브4 달성 85/ 5. 작년 마지막 풀기록인 3;56;53을 깨면 90/ 6. 마지막 40~41k 또는 41~42k에서 구간속도 최고기록 달성하면 가산점 5이 중 380점 이상이면 합격으로 한다.

    그래서 구체적인 레이스 운영전략은 30k까지는 무조건 400 페메와 동반주(컨디션이 좋아 몸이 근질거려도 추월 금지!) - 30k 이후 여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페메 추월 40~42k 여력이 허락한다면, 코스가 허락한다면 마지막 힘을 짜내 구간 최고기록 도전이다.

 

대회 홈페이지에 있는 코스도

 

    - 대회 참가

 

 

    1117일 일요일 D-Day!

    새벽 510분 기상. 일어나자마자 날씨를 검색해보니 비소식이 있다. 비에 젖어 무겁고 질척거릴 것 같아 평소 신던 도톰한 깔창을 꺼내고 좀 얇고 딱딱한 깔창으로 바꿨다. 간단히 요기를 한 후 615분까지 대전시청역 5번 출구로 도보로 이동 후 전세버스를 타고 출발. 벌곡휴게소에서 아침식사 후 다시 출발.

    가는 도중 '비탈'님 옆자리에 앉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담소를 나눴다. 학창시절 엘리트 선수로 출발하여 실업팀에서도 활동하셨던 화려한 전력의 소유자신데 운동을 그만둔 후 50을 훌쩍 넘긴 얼마 전에 서브3를 달성하며 화려하게 복귀에 성공하신 분이다. 마라톤과 이제까지 살아오신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신 교훈은 '겸손'이다. 마라톤은 어렵고 힘들다. 삶은 마라톤에 비하면 더 어렵고 더 힘들다. 하지만 마라톤도 삶도 화려하고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

 

오전 9시경 도착해 바라본 대회장 하늘

 

    대회장인 고창공설운동장에 당도하니 빗방울도 굵고 바람도 거세다. 높게 걸려 일렬횡대로 펄럭이는 깃발들이 위풍당당하고 우렁차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용의 비늘 같은 짙고 낮게 드리운 구름이 꿈틀꿈틀 하는 듯 당장이라도 천둥벼락과 함께 용이라도 얼굴을 내밀 듯하다. 오늘 레이스는 고생깨나 할 듯. 전라도 사투리로 솔찬히, 겁나게, 허벌나게, 거시기한 레이스가 될 거시여!

 

 

 

    그룹사진, 단체사진을 찍은 후 10시에 스타트! 적당한 긴장과 설레임을 안고 형형색색의 러너들이 왁자지껄 출발하는 이 순간이 좋다. 연습이고 대회고 언제나 처음 시작하는 이 시간이 좋다. 가슴은 고동치고 몸은 깨어난다.

    언제나 무엇이든 끝보다 시작이 좋다. 추수보다 씨뿌리기가 좋고 농익은 사랑보다 수줍은 미소 어색한 몸짓의 첫사랑의 두근거림이 좋다. 배부른 포만감도 좋지만 간절한 기다림 끝의 첫 숟가락의 기막힌 맛이 더 좋고 고생 끝의 완주의 성취감도 좋지만 성공을 장담할 수 없고 비록 처절한 고통과 참담한 실패가 예비되어 있을지라도 순진무구한 도전정신과 당돌한 패기로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생생한 다리로 폴짝폴짝 뛰노는 이 시작이 좋다.

    시작은 무한한 가능성의 알 수 없는 미래를 내포하고 있고, 끝은 자신의 미션을 완수한 후 새로운 시작에 자리를 내어주며 그 거름이 되어준다. 시작은 신비롭고, 끝은 숭고하다.

 

    그런데 간혹 처음 2,3k보다 마지막 2,3k가 더 좋을 때가 있다. 컨디션이 너무 좋아 목적지가 얼마 안 남은 것이 아쉬운 때다. 마치 양이 차지 않았는데 자꾸만 작아지는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보는 것 같이 자꾸만 줄어드는 거리가 안타까운 것이다. 아직 힘은 넘쳐나는데... 달리면 달릴수록 몸은 더 가벼워지고 기분은 더 날아갈 듯 한데... 10k100k든 더 빨리, 더 멀리 뛸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멈춰야만 할 때... 마지막 2,3k는 말 그대로 꿀맛, 아껴두고 감춰놓았던 꿀단지를 쪽쪽 빨아먹는 느낌이랄까!

    이것은 달리기의 가장 이상적인 상황으로 필경 네거티브 스플릿(Negative split 곧 전반 1/2보다 후반 1/2 기록이 좋은 레이스)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 10k, 하프에선 경험해보았지만 풀에선 한 번도 없었다. 만약 돌아오는 39,40k 구간에서 이 같은 기분을 느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서브4는 물론 그 이상도 바라볼 수 있다.

 

    언제나, 변함없이 초반 10k를 신나게, 즐겁게 달리고 있다. 초반 3,4k를 제외하고는 경사도 급하지 않은 평지에 가깝다. 다행히 비바람도 많이 잦아들었고 그마저도 오히려 상쾌하고 시원하다. 다리털을 간질이며 흩뿌리는 빗방울의 감각을 느끼며 멀리 산사이로 운무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마주하고 달리고 있다. 마라톤만 아니라면 배 깔고 드러누워 처마 끝 낙숫물 소리를 들으며 뜨끈뜨끈한 부침개를 부쳐 먹기 딱 좋은 날이다.

    아직 몸도 말짱하고 정신도 멀쩡하다. 말짱함을 넘어 스프링같이 통통 튀고 멀쩡함을 넘어 초롱초롱 미분적분도 풀 기세다. 초인적인 자제력을 발휘하여 400 페메를 추월하지 않고 졸졸 따라가고 있다. 나를 포함하여 무리는 15명 남짓, 과연 누가 끝까지 남아있을 것인가? 흥미진진한 생존게임이다.

 

    꽤 솔찮은 추종자들에게 고무되셨는지 페메되시는 분의 파이팅이 넘친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억양의 목소리로 페이스도 알려주시고 응원구호도 선창하신다. 키로미터당 평균 533초로 아직까진 서브4에 여유가 넉넉하니 빠른 편이다.

    성이 기억나진 않지만 이승이라며 자기소개를 하시는데 여성분들 만날 때면 매번 이 이름을 써먹는다고 농담을 하신다. 자기를 만날수록 이승의 시간이 는다고, 늘릴 수 있다고 꼬신다나 뭐라나. 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나도 대회를 마치자마자 당장 이름을 바꿔야겠다. 이제부터 내 이름은 이영생이다. - 나를 만나는 자 영생을 얻으리니, 모든 여성들은 다 내게로 오라!

 

    10k 하프 반환점을 조금 지나자 오른편 야트막한 언덕으로 고인돌 유적지가 보인다. 평소 알고 있던 모양() 외에 모양과 크기가 다양하다.

    계속 달려 풀 반환점을 돌고 다시 고인돌 유적지까지 되돌아올 때까지 페이스는 535초로 조금 늦춰졌을 뿐 큰 변함이 없다. 다만 무리는 6명으로 대폭 줄었다. 몸은 초반보다 가볍진 않지만 그럭저럭 쫓아가고 있다.

    30키로를 지나고 유적지를 빠져나오면서 신발에 작은 돌멩이가 굴러들어갔는지 성가시고 불편하다. 다음 급수대까지 참고 뛰어서 물을 마신 후 가로수를 잡고 신발을 벗으려고 한쪽 발을 들려다가 종아리에 쥐가 올라오려는 느낌이다. 잠시 쉬며 스트레칭을 하자 그 느낌은 가라앉았지만 그 사이 페메는 벌써 100여미터 달아나 있다. 한번 놓치자 육안으론 보이지만 자꾸만 멀어져만 간다. 페이스도 확연히 떨어지고 몸도 마음도 급격히 다운되는 느낌. 이 시점 이후로 다시는 페메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걷지는 않고 계속 뛰고는 있다. 속도는 느려졌지만 걷지만 않는다면 아직 서브4는 가능하다. 하지만 점점 뛰기 싫어진다. 뛰기 어렵다. 날 더운 한여름에 30키로 이후 마라톤 벽을 뛸 때는 다리가 분해, 해체되는 느낌이었다면 찬 비바람 때문인지 지금은 다리 전체가 통자로 동결, 굳어버린 느낌이다. 깔창이 평소보다 얇고 딱딱한 때문인지 착지시의 충격도 더한 것 같다. 결국 38k 이후 걷기 시작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앞에도 뒤에도 멀리 하나 아니면 둘만 보이는데 너나없이 모두가 걷고 있다. 걷는 데 전혀 부끄러움이나 부담이 없다. 가뜩이나 비는 멎었는데 바람은 더 세졌다. 매번 마찬가지지만 갈 때 순풍의 고마움은 모르지만 되돌아올 때 역풍의 저항은 온몸으로 느껴진다.

    모자챙이 뒤로 젖혀질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여야 전진하기 편할 정도의 역풍이다. 실지로 모자가 뒤로 날아가 몇 미터 후진하기도 했다. 우중주는 2015년 아들내미 종서와 뛰었던 5k 대회 이후 처음이고 이제까지의 대회 중 가장 바람이 강한 대회, 최초로 빠꾸를 경험한 대회다.

 

    이제 몸도 마음도 패잔병 신세. 계획한 목표는 이미 포기하고 뛰는 것보다 걷는 것이 더 많다. 몸도 쇠잔하고 마음도 휑하여 남아도는 고독한 시간들을 뜬금없는 상상으로 채운다.

    케냐인가 아프리카 어디는 사자와 표범이 뛰노는 야생 사파리를 가로지르는 마라톤 대회가 있다던데 고창에서도 주최 측이 미친개라도 풀어놓는다면 아직 서브4의 가능성은 있을 텐데... 하는 다소 무책임하고 비겁한 생각?!

    짝짓기 철이라 간혹 도심에도 산돼지, 멧돼지가 출몰한다던데 지금이라도 흥분한 수퇘지가 산기슭을 내려와 뻘건 눈에 침을 질질 흘리며 돌진해 온다면은 충분히 서브4를 해줄 용의는 있는데... 하는 다소 위험하고 교만한 생각?!

    미친개와 발정 난 수퇘지 혹은 아프리카 돼지열병에 걸린 멧돼지가 달리면 누가 이길까?... 아예 이참에 닉네임을 어멍에서 미친개’ ‘발정 난 미친개’ ‘영생 멧돼지미친개에 물리고 아프리카 돼지열병에 걸린 후 돌연 영생을 얻게 된 발정 난 멧돼지로 바꿀까! 마라톤 신이 그렇게 내게 임하신다면 일리우드 킵초게(Eliud Kipchoge ← 영문까지 풀네임을 병기해주는 것이 그 이름에 걸맞은 마땅한 예우다)를 넘어 서브2, 서브150을 달성하며 마라톤계에 영원히 군림할 수 있을 텐데... 어딜 가나 '미친개에 물리고 ~ ~ 멧돼지'의 풀네임으로 불리며 모든 마라토너는 물론 전인류의 경이로운 시선과 추앙을 받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엄청 황당하고 아스트랄한 생각?! (하지만 이 풀네임은 '나를묶고가둔다면울릉도동남쪽뱃길따라이백리밧줄로꽁꽁묶어라단밥은하루네끼오예'의 38자에 비한다면 33자에 불과할 뿐이다.)

    하여튼 이런 불행 행운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서브4를 넘어 내 최고기록인 337을 갱신하기에도 아직 늦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위는 바람소리만 휘잉~~하니 적막하여 고인돌의 본고장에서 기대할만한 원시야생의 긴장감이나 소란스러움은 없다.

 

    상상은 상상일 뿐 고단함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제 욕심도 미련도 내려놓고 안전하고 편안한 마무리를 도모해야 할 때다.

    풀 출전이 하나의 승부라면 질 때 잘 져야 다음에 이길 때 잘 이길 수 있다. 절대 무모하게 다 걸기, 올인해서는 안 된다. 잘 지는 것은 부상 없이, 내상 없이 자기 운동능력의 핵심, 코어를 보존하며 지는 것이다. 승부를 걸 땐 걸더라도 다음을 기약해야한다. 다음이 안 된다면 다다음도 좋다.

    필요하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잡아먹어도 되지만 되도록 최후의 순간까지 종자씨는 보존해야 한다. 더욱이 한번 뛰고 말 것이 아닌 취미로 하는 동호인 수준이면 내일은 없단 식으로 죽기살기로 뛸 필요는 없다. 그렇잖아도 2017년에 지옥을 맛봤던 죽음의 레이스(☞ 전국의병마라톤대회) 후 한동안 후유증으로 고생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길고 가늘게 즐달, 건달하는 게 아마추어 달림이들의 모토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레이스에 임하는 자세

함부로 따라해서는 안 되는 프로 겜블러의 레이스에 임하는 자세

 

    에헤라디여! 마음을 비우니 한결 견딜만하다. 점점 걷는 거리가 길어지지만 어느새 41k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이제 공설운동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300여미터 오르막이다. 오르막을 끝내고 트랙에 들어서자마자 없던 힘이 솟는다. 인파가 몰려 보는 눈이 많은 결승점에선 항상 숨어있던 힘이 고개를 든다.

    골인! 4시간 921. 평균속도는 km5‘54“ 최고속도구간은 3~4k 구간 5’17” 최저속도구간은 39~40k 구간 8‘51“.

 

  언제나 처음도 끝도 모두 즐겁다. - 고인돌 모양()을 닮은 스쿼트 퍼포먼스

평상시엔 난이도 1.0에 불과하지만 대퇴근이 후들후들 떨리는 풀 직후에는 난이도 4.0,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까지 제어하며 안정적인 화사한 미소를 유지한다면

가산점까지 더해져 5.0까지 치솟는 고난도 퍼포먼스

 

 

    - 평가 및 마무리

 

    대회는 A- : 인심도 좋고 파이팅도 넘쳤고 먹거리도 맛있고 코스도 지방대회치곤 그리 험하지 않았다. 몇 개의 언덕이 있었지만 경사도가 급하지 않아 그리 부하가 걸리진 않았다. 날씨만 도와준다면 좋은 기록을 노려볼만한 대회다.

 

    ‘어멍D- : 미리 설정한 자체 평가기준에 따르면 50점이지만 완주는 했으니 F는 면한다. 조심스럽지만 서브4를 예상했는데 연습한 것, 준비한 것에 비하면 기대를 많이 벗어난 결과라서 꽤 실망스럽다. 35k 지점까지의 기록만 따로 놓고 봐도 마지막 LSD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 아무리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다. 왜일까?

    맞다고 확신할 순 없지만 생각 끝에 얻은 결론은 짧은 준비기간이다. 나름대로 성실히, 알차게 준비한다고 했지만 본격적인 준비기간은 2개월 남짓이다. 한마디로 봄, 여름부터 쌓아온 기본체력, 곧 뎁스(Depth) 부족이다. 체력에도 깊이, 두터움, 준비된 여분이 필요한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단기간에 쌓아올릴 수 없다. 앞으로 풀코스(특히 오랜만의 풀코스)는 좀 더 일찍부터 긴 호흡을 갖고 준비해야겠다.

    일단은 다음달 1215일 집 앞마당격인 대전 갑천에서 열리는 전마협대회 풀코스를 4주 프로그램으로 준비하기로 한다. 올해 마지막 대회에서 다시 서브4에 도전이다.

 

 

    ※ 후기의 후기

 

    원래 계획했던 퍼포먼스는 스쿼트 퍼포먼스가 아닌 고인돌 퍼포먼스였다. 즉 두 사람이 무릎을 꿇고 나란히 엎드린 위로(곧 좌절자세, 굴욕자세인 ‘OTL’이다) <올랭피아>처럼 도도하고 요염하게 드러눕는 거다. 하지만 차마 실행치 못했다. 만약 성공했다면 장엄하고 멋있었을 텐데 참 아쉽다!

 

마네의 <올랭피아>

 

    누드는 제쳐놓고 자세와 표정만이라도 근사(近似)하게 연출된다면 고인돌 퍼포먼스라기보단 고인돌과 <올랭피아>의 콜라보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겠다. - 이거슨 동양과 서양의 만남, 선사시대와 근대의 만남, 조형과 회화의 만남, 한없이 딱딱하고 무정한 것과 한없이 부드럽고 육감적인 것의 만남!

 

    하지만 민폐, 관종이라는 비난을 이겨낸다 해도 이 퍼포먼스를 실행하기엔 그 밖의 여러 장애요인이 있었다. 3인 합동 퍼포먼스로 나 이외에 두 명의 협조가 필요한데 빗물 고인 바닥에 회장님, 고문님을 깔고 누울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고 젊은 새내기 회원에게 바치라!’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생기다 만, 약식 고인돌 닮은 조그만 스쿼트 퍼포먼스로 대신했다.

 

    다음번 고창고인돌대회 때는 동갑내기인 퀸메이커, 제제를 꼬셔서 함께 와야겠다. 못하겠다고 반항하면 먹는 걸로 유혹하면 된다. 퀸메이커는 몰라도 제제는 고기 사준다고 하면 분명 넘어올 거다. (한 근 안 되면 두 근! 묻고 더블로 가!)




    ※ 주주클럽 회원분들께 드리는 추신


    선후배 몇 분이라도 도와주신다면 다음번엔 완성형 퍼포먼스를 시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전 회원분들께서 받혀주신다면 파라오처럼 도도하게, 올랭피아처럼 요염하게 할 자신 있습니다.

    다만 분위기에 휩쓸린 도취감이나 회원님들의 굴욕을 무릅쓴 수고와 희생에 보답하기 위한 책임감에 폭주하여 입이 떡! 벌어지는 대형사고가 발생하지나 않을까 염려될 뿐, 그저 이왕이면 춥지 않은 여름에 이런 몹쓸 불상사가 일어나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괴력을 봉인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은 빌런처럼 호흡곤란과 살쓸림의 불지옥을 맛보더라도 쉽게 훌러덩 할 수 없는 타이트한 남성용 올인원을 숨겨입고 뛰어야 할 듯)


    그리고 앞으로 제 이름은 '이영생' 제 닉네임은 미친개에물리고아프리카돼지열병에걸린후돌연영생을얻게된발정난멧돼지의 풀네임으로 불러주세요.

    이것이 싫고 귀찮으셔서 '나를묶고가둔다면울릉도동남쪽뱃길따라이백리밧줄로꽁꽁묶어라단밥은하루네끼오예'로 불러주세요.

    (저를 이렇게 만든, 저를 문 주주의 '미친개'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