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때론 먹의 향내가 나는 글과 음악 그리고 사람

성경, 신앙생활

<‘어멍’의 성경읽기 - Ⅱ권, 신약>을 마치며

어멍 2011. 11. 9. 23:56
 

<‘어멍’의 성경읽기 - Ⅱ권, 신약>을 마치며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423쪽

텍스트 : 아가페 출판사 《큰글 쉬운성경》

읽은 기간 : 2011/03/13 ~ 2011/10/30 , 총 232일

일일 평균 : 0.12권 1.12장 34.31절 1.82쪽

<‘어멍’의 성경읽기 - Ⅱ권, 신약> : 성경읽기 0073 ~ 성경읽기 0110 , 38개의 포스트

                                                 (부록 2개 포함하면) 총 40개의 포스트 , 261쪽

                                                 (첨부 2개 포함하면) 총 275쪽

 

구약, 신약 : 총 66권 1,189장 31,173절 1,754쪽

읽은 기간 : 2010/02/01 ~ 2011/10/30 , 총 637일

일일 평균 : 0.1권 1.87장 48.94절 2.75쪽

<Ⅰ권, 구약>, <Ⅱ권, 신약> : 성경읽기 0001 ~ 성경읽기 0110 , 110개의 포스트

                                         (부록 5개 포함하면) 총 115개의 포스트 , 667쪽

                                         (첨부 2개 포함하면) 총 681쪽

 



<Ⅱ권, 신약> 맨 앞장 표지



    구약에 이어 신약 읽기를 끝마쳤다. 1년 9개월 만에 성경통독을 끝낸 셈이다. 너무 게으름을 피며 느리게 읽은 감이 있지만 나름대로 숙독하며 묵상하여왔다.

    옳게 읽고 해석하였는지 염려되고 혹 잘못 읽고 오해하지나 않았는지 걱정되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진지하고 진실되게 읽어왔고 얻은 것도 많다.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는 근본목적이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라고 할 때 그 목적을 만족하게, 완전하게 달성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많은 도움을 얻었다. 큰 진전이 있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어멍의 성경읽기’는 정통적이지 않다. 내 나름대로 많은 것을 얻었지만 제 3자, 보통의 기독교인이 읽기엔 때론 거북하고 때론 불쾌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적지 않을, 모가 나 있는 내용들이 많다.

    또한 주님의 말씀을 가슴보단 머리로 받아들이려 하며 신앙인이 아닌 신학자,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처럼 설명문, 감상문에 그친 경우도 있다. 감사와 기도보다는 해석과 비평이 많은 점은 주님 앞에 부끄럽기 이전에 스스로도 아쉽고 목마른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너무 어려운 부분,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의 많은 상징들과 동의하기 힘든 부분, 예를 들어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내용을 담은 구절들에 대해선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비겁하게 회피하거나 건너뛰었음을 아울러 밝힌다. 다른 (고대)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성경, 기독교에서도 여신, 여성성의 존재는 미미하든가 찾아볼 수 없다.


    ‘어멍의 성경읽기’는 내용 자체가 정제되어 있지 않고 잡스럽다. 성스럽고 거룩하기보단 속되고 잡다한 것이 많다. 동양, 서양 그리고 우리 고유의 역사, 철학, 미술, 문학, 고전, 영화, 정치, 사회, 시사...... 등등등... 깊이는 없이 오지랖만 넓은 인상이 짙다.

    하지만 이 책의 수준과 성격을 논하기 이전에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에는 일정 깊이의 신학적 지식과 일정 넓이의 교양과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지식 위에 지혜 있고, 지성 위에 영성 있듯 교만한 지식, 지식 만능주의는 위험하지만 앎이 없는 믿음 역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알고 믿을 것인가, 모르고 믿을 것인가? 당연히 알고 믿는 것이 더 좋다. 더 바르다.

    기본적인 지성과 소양은 직업 목회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평신도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그래야만 깊고 바르게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닮을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교계의 현실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이것과 관련하여 최근 내게 의미 있게 다가온 글이 있다. 바로, 전 국사편찬위원장인 이만열 박사가 <복음과 상황> 10월호에 쓴 칼럼 “한국교회, 자기 신학이 있는가?”란 글이다. 공감 가는 중요부분만 간추려 옮겨본다.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수입된) 교회 성장론은 성숙 없는 성장을 가져와 교회의 부패로 이어졌고, 성장을 강조한 나머지 한국교회의 분열마저 ‘미화’시킨 측면이 없지 않다.


    축사론(逐邪論)을 한국의 어느 목사가 주장할 경우에는 이단으로 몰렸으나 풀러신학교의 이론으로 소개하면 이단으로 몰리지도 않고 신학적 정당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걸 들으면서 필자는 그가 지적한 ‘사대주의론’이 비단 ‘축사론’에만 해당되겠느냐고 느꼈다. 평소 한국의 신학 풍토를 두고 ‘수입 신학’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해 온 내게 김 박사의 이런 지적은 순간 다른 의미로 공명을 일으켰다. 김 박사가 언급한 ‘사대주의론’은 넓은 의미에서는 내가 말하는 ‘수입 신학론’과 상통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수입 신학’을 아무런 고민이나 여과 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사대주의적 발상의 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교회가 혼탁한 것은 자기 신학을 갖지 않았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역설한 바 있다.


    신학은 상황 의식과는 무관하다고 우기는 이도 있지만, 칼 바르트의 신학이 1차 대전을 겪은 유럽의 상황을 토대로, 라인홀드 니버의 신학이 미국의 산업화로 인간이 황폐해 가는 상황과 관련되었다는 점에서, 상황과의 관련성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개성적이고 특수한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 지역 한 시대에 특수한 성격을 띠고 나타난 학문이 시공을 뛰어넘어 보편성을 갖지 않으면 생명력을 가질 수가 없다.


    한국의 신학이 ‘수입 신학’이라는 것은 우리의 상황과 고민을 통해 성립된 신학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주교가 첫 세례자를 낸(1785) 지 230년이 되어 가고 개신교도 첫 세례자가 나온 지 130년이 넘었는데도 ‘한국의 신학’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신라에서 불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해(527)로부터 원효(元曉, 617~686)가 나타난 것은 100년이 채 안된 시기이며 (중략) 소통의 능력이 지금보다 훨씬 뒤졌던 그 시기에 원효 같은 이가 그렇게 빨리 나왔다는 것은 한국 그리스도교를 정말 부끄럽게 하고 있다.


    신학적으로 제대로 비판을 받지 못하고 검증도 되지 않은, 어쩌면 신학 없는 교회들의 비복음적 신앙이 역으로 신학교의 교육을 폐쇄적인 상태로 몰아가고 ‘신학화’의 가능성을 잘라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제 한국교회는 자기 신학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성경 연구와 서양신학, 서양교회사 못지않게 신학교에서 동양과 한국의 고전을 읽혀야 한다. 종자(씨)에 대한 연구와 교육 못지않게 이 땅과 밭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 땅과 밭에 대한 연구는 이 땅의 인문․사회․예술적인 풍토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다. 이 땅의 사상적 풍토에 대한 연구가 없이는 한국교회가 자기 신학을 가질 수 없다. 한국 신학교들은 교육 과정을 재검토해야 한다. 한국교회에서 현장 없는 공허한 설교가 계속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신학적 뒷받침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세계 선교 사상, 유례없는 성장과 발전을 했다고 하지만 그 성장에 비해서 종교적 영성은 고사하고 윤리적․도덕적 영향력마저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것은 왜 그럴까. (중략) 지금은 ‘복음의 샤머니즘화’가 광신적으로 진전되고 있어도 이를 분간할 영성과 지성을 다 잃어 버렸다. (중략) 장로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 사회에 교회가 아편중독에 걸린 것처럼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어도 이제는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남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한계가 있듯이, 수입신학 가지고는 한국 사회와 교회의 영성적 문제를 풀어가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교회와 신학교, 무수한 신자들이 있음에도 한국교회가 세계에 내 놓을 수 있는 자기 신학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만열 박사의 결론은 한국교회는 혼란하며 부패해 있고 그 혼란과 부패의 원인 중 하나가 ‘자기 신학’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해결책으로 우리만의 신학, 우리의 상황에 맞는 신학, 그러면서도 긴 생명력을 가진 보편성을 획득한 ‘자기 신학’의 확립을 들고 있다.

    나는 신학에 대해 문외한이다. 신학교에서 무슨 과목을 배우는지도, 무슨 신학교가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에 짙게 드리운 미국 기독교의 그림자를 본다. 그것은 신학교뿐 아니라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세계에 내 놓을 만한 차원 높은 한국 신학이 없다. 세계 기독교계에 내 놓을 만한 것은 오직 기록적인 양적 팽창과 큰 교회(건물)만 있을 뿐이다.

    이것은 비단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사회의 많은 부문 예컨대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다 그렇다. 학문도 미국 학문, 박사도 미국 박사를 더 쳐준다. 팔레스타인도 유럽도 아닌 한국기독교의 본 고장은 미국이다. 내 것을 아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우리 것으로 소화할 필요가 있는데 미국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것은 진정 아는 것이 아니다. 진정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흉내에 그칠 뿐이다. 받아들이더라도 모방, 추종에 그치지 말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두커니 바라보거나 겉만 핥지 말고 씹어 먹고 소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내가 이만열 박사의 글에 동감하게 된 이유다. 그리고 이것은 내 성경읽기의 잡다한 성격에 대한 자기변호이기도 하다.




<‘어멍’의 성경읽기 - Ⅱ권, 신약>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사랑은 영원하시다.[시편 106:1, 107:1, 118:1, 136:1] - 내가 구약을 읽으며 가장 감동하고 좋아하게 된 구절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 - 내가 신약을 읽으며 가장 감동하고 좋아하게 된 구절이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닮자.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자. 이것이 성경읽기를 마치고 내가 얻은 교훈이다. 수확이다.

    이제 겨우 일독을 마쳤으니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믿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더욱 더 부족하다. 아직 갈 길이 멀고 그 길에서 항상 주님이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린다.

    <Ⅰ권, 구약>과 마찬가지로 <Ⅱ권, 신약>도 읽기 쉽게 A4 크기로 두 권 만들어 어머님께 한 권 드릴 생각이다. 이 소박한 <성경읽기> 글모음을 어머님과 가족들에게 보낸다.


    주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를 긴 시간동안 이끌어 주시고,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주님을 뵈었는지요? 제가 주님을 알았는지요? 두려움과 간절함으로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주님 저를 붙드소서. 저를 이끄소서.

    제가 주님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제게 은혜와 은총을 내려주시옵소서. 제 손을 잡아주시고 제게 옷자락을 비춰주소서. 제가 어둠 속에 헤매지 않게, 혹 주님을 오해하고 오도하는 죄를 짓지 않게, 항상 저의 등불이 되어 주시옵소서.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나의 목자시니 제게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주님의 완전하심과 인자하심을 제가 믿사오며,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2011/11/09 어멍





                                                   최종 완성본 : 한 권은 내 것, 한 권은 어머님 것.




                                                 <'어멍'의 성경읽기 -Ⅰ권, 구약> & <Ⅱ권, 신약>



                                                                                                                                            2011/11/12 재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