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아홉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 (20250907) - 믿는 자의 죄를 더 적게 하시고 회개는 더 철저하게 하소서.
어멍2025. 9. 12. 00:12
마흔아홉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 (20250907)
- 믿는 자의 죄를 더 적게 하시고 회개는 더 철저하게 하소서 -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생명을 주시고 삶의 터전을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주일을 맞아 저희 성도들 주님 앞에 모였사오니 저희의 찬양을 받으시고 저희의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의 감사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시고, 저희의 회개로 주님의 평화가 땅 위에 깃들게 하시옵소서. 저희는 어린아이와 같아서 회개는 피하고 축복만을 바라지만 언젠가 숨겨놓은 죄악이 드러나 찾아올 날이 올 것이니 그 날에 저희가 무겁고 불편한 마음을 인내하며 회개하게 하시옵소서. 저희는 믿는 자이오니 믿는 자의 죄는 더 적게 하시고 그 회개는 더 철저하게 하시옵소서.
주님. 저희는 후회는 하지만 반성은 하지 않습니다. 회개는 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상은 내리지만 벌은 결코 내리지 않습니다. 상 받을 땐 주님을 뒤로 밀치고 앞으로 나서고 벌 받을 땐 주님을 앞세우고 뒤로 숨습니다. 저희의 나약함과 불완전함을 겸손의 근거로 삼지 않고 죄악의 핑계로 삼습니다. 저희는 죄짓기를 잘하고 회개하기는 더 잘하고 다시 죄짓기는 더 더 잘합니다. 저희는 손쉬운 방식으로 제멋대로 살아가다가 때가 되면 회개를 댓가로 주님께 자비와 용서를 요구합니다. 저희는 어제의 죄는 용서받았다 치고, 내일의 죄는 용서해주실 걸 믿고, 주님의 어깨 위에 저희 죄를 부려놓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뒤돌아서 제 갈 길을 갑니다.
저희는 주님께 빵과 함께 기적, 신비, 권위 그리고 용서를 요구합니다. 주님께선 빵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하시지만 저희는 빵 없이는 살 수 없다 하며 허락도 응답도 받기 전에 왼손에 빵, 오른손에 용서를 챙겨 달아납니다. 저는 죄인 중의 괴수로서 죄지으면서 회개하고 회개하면서 죄짓고 있사오니 이 악행을 부디 용서하소서.
주님. 저희의 회개가 이렇듯 불성실하고 허약하오니 저희를 구원하시기 전에 저희의 회개를 완전케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회개에 반성과 책임이 함께하게 하시옵소서. 저희들 중 죄보다 선이 많은 이는 적고 주님의 의에 다다른 이는 아무도 없사오니 저희를 공적으로 용서하지 마시고 오직 자비로서 용서하시옵소서. 저희는 천둥번개가 두렵고 불안하여 잠 못 드는 죄인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벌을 받든 억울함을 항변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사오니 부디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거두시고 저희를 용서하시되 모든 것이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주님. 저희가 멀고 높은 이보다 가까운 이웃부터 살피게 하시옵소서. (왕과 장군들이 아닌 시민, 병사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부자, 권력자가 아닌 약한 자, 가난한 자, 아픈 자를 위해 축복,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저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잡고 한자리에 모였사오니 저마다의 기도와 간구를 들어주시옵소서. 저희들 중 몸이나 마음에 피멍이 들어 울며 아파하는 자가 있사오면 주님의 넓은 품으로 안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크신 권능과 담대함으로 용기를 주시어 끝내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 담임목사님을 축복하사 항상 강건하게 하여 주시옵고 목사님을 중심으로 모두가 합심하여 주님의 뜻과 선과 의를 이루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우정공동체와 이 지역에 주님의 영광이 밝게 드러나게 하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 언젠가 숨겨놓은 죄악이 드러나 찾아올 날이 올 것이니 : 너희의 죄가 너희를 찾아낼 것임을 알라. [민수기 32:23]
죄는 뿌려놓은 씨앗이나 숨겨놓은 자식과 같다. 세월이 지나면 크고 장성하여 그 주인과 부모를 찾아온다.
※ 저희는 믿는 자이오니 믿는 자의 죄는 더 적게 하시고 그 회개는 더 철저하게 하시옵소서.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로마서 2:24] - 바야흐로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믿는 자, 믿는다고 하는 자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모독을 받고 있다.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 국가조찬기도회 회장인 서희건설 회장 이봉관 장로, 부회장인 국가교육위원장 이배용 권사, 이사인 국가인권위원장 안창호 장로,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비롯해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 임성근 전 해병대 사단장 등... 모두 믿는 자(개신교 신자)들이고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 김건희 전 정권과 밀착하여 한창 구설에 오르고 있는 인물들, 교계 내에서 한 자리씩 하는 비중 있는 인물들이다. 특검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고 각각 죄의 유무와 경중을 가려야겠지만 이들의 면면을 보면 현재의 개신교 교회는 크게 회개해야 한다. 결코 일부 교인이나 교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수준이다.
더 심각한 것은 드러나는 죄에 대하여 한국교회가 회개는 고사하고 일반 대중을 향해 변변한 사과의 말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대형교회나 원로 목사 중 누구 하나 반성 비슷한 입장을 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믿는다 하는 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교회 상층부, 지도자급 인사들의 죄가 더 크고 회개는 아예 찾아볼 수 없으니 주님을 더욱 욕되게 하는 부끄러운 일이다. 악마의 자식들이 악마의 이름으로 거침없이 악을 행하는 것이 공포스런 일이라면 주님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주님을 이용하고 방패삼아 교묘하고도 끈덕지게 악을 행하는 것은 실로 가증스런 일이다.
※ 저희는 주님께 빵과 함께 기적, 신비, 권위 그리고 용서를 요구합니다. 주님께선 빵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하시지만 저희는 빵 없이는 살 수 없다 하며
빵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시는 주님의 말씀도 맞고, 빵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인간의 말도 맞다. 인간은 먹지 못하면 죽으니까. 문제는 생존 또는 소소한 행복 이외의 잉여의 빵, 남의 것을 빼앗아 남들보다 더 먹고 즐기려는 탐욕의 빵이다.
악마는 돌을 빵으로 만들라고 예수님을 유혹하였고 대심문관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는 대신 기적과 신비와 권위를 얻었다. 권위는 권력이고 일련의 통일된 체제다. 교회의 구성, 체계, 규율 등으로 통제되는 시스템 곧 로마가톨릭이다.
인간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권위(권력)은 군림하는 권력은 물론 복종하는 권력까지 포괄한다. 더 넓게는 의지, 의탁하려는 마음까지 말함이요 더 더 넓게는 사회나 관계에서 고립돼 있지 않고 서로 영향(력)과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그 안에 살려는 마음까지 포함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벗어나 완전히 단절, 고립된 개인은 광막한 우주 공간을 떠도는 먼지처럼 의미 없는 죽은 존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권력(서로 간에 주고받는 영향력)은 빵과 함께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또 다른 일용할 양식이다.
※ 저는 죄인 중의 괴수로서 죄지으면서 회개하고 회개하면서 죄짓고 있사오니 이 악행을 부디 용서하소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디모데전서 1:15]
사도 바울은 자기 낮춤의 겸손의 고백으로 스스로를 ‘죄인 중의 괴수’라 하였다. 문자 그대로만 보면 사탄에 못지않은 과격한 표현이다. 그래서 저희가 아닌 저, 1인칭 단수로 했다. 개인 기도가 아닌 대표기도에서 타인까지 끌어들여 함부로 싸잡아 과한 표현을 쓸 수는 없다.
바울이 고백한 죄는 예수님을 핍박하고 대항했던 불신앙의 죄, 주의 뜻이 아닌 제 맘과 판단으로만 살아왔던 교만의 죄로 종교적인 죄이며 과거형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죄는 나와 우리들의 (주로) 세속적인 죄로 현재형이다. 말 그대로 실시간으로 동시에 실행되는 ‘죄지으면서 회개하고, 회개하면서 죄짓고 있는’ 현재 상황이다.
죄지은 놈보다 나쁜 놈은 핑계 대는 놈, 핑계 대는 놈보다 더 나쁜 놈은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뻔뻔히 대드는 놈, 대드는 놈보다 더 더 나쁜 놈은 뉘우치는 척 신을 농락하고 신과 거래하려는 비열한 놈이다. 어쩌면 기왕의 죄보다 진정으로 반성할 줄 모르고, 회개할 줄 모르는 도발적인 비열함이야말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악마성의 진면목일 수 있다. 그러므로 죄와 회개가 동시에 작동하는 이 상황이야말로(물론 이 회개는 거짓 회개다) 가장 악마적인 상황이다. 사이코패스 범죄영화에서나 볼듯한 죄인 중의 죄인, 괴수 중의 괴수, 악마 중의 악마의 죄와 회개와 기도다. 칼을 찔러 넣으면서 하나님께 자비와 용서를 구한다. - 이 악행을 부디 용서하소서.
이 문장은 부분적으로는 나, 우리, 바울, 악마, (인간의 죄에 대신 용서를 구하는) 예수님의 기도로도 들릴 수 있다. 이렇게 여러 대목에서 여러 해석이 가능한 반어적, 역설적, 중의적 표현으로 다소 억지가 섞인 극단적 상황, 과장이 섞인 드라마틱한 상황의 표현이기도 하다. (악마의 극악무도한 악행도 드라마틱하지만 온 인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그 무게와 고통을 감당한다는 예수님의 희생 역시 드라마틱하다.)
주님의 자비와 용서가 모든 이에게 열려있다지만 이것이 악마의 기도라면 용서받지 못할 자다. 나를 포함한 평범한 대다수는 이 정도의 죄인 중의 괴수, 악마 중의 악마는 아니다. 그 정도의 거악, 거물은 아니다. 그저 자질구레하고 비루한 소악에 그칠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살짝살짝 어겨가면서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의 때를 묻혀가며 살아간다. 우리의 거짓에는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하얀 거짓말도 있고 접대성 멘트 등 예의상 하는 관습적 거짓말도 있다. 사실 100% 오직 진실만을 말하며 산다는 것은 무척 피곤하고 힘들며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인간은 삶의 방편으로 정보를 적당히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왜곡해서 드러낸다. 의식적이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각자 나름대로 자기만의 생각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주님의 진리와 말씀에서 멀어질 수가 있다. 땅 위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분명히 알고 경계해야 한다. 항상, 세상의 때에 찌들지 않고 소악이 거악으로 자라지 않도록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작은 죄라도 끊임없이 씻는 수밖에는 없다.
※ 저희를 공적으로 용서하지 마시고 오직 자비로서 용서하시옵소서. : 날 공적으로 용서하지 마시고 자비로 용서하소서. <안나 카레니나1> 민음사 92p
※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거두시고 저희를 용서하시되 모든 것이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마태 26:42]
페루지노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천사가 건네는 것은 앞으로 있게 될 십자가를 뜻하는 고난의 잔이다. 예수께서 받아든 잔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고통의 잔이라면 우리가 받아들 잔은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한 댓가로 우리 자신이 감당할 심판이요 벌이다.
※ (왕과 장군들이 아닌 시민, 병사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부자, 권력자가 아닌 약한 자, 가난한 자, 아픈 자를 위해 축복,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괄호는 너무 노골적인 암시를 담고 있어 실재기도 때는 뺐다. 즉 왕은 윤석열과 김건희(왕비), 장군들은 임성근 해병대 사단장, 김용현 국방부 장관 등을 말함이다.
임성근 구명 로비 수사를 하고 있는 특검의 출석 요구에 극동방송 김장환 목사가 부당한 정치탄압이라며 불응하고 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기도해준 죄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왜 기도는 항상 힘 있는 자들을 위해서만 할까?!
한국교회의 주류 상층부는 이제까지 박정희부터 전두환,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까지 최고 권력자들을 축복하고 기도했다. 이들 중 다수는 독재자, 무도한 자, 부패한 자들이었고 하나 같이 보수우파 정치인이었다. 스스로 정치적 이념에 완전히 경도되어 노골적으로 정치와 밀착하여 그 뒷배를 자처하며 권력과 이권을 나누었다.
이들은 윤석열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했다. 임성근 사단장을 위해 구명, 기도하기 전에 채 해병의 억울한 죽음을 먼저 위로, 기도해야 했다.
※※ 기도문을 작성할 땐 비교적 담담했는데 막상 교회에서 대표기도를 하던 중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점점 감정이 고조된 끝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혼자만의 기도가 아닌 대표기도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일부러 평정심을 찾아야 했다.
이 기도는 밝고 영광스런 기도, 축복이 가득한 즐겁고 행복한 기도는 아니다. 시종일관 무겁과 우울한 분위기로 회개에 집중한 기도로서 슬픈 기도, 슬픈 노래(애가)다. 연극으로 치면 비극으로 시작해 비극으로 끝나는 완벽한 비극이다. 탄식이 눈물이 되고 흐느낌이 통곡이 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해 자신은 물론 어머니와 아내, 두 아들과 두 딸까지 가족 모두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와 같다. - 하지만 주인공, 연민을 자아내는 비극적 운명의 희생자인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는 없다.
비극을 희극으로, 슬픈 노래를 기쁜 노래로 돌이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아직 더 슬퍼해야 한다. 더 회개해야 한다. 나도, 한국교회도, 완전한 회개 끝에서만 죄를 씻고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