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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원대한 구상 VS 어느 소시민의 소박한 소망

어멍 2009. 7. 18. 13:36



 

    이명박 대통령께서 얼마 전 이문동 재래시장을 방문하시여 대박을 터뜨리시더니(본 블로그 ‘짝퉁 대 명품‘참조) 이번 수해를 맞이해서는 지난 14일 대책본부를 방문하시여 또 한 번 큰 웃음을 주시었다. 요즘 정치시사 코미디가 없는 것이 다 이유가 있다. 생동감있는 라이브, 더구나 대통령이라는 하이엔드급 슈퍼스타 앞에서 어찌 경쟁력을 갖겠는가. 하여튼 일거수일투족, 가는 곳마다 화제만발이다.

    꽁트는 꽁트일 뿐 오해해서는 안 되고, 코미디는 코미디일 뿐 심각해하거나 따라할 필요야 없지만 스탈린의 한인강제이주정책, 박정희씨의 화전민 정리 사업(마을길 정리, 간척사업처럼 사람도 ‘정리’와 ‘사업’의 대상이다)이 생각나서, 정말 시행할 것 같아서 은근히 불안한 게 사실이다. 내 불안감, 불쾌감의 근거는 무엇인가. 과민한 감수성이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집요한 안티 때문이 아니다. 그의 언행에서 독재의 향내가 나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에는 사람이 없다. 인권이 없다. 관용이 없다. 오직 경쟁과 효율, 강자의 일방적이고 억압적인 법치만 있을 뿐이다. 나와 다른 것을 일체 허용하지 않고 완전 박멸하려는 멸균, 진공, 배제, 제거의 전체주의, 파쇼, 독재의 마인드다. 가끔 보면 정치적 편견으로 무장하고 과도한 열정에 들떠서 빨갱이는 씨를 말려야 한다느니, 흉악범은 잡는 족족 사형을 시켜야 한다느니, 깡패들은 삼청교육대에 쳐 넣고 굴려야 한다느니, 정치인들은 모두 똥물로 샤워하는 썩어빠진 놈들이라느니(하지만 투표는 꼬박꼬박 더 썩은 집단을 찍어준다) 장탄식, 장광설, 비분강개하는 필부필부의 마인드와 본질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정치하기 차암 쉽죠잉~) 이런 사람이 대통령되면 코미디가 되거나 참극이 된다.

    이런 사람들의 눈에는 정치적 반대자, 범죄자, 폭력배, 거지, 부랑자, 장애인,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은 없다. 그들은 다만 없어져야 할 혐오스런 존재들일 뿐이다. 엄밀히 얘기해서 인권에도 계급이 있고 차별이 존재한다는 거다.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은 남녀노소, 신분계급을 막론하고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 인권, 천부인권이 아니라 빨갱이의 인권, 흉악범의 인권, 거지, 부랑자의 인권일 뿐이다. 내가 갖고 있는 인권과 이명박, 이건희가 갖고 있는 인권과 빈민촌 저지대나 산간오지 농촌에 살고 있는 이재민의 인권이 같아야 하는데 다르다는 거다.

    이러한 마인드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강변할 수는 있어도 문화적으로 저급하고 정치적으로는 위험하다.


    인간이 생존하려면 물론 최소한의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돼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 계발이데올로기, 경쟁과 효율만을 절대시하는 경제지상주의에 빠지면 인간적인 삶의 기본조건인 인권, 환경을 위협하게 되고 결국 인간자체를 소외시킨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밥 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필요한 것이다.

    참여정부때 신행정수도 이슈로 정치권과 헌재가 시끄러웠던 때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수도권 과밀화로 인한 경쟁력 상실과 수도권 시민들의 삶의 질 훼손, 그리고 지방의 낙후와 공동화를 걱정하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결국 헌재는 관습헌법이란 기상천외한 논리로 신행정수도를 무력화시키고 우여곡절 끝에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축소, 격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그마저도 중앙집권주의자들인 한나라당에 의해 점점 왜소화되어 난항을 격고 있는 실정이다.

    언젠가 서대산을 가던 중 한 시골마을을 들른 적이 있다. 때는 한 여름 한 낮으로 마을 한 복판 큰 느티나무 그늘아래 들마루가 있었고, 그 위에 더위를 피해 낮잠을 주무시고 계신 촌로 한 분이 있었고, 길가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 없이 뙤약볕만 내리쬐고 있었다. 적막, 시끄러운 매미소리속의 그 적막이 지금도 인상깊게 남아 있다.

    서울은 어떤가. 예전엔 지하철 푸쉬맨이 있었다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예전엔 초능력이 없이도 키 작은 사람이면 공중부양(?!)까지 가능한 인간시장이었다는 꽤 수긍할만한 전설을 듣기도 했었다. 그 공기, 그 더위, 그 공간에서 무슨 인격이 있고 품위가 있겠는가. 하다못해 살을 섞고 사는 부부지간이래도 한여름에는 상대의 체온과 피부가 덥고 끈적거려 가까이 하기에 부담스러운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아무리 요조숙녀라도 밀착하고 부비고 들어오는 그 육체를 감수해야 한다. 그 불쾌감과 수치를 감내해야 한다.


지하철? 지옥철!  지옥철이래도 권태로울 겨를이 없이 분주하고 활기(?)차다.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려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최소한의 물리적 공간이 확보돼야 하고, 동시에 공간속으로 사라지거나 공간과 공간이 격리되어 외따로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무인도에서의 삶,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는 지방, 농촌, 산간벽지의 삶, 인간에 치이고 문명에 쫓겨다니는 현대 도시인, 특히 서울수도권 시민들의 삶, 모두 삶의 질과 품격이 보장되는 행복한 삶의 형태는 아니다.

    계발과 보존, 문명과 자연이 조화되고 그 속에서 인간이 존중돼는 삶의 형태와 조건을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원대하고 거창한 구상이 아니라 한 인간, 어느 소박한 시민의 소박한 소망이다.


음...여기는 계발이 덜 됐구만! (이런 곳은 물난리도 많이 나고 사람이 살 데가 못돼!)

2020년 모월 모일. 10여년전 수해를 당한 후 정부시책에 의해 읍내 아파트로 이주한 김모씨는
2번, 3번 국도가 경운기 정체로 인해 막혀있다는 교통정보를 듣고
자전거를 타고 3시간 만에 자신의 열무밭에 도착한다.
 


PS : 어멍 선정 이명박 대통령의 3대 돌발영상

    20080929 ‘멜라민’편

    20090630 ‘살기 좋은 세상’편

    20090715 ‘대통령의 원대한 구상’편


    동영상들을 보다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자질도, 능력도 문제지만 근본적인 생각, 사고방식이 전근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게 권력이란 잠시 위임받은 게 아니라 자기가 고생고생 쟁취한 것이고 대통령은 공복이 아니라 통치자이고 국민들은 모셔야 할 주인이 아니라 관리하고 가르치고 다스려야할 대상인 것이다.

    시장상인들은 ‘끽 소리도 못하고 가만히...장사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죽고’했던 자신의 과거에 비해선 살기 좋은 세상에 살고 있고 학생들은 기숙사에 집어넣어야 딴 생각안하고 공부만 할 것이고 농촌, 산간벽지의 주민들은 아파트에 모여살게 해야 관리하기도 쉬워지는 것이다. 행정편의주의, 전근대적인 관(官)주도 사고방식 이전에 상대, 인간에 대한 존중이 자리잡고 있지 않다. 재승박덕이로되 그 재주마저 현혹하는 재주, 속이는 재주, 포퓰리즘적 재주다.

    쇼, 좋게 말하면 홍보라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고 매번 냉소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없다. 거기에는 정책의지,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에 필요하고 유효한 정치수단, 홍보수단일 수 있다. 하지만 실재 추진하는 정책과 보여주는 쇼가 다르고 포퓰리즘적 일회용 이벤트로만 끝나서는 말 그대로 쇼, 사기일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쇼마저도 제대로 기획하고 연출, 연기해내는 능력마저 모자라서 관심있게 지켜보는 이는 손발이 오그라들고 한숨이 그치지 않는다. 실력있는 연기자는 수준높은 관객이 만들어내듯이 능력있는 정치가를 얻으려면 유권자인 시민의 수준이 더 높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질 코미디 혹은 참극, 그도 아니면 민폐만 당할 뿐이다.(각하! 고정하소서!)

재승박덕(才勝薄德)-재주는 좋으나 덕은 부족함? NO!

덕승박재(德勝薄才)-덕은 높으나 재주는 부족함? NO!

심유여이역부족(心有餘而力不足)-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능력이 미치지 못함? 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