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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성경읽기 0068 : 하박국 1장~3장

어멍 2011. 3. 8. 00:55

    성경읽기 0068 : 하박국 1장~3장



    저자 : 하박국

    주요 인물 : 하박국, 유다의 백성들, 바빌로니아 백성들

    핵심어 : 믿음, 정의

    주요 내용 : 부정과 횡포와 불의를 고발, 저주하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위대한 믿음을 보여줌.



1장 2절

여호와여, 그렇게 도와 달라고 부르짖었는데, 언제까지 들어주지 않으시렵니까?

3절

어찌하여 나로 하여금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내버려 두십니까? 내 앞에서 파괴행위와 폭력이 일어나고 다툼과 싸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4절

율법이 효력을 잃고 공의가 시행되지 않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고 있으므로, 재판이 잘못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하박국의 호소, 불평이다. 하박국은 선과 정의가 어그러지고 악과 불의가 횡행하는 현실을 한탄하며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는 점, 하박국과 하나님의 대화 형식이라는 점 등이 욥기를 연상시킨다.



1장 6절

내가 바빌로니아 사람을 시켜 악한 백성을 심판하겠다.

11절

그런 뒤에 그들은 바람처럼 사라져 간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경배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

 

    하박국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다. 바빌로니아는 악한 유다 백성을 벌하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도구이다. 하지만 그들도 악하다. 유다 백성들보다 더 악하다. 그들 역시 쓰임을 받은 후 심판을 받을 것이다. 심판을 받은 후 바람처럼 사라져 갈 것이다.

    악이 악을 멸하는 이중의 악이다.(때론 선과 선이 서로 불화하며 경쟁하기도 한다.) 약한 악이 강한 악에게 먹히는 혼돈의 세상이다. 때론 악이 선의 얼굴을 하고 오기도 하고, 때론 선이 악의 얼굴을 하고 오기도 한다. 때론 작은 개별적 악이 자신도 모르게 전체적 선을 위해 봉사하기도 하고, 때론 작은 개별적 선이 전체적 악을 위해 의도치 않게 봉사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인가?!

    믿을 놈도 없고 마음 둘 곳도 없다. 뭐가 선이고 뭐가 악인지,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짠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온통 악만이 횡행하는 부패하고 타락한 혼돈의 세상이다. 타락이 더할수록 원망도 더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혼란도 더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악에 투항할 것인가. 술 취해 노래하며 되는대로 살 것인가.



2장 4절

보아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정직함이 없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인하여 산다.

 

    의인은 믿음으로 인하여 산다.

    하나님의 대답이시자 본서(本書)의 핵심문구다. 부귀영화, 탐욕과 향락... 심지어 생존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오직 의인은 믿음,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씀하신다.

    이 주제는 사도 바울과 히브리서 기자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으며 종교 개혁자 루터의 개혁 이념으로까지 이어진다.




 

믿음의 선지자 하박국 - 레오나르 리모쟁



3장 2절

우리 시대에 주의 놀라운 일을 다시 행하여 주십시오. 주께서 노하셨을 때에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7절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고,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고, 올리브 나무에 거둘 것이 없고, 밭에 거둘 곡식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더라도

18절

나는 여호와 때문에 기뻐하겠습니다.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겠습니다.

 

    이에 대한 하박국의 고백이자 간절한 기도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고 악하여도, 삶이 고달프고 가난하여도 믿음을 잃지 않고 의로서 살겠다는 결연한 결심이다.

    하박국을 하박국과 하나님의 문답식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박국 :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의를 행하는데도 왜 보고만 계십니까?

하나님 : 잔혹한 바빌로니아를 도구로 사용하여 유다를 징계할 것이다.

하박국 : 유다보다 더 악한 바빌로니아를 사용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 그들은 나의 심판의 도구일 뿐이다. 그들 역시 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결론) :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하박국(결론) : 하나님의 말씀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심판 중에도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영광과 능력의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순종은 결단이다. 타협이 아니며 나약함은 더더욱 아니다. 자신을 송두리째 희생하는 비범한 용기, 고난의 길을 향해 흔쾌히 걸어 들어가는 담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의인은 믿음으로 인하여 산다.


    하박국 끝.



 ※ 이상은 2011/03/08 발행. 다음은 2013/07/08 덧붙임



3장 17절 :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고,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고, 올리브 나무에 거둘 것이 없고, 밭에 거둘 곡식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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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쌀독에 쌀이 없고 차고에 차가 없고 옷장에 옷이 없고 통장에 잔고가 없다.


② 법정에는 정의가 없고 소문에는 공평이 없고 학교에는 양심이 없고 시장에는 정직이 없고 교회에는 주님의 뜻이 없다.


③ 늙은이에겐 지혜가 없고 청년에겐 용기가 없고 어린이에겐 순수가 없고, 남자에겐 관대함이 없고 여자에겐 상냥함이 없고, 지도자에겐 책임감이 없고 백성들에겐 염치가 없다.



    바빌로니아의 침략과 유다의 항전, 패망을 볼 때 3장 17절은 전쟁 전후의 참상을 말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즉 ①과 같은 의미의 물리적, 물질적 곤궁함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하박국 1,2장의 내용을 보자면 ②,③과 같은 도덕적, 종교적인 정신문화의 타락상을 말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즉 ①과 ②,③의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는 중의적 구절이란 것이 내 생각.

    모두 결핍이다.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다. 모두 상식이다. 법관은 정의로워야 하고 언론인은 공평해야 하고 학자는 학문적 양심이 있어야 하고 상인은 정직해야 하고 목자는 주님의 뜻을 실천하고 전해야 한다. 지도자는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백성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떳떳하고 부끄러운지 최소한의 판단력과 염치가 있어야 한다.


    구약 후반에 나오는 선지자, 예언자들의 시선이 대개 이와 같다. 하박국 역시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악한 백성, 심판받는 백성에 대해 한편으로 원망하고 한편으론 안타까워한다. 그들의 힘으로는 백성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돌이킬 수도 없고 하나님의 심판을 미룰 수도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도뿐이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이왕) 피할 수 없는 심판이라면 되도록 저들을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하나님께 빌고 또 빌 뿐이다.

    하박국과 예레미야의 마음속에 원망이 더했는지 안타까움이 더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한 결핍과 빈곤은 물질이 아닌 도덕성의 결핍과 빈곤에 무게중심이 있었음은 자명하다. 그들은 풍속의 비루함, 종교적 타락을 슬퍼했던 지식인이자 예언자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다의 멸망과 심판의 원인은 물질의 빈곤이 아닌 건강한 정신과 종교의 결핍, 그 타락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물질적 풍요가 도덕적 성숙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도덕성과 정신문화의 성숙은 지속가능한 물질적 풍요를 담보한다. 건강한 종교적, 정신적, 도덕적 성숙이 없이는 물질(문명)은 종국엔 위기와 파국을 맞는다. 진실과 정의를 외면하고 거짓과 죄악에 무감각해진 일상이 반복되다가는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을 넘어 종국엔 굶어죽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 때 우리들 중... 일부는 더욱 악하게 될 것이다. 일부는 더욱 의롭게 될 것이다. 일부는 주님을 원망하고 저주할 것이고 일부는 주님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고 주님의 자비로움을 간구할 것이다. 일부는 세상만사와 주님에게서 도망쳐 허무와 냉소를 노래하며 적극적 은둔자로 살 것이고... 그리고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예전대로 평범하고 무심하게 살 것이다.


    어제(2013/07/07) 주일예배 말씀이 하박국 3장 17절이었다. 요즘 국정원 선거부정 사건, 고 노무현 대통령과 고 김정일 위원장간의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문제와 관련하여 진실이 가려지고 상식이 통하지 않고 정의가 힘을 받지 못하는 등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아 말씀이 예사롭게 다가오지 않았다.

    정의, 공평, 정직, 예의... 내가 살고 있고 내 아들딸들이 살아가야할 이 땅의 소중한 정신과 가치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는 마음이 울적하다. 그 마음속엔 원망과 안타까움이 뒤섞여있다. 내 생각이 짧고 오만하다면 그것을 바로잡아 주시고 그렇지 않다면 심판 중에도 다만 주님의 보살핌과 긍휼만을 바랄 뿐이다.


   주여. 죄 많고 어두운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