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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두 가지 에피소드 (부제 : 옥탑방과 MD)

어멍 2009. 7. 27. 00:38

에피소드 1

2002년 대선전이 한창이던 무렵 TV방송사들이 대통령 후보들을 초청하여 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있었다고 함. 먼저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나와 사회자의 ‘옥탑방을 아느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말해서 적잖은 구설수에 오른 후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시차를 두고 출연하여 똑같은 질문을 받고 역시 모른다고 답을 함.


 

에피소드 2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부시로부터 MD(Missile Defence:미사일 방어체제)참여를 요청받고 ‘좋다. 그러면 아예 일본까지 대상에 포함시키자’라는 취지의 말을 하여 부시의 말문을 막아버림.

 


부시를 능가하는 강력한 포스!



    정확한 일시와 장소가 언제 어디인지, 정확한 워딩이 무엇인지, 어디서 읽고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게 가장 인상에 남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두 가지 에피소드다. 후일 ‘왜 옥탑방을 안다고도 말할 수 있는데 모른다고 하였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을 하였다고 한다.

    ‘내가 옥탑방에 대해 들은 것은 이회창 후보가 모른다고 답한 이후이다. 그 전에는 몰랐다. 내가 안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고 이회창 후보와의 형평성에서도 어긋나는 것이다’

    웬만한 인간, 특히 웬만한 정치인의 입에서 나올 소리, 나올 태도가 아니다. 그가 안다고 말했어도 검증할 수도, 시비걸 수도 없는 일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정직, 도덕성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치,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에게 철저하고 가혹했다. 그런 점이 그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으리라. 그는 타인에게 관대했지만 스스로에겐 가혹했고, 약자에게 한없이 약했지만 강자에겐 의연하게 강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미소냉전시대보다 그 성격이 조금 약해졌지만 여전히 38선은 남한의 최전방이요, 남한은 미국, 일본의 대양세력, 자본주의 진영의 최전방이다. 그런 미국이 북한을 빌미로 미래 세계패권을 다툴 중국, 러시아의 대륙세력, 사회주의 진영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려는 것이 MD다. 그런데 그런 MD를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까지 가상적국으로 설정해서 구축하자고 역제안 했다는 것은 한 마디로 부시에게 MD는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다. 실지로 이 말에 부시 대통령은 어안이 벙벙하여 더 이상 MD의 M자도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과 EU와 같은 동북아 평화공동체 구상은 참으로 탁월하고 통 큰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광해군의 균형외교가 좌절되고 인조반정에 의해 축출됐듯이 노무현도 수구기득권 이명박 정권에 의해 정권을 잃고 결국 죽음을 당하고 만 것이 작금의 비극적 현실이다. 인조반정 후에도 여전히 국제정세에는 어두운 채 숭명배금 정책만을 고집한 사대주의 세력은 결국 병자호란의 참화를 격고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는 등 비극적 역사를 불러오고야 말았다. 노무현의 죽음 이후 더 한 파국, 더 큰 비극이 도래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이 총리 다시는 우리집에 오지 마세요. 다쳐요. 주위 사람들이 모두 당했어요. 세상에 아무도 안 믿겠지만 (나는 돈 받은 줄을) 정말 몰랐어요.”

    이해찬 전 총리가 고인에게 들었던 마지막 말이라고 한다. 그를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나까지도 마음 한켠으론 반신반의했었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고 슬프다. 저들은 아무도 안 믿을 것이라는 상황 설정을 철저히 악용했다.


    그의 적들은 그를 욕하고 여전히 그를 씹고 있지만 그를 알았던, 그를 직접 만나보고 겪었던 이들은 백이면 백 그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탄핵과 죽음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숨겨진, 알려지지 않은 소소한 일화들이 수없이 많다. 그것들이 그의 인간성, 진면목을 더욱 잘 드러내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어떤 드라마와 영화보다도 감동적이고 뛰어난 그의 이야기!

    그의 이야기는 권력과 대세의 광풍만이 휘몰아치는 이 험한 세상에, 정치와 삶의 냉혹함에 좌절하고 굴복하고 체념할 수도 있는 우리와 우리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다시금 감동과 힘을 주는 영원히 기억되는 전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