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때론 먹의 향내가 나는 글과 음악 그리고 사람

목공, DIY

거실장 겸 TV장식장 만들기 (친근하고 품위 있고 우주적으로...)

어멍 2012. 6. 16. 22:05


    거실장 겸 TV장식장 만들기 (친근하고 품위 있고 우주적으로...)

 




    이사한 후 마땅한 거실장이 없어서 이걸 살까 저걸 살까 궁리하면서 한 달이 넘게 이렇게 살고 있다가 DIY 목공 초보에겐 좀 벅차지만 TV장식장을 겸할 수 있는 거실장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하였다.

    우선 내가 원하는 기능과 디자인에 대해 구상을 하고 컨셉을 잡아야 한다. 수납공간은 크고 다양할 것. 세트가 아닌 단품으로 끝낼 예정이므로 최대한 길 것. 거실 벽면과 TV 크기와의 균형미를 고려해 보통의 거실장보다 높고 클 것. 어지럽지 않게 심플하면서도 심심하지 않을 것. 따뜻한 정감이 느껴지면서도 거실장에 걸맞게 고급스러울 것. 색은 나뭇결을 살리되 너무 어둡지도, 너무 밝지도 않고 약간 짙은 정도일 것.... 등이다.


    핵심 키워드는 ‘친근함’과 ‘품격’이다. 범접하기도 엄두가 안 날 정도로 쌩쌩 찬바람이 부는 차가운 도도함이어선 곤란하다. 벽에 걸어놓고 어쩌다 한번 감상하는 예술품이면 모르겠지만 사람의 손이 가고 사람과 항상 한 공간에 있어야 할 가구라면 기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가까이 하기에 부담이 없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부담 없이 쉽게(!) 보여선 안 된다. 착하고 자상하고 지혜로운 여자지만 주관과 개성, 자의식과 자존심이 강한 배운(!) 여자처럼 쉽게 손을 허락해선 안 된다. 쾌활하고 자유분방한 남자지만 책임감 있는 믿음직한 남자처럼 쉽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

    다가가도 거부당할 것 같지 않은 친근함. 하지만 함부로 범할 수도 없고, 범해서도 안 될 것 같은 지켜주고 싶은 고귀한 순결과 품위. 여자라면 미모와 지성과 심성에 강직한 기품까지 겸비한 속 깊은 처녀요, 남자라면 치기가 걷히고 진지함을 알아가는 쾌활하고 정력적인 믿음직한 젊은이다.

    얽매임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순정을 소중히 여기며 지킬 건 지키는 가치관이 뚜렷한 인간이어야 한다. 밤거리 유흥가 어디에서건 쉽게 부딪힐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인간이라면 너무 쉽다. 너무 가볍다. 너무 흔하다.


    가구 하나에 웬 오버!? 너무 과도한 의미 부여일까? 원래 김춘수의 시 <꽃>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 처럼 마음을 주면 의미가 생겨나는 법이다. 항상 이것저것 사다가 DIY로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못났더라도) 자기 자식이 더 예쁘다는 말처럼 자기가 만든 것에 대해선 좀 오버하게 되어 있다. ^.^

    오버, 주책을 떠나 구상, 디자인이 목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 외로 크다. 개인적인 생각에 절반에 육박하는 것이 아니라 절반 이상이다. 실재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 물리적인 노동력을 감안한다 해도 그렇다. 그것과 단순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초기효과라고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나머지가 모두 엉망이 되고, 처음 1미리가 어긋나면 나중 1키로가 어긋나 있다. 정확한 구상, 적절한 컨셉, 완벽한 디자인이 갖춰지면 실재 작업은 일사천리다. 속도, 정확도의 차원을 떠나 처음 구상했던 그림과 목표점에 만족하게 도달해 있을 수 있다.


    원하는 기능과 구상에 비추어 볼 때 엔틱(Antique)보다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나 젠 스타일(Zen Style 곧 선(禪) 스타일) 쪽에 가깝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화려하고 고풍스런 엔틱은 거실 전체 분위기와도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곡선과 장식이 많아 내 능력 밖이고 미니멀리즘은 간결하긴 하지만 너무 차갑고 건조하고 심심하며 젠 스타일은 튀지 않는 잔잔함으로 인해 하나의 가구에 담기엔 한계가 있다. 자칫하면 품격과 개성은 없고 친근함도 진부함으로 흘러 지루하고 밋밋한 결과물이 나올 확률이 다분하다.

    엔틱이든 젠이든 이름에 불과할 뿐! 거기에 얽매일 필요도 없고 초보 주제에 너무 거창하게 욕심을 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오버한 김에 좀 안드로메다 급으로 오버한다면 좀 우주적인 느낌을 담아내고 싶다. 거대하고 장엄한 모습보다는 단순한 기하학적 기본도형을 위주로 한 정돈된 우주(Cosmos)와 우주선(Spaceship)의 모습이랄까!

 



예를 들면 이런 모습, 이런 분위기

당장이라도 우주로 날아오를 수 있는 거실장을 만들 수만 있다면...



    목공과 항공우주의 결합! 이 정도면 구상을 넘어 상상, 망상의 단계!! 뭐 어차피 실력이 딸려 대부분의 구상이 실현 난망한 상상에 그치겠지만 머릿속으로는 대목장의 필생의 역작이 만들어진다. 당장의 실력은 원, 곡선, 사각(斜角)은 능력 밖이요 직각(直角)마저도 완벽히 구현해낼 수 없다. 온도로 치자면 구상(상상) 100도, 목공(손기술) 20도, 디자인(설계) 10도다.

    이렇게 서툰 실력이 과열된 상상력을 쫓아가지 못할 때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남이 만들어 놓은 것 중 자신의 그림과 가장 근사한 것을 그대로 베끼거나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다. 진짜와 가짜, 창작과 모방, 처음 하나와 나중 여럿이 갈리는 지점이다. 혹은 간혹 백화만발(百花滿發), 청출어람(靑出於藍), 후생가외(後生可畏)의 긍정적, 발전적 현상이 나타날 때도 있다.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우드플랜 홈페이지 <주문가구갤러리>에서 찾아낸 것이 바로 아래 거실장이다.

 



모델명 TG-056 참나무(Oak) 거실장, 사이즈는 45*45*200

직선과 사각형을 기본으로 해서 심플하면서도 심심하지 않고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품격이 있다.



    이 모델을 갖고 강부장님께 상의를 드리니 강부장님이 이미 만드셔서 집안에서 쓰시고 계시다고... 같은 취향인 것 같아 왠지 반가웠다. 원래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마주치는 것을 빼고는 이런 경우엔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다.

 



TG-056을 기본으로 해서 그려본 실재 제작될 거실장의 스케치

세밀한 디자인과 설계, 재단은 강부장님이 해주셨다.



    TG-056에서 사이즈와 수종과 색을 바꾸기로 했다. 사이즈는 좀 높게 50, 길이는 상판을 돌출형으로 해서 좀 길게 209로 늘렸다. 엘리베이터 출입문 높이가 209고 저번 ‘긴 컴퓨터 책상’처럼 분리해서 대각선으로 집어넣을 수 없는 관계로 사다리차를 부르지 않는 한 209 이상은 불가하다. 높이도 거실벽면의 넓이와 전기콘센트의 높이에 맞추기 위해, 수납서랍을 크게 하기 위해, 조금 높였다.

    수종은 오크에서 앨더로 바꿨는데 오크보다 앨더가 더 저렴하고 경도가 더 약해서 작업하기가 수월할 것으로 보았다. 스프러스가 앨더보다는 싸고 무르지만 옹이가 있어 무늬가 거칠고 투박하다. 좀 더 차분하고 잔잔한 무늬를 갖고 있는 앨더가 어느 정도 실내가구의 퀄리티가 요구되는 거실장에 더 적당하다.

    색은 나뭇결을 살리는 스테인으로 하기로 했는데 앨더 특유의 연한 붉은 빛이 도는 투명 스테인은 너무 밝은 것 같고 다크 월넛 스테인은 너무 어두운 것 같아 그 중간 격인 월넛 스테인으로 칠하기로 했다. 그리고 전체 바니쉬 1회, 손이 많이 가서 때가 타기 쉬운 상판과 서랍앞판은 바니쉬 2회 코팅으로 마무리다.

 



아래는 앨더에 투명 스테인, 위는 앨더에 다크 월넛 스테인



    구상에서 디자인, 마무리 칠하기와 코팅까지의 작업계획까지...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연장을 들고 몸이 움직일 차례다.



앨더 각재 다리와 삼나무 서랍통

먼저 목공본드와 타카를 이용하여 삼나무 12T로 서랍 몸통부터 만든다.

 



밑판과 측판과 속대를 연결한 후 그림과 같이 몸통을 세워서 가로판을 치수목으로 해서

세로판을 크램프로 고정한 후 나사못으로 밑판과 속대에 결합한다.

 



밑판과 측판과 속대와 세로판을 결합해 뒤집어 놓은 모습

거실장의 기본 틀이다.

 



가로판을 십자박기로 결합→다리와 측판의 겉에서 다리 사이로 붙는 가로대를 몸통에 결합

→몸통과 서랍에 3단 레일 설치 후 서랍을 몸통에 끼워놓고 찍은 정면의 모습



    이제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다리와 가로대의 모서리를 깎아 모양을 내는 트리머는 결합 전에, 샌딩은 부위에 따라 결합 전후로 작업했는데 색을 약간 짙게 입히기 위해 #220으로 한차례만 돌렸다.

 



서랍 안은 수납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나누지 않은 통짜 두 개, 두 칸짜리 두 개, 네 칸짜리 한 개씩 다양하게 만들었다.

 



몸통을 뒤집어 상판을 결합한 후 월넛 스테인을 칠한 정면의 모습



    하중에 대비해서 밑판의 뒷부분에 작은 다리를 추가로 두 개 더 결합했다. 스테인 칠은 외부시야에 노출되는 부분을 위주로 왼손으론 좁은 틈새를 작은 붓으로 칠하며 오른손으론 면양말을 끼고 문지르며 칠했다. 빈틈없이, 얼룩 없이, 해야 하므로 손이 많이 가고 신경도 많이 쓰였다.

    재단한 치수가 정확하다는 가정 하에 최대한 단차 없이 정확하고 깔끔하게 결합할 수만 있다면 각각의 부분을 칠한 후에 결합하는 것이 덜 수고롭고 더 깔끔하다. 하지만 목재치수가 정확하지 않다면, 결합부위가 엉망이라면, 이미 칠한 것이 보기 흉해지거나 헛수고가 될 확률이 있다.

    칠한 후에 결합하는 것과 결합한 후에 칠하는 것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실력이 딸리는 초보라면 이것저것 자유자재로 선택할 재량은 별로 없다. 그저 닥치는 대로, 상황에 따라, 한 번 할 거 두 번 하고 한 시간 할 거 두 시간 하는 식으로 손을 많이 쓰는 수밖엔 없다. 단순하고 무식하고 정직하게...

    이것이 그나마 초보자가 작품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도 유일한 방법이다. DIY, Hand Made에선 손이 많이 갈수록 퀄리티가 높아진다는 것은 솜씨 좋은 고수라도 마찬가지인 보편적인 진리다.

 



서랍은 빼서 앞판을 붙인 후 따로 칠했다.

좁은 틈이 없는 넓은 면이라 칠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칠하기가 끝나면 오일 스테인이 충분히 마르기를 기다려야 하므로 바니쉬 코팅은 다음 작업시간으로 미룬다. 코팅 전에 스테인 칠로 살짝 일어난 나무표면을 스펀지 손 사포로 가볍게 샌딩한다. 공방에서 두 번 코팅한 후 뒤판으로 쓰일 미송 합판에 전선이 출입할 구멍을 뚫고 결합한 후 드디어 집으로 데리고 왔다.

 



집에서 찍은 거실장의 뒷모습



    거실에 신문지를 펼쳐놓고 아내와 다영, 종서에게 상판 코팅을 부탁한 후 날짜와 만든 이들의 싸인을 뒤판에 써 넣는 것으로 모든 공정을 끝마쳤다. 다영, 종서가 또 한 번 칠한다고 달려드는 것을 겨우 말려서 결국 상판은 바니쉬 코팅 3회로 마무리되었다. 덕분에 자세히 보면 상판 밑으로 몇 군데 하얗게 떡이 져 있다. ^.ㅠ (이건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여.)

    그래도 상관없다. 그래서 오히려 이야기가 있는 가구, 세상에 하나뿐인 나와 우리 가족만의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더 완벽하고, 더 고급스런 가구는 값을 떠나서 어디서건 구할 수 있다.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을 일정 부분 감수하더라도 아내와 아이들의 흔적이 남겨진 가구들이었으면 좋겠다. (이것은 다영 흔적 ^.^ 이것은 종서 자국 ^.^)

    생각 같아서는 아이들만 좋다면 매번 공방에 데리고 가서 작업을 함께 하고 싶은데 아직 어리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고 더구나 개인 공방이 아닌 여럿이 쓰는 공방이라 여러 분들에게 방해될까 염려되어 적극적으로 함께하지는 못하고 있다.

 



자리를 잡고 전선을 정리한 후 좌우 측면에서 바라본 전체적인 모습

왠지 우주적인 분위기가... 있나? 있지? 있을 걸?



있네! 있어! -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막무가내 무대뽀 연출력 ^.^



    TV에, DVD 플레이어에, 인터넷 TV 수신기에, 닌텐도 위까지... 다 합쳐 10가닥이 넘는 전선들을 정리하기도 간단치 않아 몰딩 안에 겨우 우겨넣었다.

    거실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전자제품이 놓이도록 개방된 거실장 중앙 위 칸



    처음엔 세로로 세워진 닌텐도 위까지 안으로 넣을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거실장이 너무 뚱뚱해질 것 같아 위로 두는 것으로 결정했다. 서랍 앞판들이 이루는 가로선은 가로판을 덮으며 그 위로 가지런히 평행을 유지해야 하므로 가로판은 강부장님이 내 실력을 배려(!)하여 여유 있게 24T로 잡아주었다. (상판과 가로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20T)

 



아이들 동영상을 구운 DVD를 수납하기 위해 네 칸으로 나눈 가운데 서랍



    모든 서랍 앞판의 아랫부분은 위와 같이 안쪽에서 트리머로 깎아내어 손잡이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밖에서 보기에 네모반듯한 직사각형 서랍 앞판만이 보이게 했다. 쉽게 손을 허락하지 않는 기품 있는 순결한 여성처럼 쉽게 문을 여는 것을 허락지 않는 숨겨진 자존심이랄까?!

 



다리와 측판의 겉에 붙는 가로대는 모서리를 트리머로 얇게 깎아냄으로써 좀 더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보인다.



    제품의 완성도, 퀄리티는 이렇게 사용자 입장을 철저히 배려한 주도면밀한 디자인과 세밀한 디테일에서 결정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야 뭐 그런 모델을 선택한 것 뿐, 강부장님의 도움이 컸다.


    이제까지 만든 것 중 가장 크고, 가장 무겁고, 가장 복잡한 것이라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잡아 먹었다. 5월 13일부터 시작해 매주 일요일 오후 4시간 정도를 작업해 6월 10일에 마쳤으니 거의 5주에 걸쳐 총 20여 시간을 작업한 셈이다.

    처음 구상한 것이 어느 정도 구현됐는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이 정도면 만족이다. 안드로메다야 원래 까마득히 먼 곳이고 태양까지는 아니더라도 달까지는 도달하지 않았나 자평해본다. 실력이 미천한 초보가 이 정도면 기특하지 아니한가! - 음.하.하.하. ^0^

 



측면에서 바라본 전체 모습

 



정면에서 가까이 바라본 모습

 



정면에서 멀리 바라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