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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 DIY

왕초보 짜맞춤(Handmade) 목공 입문기

어멍 2012. 9. 4. 22:22


    왕초보 짜맞춤(Handmade) 목공 입문기



    위 제목은 예전에 올린 <왕초보 DIY 목공 입문기>란 글을 의식해서 붙인 표제다. DIY(목공)과 Handmade(목공)을 무 자르듯 명확히 구분할 수 없고 ‘짜맞춤’을 Handmade(수공, 수제)로 번역하는 것도 딱 떨어지진 않지만 마땅한 용어가 없어 끌어 썼다. 비슷한 의미로는 ‘솜씨’, ‘장인(匠人)’을 뜻하는 ‘Craftsmanship (furniture)’가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DIY 목공과 짜맞춤 목공은 독립적으로 나란히 서 있기 보다는 중첩되면서 앞뒤로 서 있는 쪽에 가깝다. 목공은 대개 DIY 수준에서 입문하지만 DIY가 짜맞춤 목공으로 입문하는 입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첫 관문에 걸려있는 DIY(목공)이란 간판이 이후 펼쳐져 있는 짜맞춤 목공이란 간판을 대표하고 있다. 따라서 목공이 일반인들에게 활성화되려면 일단 첫 입구 역할을 하는 DIY 쪽부터 커져야 한다.


    짜맞춤은 DIY에 비해 ‘좀 더 전통방식이 많이 사용되고, 좀 더 수공구를 많이 사용하여 제작되는 목공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DIY는 좀 더 현대방식, 전동공구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당연히 짜맞춤이 손이 더 많이 가고 시간과 정력이 더 많이 들어간다. DIY가 전동드릴과 나사못이라면 짜맞춤은 톱과 대패다. DIY가 동네 앞산, 개울이라면 짜맞춤은 에베레스트, 태평양이다. 더 깊고 더 높고 더 넓은 세계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가구들이 라인에서 ‘찍어 낸다’라고 하면 DIY는 기계로 ‘조립한다’, 짜맞춤은 손으로 (가구를) ‘짠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입문에 앞서 구입한 짜맞춤 목공에 쓰이는 필수 수공구들

1 평끌, 2 중간 숫돌, 3 마무리 숫돌, 4 자유각도자, 5 콤비네이션 직각자(=조합자), 6 망치

7 그무개 칼, 8 줄 그무개, 9 평대패, 10 남경대패, 11 등대기톱(자르기용), 12 등대기톱(켜기용)



    원래 <왕초보 DIY 목공 입문기>에서도 썼지만 ‘DIY 목공’에서 끝낼 생각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짜맞춤 등 더 심도 있고 고급스런 목공은 내 나이 60, 70이 되면 해 볼 요량으로 미뤄두었다. 하지만 미래는 기약할 수 없고 세상일이란 게 다 뜻대로,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 법! 일단 할 수 있을 때 하고 보는 게 대개가 후회가 없다. 아직은 만들 것도 있고, 만들고 싶은 것도 있고, 이왕 만든다면 더 좋고 예쁘게 만들고 싶은 맘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짜맞춤 목공을 배우기로 하고 여기저기 검색도 하며 알아보았다. 다행히도 내가 사는 대전에, 그것도 직장인 유성 근처에 가르쳐줄 수 있는 목공방이 있다고 해서 카페도 둘러보고(☞ 도드리 목공방) 직접 방문 후 방장님인 ‘가짜목수’님과 말씀도 나눠보았다. 시설도 좋았지만 가르쳐주실 선생님이 너무 신뢰가 가고 마음에 들어서 며칠 고민하다가 이곳에서 배우기로 결정하였다.

 



도드리 목공방 내부(같이 배우는 창태씨가 찍어서 보내준 사진)

반지하이긴 하지만 기계설비는 물론 목공을 하기엔 충분히 넓고 쾌적하고 편리하다.



    도제식으로 가르쳐주실 사부이신 우익동 선생님에 대해 나름 알아보고 작품도 구경해보니 우물 안에서 창천(蒼天)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포스와 아우라를 작품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직접 뵙고 말씀을 나눠보니 그렇게 소탈하고 인자하실 수가 없다. 거기다 유머러스하고 유쾌하시기까지 하다.

     여쭤보니 배우려는 학생이 나 말고도 한 명 더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게 함께 배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창태씨라고... 얘기를 나눠보니 창태씨도 쌩초보인 게 나와 같은 느낌. 마치 성균관 대제학께 직접 천자문을 배우는 시골 학동이 느끼는 심적 부담감이랄까?! 하여튼 이 부문에서 많은 후학들을 배출하셨고 이미 일가를 이루었음을 두루 공인받고 계신 분이다.

 



왼쪽부터 창태씨, 우선생님, 그리고 나(어멍)



    수업은 6개월 코스로 매주 수, 목요일 저녁 7시 반부터 10시 반, 혹은 길어지면 11시까지다. 7월 18일부터 시작했는데 중간에 몇 번 빠지고 해서 이제까지 총 12회를 마쳤다. 날 갈기, 대패질에 이어 요즘도 여전히 수도(修道)하는 자세로 톱질에 열심이다.

    2012, 07, 18 평끌 뒷날 내기 / 07, 19 평끌 앞날 내기 / 07, 25 대팻날 내기 / 07, 27 대팻날 끼우기 / 08, 01 대패질 / 08, 02 대패질 / 08, 08 톱질(자르기) / 08, 09 톱질(자르기) / 08, 13 톱질(자르기) / 08, 14 톱질(켜기) / 08, 29 톱질(켜기) / 08, 30 목공기계 소개와 우선생님의 주먹장 사개맞춤 시범 - 이제까지의 대략적인 수업내용이다.

    아직 우선생님이 보시기에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기본기는 익힌 것으로 보고 다음 회부터는 무언가 만드는 실습을 시작하신다니 기대가 된다.

 



대패와 대팻밥 - 갓 구워낸 빵같이 색깔이 예쁘다.

 


각재에 줄금을 긋고 톱질(자르기)을 하면...

 


요렇게 된다.



    날 갈기도 그렇고 대패질, 톱질을 하다보면 힘들고 지루한 면이 있다. 하지만 하다보면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게... 무아지경, 황홀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념무상... 잡념이 사라지고 대상과 자신의 동작에 집중하게 된다. 마치 태권도 선수의 정권 찌르기, 검도 선수의 내려치기처럼 수천, 수만 번의 수련을 통해 완벽한 '하나'에 도달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다. 완벽한 속도와 완벽한 지향을 통해 완벽한 단순함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것은 보태는 것보다 덜어내는 쪽에 가깝다.

    또 하나의 매력은 나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손끝으로 전해져오는 나무의 결, 그 속살을 느낄 수 있다. 후각으로 느끼는 향과 시각으로 느끼는 색감 역시 증대되고 심지어 슬근슬근 톱질 소리까지 나무와 나의 교감의 울림으로 들린다. 실지로 소리만 들어도 톱질이 잘 됐는지, 못 됐는지 대충 알 수 있다. 짧은 소견에 목공의 정수와 기쁨은 이것이다. 나무를 알고 나무를 사랑하고 나무와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그것이 없이는 단순히 힘든 노동에 그치고 만다.

    끌질, 대패질, 톱질에는 단순함, 본질에서 느끼는 희열이 있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겠지만 처음 (DIY) 목공에 입문할 때 그려 본 여정보다는 멀리 온 느낌이다. 가르치는 스승의 마음이야 제자들이 적극적으로 욕심을 내어 자신의 수준까지 다다르고 종국에는 자신을 뛰어넘기를 바라시겠지만 취미로 하는 생활인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그저 매 순간 즐겁고 신나고 성실하게 배워볼 생각이다.

    태평양, 에베레스트에 다다르지 못하고 바다를 만나는 곳, 아담한 산 정상이라도 오를 수 있다면 감사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우선생님이 만드신 작품 중 하나

태평양, 에베레스트에 다다른 예술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