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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마라톤

2023 대전주주마라톤 : 네 번째 마라톤 하프코스 완주 후기 (2023/02/19)

어멍 2023. 2. 22. 20:48

 

2023 대전주주마라톤 : 네 번째 마라톤 하프코스 완주 후기 (2023/02/19)

 

 

    - 대회 참가 전

 

    마지막 대회 출전이 2020년 6월이었으니 벌써 2년하고도 8개월이 지났다. 세월이 참 빠르고 무상하다. 점심 먹고 낮잠 들어 눈떠보니 사방이 어두워진 저녁이다. 그래도 신난다. 때가 되었으니 (저녁)밥을 먹어야지! 더구나 반갑고 살가운 주주클럽 식구들이 모여앉아 밥 먹으라 부르니 입맛이 돋는다. 뱃살은 늘고 실력은 줄었지만 오랜만에 들뜬 마음으로 대회출전을 준비한다.

 

    늘어지게 한숨 자고 배가 꺼진 허기진 상태, 마라톤 냄새에 침샘 폭발, 의욕 충만한 상태다. - I'm still hungry! 코스를 씹어 먹겠어!! - 하지만 이것은 근자감을 넘어 허자감(허무맹랑한 자신감)이다. 지금 실력으로는 하프코스 완주도 100% 장담할 수 없다.

 

    각오를 다져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 부칠 것인가? 마음을 텅 비우고 산 밑에서 음주가무로 하루해를 보내고 귀가하는 산악회원처럼 완주보다 훈련, 훈련보다 술과 고기와 정담의 유흥에 만족할 것인가? 상황에 따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동호회원들만을 대상으로 주주클럽이 자체 여는 대회라서 분위기도 여느 대회와는 많이 다를 듯하다. 암만해도 규모도 작고 긴장감도 덜할 것이다. 더구나 긴 휴식기 끝의 출전이라 괜찮은 기록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서 1차 목표는 완주, 2차 목표는 2시간 이내(5‘41“/km), 3차 목표는 1:47:16(5‘05“/km)(2015년 첫 하프코스 대회기록)으로 잡기로 한다. 2차 목표까지만 달성하면 합격, 아니면 불합격이다. 하프 개인최고기록(공식 1:39:21, 비공식 1:37:45)엔 한참 못 미치는 기록이지만 현재 내 몸 상태로는 이것이 현실적인 목표치다.

 

    D-6,5,4,3일 / 2월 13,14,15,16일 월,화,수,목요일 / 매일 아침 러닝 8.3k

    D-2,1일 / 2월 17,18일 금,토요일 / 휴식. 컨디션 조절하면서 스트레칭만

 

 

    - 대회 참가

 

    2월 19일 일요일 D-Day, 아침 6시 40분 기상하여 간단히 식사를 한 후 느긋하게 집에서 걸어서 출발한다. 뚝방에 이르니 멀리서 7시에 출발한 풀코스 주자들이 뛰고 있는 모습이 점점이 보인다. 천변으로 내려가 걸으니 일요일이라 그런지, 날씨가 궂어서 그런지, 평소와 다르게 걷는 이, 뛰는 이, 자전거 타는 이가 없이 사위가 쥐죽은 듯 조용하다.

 

대회장(둔산대교) 가는 길

 

    해는 뜬지 오래지만 오히려 초저녁인 듯 어둑어둑하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눈비가 섞인 진눈깨비가 약한 바람을 타고 차갑게 내리어 을씨년스럽고 멜랑꼴리하다. 이런 날에는 마라톤보다는 테라스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 반드시 담요를 덮은 상태여야 한다. - 뜨거운 차를 마시며 풍경을 말없이 감상하는 것이 제격이다.

 

    7시 45분 둔산대교에 도착. 클럽회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한 후 바로 환복하고 준비운동 후 출발선에 선다. 하프 참가인원은 대략 10여명, 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탄하다. 둔산대교를 중심으로 한 날개형으로 하프는 왕복 2회전, 풀은 왕복 4회전이다. 급수는 둔산대교에서만 제공되어 3회 가능하다.

 

야호! 열 명 남짓만 제끼면 1등이다!

 

    하도 오랜만에 대회 출발선에 서니 중년의 아재가 잊혀진 첫사랑을 우연히 마주친 듯 심장이 낯설고 어색하게 두근거린다. 가슴이 설레임에 풍선처럼 부풀어 두 발이 살짝 지면에서 떠오르는 느낌, 이대로라면 물 찬 제비처럼 지면을 스치며 질주할 것만 같다.

 

    08시 출발! 잽싸게 치고 나가려는 데... 어? 낯선 흥분, 낯선 두근거림보다 더 낯선 이 몸뚱아리는?! 속도를 내기 위한 폭발력, 순발력, 민첩성과는 전혀 가깝지 않다. 가속주나 인터벌 연습 없이 맨날 동네 마실가듯 실실 뛰댕기다 보니까 몸이 아주 나무늘보가 되어버렸다.

    몸이 마음을 따라오지 못하고 하체가 상체를 따라오지 못한다. 마음만 급해서 상체는 2배속 2피치인데 하체는 1배속 1피치다. 하체가 상체를 싣고 가는 것이 아닌 상체가 하체를 메달고 가는 느낌?! 이대로라면 앞으로 기울며 그대로 꼬꾸라질 것만 같다.

    아~~ 어르신들이 말하는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이것인가?! 내 마라톤 전성기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지나간 것인가?!

 

    출발과 동시에 두 명이 선두로 치고 나간다. 100여 미터 지점, 하하^^ 그래도 아직은 3등! 하는 순간 또 한명이 추월해 앞서 간다. 2.5k 첫 반환점에 못 미쳐 이미 앞선 3명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다. 5k 좀 넘어 출발지로 돌아와 물을 마시고 다시 뛰는데도 몸이 리프레시 되는 느낌이 아니다.

    속도도 느려진데다 지구력 역시 약해졌다. 점점 빨라지기는 기대난망이고 이븐페이스만 해도 성공이다. 더욱이 진눈깨비는 그친 대신 바람은 더 세졌다. 몸은 부푼 풍선이 아니라 물 찬 풍선 느낌으로 천근만근이다. 천진난만했던 몽상가의 허자감(허무맹랑한 자신감)이 깨지고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오기까진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3차 목표 1:47:16는 물 건너갔고 2차 목표 2시간 이내도 비관적이다. 6k를 남긴 15k를 넘으면서는 5분 페이스를 넘어 6분 페이스로 느려졌다. 이제 그럭저럭 버티며 레이스를 이어간다면 3차 목표 완주는 가능할 것이다. 간신히 완주엔 성공! 최종기록은 2시간 5분 30초다.

 

 

    - 평가 및 마무리

 

    어멍은 D- : F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실망스런 결과다. 하프는 한 번도 2시간을 넘긴 적이 없었는데 네 번의 대회기록 중 2시간을 훌쩍 넘긴 가장 느린 기록이다. 실력이 처음 러닝을 시작한 2014년 수준으로 퇴보한 듯하다. ㅠ.ㅠ

 

    대회는 A+ : 클럽에서 자체로 연 조촐한 대회치곤 더없이 훌륭했다. 진행도 매끄러웠고 급수 등 지원도 충분했고 뒤풀이도 풍성했다. 무엇보다 평소 친근했던 같은 동호회원이다보니 분위기가 더없이 화기애애하다. 선후배가 서로 챙겨주고 아껴주며 너나없이 발 벗고 나서는 훈훈한 분위기다.

    대회를 기획, 준비하신 회장님(홍대감), 총무님(깽이) 이하 운영진께 감사드리고 항상 열정적으로 대회에 참가하시고 젊은 회원들의 롤모델과 귀감이 되어주신 좋은아침, 영스타, 정달이 등 대선배님, 달또, 미다리, 빠삐용, 잇츠, 모야, 깽이, 맑은소리, 제제 등 포차운영의 불달팀과 자봉에 힘써주신 분들 그리고 맛있는 닭강정을 맛보게 해주신 단미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주주회원님들 덕분에 지친 몸을 추스르고 낙담한 마음을 위로할 수 있었다. 완주 후 포차에 들르니 여기저기서 자리를 권한다. 주자들이 들어오면서 삼삼오오 모여 정담을 나누며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해물전, 어묵탕, 가래떡, 라면, 닭강정에 맥주, 소주, 막걸리까지... 이 포차에 먹거리는 풍성해도 영혼없는 멘트, 영업용 미소는 없다.

    뜨끈한 어묵탕이 들어가니 몸이 좀 풀린다. 지금은 속을 뎁피고 채우며 고갈된 에너지를 충전할 시간, 여기저기서 식욕이 왕성하다. 이 사람들은 뛰기 위해 먹는 것인가? 먹기 위해 뛰는 것인가? 해물전 한판이 10초 순삭! 지금 이 모습은 분명 후자에 가깝다!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살이 안 빠져요!” “뛰세요!” / “잠이 안와요!” “뛰세요!” - 하여튼 마라토너 중엔 평소 비만이나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 먹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없다. (분초를 다투는 기록을 위해 식단을 조절하는 경우를 뺀 나 같은 대다수의 평범한 아재 마라토너, 자유를 만끽하는 한량 마라토너에겐 전혀 거리낄 게 없다. ^^)

 

    어느새 낙담한 어멍은 간 데 없고 다시 마음이 두둥실 피어오른다. 늘어진 어깨가 활짝 열리고 동결된 다리에 피가 돈다. 몸도 마음도 뒤늦게 리프레시! 벌떡 일어나 다시 하프, 아니 풀도 뛸 수 있을 것만 같이, 1등으로 결승선을 멋지게 골인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알콜이 머릿속에서 희망회로, 행복회로를 빠르게 돌리고 있다. 아~~ 행복하다! ^.^ 역시 현타엔 무한뇌피셜이다!

    오래전 한동안 열심이던 조기축구회엔 알콜리그가 있었다. 오전 한두 게임 후 점심에 기름진 식단에 반주를 거나하게 하고 술기운에 오후 경기를 뛰는 거다. 이상하게도 성룡 주연의 영화 <취권>처럼 술과 음식 안주가 들어가야 비로소 제 실력이 나오는 회원이 있었다. 그렇다! 희망의 단서를 발견했다. 나라고 못할 것도 없다. (오늘 숨겨진 내 재능을 발견하겠어!)

    개츠비처럼 어멍은 위대하다! “1만 마일 밖의 흔들림까지 기록하는 지진계처럼 그(개츠비)는 인생에서 희망을 감지하는 고도로 발달된 촉수를 갖고 있었다. (중략) 희망, 그 낭만적 인생관이야말로 그가 가진 탁월한 천부적 재능이었으며, 지금껏 그 누구도 갖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성질의 것이었다.” -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이제 의기소침한 어멍, 낙담한 어멍은 더 이상 없다. 어느새 마라톤도 없고 완주도, 기록도, 성공도, 실패도 없다. 대선배이신 좋은아침님, 영스타님, 회장님인 홍대감님, 이어서 여러 회원께서 따라 주시는 막걸리를 연거푸 넙죽넙죽 받아먹으니 얼굴은 발그레하고 기분은 알딸딸하다. “뿌리도, 결실의 과일도 소멸되고 오직 현재의 꽃만이 장밋빛으로 피어난다.” - <멋진 신세계> 중에서

    막걸리 몇 잔과 주주클럽 특유의 밝고 활기차고 재미진 분위기에 흠뻑 젖어버렸다. 음주가 있으니 가무가 빠질 순 없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에헤라디여~~ ♪♬ 멋진 골인사진이 없으니 내친김에 주로로 나가 인증샷을 찍어 달라 예스맨님께 졸랐다.

 

투박하지만 아재 마라토너의 열정이 담긴 마라톤 댄스

 

    쓸쓸하게 시작해서 살짝 들떴다가 냉혹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실패의 쓴맛을 맛본 후 술과 주주회원들에게 유쾌하게 취해버렸다. 어쨌든 마라톤은 언제나 즐겁다! 주주클럽은 언제나 최고다!

    합격이든 낙제든, 성공이든 실패든, 어멍의 레이스는 언제나 해피엔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