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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과 박정희 - 박근혜에 의해 마무리되는 박정희 시대, 그 역사적 아이러니

어멍 2012. 10. 12. 21:47


    친일인명사전과 박정희 - 박근혜에 의해 마무리되는 박정희 시대, 그 역사적 아이러니

 



친일인명사전 아이폰 어플



    2003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작업이 당시 한나라당의 반대로 예산지원이 끊겨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완간된 적이 있다. 당시에 십 원 한 장 보태지 못했는데 이번에 그 방대한 양의 정보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나온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내려 받았다. 가격은 8.99$, 만원이다.

 



어플을 터치하면 나오는 초기화면



    일찍이 알고 있던 친일파 이름들을 검색해본다. 모윤숙(시인), 최남선(학자, 문필가), 이광수(시인, 소설가), 김기창(한국화가), 안익태(작곡가), 서정주(시인), 노천명(시인), 민복기(판사, 5대 6대 대법원장), 백년설(대중가수), 남인수(대중가수), 장지연(언론인), 방응모(조선일보 사장 겸 경영인), 김성수(동아일보 사장,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교장), 김활란(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장)... 등등

    대부분 해방이후 이름을 날리며 떵떵거리던 인물들이고 일부는 아직도 존경을 받으며 기념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이완용 같은 매국노보단 이러한 교육, 학술, 문학, 미술, 언론, 음악, 문화계의 부일협력자들이 더 문제다. 대중들에게 유명하기도 하려니와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직도 그 잔재, 후예들이 현실에서 우리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친일파는 살아있다. 친일, 민족반역의 문제는 현재의 문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떠오르는 두 명의 인물이 있다.


    전후 패전한 일본은 1946년과 47년 두 차례에 걸쳐 공직추방령을 통해 일본제국주의에 복무했던 책임 있는 인사들의 퇴장, 인적쇄신 조치를 취한다. 물론 나치독일과 해방된 프랑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절차는 밟았다는 것이다. 흉내는 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방된 한국은??...

    패전한 당사자조차 취한 조치를 정작 패전국의 식민지였던 해방된 조국에서는 취하지 못했다. 취할 수 없었다. 오히려 반민특위가 친일파에 의해 무릎 꿇려지고 두둘겨 맞았다. 따라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친일문제의 가장 큰 책임은 이승만 대통령에 있다. 정작 본인은 친일파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 사이비 독립운동, 가짜 항일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는 그의 기회주의적이고 권력지향적인 해방전후의 행태로 봐서 친일파는 아니더라도 항일독립운동가로 분류하기에는 문제가 많다는 견해도 있다. - 친일파를 비호하고 중용했기 때문이다.


    또 한 명의 인물은 박정희씨다. - 내가 굳이 ‘박정희씨’라고 부르는 것은 정권의 태생, 정통성 때문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바리 출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씨는 대통령 자격에서 열외다.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자궁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박정희씨 본인은 C급 친일파다. 고관대작으로서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도 아니고 애국독립지사들을 때려잡은 민족반역자도 아니고(만주국 장교 당시 독립군 토벌 임무를 수행했다, 안했다 의견이 분분하긴 하다.) 부일협력자 정도다. 하지만 적극적, 자발적 친일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그는 친일파 중 가장 성공한 친일파다. 과정이야 어떻든 대통령까지 올랐다. 상징성이 크다.

    지금도 70, 80 노인분들이 일제 때 누구 아버지가 면서기였네, 뉘집 자식이 한자리 했었네, 부끄러움 없이 오히려 부러움과 자랑거리로 이야기하시는 것도 다 박정희 시대를 거치며 친일반민족 원죄에 대해 무감각해진 원인이 크다. 민족정기가 사라지고 도덕불감증이 만연한 시대, 먹고 사는 것, 출세지향주의에 경도된 시대였다.

 



당시 선망의 직업이었던 선생을 때려 치고

출세하기 위해 힘 있고 폼 나는 일제치하의 군인이 되기를 소원했던

박정희



    친일파 입장에서는 해방 후 오금이 저리다가 이승만의 비호 아래 비로소 조마조마하면서도 안도의 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박정희 시대는? 친일파 출신이 대빵, 그것도 무소불위 절대권력의 대빵이니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태평성대다. 박정희 독재정권의 사주에 의해 벌어진 인혁당 사건 당시, 사형을 판결한 사법부의 수장이 친일파 민복기 대법원장이었다는 것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럼 둘 중에 책임이 더 큰 자는 누구인가? 당연! 이승만 대통령이다. 해방 후 친일파 정리의 호기를 놓쳤다. 시대의 임무를 수행치 못하고 정면으로 배반했다. 박정희씨가 최고통치자에 올라 친일파들의 전성시대를 열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박정희씨를 낳았고 박정희씨가 전두환씨를 낳았다.

 



高木正雄(다까끼 마사오), 박정희의 일본 이름이다.



    얼마 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516, 유신, 인혁당은 헌법에 반하며 그것에 대해 사과드린다.’는 취지로 유감을 표명했다. (붙박이)지지자 입장에서는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데 빨리 사과하고 털고 가지 뭘 그리 머뭇거리냐며 안타까워했지만 그 사과의 의미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516 뒤에 쿠데타, 유신 뒤에 독재, 인혁당 뒤에 (사법)살인이 생략된 것이다. 박정희씨를 존경하고 박근혜 의원을 지지한다는 것은 쿠데타, 독재, 살인행위를 지지하고 정당화한다는 의미와 맞닿는다. 그래서 박 의원은 헌법을 훼손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차마 쿠데타, 독재, (사법)살인이라고 콕 집어서 언급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핵심 개념, 알맹이가 빠졌으니 불성실한 사과다.

    세상에는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 용서받은 후라도 탐할 수 있는 자리가 있고 탐해서는 안 되는 자리가 있다. 울며 엎드려 비는 것으로 용서를 청할 수 있는 작은 죄도 있지만 때로는 뜯어말려도 용서치 말라며 스스로를 단죄해야만 하는 큰 죄도 있다. 공이 크다 한들 덮을 수 없는 죄가 있고 연좌제가 부당하다 한들 양보할 수 없는 자리가 있다. 박정희씨의 죄는 그런 죄다. 박 의원이 노리는 자리는 그런 자리다.


    사과는 담백해야 한다. 용서받으려면 필요 이상으로 해야 한다. 군말 없이, 핑계 없이, 토 달지 말고... 언제까지? 영원히! 용서받은 후라도 피해자가 요구한다면, 피해자들이 죽더라도 역사가 요구한다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 용서받았다고 있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있던 사실이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가 중요하고 무서운 것이다.

    박근혜 의원의 사과로 인해 박정희씨의 쿠데타와 독재가 또 한 번 공인됐다. 문서와 교과서에 의문의 여지없이 또렷이 기록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된다. 60,70대 박정희 향수 세대가 지나고 이렇게 교육받은 신세대가 밀고 올라오면 박정희씨는 단지 쿠데타 반란군의 수괴, 독재자, 살인자 혹은 살인교사자로 인식될 뿐이다.

    만약 친일에 뿌리를 둔 기득권세력들이 금기시하여 쳐 놓은 강력한 보호막이 해체되고 박정희씨의 전(全) 일생이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 연구된다면 박정희씨는 권력욕의 화신, 능수능란한 기회주의자, 문란한 호색한으로까지 공인될 수도 있다. 당시 미국에 의해 붙여진 별명 - '스네이크 박'은 이런 면에서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한마디로 X소리!



    신세대는 물론이고 60,70대 어르신들도 사실 박정희씨에 대해 잘 모른다. (예를 들면 이혼경력이나 대구사범 4학년때 73명 중 73등 한 우수운 성적 같은...) 몇 십년간 긍정적인 정보만 주입되다 보니 알더라도 피상적으로 편향되게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박정희 독재 18년이 그 분들의 인생의 황금기, 빛나는 청춘과 정확히 겹친다. 이분들과 박정희씨는 정서적으로 일체화되어 있다.

    이런 박정희가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 후보가 됨으로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친일파는 물론이고 남로당 좌파 경력, 쿠데타 반란, 독재, 인혁당 사법살인,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 정수장학회 강탈, 문란한 여성 편력 등등... 이미 알려졌거나 혹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딸(박 의원)로 인하여 아버지(박정희)의 치부가 더 드러나고 있다. 박 의원에 의해 친일로부터 이어져 온 수구기득권의 아이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박정희 시대가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릴 수도 있는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결자해지라! 박 의원이 의도하지도 않았고 원하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오묘한 역사의 섭리마저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든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마가 4:22]



※ 관련 포스팅 : 압록강 행진곡(항일독립군 군가) VS 혈서지원(친일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