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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중요 국가 공공기념일(날짜순)

어멍 2012. 7. 10. 18:10

 

연중 중요 국가 공공기념일(날짜순) : 민속일, 24절후 제외

 


※ 빨강색은 법정공휴일. 밑줄에 굵은체는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거나 여러 기념일 중 특히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기념일. 음력은 따로 (-)를 덧붙임.

 

 

 

0101

 신정

0101(-)

 설날

 

0208

 28독립선언

0301 삼일절

0303 납세자의 날

0315 315부정선거

0318 상공의 날

0322 물의 날

0323 기상의 날

0403 향토예비군의 날

0405 식목일

0407 보건의 날

0408(-) 석가탄신일

0413 임시정부수립일

0419 419혁명기념일

0420 장애인의 날

0421 과학의 날

0422 정보통신의 날

0425 법의 날

0428 충무공 탄신일

0501 노동절

        근로자의 날

0505 어린이 날

0508 어버이 날

0511 입양의 날

0515 스승의 날

        세계가정의 날

0516 516쿠데타

0518 518민주화

       기념일

0519 발명의 날

0521 부부의 날

0523 노무현대통령

       서거일

0525 방재의 날

0531 바다의 날

0605 환경의 날

0606 현충일

0610 610민주항쟁

       기념일

0618 건설의 날

0625 625사변일

0717

 제헌절

0815

 광복절

0815(-)

 추석

0829

 국치일

0901 통계의 날

0907 사회복지의 날

0917 광복군

       창건일

0918 철도의 날

0927 세계관광의 날

1001 국군의 날

1002 노인의 날

1003 개천절

1005 세계한인의 날

1008 재향군인의 날

1009 한글날

1010 임산부의 날

1015 체육의 날

1017 문화의 날

1021 경찰의 날

1026 1026사건일

1027 저축의 날

1028 교정의 날

1103 (광주)학생

     독립운동기념일

1109 소방의 날

1111 농업인의 날

1117 순국선열의 날

1130 무역의 날

1203 소비자의 날

1205 자원봉사자의 날

1212 1212쿠데타

1225 성탄절

 


 

    일 년 달력을 펼쳐놓고 보면 각종 공휴일, 기념일이 대충 위와 같다. 몇 년 전, 정리해 놓고 챙겨볼 요량으로 생일, 기일, 결혼기념일 등의 <가족기념일>을 보호글로 포스팅한 바 있다. 국가 공공기념일 역시 공적인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어 한번쯤 훑어보고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필요하지 싶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생각되는 것을 중심으로 간단히 정리해 본다.

 


    1월, 2월. 별 일 없다.

    삼일절(1919년). 개인적으로 광복절보다 더 의미가 크다고 본다. 광복은 엄밀히 얘기해서 쟁취한 것이 아닌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측면이 크다. 반면 삼일절은 비록 좌절되기는 했지만 범민족적으로 일어나 일제에 저항하고 독립을 쟁취하려했던 일대 거사였다. 지도부가 있기는 하였지만 민중이 자발적, 능동적, 평화적, 전국적으로 참여했다는 면에서 세계역사상에도 특기할 만한 사건이며 오늘날 우리만의 고유한 민주주의 형태로 자리 잡은 촛불집회문화와도 맥이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315부정선거(1960년). 이승만 정권의 몰락을 재촉한 결정적인 사건이다. 그 때처럼 광범위하고 노골적이진 않지만 최근에도 선거와 관련된 안 좋은 사건들이 있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의해 벌어진 디도스 선거부정사건, 통합진보당의 선거부정사건이다.

    한나라당 일은 제쳐두고 진보당 사건만 언급하자면 실망이 크다. 아무리 당내 일이라도 민주주의 핵심이 선거인데 선거부정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 선거부정 자체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사후처리다. 한나라당은 쇼를 하든 꼬리를 자르든,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여론을 관리하고 잠재울 수완과 능력이 있다. 이건 뭐, 한나라당처럼 힘이 없으면 능력, 도덕성, 책임감, 하다못해 자존심이라도 있어야지...


    반성하고 물러나지 않는 한 위기를 모면하고 상황을 반전시킬 유일한 방법은 물타기와 맞불작전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획력, 정보력, 자금력에 스피커까지 장악한 보수 새누리당의 특기다. 그것이 없는 진보는 맞불작전이 아니라 떼쓰기, 고자질, 어리광으로 비취기 십상이다. “쟤도 그랬데요.” “쟤는 나보다 더하데요.” - 새누리당과 조중동이 더 부패하고 더 교활하다는 거. 누구 모르는 사람 있나!

    무능한 것보다 부패한 것이 더 낫고, 순수한 것보다 노회한 것이 더 낫다는 빌미를 스스로 주고 있다. 결정적으로 국민들로부터 신임을 잃었다. 아직 나라를 맡겨도 될 만큼 믿음직스럽지 않다. 아직도 학생운동 때의 치기와 고집을 버리지 못한 인상이다. 힘과 능력은 없어도 아직 마음만은 뜨겁고 순수한(쓸데없이 뜨겁기만 하지 순수하지는 않은듯하다.) 배우는 학생이니 웬만한 실수(?)는 덮고 넘어가달란 말인가?


    어른 흉내, 정치인 흉내를 낼 요량이면 좀 제대로 내라는 말이다. 도덕성 이전에 스케일의 문제다. 알맹이 없는 고담준론, 하나마다한 미사여구라도 정치는 곧 죽어도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야 한다. 호언장담, 허장성세라도 스케일 큰 꿈과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 동네 땅따먹기, 구멍가게 수준... 언제까지 티격태격 국회의원 몇 자리에 연연하며 그 수준에 머무르고 있을 텐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 1인, 대세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일렬종대로 정비되는 보수세력에 비해 진보세력은 다양성과 자발성을 중시하므로 일정부분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혼란스럽게 보여질 수밖에 없는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수세력에 비해 더 과도한 도덕적 잣대가 적용되는 저주(!)를 감당해야 하는 억울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이런 수준이면 차기, 차차기는 물론이고 향후 50년간 (단독)집권을 바라볼 수 없다.

    글이 옆으로 샜다. 범 진보세력의 더 큰 분발을 촉구한다.


    4월 13일 임시정부수립일. 1919년 4월 13일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해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하였다. 비록 타국에서 임시로 구성한 정부이긴 하지만 대한제국까지 이어진 군주국을 끝내고 국민주권을 만천하에 천명하며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세운 민주공화정부라는 데 의미가 크다.


    419혁명기념일(1960년). 누적된 이승만 정권의 실정에 315부정선거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 일가를 몰락시킨 사건. 당시 이 대통령을 국부(國父)라고도 불렀다는 점에서, 비록 민주공화정부였으나 군주국의 영향과 문화가 엄연히 존재했었다는 점에서, 한민족 역사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바로 최초로 왕, 왕에 버금가는 최고통치자를 대명천지에 공식적이고도 합법적으로 민중의 힘으로 내쫓은 것이다. 바야흐로 조선백성과 일제신민에서 대한민국의 국민, 시민으로 민중의 힘이 성장한 사건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 후 있은 총선에서의 일로 기억된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의 지원유세 중에 소복을 입은 할머님이 박정희씨의 영정을 들고 나와 자기 딸 벌인 박근혜 의원에게 큰 절을 하는 일이 있었다. - 이념과 정책을 떠나 있다. 돌아가실 때까지 박근혜 새누리당을 찍으실 이 땅의 순박한 백성들이다. 이 분들에겐 박정희씨는 국민(중 일원)이 아니다. 나와 다른 차원, 다른 신분인 왕이고 군주고 백성들의 아버지다.

 



할머님이 들었음직한 대통령 각하 폐하의 포스가 느껴지는 영정사진



    옛말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요즘은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사적영역, 사적책임을 강조하고 공적영역, 복지시스템을 축소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악용, 오용되기도 하지만 원래의 함의는 무엇인가?...

    민중의 홀로서기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나랏님에 대한 (과도한) (세속적) 기대치를 반영하고 있다. 배고픈 순간에도 나랏님을 쳐다보며 한 가닥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나랏님이라면 가난이 아닌 웬만한 것은 못할 것이 없으시리란 역설이다. 나라와 님이 하나다. 절대군주, 왕이 곧 나라다. 짐이 곧 국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국국민은 독재를 선호한다는 망발을 하였다지만 어느 정도 국민성 안에 권위, 권위자에 의탁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먹고 사는 것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유권자는 경제를 살려줄 것을 기대하고, 후보자는 결심만 하면 경제란 것은 손바닥 뒤집듯 살려줄 수 있다고 공약한다. 아직도 시민이 아닌 국민, 국민이 아닌 백성들이 많다.


    사람의 의식은 한 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민중의 역량은 짧은 시간에 성장하지 않는다. 정치뿐 아니라 한 개인의 의식과 감정, 그에 따른 입장은 대개 처음과 끝이 한가지다. 다만 그 개인의 합, 시민의 합인 민중의 의식과 문화가 조금씩 조금씩 바뀌며 성장해 갈 뿐이다.

    419혁명과 이승만의 하야, 1026 박정희의 죽음, 문민정부 수립 후 전두환 정권 심판과 사형선고를 생각할 때 역사적으로 성장한 면도 있고 아쉬운 면도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조용히 물러나 국외로 떠났다. 하지만 법정에 서지도 않았고 사형선고를 받지도 않았다. 박정희씨는 죽임을 당했지만 심판이든 평가든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정리, 결말을 맺은 것이 아니다. 전두환씨는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지금은 호의호식하며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으며 일부 정치인들은 때때로 들러 문안을 올리기도 한다.

    스스로 물러나든 강제로 쫓겨나든, 죽이든 살리든, 역사적으로는 과정과 절차가 중요하다. 전두환씨의 경우 법적 심판을 받았다는 것은 긍정적인 역사발전이지만 현재도 전임 대통령 예우를 받으며 일정부분 정치권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 법적 책임을 떠나 일말의 회개나 부끄러움도 없이 얼굴 꼿꼿이 쳐들고 할 말 다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분명히 중요한 역사적 후퇴다. 현재진행형이란 점에서 이승만 대통령, 심지어 박정희씨의 마지막 모습보다 역사에 더 짐이 되고 있다. 크고 작은 모든 악당들에겐 귀감이요 롤모델이겠지만 역사 발전을 가로막는 현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요 상징이다.


    먹튀가 아니라 먹고 잠깐 튀었다가 다시 돌아와 먹고 남아 쟁겨두었던 것을 울궈먹고 있다. 잠깐 욕먹고 고생하면 평생 먹고도 남을 양식을 장만할 수 있다. 그것을 밑천으로 자신뿐 아니라 대대손손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다. 일사부재리의 원칙과 신성불가침의 사유재산권은 그들의 가장 든든한 방패막이다. 이런 식이면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독재도 오래하면 전설이 된다. 잠깐, 한번 독재하면 죽일 놈 되지만 18년, 여러번 독재하면 영웅이 된다. 일이억 도둑은 좀도둑, 개털이지만 몇백억, 몇천억 도둑은 이유야 어찌됐든 하늘이 낸 사람이다. 이런 식이면 18년 박정희와 29만원 전두환을 극복할 수 없다. 박정희 향수와 전두환의 현재는 안타깝지만 아직 민중의 역량, 역사인식이 일정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징표다.


    쫓아내도 봤고(이승만) 살해당하기도 했고(박정희) 자결하기도 했으니(노무현) 이제는 한번 공식적, 공개적으로 실재로 죽여 볼 때도 됐다고, 굳이 죽여보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한 서린 증오의 억하심정이 아니다. 그럼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무엇이 역사적 발전을 성취하는 아름다운 방식인가.

    첫째, 민중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정권이 구정권을 정리하는 식이면 곤란하다. 한계가 있다. 지리멸렬해진 전두환 심판은 문민정권 차원의 구세력 정리, 역사바로세우기라는 기획사정의 한계 때문이다. 앞으로 있을 대선전후의 친박에 의한 친이 세력 심판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지배세력, 기득권세력 내의 선수교체일 뿐이다.

    둘째, 철저히 공식적 합법적이어야 한다. 암살, 사적보복은 도리어 역사의 후퇴와 왜곡을 불러온다. 1026 박정희 살해사건이 대표적이다.

    셋째, 지속적이어야 한다. 일회성, 국면전환용이 아닌 역사를 바라보고 진행해야 한다. 일상화된 갈등으로 소모적이고 나라전체가 피곤하다고? 노무현 참여정부 때처럼 저항세력이 강하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저항세력이 강하지 않다면? 추진세력의 힘이 그 저항의 힘을 압도하고도 남는다면? 오히려 국민들을 각성시킬 수 있다. 역사적, 도덕적으로 자부심을 갖게 하고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고취시킬 수 있다. 삶에 대한 보람과 흥까지도 불러올 수 있다. 민중역량의 척도, 그 핵심은 얼마나 이 일을 지구력 있게 추진,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다면 친일파들이 이미 정리되어 그 흔적마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박근혜 의원이 언감생심 대통령 출마를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전두환씨가 쥐구멍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머리를 밀고 정리하고 산에 들어가 평생토록 회개하며 묵언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또 글이 옆으로 샜다. 발전하는 역사, 자부심 가득한 역사를 가졌으면 싶다.

 



가해자이면서도 거침이 없는 후안무치 종결자, 29만원만으로 호의호식하는 재테크의 거장

전두환씨가 문제가 아니라 아직도 이를 용인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역사인식 수준이 문제다.



    516쿠데타. 419민중혁명의 이듬해인 1961년에 벌어진 이 사건은 516군사정변이라고도 부르고 혹자는 516군사혁명이라고도 부른다. 시간은 새벽 3시. 혁명의 시간이기도 하고 쿠데타의 시간, 도둑놈들의 시간이기도 하다. 516과 박정희 소장에 대한 얘기는 말이 너무 길어져서 이쯤에서 각설.


    518민주화기념일.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광주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국가기념일. 하지만 아직까지도 열혈보수주의자들에 의해 빨갱이들의 선동과 소행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되새기고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정희씨가 며칠 더 살았더라면 부마항쟁을 이렇듯 짓밟았을지, 아니면 조용히 권좌에서 내려왔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이렇게 자국 국민을 국군을 이용해 대규모로 탄압, 학살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요, 수치다.


    523노무현대통령서거일.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권의 사정수사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몸을 던져 자결했다. 가장 최근의 일이라 아직도 심리적 트라우마가 남아있어 그 날의 충격이 생생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정치인이기도 해서 앞으로도 523은 쉽게 잊혀지진 않을듯하다. 하지만 굳이 따로 밑줄을 그어 놓은 것은 그것을 떠나 이 사건이 역사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광조, 이순신, 김구, 장준하, 노무현... 원통한 죽음의 행렬, 서러운 역사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가진 것 없이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본인 힘만으로 드라마틱하게 상승했던 인물이다. 기득권 보수 세력의 어떠한 도움 없이도, 오히려 그들의 온갖 방해를 뚫고 그들과 맞섰던 인물, 때론 이기고 때론 졌지만 한 번도 비굴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지사이자 투사였다.

    노무현의 죽음은 그의 개인적 고통을 떠나 거대국가권력, 기득권체제에 의한 신념에 찬 한 역사적 거인, 하지만 전직 대통령일지라도 그 앞에선 하나의 힘없는 자연인일 수밖에 없는 한 고독한 인간의 희생이자 저항이라는 점이 아직도 가슴 아픈 현재진행형인 역사인 것이다.

    노무현도 말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므로 이쯤에서 각설.


    6월 6일 현충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날. 일제하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과 의미가 겹치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610민주항쟁기념일. 1987년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항해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민주화시위를 기념하는 날. 같은 해 발표된 413 호헌조치를 이겨내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민중의 힘으로 쟁취한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자는데 목숨을 걸어야 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


    625사변일(1950년). 625전쟁이라고도 하고 한국전쟁이라고도 한다. 한국전쟁이라 하면 구소련, 중공의 공산주의 대륙세력과 일본, 미국의 자본주의 해양세력이 한반도에서 벌인 대리전쟁이란 측면이 있어 세계사적 의미를 내포한다. 실지로 한국전쟁은 2차 대전 후 미소냉전의 모순이 한반도에 집약하여 폭발한 측면이 크다. 625와 남북분단은 너무 거대한 주제고 말이 길어지므로 이쯤에서 각설.


    7월 17일 제헌절. 법이라면 어렵고 딱딱하고 골치 아프고 왠지 강자들, 배운 자들만이 마음대로 요령껏 써먹는 무기라는 편견이 강하지만 법은 중요하다. 그 중 헌법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단순한 규칙, 규율이 아닌 국가공동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담고 있다. 헌법을 체계적이고 정의롭게 잘 만들면 그 사회가 90점은 쉽게 넘을 수 있고 이미 만들어진 헌법이라도 잘 운용하고 실천만 한다면 기본 80점은 먹고 들어간다.


    815광복절(1945년). 삼일절에서도 언급했듯이 얼떨결에 주어진 측면이 있다. 광복(光復)이라도 빛을 스스로 찾은 것이 아닌 빛이 밖에서 주어진 것이다. 오히려 해방절(解放節), 묶인 것이 풀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따라서 독립(獨立)은 언감생심 말이 안 된다. 홀로, 스스로 일어선 것이 아닌 것이다.

    독립운동, 민족역량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엄밀히 얘기해서 우리 힘만으로 독립을 쟁취했다면, 일제와 싸운 연합군내에서 우리 영향력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이후 우리의 발언권은 물론이요 역사는 훨씬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다. 적어도 남북분단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 우리는 독립하지 않았다. 허리가 끊어진 사람은 결코 홀로 설 수 없다. 아직도 끊어진 허리를 스스로 추스르지 못하고, 고치지 못하고 아파하고 있다. 남한 내의 친일잔재마저도 깨끗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815는 해방절, 광복절로 부를 수는 있어도 독립절, 독립기념일로 부를 수는 없다.


    8월 29일 국치일. 1910년 경술년 국권이 일본에 완전히 넘어간 날. 국가가 치욕을 당한 날. 가장 치욕적인 날이다. 815는 알아도 829는 잘 모른다. 끝은 알아도 시작은 모른다. 세상 모든 일이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시작 없는 끝은 없다.

    역사란 빠짐없이 알아야 한다. 모자이크 한 조각이라도 빠지면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 한 조각이 마음에 안 들고 그것으로 인해 그림이 흉해진대도 빠뜨릴 수 없다. 역사에선 미추(美醜)보다 진위(眞僞)가 상위의 가치다.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 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 - 뵈브 메리(Beuve-Mery, Hubert)


    9월 17일 광복군 창건일. 1940년 중국 중경에서 임정 주석인 백범 김구의 지도 아래 대한민국 정부 최초의 정규군인 한국광복군이 태어났다. 현재 국군의 날인 10월 1일도 나름대로 깊은 의미가 있겠지만 이 날이 아마 가장 의미가 깊지 싶다. 국군의 날을 이 날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찬성이다.


    10월 9일 한글날. 10월 17일 문화의 날. 한글날은 예전엔 법정공휴일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10월 17일도 그렇고 좀 더 문화를 중시하고 대접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한글날도 중요국경일, 공휴일로 지정해 대대적으로 경축기념하고 국보 1호도 건축물인 숭례문이 아니라 글, 문자와 관련된 문화의 정수인 훈민정음으로 지정했으면 좋겠다. 이보다 더 자랑스럽고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문화를 중시하고 풍속이 아름다운 나라. 자유로우면서도 품격이 있는 문화. 솔직하면서도 염치를 아는 민족. 세계가 존경하며 따라 배우고 흉내 내고픈 문화선진국이다. 김구가 말한 문화강국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좋지만 이런 비전을 모두가 공유하는 나라라면 살만하지 않겠는가! 어디 내놔도 떳떳하지 않겠는가!


    1026사건일.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펼쳐진 술자리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경호실장인 차지철과 대통령인 박정희(향년 61세)를 권총으로 살해한 사건. 그외 비서실장 김계원, 가수 심모씨, 여대생 신모씨(당시 22세)가 동석. 참고로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정희의 딸 박근혜(당시 27세)

    시간은 오후 7시 40분. 바쁜 직장인들이 귀가를 서두르는 시간이기도 하고 한가한 호색애주가들이 어둠이 깊어지기를 기다리며 술잔을 예열하는 애매하고 어색한 시간이기도 하다. 깊은 새벽(3시) 권력을 찬탈하였으나 이른 저녁(7시 40분) 권력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고대 궁중에서나 있을 법한 우리 역사의 또 하나의 비극적 사건, 부끄러운 사건, 속된 말로 쪽팔리는 사건이지 않은가!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일 또는 학생의 날. 1929년 광주에서 고등학생들이 벌인 항일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날. 발단은 일본학생과 한국학생간의 시비에서 비롯되었으나 신사참배거부, 동맹휴학, 집단시위로 발전하였고 급기야 민족해방과 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주장하는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전국적 시위로 번졌다.

    내가 이 날을 주목하는 것은 바로 ‘학생’ 때문이다. 학생은 아직 순수한, 배우는 젊은이다. 하지만 삶의 목표, 가치관은 아직 뚜렷하게 정립되지 못했다. 사건의 발단은 일본남학생의 조선여학생 희롱이었다. 처음부터 항일이니 독립이니 하는 의식은 없었던 것이다. 순도 100%의 기름처럼 작은 불씨만 튀어도 활활 타오를 수 있는 것이 젊음이다. 학생이다. 그래서 젊음의 최고의 미덕은 정의보다 순수다. 지혜보다 용기다.

    하지만 요즘 학생과 젊은이들은 입시 공부하기 바쁘다.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모두가 대기업 입사를 부러워하며 그것에 목을 매달고 있는 현실에선 재벌과 기득권의 모순과 병폐를 비판할 수 없다. 집회할 시간에 한 자라도 더 보고 혹 자신의 데모경력이 입사에 불이익으로 작용하지나 않을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젊은 학생들이 이렇게 변했다기보다 사회가 이렇게 변화시킨 측면이 크다.


    평균연령이 늘어남에 따라 상대적으로 40대, 50대 젊은이(!)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사회는 오히려 더욱 보수화 되었다. 젊은이들이 기존 체제에 너무 일찍 순응하여 늙어간다. 아무 생각 없이 놀거나, 아무 생각 없이 공부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취직하여 사회에 적응한다. 그 외의 것을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모르면 입 닥치고 가만이나 있어!’에서 ‘에이~ 이제 알 거 다 알면서 왜 이러시나?’로 바로 직행이다.

    학생으로 보호해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른으로 대접해주지도 않는다. 예전엔 10대 초반이라도 상투를 틀면 어른으로 대접했다. 지금은 30대 초반이라도 직업이 없으면 엄마, 아빠에게 얹혀사는 캥거루족이다. 예전엔 백날 데모해도 졸업장만 있으면 여기저기서 모셔갔지만 지금은 머리 터지게 공부해도 취직하기가 만만치 않다.

    나이만 같을 뿐, 광주항일운동의 고등학생들이 지금의 중삐리, 고삐리들이 아닌 것이다. 대졸은 물론 고졸이래도 고급인력이었고 의식 있는 지성인이었으며 조만간 가정을 이루어야할 책임감이 요구되는 어엿한 성인이었다. 그래서 중학생, 고등학생들은 일제 때는 물론 419혁명 때에도 시위에서 중요 역할을 담당하였다.


    아들은 아빠를 극복하며 성장한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 대항하며 미래를 담당할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한다. 자기의견 없이 순종만 하는 아들은 영원히 홀로 서지 못한다.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소비문화, 게임, 연예인 뉴스에만 헤롱헤롱하는 날라리에만 머문다면 희망이 없다. 집과 도서관만 오가며 교과서, 수험서만 읽어대는 범생이에만 머문다면 발전이 없다. 사회는 급속도로 보수화되며 활력을 잃는다. 젊은이들이 진취적이고 정의롭고 순수해야만 그 사회의 미래가 밝다. 젊음은 절대적으로 진보적이어야 한다.

    1953년 정부는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제정, 공포하였다. 1973년 박정희 군사정권은 학생의 날을 없앤다. 2006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명칭을 변경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12월 3일 소비자의 날. 내가 주목하는 것은 소비자, 광범위한 소비자다. 자동차라면 구매자요, 신문이라면 구독자요, 방송이라면 시청자요, 민주주의라면 시민이다. 당연히 소비자가 갑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반대다. 생산자인 재벌이 갑이고, 신문, 방송사가 갑이고, 권력자가 갑이다. 힘세고 조직화된 소수가 약하고 파편화된 다수보다 우위에 있다. 신문이 구독자를 갖고 논다. 권력이 시민들을 두드려 패거나 조종하려 든다.

    소비자, 시민들의 힘이 더 세지고 더 조직화되어야 한다. 소비자들의 주도하에 컨슈머리포트도 작성하고 불매운동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소비자들을 마트 앞에 줄 세우는 것이 아닌 생산자들을 소비자들 앞에 줄 세워야 한다. 궁극적으로 소비(자)와 생산(자)가 융합되는 수준까지 가야 한다.

    소비자가 생산에 관심을 갖는 차원을 넘어 직접 생산, 유통시키거나 지분을 갖고 생산에 참여하여 생산을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로 주도권이 넘어와야 한다. 소비자인 대중이 소비뿐 아니라 생산까지, 재화뿐 아니라 정보까지 장악한 시민주권사회다. 경제민주화, 정보민주화의 완성된 모습이다.

    선진국일수록 소비자의 힘이 세다. 명실공히 소비자가 갑이 되어야 한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서울시청 앞 광장 모습

이것이 소비자가 갑인 사회, 민중이 주인공인 역사



    1212쿠데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사후 어수선한 정국 하에 같은 해 12월 12일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전두환, 노태우 등)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 앞서 말했듯 암살, 사적 보복 등은 역사의 발전이 아니라 역사의 왜곡을 불러온다. 박정희씨가 아무리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한들 군부세력이 뒷받침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찍이 516쿠데타 때 앞장서 쿠데타를 지지 선언했던 육사생도들이 하나회의 주요 멤버였다. 바로 작은 박정희들, 박정희 키드들이다. 박정희 개인이 사라진들 그 세력은 여전하다. 정권의 머리는 박정희였지만 그 몸통은 바로 군부였다. 몸통이 그대로면 어딘가에서 새로운 머리가 튀어나와 자라나기 마련이다. 첫 번째 머리 전두환, 두 번째 머리 노태우다.

    몇몇 머리를 자르는 것보다 세력 전체를 고사시키는 것이 더 확실하다. 세력을 고사시키기보다 항구적이고도 강력한 대항세력, 대안세력을 키우는 것이 더 확실하다. 바로 시민세력이다. 지금은 시민세력이 집권한 시민주권시대인가? 의문이다. 형식상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세워졌지만 내용을 보면 몇몇 경제 강자들이 연합하여 세운 보수과두정권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가벼운 기분으로 간단히 일별한다고 해놓곤 말이 너무 길고 진지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격동의 현대사였다. 격동 이전에 역사란 것이 원래 간단치 않다. 달력에, 기념일에 역사가 담겨있고 그 날이 다가오면 우리는 깊이 새기든 아니든 그 때를 기억하며 회상한다.

    기념일 대부분이 일제하 식민지시대와 얽힌 날들이다. 그 후에도 전쟁, 정변과 관련된 날들이다. 당연히 기쁜 날보다 슬픈 날, 비극적인 날이 더 많다. 언뜻 그려봐도 기쁜 기억보다, 아픈 기억, 슬픈 기억이 더 많은 굴곡진 역사다.

    근현대사는 객관적으로 절대 ‘위대한 민족이 이룬 찬란한 역사’는 아니다. 휘황찬란한 야경, 대형차들의 행렬만으로 위로하거나 덮을 수 없다. 물질적 풍요 역시 역사발전의 중요한 척도지만 역사란 그것 하나로만 재단할 수 없는 더 상위의 개념이다.

    비극적 역사를 위로하고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정확히 알고 똑바로 새겨야 한다. 기쁘고 자랑스런 역사를 만들기 위해선 옳게 기억해야 하는 것이 먼저다.


    자신이 아는 기념일은? 국적불명의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삼겹살데이, 빼빼로데이, 할로윈은 알아도 829 국치일은 웬만해선 모른다. 516이 쿠데타인지 혁명인지 개념정리조차 명확히 서 있지 않다. 각종 공휴일, 기념일 중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순으로 써 보시오 하면 금방 그 사람의 가치관을 알 수 있다. 518을 민주항쟁으로 부르는지 광주사태, 심지어 폭동이나 반란으로 부르는지만 알아도 그 사람의 수준과 정치성향을 알 수 있다.

    옳게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황당한 일들이 시리즈로 벌어진다. 731부대를 항일 독립군 부대로 알고 있는 인물이 총리에 오른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미국박사, 한국최고라는 서울대 총장이면 뭐하나. 기본적인 역사인식, 지식이 없는 사람은 책임 있는 공인의 자리에 오를 자격이 없다.

    하극상으로 권력을 빼앗고 그도 모자라 총칼로 국민들을 죽인 독재자를 기념해 공원을 세운다. 아무리 화해와 통합을 외친들 뭐하나. 본인은 반성도 없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고 그 추종자들은 부끄러움도 모르고 존경하고 있는 것을...

    서울 한복판에서 자위대 창립 기념식이 열리고 유력 국회의원들이 축하차 참석한다. 쿠데타 원조인 독재자의 딸이 언감생심 최고 권력자를 꿈꾸고 더욱이 가장 유력하여 너도나도 그 앞에 줄서기 한창이다. 블랙 코미디의 연속이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잘못 배웠기 때문이다. 가르치지 않았고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829, 1212가 무언지 모르기 때문이다. 523, 1026이 왜 일어났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옳게, 똑바로 배운다면 미래를 알 수 있고 바로잡을 수도 있다.

    “가장 뛰어난 예언자는 과거이다.” - 바이런(Byron)




※ 공교롭게도 오늘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의 대선출마 선언이 있었다. 예상했던 그림이긴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뭐랄까... 심사가 복잡하다. 5년전 이명박 후보의 득세를 보고 고 김근태 의원이 국민들이 집단으로 치매에 걸린 듯하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그럼 오늘의 이 시추에이션은?... 내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다.(정확히는 이해는 가지만 납득이 안 된다. 설득이 안 된다.) 뭥미황당하고 어안이 벙벙하여 쓴 웃음만 날 뿐. 헐

 




※ 이하는 2015/12/08 추가 첨부함


결국, 어찌됐든,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대통령에 당선! ...

걱정한 바와 같이 대한민국이 날이면 날마다 후퇴를 거듭하며 많은 몸살을 앓고 있다. ㅠ.ㅠ


향토예비군의 날 - (좀 더 정확하게) '매년 4월 첫째주 금요일'로 정정

한글날(1009) - 2013년부터 법정공휴일로 재지정

국민안전의 날(0416) -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새롭게 지정함.


하지만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진상이 밝혀지지도, 유족들의 억울함이 풀리지도 않고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돈으로 보상하고 기념일만 지정하면 다인가!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단지 무시되고 잊혀질 뿐. 결국 배운 것도, 달라진 것도, 나아진 것도 없다. ㅠ.ㅠ




※ 이하는 2019/09/17 추가 첨부함


1979년 10월 16일 부산을 시작으로 마산, 창원 등 경남 일대에서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여 학생과 시민들이 일으킨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을 앞둔 오늘 행정안전부에서 이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였다.

이로서 현대사의 4대 민주항쟁 -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1016 부마민주항쟁 - 이 모두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