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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성경읽기 0043 : 잠언 17장(21절)~24장

어멍 2010. 12. 20. 01:05

     성경읽기 0043 : 잠언 17장(21절)~24장



17장 21절

어리석은 자를 자식으로 둔 자는 근심하고, 바보 자식을 둔 아버지에게는 도대체 즐거움이 없다.

 

    ‘바보 자식’, ‘도대체 즐거움이 없다’... 표현이 재미있다.

    다영이, 종서를 둔 딸, 아들의 아빠로서 나는... 즐겁다. 행복하다. 다영이는 정이 많고 속이 깊다. 여자아이라 그런지 종서보다 어른스럽고 얌전하다. 무엇보다 예쁘다. 마음도 예쁘고 외모도 예쁘고... 귀엽다에서 예쁘다로, 예쁘다에서 아름답다로 변해가고 있다. 욕심이라면 조금만 더 씩씩했으면 좋겠다.

     종서는, 푸하하하!... 웃음부터 난다. 재밌다. 엉뚱하다. 집중력이 강하다. 남자아이라 다영이보다 들이대지만 그렇다고 거칠은 것은 아니다. 누나보다 욕심이 많아 제 것을 더 챙기지만 정도 많고 속도... 깊다. 눈치 하나는 빠르다. 생각 없이 대답하다 보면 어느새 종서에게 넘어가 있다. 유도심문임을 눈치 챘더라도 이미 늦었다. ㅠ.ㅠ 욕심이라면 조금만 더 성숙해졌으면 좋겠다.(차차 그렇게 되겠지만...)


    다영이는 아름답고 우아한 미소라면 종서는 재밌는 한바탕 웃음이다. 다영이가 자연적인 바보라면 종서는 초자연적인 바보다. (☞ 황당 코믹 시추에이션) 다영이가 은하수의 딸이라면 종서는 태양의 아들이다. (☞ 은하수의 딸 다영의 탄생 & 태양의 아들 종서의 탄생)


    성경읽기에 웬 자식자랑?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팔불출이라도 좋다. 다영이는 예쁘고 종서는 멋지다. 소원한 바 이상을 주신 하나님! 이보다 더 사랑스러울 수는 없다. 이보다 더 감사할 수는 없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자연적인 바보, 초자연적인 바보, 자연적인 영재, 초자연적인 영재

바보일 때도 영재일 때도 내게 즐거움을 주는 다영과 종서



17장 26절

죄가 없는 자를 처벌하는 것이나, 존귀한 사람을 정직하다고 해서 때리는 것은 옳지 않다.

 

    의인은 악인을 미워하고 악인은 의인을 미워한다. 의인은 가치로서 사람을 모으고 악인은 이득으로서 사람을 모은다. 의인은 진리와 정언(正言)으로 사람을 설득하고 악인은 거짓과 궤변으로 사람을 설득한다. 의인은 사랑, 자비 같은 사람의 선한 본성에 호소하나 악인은 분노, 질투 같은 사람의 악한 본성을 이용한다.

    언젠가, 어디선가 위선적 의인이 정직한 악인보다 더 죄가 크다란 주장을 들은 적이 있다. 자못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라는 괘변, 말장난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지만 내용인즉슨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는 용서할 수 있어도 김대중, 노무현의 위선은 용서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궤변의 극치다.

    독재가 아니라고, 쿠데타가 아닌 구국의 혁명이라고 막무가내 우기지는 않으니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하나? 위선으로 따진대도 박정희씨의 ‘한국적 민주주의’, 전두환씨의 ‘정의사회구현’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사회’도 결국 마찬가지!

    왜 이리 떼쓰듯 무리한 궤변을 늘어놓는가. 정치적 편견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은 열등감 때문이다. 박정희, 전두환을 변호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변호하는 것이다.


    ‘성자(聖者)는 눈같이 하얀 그 결백이 증명될 때까진 언제나 유죄’(조지 오웰)이며 가중처벌되어야 한다. 악한(惡漢)은 끝 간 데 없는 그 악마성이 까발려지지 않는 한 언제나 무죄이며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청개구리 심보도 아니고... 아햏햏한 이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죄가 없는 자는 벌을 받아야 하고 정직하고 존귀한 자는 맞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보다 이명박 대통령이 훌륭하고, 이명박 대통령보다 전두환씨가 훌륭하고, 전두환씨보다 박정희씨가 훌륭하고, 박정희씨보다 히틀러가 훌륭하다? @.@... 술 취한듯 상하좌우가 뒤집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린다. 누구는 성자고 누구는 악마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명확히 보이는 비교우위를 말하려 함이다.

    왜 이런 말 같지 않은 말에 현혹되는가. 논리 아닌 우격다짐에 마음이 가는가. 우리가 못났기 때문이다. 지혜롭지 않고, 현명하지 않고, 대상을 증오하고 질투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봐도 어마어마한 사건들의 배경에는 의외로 이런 사소하고 어처구니없는 인간의 질투심이 작용한 경우가 많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승리, 노 대통령의 퇴장과 죽음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수구기득권 대표인물인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질투심과 열등감이 국민 대중을 통하여 증폭된 것이다.

    분노는 잔인하고 화는 사람을 삼키지만, 질투처럼 파괴적이지는 않다.[잠언 27:4]



18장 12절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장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다.

 

    유명한 구절! 앞선 16장 18절 곧 ‘교만은 파멸의 선봉장이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와 상통한다. 못 나갈 때 상심하지 말고 잘 나갈 때 교만치 말아야 한다. 조금만 잘 나가도 버릇없이 교만해져 그 됨됨이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항상 처음을 잊지 말고,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감사함을 알고 겸손해야 하고 만족함을 알고 절제해야 한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연단하듯, 사람은 칭찬을 통해 시험을 받는다.[잠언 27:21]



18장 13절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수치를 당한다.

17절

재판에서 원고의 말이 옳은 듯해도, 피고가 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귀는 양쪽에 두 개가 있다. 머리는 중앙에 있어 중심을 잡는다.

    두루 듣고, 깊게 생각하여, 명쾌하고 과감하게 결정한다. 우유부단하여 하염없이 지체하는 것도 나쁘지만 내뱉은 말과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성실히 선의를 갖고 듣되 그 성실과 선의는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이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어야 한다. 쌍방이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 이해관계가 있다면 되도록 회피하는 것이 좋다. 회피할 수 없다면 거리를 두고 신중히 개입해야 한다. 개입한다면 자신의 처지를 정직히 밝히고 의견을 말하는 것이 옳다.



19장 2절

지식 없는 열심은 위험하고, 조급히 일을 처리하면 그르친다.

3절

자기의 미련 때문에 망하고서도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한다.

 

    또다시 생각나는 『멍부, 멍게, 똑부, 똑게 / 어부, 어게, 지부, 지게』다. (성경읽기 0042 잠언 17장 12절 참조)

    멍청하면서(또는 어리석으면서) 부지런하면 많은 사람 피곤하게 한다. 민폐다. 의욕만 앞세워 성급히 일을 벌이며 호언장담 열심이다가 일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갖은 핑계를 댄다. 성공하면 내 탓이고 실패하면 하나님 탓, 조상 탓, 남 탓이다. 또다시 생각나는 이명박 대통령, 4대강이다.

    겨울 냇가 돌맹이같이 냉정한 머리, 꿈틀대는 용암처럼 끓는 심장, 텅 빈 두뇌, 메마른 마음... 좋지 않다. 달궈진 압력솥같이 뜨거운 머리, 갈라진 얼음장처럼 차가운 심장, 빽빽이 꽂혀진 갑갑한 책장처럼 지혜가 들어설 자리가 없는 두뇌, 너무 기름져 짓무른 마음... 역시 좋지 않다. 머리는 서늘하고 심장은 따스해야 한다. 두뇌(지식)는 충실하고 여유가 있어야 하고 마음(심성)은 온화하고 담백해야 한다.

    지식 없는 열심은 위험하고, 열심 없는 지식은 무용하다.

 


24장 5절

지혜로운 사람이 힘센 자보다 낫고, 지식 있는 사람이 무사보다 낫다.

6절

전략을 세우고 전쟁하라. 전략가들이 많아야 승리를 얻는다.

 

    앞선 16장 32절 곧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자는 성을 정복하는 자보다 낫다’와 유사한 의미다. 16장 말씀이 수신(修身)을 강조한 사적 의미가 더 크다면 24장 말씀은 전쟁과 얽힌 공적 의미가 더 크다.


    항우와 유방의 쟁패를 다룬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무력은 항우의 초나라가 강했지만 전략과 용인술은 유방의 한나라가 강했다. 그에게는 꾀주머니의 대명사로 불리는 장량(곧 장자방)과 소하와 한신 - 서한삼걸(西漢三杰)이라 한다 - 등 전략가, 우수한 참모들이 즐비했다. 결국 유방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한번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한 후 논공행상을 하는 자리에서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장수들이 후방에서 살림이나 하고 문서나 작성하던 소하, 장량 등의 참모보다 상을 덜 받게 되자 유방에게 거칠게 항의를 하였다. 이에 유방이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으로 반발을 일시에 잠재웠다고 한다.

    ‘너희들은 사냥개다. 너희들이 언제 뛰고 언제 쉬느냐? 언제 자고 언제 깨느냐? 무엇을 물고 무엇을 놓느냐? 그것을 누가 결정하느냐? 너희들이 사냥터에서 먹이를 물어오는 것은 후방에서 너희들을 부리고 먹이는 전략가와 참모들의 공이니 그 공이 당연히 더 크다 할 것이다.’




장량(張良), 자는 자방(子房) - 유방의 최고의 책사



    장수, 군인들은 노골적으로 말하면 사냥개다. 평화시에는 경비견, 전시에는 투견인 셈이다. 군인가족들이 듣기엔 서운한 말이고 모욕적인 표현이라 양해를 구하지만 전해오는 이야기가 그렇고 현실이 그렇다. 이병은 작은 졸(卒)이요, 장군은 큰 졸이다. 명령권과 인사권을 갖고 있는 최고통수권자에겐 어차피 졸이기는 마찬가지다.

    명령에 (죽으라면) 죽고, 명령에 (살으라면) 산다. 쏘라면 쏘고, 말라면 만다. 물으라면 물고, 놓으라면 논다. 부당하고 불의한 명령에 저항할 수 있는 조항을 군법에 추가한다는 뉴스를 언듯 들은 것도 같은데 아직까지는... 전통적으로... 그것이 군인과 장수의 미덕이요 자질이다.


    군인출신인 김관진 신임 국방장관이 당차고 호기롭게 연평도에 이은 북한의 도발에는 반드시 독자적이고 즉각적으로 북폭 등 두 세배의 공격을 퍼붓겠다고 공언하였다. 허언이다. 규정, 작전권을 어기지 않는 한 독자적으로 북폭을 할 수 없게 되어있다. 개인적으로 북폭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동시에 개인적으로 김 장관의 발언을 이해한다.(지지가 아니다!) 군인이라면 그래야 한다. 곧 죽어도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허풍이더라도 당장은 국민을 안심시키고 믿음을 주어야 한다. 확전하느냐 마느냐, 발사버튼을 누르냐 마느냐 하는 결정은 어차피 정치인, 대통령이 하는 것이다.

    유감인 것은 그런 강직하고 용감한 군인이 왜 전시작전권 회수를 적극 주장하지 않는지, 이명박 정권의 실패한 외교국방정책에 대해 진작 쓴소리를 안했는지 하는 점이다.(그랬다면 장관후보에도 오르지 못했겠지만) 그래서 작전권 권한 유무와 별개로 그의 북폭 발언이 더욱 허풍으로 들리는 것이다. 파멸적 결과를 부를 전면전을 감수하고, 북폭을 미국과 의논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감행할 용기라면 이 대통령에게 직언할 용기는 소심한 용기일 뿐이다.

    아무리 힘이 센 장사도 앞이 보이지 않으면 두렵기는커녕 동네 아이들이 갖고 논다. 머리칼이 잘리고 두 눈이 뽑힌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힘보다 지혜다. 무기보다 전략이다. 하지만 전작권, 명령권이 없으면 전략, 전술도 아무 쓸모가 없다. 난센스! 의미 없다. 리모콘으로 조종되는 로봇일 뿐이다.

    북폭 공언보다 전작권 환수 주장이 먼저다. 그것이 참군인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국방장관 외에 다른 장관 역시 마찬가지다. 권력이 대통령과 청와대로 집중된 현 정치체제에서는 장관뿐 아니라 국무총리도 스스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장관보다, 총리보다 청와대 수석들이 실세다. 결국 전쟁의 승패도, 나라의 흥망도 군인보단 정치인에게 달렸다. 장수보다 전략가요, 전략가보다 군주가 중요하다. 군주가 덕이 있고 지혜로워야 한다. 지칠 줄 모르는 힘, 후퇴를 모르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은 이보다 못한 것이다. 하물며 똥폼, 똥고집은 거름으로도 쓸모없는 것이다.

    유방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에 비하면 장사(壯士) 앞에 어린아이였다. 힘으로만 치면 장량은 유방의 장수인 번쾌에 한참 못 미치는 약골이었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유방이었고 최고의 인재는 장량이었다.


    내 보기에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은 의롭지 않은 과소두뇌(過小頭腦) 정권이다. 제어장치가 조악한 불도저, 본체는 최신 펜티엄인데 운영프로그램(OS)은 윈도 98인 버벅대는 컴퓨터다. 지혜는 물론이요 지능도 떨어진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수석들이 북한붕괴라는 대책없는 희망사항만을 읊어대고 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손수 나서 대북삐라를 뿌리려 한다. 방치 또는 붕괴촉진이다. 이 외는 변변한 대북정책도 전략도 없다.

    붕괴하기까지 물샐틈 없는 철저한 방어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붕괴후에 남한이 독자적, 주도적으로 북한을 완전히 접수할 수 있는 대책이 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무책임한 낙관론이다. 무대뽀다. 당정청의 책임있는 고위인사들 수준이 가스통 극우 어르신들의 수준을 못 벗어났다.

    국민들에겐 두려운 존재, 외국에겐 만만한 존재다. 내치는 힘만 센 날뛰는 미친 소(Mad Bull)요, 외치는 머리 나쁜 얼빠진 미친 소(Mad Cow)다. 중요한 길목에서 중요한 권력을 쥐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 한나라당이 명심해 주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뜻이 이 민족과 나라에 함께 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