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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大望)》 11권 리뷰

어멍 2016. 3. 21. 23:52

 

    《대망(大望)11권 리뷰

 

 

    “얄궂은 일이지요. 나가야스님의 지나친 여색이 이 가문의 여인들을 열렬한 예수교 신자로 만들고, 그 여자들의 신앙이 신자들의 폭발을 누르는 둑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78p)

 

    오쿠보 나가야스가 중풍으로 쓰러져 죽자 그 맏사위인 핫토리 마사시게가 이에야스의 밀명을 받고 나가야스에 얽힌 불순한 소문(비밀연판장과 횡령)에 대해 조사 나온 야규 무네노리에게 하는 말. 나가야스는 이에야스의 가신이자 그 아들 다다테루의 가신으로 막부의 금광채굴 최고책임자이자 다다테루의 집정이었는데 연판장이란 다다테루를 중심으로 세를 모으려는 의도였고 횡령이란 그것을 위한 비자금이었던 것이다.

    다다테루는 쇼군 히데타다의 동생으로 히데타다가 심사숙고하는 성실근면한 인물이라면 다다테루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호방한 인물이었다. 이에야스가 히데타다를 후계자로 지명한 것은 형이기 때문도 있지만 자신이 이룩한 평화시대에는 변화보다 안정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다테루는 이런 형 밑에서 얌전히 있을 인물이 아니었고 나가야스 역시 일을 벌이고 꿈꾸기를 좋아하는 인물이었으니 결국 사단이 나고 만 것이다.

 

    나가야스는 넉살과 수완이 좋고 재주와 능력이 뛰어나고 술과 여색과 풍류를 좋아한 자수성가형 인물이었다. 반면 그의 가정은 예수교(천주교) 여인들 일색이었는데 정실부인과 첫째며느리, 둘째며느리, 장녀까지 열렬한 구교 신자였다. 더구나 그의 주군인 다다테루의 부인까지 구교 신자였으므로 (여성)교인들 입장에서는 가장 믿고 의지하는 권력층이었다.

    당시 예수교의 유입은 교토,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긴키(近畿) 곧 간사이(關西)에서 활발하였는데 위와 같은 연유로 나가야스가 있던 하치오지(에도 근방)는 간토(關東)의 또 다른 구교도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 건너온 구교도 세력은 히데요시 때처럼 탄압을 받거나 포교금지를 당하지 않을까 불안에 떨고 있었는데 이에야스 측근에 구교와는 견원지간인 신교세력 영국인 미우라 안진이 있었고 새롭게 발흥하는 영국, 네덜란드 등의 신교국들이 막 일본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적극적으로 다다테루와 나가야스 그리고 다다테루의 장인인 다테 마사무네에게 접근하는 한편 오사카에서는 성내의 천주교인들에게 접근하였는데 여기에 관련된 인물들이 묘하게도 연판장과 연결되어 에도의 쇼군 히데타다와 이에야스에 대립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 일은 쇼군에게까지 알려지지만 연판장은 동생이 얽힌 민감한 집안일이어서 공개적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유야무야 묻히게 된다. 하지만 나가야스가 은닉한 막대한 황금으로 인하여 유족들은 처형당한다. 결국 구교도의 한 축이 큰 타격을 받고 무너진 셈이다.

    이후 오사카의 히데요리와 에도의 히데타다, 이에야스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구교도들은 더욱 오사카로 집결하게 된다. (교인이 아닌) 나가야스란 바깥 둑이 무너지자 그 뒤편에 모여 있던 여성 교인들의 안의 둑이 무너지고 그것이 무너지자 더욱 불안하고 예민해진 전체 구교도들(주로 상대적으로 호전적인 남성 교인들)이 동요하게 된 것이다.

 

    사위가 보기에 이런 장인의 집안내력과 종교와 얽힌 권력관계가 얄궂다는 것이다. 한 집안일로 좁혀 미시적으로 보면 남편 혹은 가장이 문란하여 도리어 부인, 자녀들이 종교에 심취 혹은 도피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술과 도박에 외도까지... 허구헌날 흥얼거리며 쌍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부인이나 자녀는 마음 속 깊이 증오하지만 헤어질 수 없고 벗어날 수 없어 사랑으로 감싼다. 대항하지 않고 용서하고 증오하지 않고 기도한다. 어쩌면 성당이나 불당에 가서 남편 혹은 아버지의 죄악을 고백하고 용서해달라고 빌 것이다.

 

    종교, 정치와 관련해 거시적으로 보면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세속적, 정치적 힘이 종교의 구도적 삶을 지탱하고 보호하는 방패로서 기능한 셈이다. 반대로 종교가 그것을 위해 정치를 이용하고 결국엔 정치에 이용당하는 경우이기도 하다. 실재로 에도에 대항해 오사카성에 몰려든 이들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예수교 신자들과 전국시대 이후 실업자가 되어 평화에 불만을 품게 된 떠돌이 무사들이었다.

    정치는 종교를 보호하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교는 정치를 이용만 할 수 있지 보호할 순 없다. 정치가 더 세다. 현실세계, 세속세계에서는 정치가 한 단계 위인 것이다. 모든 부문의 위에 있는 최상위 범주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과 보호를 받고 성장한 종교, 예술, 인문, 과학, 경제 등이 이를 잘 말해준다.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를 방문하여 성 앞에서 사흘 동안 파문을 취소해달라고 싹싹 빈 카노사의 굴욕은 엄밀히 얘기해서 종교가 정치를 무릎 꿇린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가 또 다른 정치(권력)를 무릎 꿇린 것이다. 종교가 세속적 권력을 탐하거나 휘두르면 더 이상 종교가 아니다. 부와 명예와 힘을 추구하는 순간 그것은 곧 정치다.

    (그래도, 여전히) 정치가 아닌 종교라고? ‘권력이 아닌 종교권력이라고? 다 말장난이다. 정치를 하려면 종교를 내려놓고 종교를 하려면 정치를 내려놔야 한다. 세상 모든 일이 얽혀있어 칼처럼 베어 두 동강으로 나눌 순 없더라도 최대한 분리해야 한다. 정치를 통해 자신이 믿는 신의 뜻을 구현하고 종교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도모하려는 꿈을 꾸어선 안 된다.

 

    정치에 종교인의 옷을 입고 참여해선 안 되고, 종교에선 자신의 정파적 신념을 노골적으로 주장해선 안 된다.

 

    일단 그 진상이 항간으로 새어나가자, 뜻밖에도 백성들을 승복시키는 이상한 힘을 발휘했다.

    “? 국가안강......이 오고쇼의 이름을 저주하는 것이란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 글은 확실히 이에야스의 이름을 갈라놓고 있었다. 겨우 글자를 알아볼 정도의 서민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알기 쉬운 연기 이유로 납득되었으니, 서민이란 약삭빠르면서도 다루기 쉬운 어리석은 백성이라고 볼 수 있다. (286p)

 

    국가안강(國家安康) 군신풍락(君臣豊樂) - ‘온 나라가 평안하고 강건하니 임금과 신하가 모두 넉넉히 즐겁다는 뜻으로 교토에 있는 대불전인 호코지사(方広寺) 낙성식 때 걸릴 대범종에 새겨진 글귀다. 이는 기실 세이칸 대사가 덕담 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아부하는 의미로 지은 것인데 어떻게 오고쇼(이에야스)를 저주하는 것으로 비화되었을까??

    해석을 달리하여 국가안강(國家安康)은 이에야스(家康)의 이름을 갈라놓아 저주하는 것이고, 군신풍락(君臣豊樂)은 글자 그대로 도요토미(豊臣)의 임금()됨을 즐기는 것이라 본 것이다. 그렇다면 오사카(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숨겨진 음모와 속마음을 에도(이에야스와 히데타다)가 간파한 것인가?

 

호코지사 대범종과 거기에 새겨진 글귀

남쪽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신격화하여 모신 도요쿠니 신사(豊國神社)가 있다.

 

    사람의 속마음이야 알 수 없는 것이고 당시의 객관적인 정세와 세력관계는 파악할 수 있다. 당시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불온한 움직임이 한층 더해져 가고 있었는데 이는 주로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도 남아있던 히데요시 추종세력과 떠돌이 낭인 무사들 그리고 나날이 불안감이 더해갔던 구교도들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이런 오사카에 대해 에도의 경계심도 한층 더해져서 이에야스는 히데요리가 오사카를 떠나 영지를 옮기지 않는 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오사카의 가로(家老) 가신 가타기리 가쓰모토에게 그 뜻을 전하며 오사카를 설득할 것을 지시한다. 하지만 가쓰모토는 우유부단하고 무능력한 인물로 이 임무를 차일피일 미루며 해결하지 못하는데...

    결국 이에야스는 호코지사 낙성식과 히데요시 17주기 공양제를 겹쳐 모여드는 몇 십만 명의 군중들이 일제히 봉기할 것을 두려워해 낙성식 전날 이것을 명분삼아 낙성식을 불허한다. 오사카에선 난리가 나고 부랴부랴 대책회의를 열어 이에야스의 오해(?)를 풀기 위해 가쓰모토를 다시 슨푸로 파견하는 것으로 결론 낸다. 하지만 이것은 이에야스의 바람과 다른, 사태를 더욱 지연시키기만 하는 오사카의 대응이었다.

    이에야스가 이같이 범종의 글귀를 트집 잡은 것은 히데요리에게 내는 일종의 수수께끼! 불순한 세력을 통제하고 종국에는 오사카성을 떠나라는 것이다. 그때라도 가쓰모토가 히데요리나 요도마님과 독대하여 이에야스의 본심을 전했더라면 전쟁은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고 싶다. 히데요시와의 의리를 지켜 히데요리와 요도마님을 구하고 싶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이에야스에 호의적인 작가의 서술이다. 오사카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어쩌면 히데요리 모자는 이에야스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을 수 있다. 아무리 인의 장막에 갇혀있었다 해도 가쓰모토 이외에 다른 채널을 통해 이미 충분히 그 뜻을 파악하고 있었을 확률이 더 크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오사카성을 떠날 수 없고, 떠나기 싫었을 확률 역시 크다. 오사카성을 바라보며 모여드는 낭인들과 구교도들뿐만 아니라 성내의 가신들과 그 식구들까지... 딸린 이들이 너무 많다. 이에야스의 아들 다다테루까지 탐낼 정도로 오사카성은 히데요리 자신이 놓치고 싶지 않은 거대한 위용과 화려함을 자랑하는 성, 더구나 그의 부친 히데요시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쌓아올린 성이지 않은가!

 

화려함과 위용을 겸비한 난공불락의 제왕의 성 오사카

 

    결국 히데요리는 오사카성을 떠나지 않게 되고(혹은 떠날 수 없게 되고)... 에도와의 전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작가는 그 원인으로 여러 가지를 들고 있다.

    시기, 질투, 경쟁심 등 소모적 감정에 휘둘리며 나른한 일상을 소비하는 요도마님을 중심으로 한 성내의 여인들, 그런 여인들의 품에서 자라 명철과 지혜가 모자라는 미숙한 청년 히데요리, 가쓰모토 같은 우유부단하고 무능력한 원로 가신들, 호전적이고 소영웅주의에 빠진 청년 가신들, 거기다 몰려드는 낭인들과 구교도들까지...

    성은 제왕의 성이로되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 그곳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왕의 자질에 턱없이 못 미치는 자들뿐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는 절대반지처럼 전쟁의 원인은 이 화려하고 웅장한 성, 몇 년이고 버티며 농성할 수 있을 것 같은 오사카성 자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으론 에도 역시 마냥 호의적이고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이에야스와는 별개로(어쩌면 이에야스 본인조차도) 가신들을 중심으로 오사카의 히데요시에게 오랜 구원(舊怨)이 있다. 이제는 이에야스 사후를 대비해서라도 히데요시의 후손과 그 추종세력들을 어떻게든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히데요리를 오사카에서 몰아낼 때다.

    이 모든 것들이 이에야스와의 바램과는 반대 방향, 평화가 아닌 전쟁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전쟁이 발발하는 주요 원인은 개인이 아니라 세력이다. 또 하나는 어떠한 계기다. 두 무리가 마주보는 평원에서 대치한다면... 아무리 우호적인 세력이라도 돌발사고로 원치 않는 피해와 상처를 주고받는다면 전쟁은 터진다.

    바야흐로 전쟁의 조건이 무르익었다. 양측 우두머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사태는 이미 비탈진 전쟁의 한길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호코지사 범종에 얽힌 진상은 무엇인가? 오사카 측 세이칸 대사가 지은 경하의 덕담인가? 덕담 속에 교묘히 감춰진 저주인가? 전자로서 이에야스가 괜한 트집을 잡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트집이라면 이에야스가 히데요리에게 마지막 기회로 주는 수수께끼인가? 옴짝달싹 못하게 얽어매려는 올가미인가? 이것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이에야스는 자신을 저주했다는 이 범종을 녹여 없애거나 글씨를 파내지 않고 고대로 후세에 전한다. 후대에까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사료, 일종의 증거로 본 것이다. 내막을 알고 보면 이에야스의 억지 트집의 성격이 강하지만 첫 눈에 액면 그대로 보면 어쨌든 납득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트집은 뜻밖에도 백성들을 승복시키는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 서민들이 납득하기에 가장 알기 쉬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며 눈에 보이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서민이란 정녕 약삭빠르면서도 다루기 쉬운 어리석은 백성이란 말인가?!

 

    정치의 요체는 수준을 떠나 백성(서민, 국민, 인민, 대중, 시민)들을 납득, 이해시키는 것이다. 그럼 그 백성들의 수준은 초딩인가? 중고딩인가? 대딩인가? 대학원을 졸업한 석박사 수준인가?... 평균 중딩, 높으면 고딩, 낮으면 초딩 수준이다!

    그래서 기술적 측면에서 정치인의 정치수준이 너무 높으면 오히려 손해다. 뜻은 높더라도 기술적으로는 알아듣기 쉽게, 서민들의 평균수준에 맞추어 쉽고 단순한 언어로 수준을 일부러 하향조정해야 한다.

 

    대선이 앞둔 미국도 민주당의 힐러리는 중딩, 공화당의 트럼프는 초딩 수준의 언어로 대중들에게 말한다고 한다. 그래야 말이 먹히고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아직까지 대중의 정치수준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평균학력이 많이 높아져 예전보단 많이 나아졌지만 미디어 환경은 오히려 더 악화됐다.

    종편을 위시해 양적으론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질은 빛의 속도로 곤두박질쳤다. 다매체 다채널로 볼거리는 넘쳐나지만 쓸 만한 시사, 교양 프로가 없다. 심층취재, 탐사보도, 토론프로가 자취를 감추고 쇼, 오락, 연예 프로가 넘쳐난다. 더욱 더 바보상자로서의 위세를 떨치며 대중들의 수준을 끊임없이 저하시키고 있다.

 

    어느 나라고 대중의 평균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디어도 정치인도 두 부류가 있다. 그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대중에 아부하는가 간언하는가, 깔보는가 존중하는가, 이용하는가 봉사하는가, 배반하는가 충성하는가로 나뉜다.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정치인과 들어야 할 말을 하는 정치인이 있고, 해야 할 말을 하는 미디어가 있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미디어가 있다.

    이 세계에선 대부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듣고 싶어 하는 말에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섞어 아부하며 오도한다. 정교함과 단순함을 섞어 편견을 유도하고 강화한다. 그것은 강력한 정교한 단순함으로 어느 때, 어느 곳에도 통용가능하다. ‘빨갱이’, ‘종북처럼 어느 곳에든 갖다 붙이기만 하면 된다. 정파적 정당성을 주장하고 방어하는 대응논리로서 기능한다면 말이 되던 안 되던 상관없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당하고만 있을 수만은 없다.

 

    잠든 대중과 깨우지 않는 언론, 어리석은 대중과 오도하는 언론이다. 그래서 대두되는 현대 민주주의 제도의 맹점이 바로 중우정치다. 하지만 비평가나 일반시민이라면 모를까 직업정치인이라면 국민이 어리석다느니, 무식하다느니, 심지어 국민 개XX라느니... 절대로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소위 국민에게 충성한다는 사이비 언론과 정치인들에 의해 국민을 무시한다느니, 잘난 체 한다느니, 오만하게 국민을 가르치려 한다느니 단박에 공격이 들어온다. 그러나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무언가가 어리석다 여기는 것은 무언가에 대한 충성스런 자세가 아니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름진 땅도 있고 척박한 땅도 있는 건 사실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하지만 여론이 옳을 때도 있고 그를 때도 있는 건 사실이다.

    지금은 시민이 왕인 시대! 어떤 경우든 친근해하면서 존중하고 간언하면서 충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묵묵히 땅을 갈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대망(大望)11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