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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大望)》 8권 리뷰

어멍 2016. 2. 27. 22:15

 

    《대망(大望)8권 리뷰

 

 

    “인간은 말이오, 이시다님, 모든 걸 믿으며 살고 싶어 하는 생물이오. 또한 모든 걸 의심하여 애증도 흑백도 분명히 가리며 살고 싶어 하는 생물이오.” (중략)

    “세상에는 새하얀 사람도 새까만 사람도 없소. 하지만 아녀자는 억지로 그렇게 정하며 상대하고 싶어 하지. 기타노만도코로님이 만일 명백하게 이에야스는 적이라든가 자기편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여성으로서 뛰어난 분별이 있으신 분” (84p)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그 뒤처리를 의논하기 위해 온 이시다 미쓰나리에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하는 말.

    히데요시의 가신 중 가장 권력이 센 미쓰나리는 측실 요도마님에게서 난 어린 후계자 히데요리를 옹립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 강화하려는 입장이다. 이에야스와 기타노만도코로(히데요시의 첫째 정실인 네네)를 견제하려는 미쓰나리가 둘 사이의 신뢰관계를 떠보기 위해 불순한 질문을 던지자 이에야스가 분노를 참으며 답하는 대목이다.

 

    인간은 믿으려는 마음과 믿지 않으려는 마음 중 어느 것이 많을까? 사람마다 품성도 다르고 경험도 달라 저마다 틀리지만 본성에는 믿으려는 마음이 더 강하다. 우리 마음속엔 일반적으로 믿으려는 마음이 더 많다. 일단 의심하여 애증과 흑백을 분명히 가리려는 것도 궁극적으로 믿기 위함이다. 믿고 싶기 때문이다.

    이쪽이 편하다. 스트레스가 덜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속고 또 속는다. 심지어 알면서 속아준다. 의리 깊은 촌놈이라면 의심하는 것을 불결하게 여긴다. 선의의 충고라도 의심을 자극하면 불쾌하게 여겨 거부한다.

    그래서 인간세상은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이 스트레스에 약한 사람을 속인다. 스트레스에 둔감한 사람(예를 들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이 스트레스에 민감한 사람을 속인다. 때 많이 탄 사람이 때 덜 탄 사람을 속인다. 영악한 사람이 순박한 사람을 속인다.

 

    남녀노소 누구나 다 믿으며 살고 싶다. 하지만 여자(아녀자)가 이런 성향이 더 강한 것일까? 스트레스에 더 예민하고 취약한 것일까? 내 소박한 판단으로는 그렇다. 또한 젊은이보다 늙은 어르신 역시 이런 성향이 강하다.

    소통과 나눔, 베품과 돌봄, 사랑과 희생으로 대표되는 여성성은 위대한 것이지만 동시에 스트레스를 회피하는 방향이다. 갈등과 투쟁에 비하면 스트레스가 덜하다. 한없이 순종적인 여성상은 동시에 스트레스를 피하여 한없이 믿고만 싶어 하는 여성상일 수 있다.

    어르신들은 옳든 그르든 분명히, 일단, 애증도 흑백도 가린 상태다. 그 상태로 몇 십 년을 보내왔다. 다시 돌리기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정신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동원해야 한다. 생각에 반하는 정보는 의도적으로 부정되거나 무시된다.

    사드는 북한 미사일 격추시키는 것, 테러방지법은 테러 방지하는 것... 단순한 것이 좋고 편하다. 더 이상 깊이 알고 싶지도 않고 알려고 해도 피곤하여 눈과 머리만 아파온다.

 

    꼬치꼬치 따지는 것은 상대방도 힘들지만 본인도 힘들다. 웬만한 것은 내가 참고 넘어가는 것이 편하다. 누군가 다툰다면 옳고 그름을 가리기 전에 눈살부터 찌푸려진다. 조용한 것이 좋다. 마냥 평화로운 것이 최고다.

    하지만 이 지상은 천사들만 사는 천국이 아니다. 성인군자만이 사는 이상향, 도인들만 사는 무릉도원이 아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이런 태도는 본인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매사 긍정적이고 사람을 선의로 대하되 안일과 무지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성을 견지한 채 생각하고 판단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균형을 유지한 채 줄타기의 스트레스를 견디고 즐겨야 한다.

 

 

    요도마님 또한 히데요시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애정을 바친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히데요시가 보통 인간 이상의 기백으로 영주들을 꿇어 엎드리게 했을 때뿐이었다. 그때는 배후의 죄업까지 금빛 광채를 뿜었고, 두 손에 받쳐 든 살육의 흉검마저 장엄하게 아름다웠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가 왜 그런 노인의 오랏줄에 꼼짝 못하고 묶여 있었는지 이상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결박이 이제 풀렸다. 아니, 풀린 게 아니라 저절로 썩어서 끊어진 것이다. (115p)

 

    히데요시의 임종에 즈음한 말년은 꼴 사나왔다. 보통 사람, 보통 늙은이라면 누구라도 걷게 되는 코스일 순 있어도 당대의 영웅호걸인 히데요시를 믿고 따르던 이들에겐 충격이다.

    말을 달리하며 이 사람에겐 이 말, 저 사람에겐 저 말로 하나뿐인 아들 히데요리의 장래를 부탁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머리 숙이며 죽어갔다. 애잔할 정도로 여리고 절절한 아빠사랑이었지만 요도마님 자차에겐 구역질이 날 정도로 추악한 모습이었다.

 

    히데요시에게 대항하다 아빠는 장엄한 최후를 맞이했고 엄마는 딸들과 함께 자결하려다 포기하고 재가했던 가정사의 영향으로 자차는 권력에 대한 피해의식과 선망의식을 동시에 갖고 있었던 듯싶다. 그런 자차에게 전성기의 히데요시는 막강한 아우라의 후광이 비추는 아름다운 인물이었다.

    이것은 순수한 마음으로 바친 애정이 아니었다. 단지 그렇다고 스스로 착각했던 것일 뿐! 여느 남자 못지않게 기질과 집념이 센 자차로서는 인간 그대로의 맨몸 히데요시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권세라는 겉옷을 입은 간파쿠 히데요시를 따랐던 것뿐이다.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을 둘러싼 배경에 반하는 경우가 있다. 권력, 재력(대개 함께 간다.)에 혹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여기는 헛똑똑이들! 자신이 바라던 것을 찾았다며 행복해하지만 그것은 허망한 것이거나 정작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간간히 전해져오는 여성 연예인과 재벌가의 결혼소식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은 혐의가 있다. 화려한 연예생활에 취하여 그 이상을 보여주는 재벌가의 라이프 스타일에 마음을 뺏긴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여러 가지가 보인다. 사람이 보인다. 대개가 불행한 결혼생활과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힘이 있다가 없어지면 차인다. 돈이 있다가 없어지면 차인다. 젊어서 멋지다가 늙어서 추해지면 차인다. 힘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멋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그가 아니다. 그는 누구인가? 그를 찾아야 한다. 내가 사랑할 사람,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

    나는 누구인가? 나를 찾아 완성해야 한다. 누군가가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을 맞이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더 행복하고 오래갈 수 있다. 어쩌면 영원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섭에서 쌍방에게 수확이 있다고 믿게 한다면 그 대담은 훌륭하게 성공했다고 해도 좋으리라. (150p)

 

    교섭도 전쟁도 이에야스는 어느 한 편의 일방적인 승리를 경계했다. 너무 크게 이겼다면 항상 자만과 역풍을 염려했다.

 

    내가 항상 옳은 것도, 상대가 항상 그른 것도 아닐뿐더러 애당초 세상에는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다. 맘이야 원하는 대로 하고 싶지만 세상일이 다 내 뜻대로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맘 같지 않다. 어느 선에서 만족함을 알고 자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99를 얻었다면 다만 1이라도 상대에게 주어야 한다. 아예 상대를 무릎 꿇리고 싹싹 빌게 하려는 심보여선 곤란하다. 다시는 상종할 일 없게 제거, 멸종시키려는 마음이어선 죄 받는다.

 

    요컨대 관건은 황금률이다.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과 반대하지만 용납하여 참아낼 수 있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속으로 정리한 후 이것들 사이의 황금비율을 찾는 것이다. 정치라면 자기편이라도 주도세력과 견제세력, 강경파와 온건파의 황금비율을 찾아야 한다.

    413 총선을 앞두고 남북대치, 여야대치가 가파르다. 여든 야든, 정치인이든 국민이든 가리지 않고 마음이 조급하고 황폐해져 오고가는 말과 행동이 거칠어졌다. 정의를 바라고 공공선을 추구하되 패배를 불쌍히 여기고 승리를 경계하는 마음가짐이라면 서로 어울려 함께 살아갈 수 있으리라.

 

 

    한 모금 마시기 전에 말을 걸면 상대에게 거역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한 모금 마셨는데도 말을 걸지 않는다면 상대의 고독을 방관하는 쌀쌀한 아내가 된다. (193p)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데 남편이 탕약을 마실 땐 가만히 있어야 한다. 다 마신 후에는 좀 어떠세요?’ ‘드실 만 하세요?’ 안부를 물어야 한다. 아니면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빈말이나 농담이라도 건네야 한다.

    이것이 대개의든 남편이 아내에게 바라는 바다. 급하게 마실 물을 찾는 나그네에게 혹 체할 까 표주박 위에 버들잎을 띄워주는 아낙네처럼 세심하고 자상한 마음씀씀이, 보살핌을 바라는 것이다. 눈치 없고 거칠은 아낙네는 매력 빵점이다.

 

    조용했으면 좋겠는데 귀찮게 시끄러울 때, 맞장구가 있었으면 하는데 묵묵부답일 때, 말을 하는데 말허리를 자르거나 집중하지 않고 딴전을 피울 때, 자기 할 말만 하고 갑자기 뚝 전화를 끊을 때, 거칠게 이불을 확확 잡아당기며 큰소리로 깨울 때... 화난다. 권위적인 폭군이면 사단이 난다.

    적적한데 다정하게 말을 걸어줄 때, 여럿에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먼저 더 적극적으로 말해줄 때, 내 얘기에 그때그때 맛깔나게 맞장구를 쳐줄 때, 먼저 올라가면 꼭 엘리베이터를 1층으로 눌러줄 때, 이불을 확확 들추지 않고 살그머니 덮어주며 불을 꺼줄 때... 흐뭇하다. 내가 장가를 잘 갔구나 싶다.

 

    이것은 남녀를 떠나 모두가 바라는 바이고 여자만이 아닌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정성스럽고 예쁜 마음이고 센스 넘치는 매너다. 하지만 희망하는 정도는 여자가 남자에게 바라는 것보다 남자가 여자에게 바라는 것이 더 크다. 바로 남자가 바라는 여성성이다.

    모든 여자가 이런 위대한 여성성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성은 여자가 더 잘 구현할 수 있음은 명백하다. 대체로 여자는 섬세하고 미시적이다. 남자는 거칠고 거시적이다. 여자는 남자가 빠뜨리는 어떤 점 - 사전에 의도하지도, 사후에 의식하지도 않으면서 본능적으로 캐치해내는 사소하지만 핵심이나 본질을 드러내는 어떤 점 - 을 날카롭게 눈치 챌 수 있는 반면, 전체에는 좀처럼 눈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신은 세밀함 속에 깃들어 있다.”(God is in the details) 그 신은 여성성이 풍부한 여자다. 바로 자나 깨나 자식을 살피고 돌보는 어머니다.

 

    《대망(大望)8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