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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사≫ 2권 <1789> 리뷰

어멍 2023. 8. 25. 20:44

 

≪프랑스 혁명사≫ 2권 <1789> 리뷰

 

<1789> 부제 : 평등을 잉태한 자유의 원년

 

    부제인 ‘평등을 잉태한 자유의 원년’은 자유에서 평등이 잉태한다는 것과 아직 평등으로 나가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긴 21세기인 현재도 완전한 자유, 완전한 평등은 요원한 것이니 막 절대왕권의 전제정치를 벗어난 당시에는 자유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도 힘겨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평등보다 자유가 먼저다. 정확히는 생명이 있고 자유가 있고 평등이 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생존 다음에 성장, 성장 다음에 분배가 있다. 이것은 자연스런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보수기득권 우파는 항상 자유와 성장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것은 당연하지 않다. 그들의 주장엔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순간, 모든 경우에 자유와 성장을 획일적으로 주장한다. 분배를 요구하면 낙수효과를 언급하며 항상 자기 배부터 채우려 한다. 지갑을 채우고 금고를 채우고 곳간을 채울 때까지 마음껏 재산을 축적할 무제한의 자유를 주장한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주도한 제3신분 중 부르주아 세력은 결코 사회적 약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주장한 자유와 평등 역시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모든 인민의 자유와 평등은 아니었다. 주로 왕과 귀족을 상대로 한 부르주아 계급의 자유와 평등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수행할 과업을 중지하지 않으려고 죄드폼에 모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 우리는 엄숙하게 맹세함으로써 나라를 구하고 조국의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는 사명을 확인해야 합니다. - 44p

 

    루이 16세는 재정위기를 극복하고자 성직자, 귀족들로 구성된 명사회를 소집하였으나 이들 특권층이 협조하지 않자 평민인 제3신분의 힘을 빌려 돌파하고자 전국신분회를 소집한다. 하지만 일단 소집된 전국신분회는 평민대표들이 주도하여 국민의회를 선포하고 왕의 입법권에 도전한다.

    1789년 6월 20일 왕은 노골적으로 이에 반대하여 군인들을 동원해 회의장을 폐쇄하였으나 대표들은 근처 테니스코트에 모여 ‘우리는 헌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해산하지 않을 것이며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모일 것임을 맹세한다’는 죄드폼의 맹세(테니스코트의 서약)를 발표한다.

 

죄드폼(테니스코트)

벽면에 당시 모습을 그린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이 걸려 있고

그 앞에 바스티유 요새 모형이 전시돼 있다.

 

    혁명의 도화선이 된 결정적 사건이다. 이로부터 사흘 뒤인 23일 제3신분 대표들은 왕의 명령에 공개적, 공식적으로 불복하여 정치적 구체제(절대군주정)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된다.

    혁명에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모든 것이 시작되는 가장 중요한 고비였다. 뭐든 하나를 양보하면 줄줄이 양보하게 되듯이 루이 16세는 이때부터 단두대에 설 때까지 계속 밀리게 된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헤어지지 말자고 했다.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모이자고 했다. 이것이 혁명을 추동하는 (시민의) 힘이다. 현대 민주주의를 힘차게 작동시키는 힘이다.

    권위주의 독재정권이라면 시민들이 서로 모이지 않게 뿔뿔이 흩어놓는다. 사람과 정보가 자유롭게 이동하고 모이는 것을 막는다. 광장과 학원을 폐쇄하고 언론을 장악하여 국내외의 정확하고 균형 잡힌 정보의 유통을 차단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시민들은 헤어지지 말아야 한다. 정기적으로 모이고 필요할 때 모이고 자주 모여야 한다. 더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며 서로 공유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생업에 바쁜 시민들에겐 쉽게 지치는 일이다.

    반면 특권을 지닌 소수 집단은 항상 모여 있다. 똘똘 뭉쳐 조직화되어 있다. 혁명 전후의 프랑스에선 왕족, 귀족, 고위성직자가 그러했고 근현대의 한국에선 군인, 검찰, 고위관료, 족벌언론이 그러하다.

 

    현대 민주주의는 다양한 권력을 슬기롭고 종합적으로 분배하는 것, 즉 견제와 균형의 원칙하에 권력을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그 최전선은 항상 고도로 조직화, 이익집단화된 특권집단과 조직화되지 않은 평범한 시민세력 사이의 싸움이다.

    전자는 소수지만 눈덩이처럼 단단히 뭉쳐있고 후자는 다수지만 구름처럼 느슨하게 흩어져있다. 전자는 평소에도 부단히 작동하고 있지만 후자는 주로 대규모 정치행사나 혁명 전후의 격변기에 유의미하게 작동한다.

 

    권력, 강자의 이너서클에 들면 그 안의 생리에 지배당하기 쉽다.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후가 틀린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어느새 시민들은 까맣게 잊고 몇몇 권력자의 눈에 들기에 혈안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특권집단, 강자들을 제압할 수 있을까? 어떻게 상시적으로 시민권력의 감시와 통제하에 둘 수 있을까?

    임명직보다 선출직을 더 많이, 더 자주 뽑으면 된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법관, 헌법재판관, 검찰, 경찰청장, 금감원장, 방송통신(언론)위원장 등도 시민이 직접 뽑고 임기도 단축하거나 중간평가를 도입해서 항상 딴 마음 먹지 않고 시민의 눈치를 보게 해야 한다. 이것이 최첨단 기술이 발달한, 더욱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도 맞고 대중의 정치관심과 수준을 높이고 직접민주주의를 더욱 확장한다는 의미에서도 더 합당하다.

 

  첫 번째 전투에서 두 사람이 쓰러졌다. 제화공 장 팔레즈와 가로등 점화부 루소였다. - 122p

 

    베르사유에서 명실공이 국회로 탈바꿈한 전국신분회와 루이 16세가 팽팽히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사이 실질적인 왕국의 수도인 파리에서는 민중들의 크고 작은 소요사태가 발생한다. 왕이 베르사유와 파리 주위에 군대를 증원, 배치하여 군중과 대치하며 긴장이 높아진다.

    생활고와 정치적 불만이 누적된 군중은 빵과 밀가루, 그리고 스스로 무장하기 위해 총과 대포와 탄약을 찾아 나선다. 결국 주요 표적 중 하나인 바스티유 요새에서 군인들과 전투가 벌어지게 되고 요새이자 감옥이자 문서저장고인 바스티유는 민중에 의해 정복된다.

 

바스티유 정복

1789년 7월 14일인 이 날은 ‘혁명기념일’로 프랑스 국경일로 기념되고 있다.

 

    전투 참가자 중 첫 사망자는 제화공과 가로등 점화부였다. 아마도 현장에 부르주아는 없든가 극소수였을 것이다. 이렇듯 역사의 현장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희생되는 이는 언제나 힘없고 빽없는 민중들이다.

    이들은 권력이나 거창한 부귀영화를 바라는 게 아니다. 배부른 걸 바라지 않고 단지 굶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행복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단지 고통받지 않길 바랄 뿐이다.

    민중들은 단지 살기 위해 모였고 행진하고 싸웠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왕에게는 엄청난 압력, 국회의 부르주아에겐 엄청난 도움으로 작용한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정치적 뜻을 가진 낱말, 좌파와 우파가 생겼다. 1,000명이나 되는 의원이 표결할 때 일일이 수를 세는 일이 힘들기 때문에 좌우로 나누어 한꺼번에 세는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왕의) 거부권을 지지하는 사람은 의장의 오른쪽에 앉고, 반대자들은 의장의 왼쪽에 앉기 시작했다. - 277p

 

    좌파, 우파는 원래 이념이 아닌 단순 기호에 불과하다. 이런 식이면 상파, 하파, 남파, 북파, 동파, 서파도 가능하다. 이것이 구체적 이념과 연결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왕권을 지지하는 입장에 섬으로서 우파는 기존의 정치질서, 왕당파, 친귀족, 보수, 강자옹호의 이념을 상징하게 되었고 그에 반대되는 좌파는 시민권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새로운 정치질서, 혁명파, 친민중, 진보, 약자옹호의 이념을 상징하게 되었다. 이것이 현대 민주주의로 넘어오면서 경제적 평등을 위한 정부의 개입과 사회의 진보를 주장하는 좌파사회주의와 경제적 자유와 기존 사회질서의 유지를 주장하는 우파자유주의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밖에도 자본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전체주의(독재) 등 이념, 주의(~ism)는 많다. 하지만 이런 것들의 정확한 유래와 의미를 아는 시민들은 적다. 그래서 거칠고 배움 짧은 이들은 좌빨, 우빨 하면서 싸운다. 좌우가 가장 직관적이고 편 가르기가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모든 것을 단순하게 좌파, 우파로 나눌 수는 없다. 얼마든지 정치, 경제로는 우파고 사회, 문화로는 좌파일 수 있고 개별사항마다 판단이 다를 수가 있다. 스스로 정통우파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더라도 과외금지, 학원폐쇄 같은 극단적 좌파정책을 지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권력 역시 우파면서 민주주의, 좌파면서 독재 등 다양한 조합이 있을 수 있다.

 

    애초 자유주의는 왕과 토지귀족의 간섭에서 벗어나 그 권력을 견제하려는 상공인, 자영업자 등 부르주아들에 의해 생겨난 이유로 태생부터 자본주의 즉 자본의 자유를 골자로 한다. 작은 정부, 규제 철폐를 단골메뉴로 하는 시장의 자유, 자본의 자유, 강자의 자유를 말함이다.

    반면 리버럴리즘(역시 자유주의로 번역된다)은 이보다 뒤늦게 나타난 개념으로 평범한 시민의 인격, 존엄성, 취향, 개성을 존중하자는 사회적, 문화적 성격이 강하다. 자유주의만 해도 경제면에선 보수우파의 가치 쪽에 가깝고 정치, 사회, 문화면에선 진보 쪽에 가깝다. 이렇듯 자유주의는 시대에 따라, 누구의 어떤 자유를 강조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주의, 주장이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보수 진보’는 다른 것들과는 다르게 ‘추상적인 정치이념’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인 삶의 자세’로 여겨진다. 즉 삶의 모든 면에서 보수(保守)는 그대로 있는 것, 바꾸지 않는 것이다. 진보(進步)는 앞으로 가는 것, 바꾸는 것이다.

    처음의 인간, 원시인에겐 좌파도 우파도 어떠한 정치이념도 없다. 하지만 진보적 원시인, 보수적 원시인은 있다. 익숙한 돌도끼를 계속 쓴다면 보수, 좀 어색하고 서툴더라도 깨보기도 하고 갈아보기도 하며 돌도끼를 계속 개발한다면 진보 원시인이다. 그런 원시인 집단들이 청동기, 철기를 개발하여 생존경쟁에서 승리하고 살아남았다.

 

    그러면 진보는 좋은 것, 보수는 나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닌 것이 된다. 물론 나쁘게 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퇴행, 반동이니 진보와는 다른 개념이다. 진보개혁은 자연스럽고 보수개혁은 어색하다. 보수반동이란 말은 있어도 진보반동이란 말은 없다.

    진보는 좋은 것이다. 새로운 것, 움직이는 것, 이것저것 해보는 것, 젊은 것, 씨 뿌리는 것, 처음에 서는 것, 극단적으론 태어나는 것이다. 보수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다. 낡은 것, 정지한 것, 아무것도 안하는 것, 늙은 것, 추수하는 것, 끝에 서는 것, 극단적으론 죽는 것이다. 진보는 에너지가 넘치는 것, 보수는 에너지가 고갈된 것이다.

 

    하지만 삶의 현장과 정치 지형에선 진보가 생각처럼 인기 있지 않다. 인간의 내면에 보수와 진보를 동시에 원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진보는 새로운 대신 좌충우돌 불안정하다. 보수는 안정적인 대신 활력이 떨어진다. 진보, 보수 모두 나름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보존하고 변화의 모험을 기피하는 보수유전자(물론 생존을 위해 변화를 모색하고 미래를 개척하려는 진보유전자도 있다)의 명령으로 볼 때 어느 면에선 보수의 관성력이 더 세다. 보통 인간은 이불속에서 꼼짝 않고 쉬는 것을 좋아하지 밖에 나가 수고롭게 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선호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바란다. 매번 뛰는 코스가 편안하지만 가끔은 낯선 장소를 뛰고 싶다. 윤대통령은 보수의 지지로 당선되었지만 기존 국민의힘 보수정치인들과는 다르게 e스포츠 대회에도 방문하는 등 새로움을 보여주어 당선되었다. 쇼라고 해도 사람들의 변화욕구에 어필하는 좋은 전략이었다. 보수 중에서도 활력 넘치고 개방적이며 변화를 모색하는 진보의 면모를 겸비한 보수가 경쟁력이 있다.

    현재 윤대통령의 모습은 그때와 천양지차다.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고 퇴행이고 반동이다. 사회 전부분이 빛의 속도로 후퇴하고 있다. 인사부터 정책까지 앙시앵레짐의 귀환이다. 나름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 배반하지 않을 꼴보수 친위세력으로 겹겹이 보호막을 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 과정에서 나라가 어디까지 망가질지 걱정이다.

 

    아무튼 결론은 진보와 보수, 안정과 변화를 적절히 믹스해야 한다. 자동차에 엔진과 브레이크가 함께 있듯이 진보도 보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진보가 더 좋다는 것, 진보가 더 먼저인 것은 분명하다.

    진보는 에너지다. 활력이다. 엔진이 돌아야 브레이크도 의미가 있다. 아무리 수영실력이 뛰어나도 에너지가 바닥나면 가라앉기 마련이다.

 

  왕을 직접 보고 왕이 친절한 말로 불행한 상황을 위로하자 여성 대표들은 감동했다. 그중 열일곱 살짜리 조각공 루이종 샤브리가 파리 여성의 고통을 왕에게 전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왕 앞에서 너무 긴장한 탓인지 기절해버렸다. (...) 파리 여성 대표단은 “왕과 왕실 만세!”를 외치면서 밖으로 나갔다. - 311p

 

    정치적 격변기였지만 민생고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베르사유에서 파리시민과 혁명을 모욕하는 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하자 1789년 10월 5일 파리 시장아낙들이 주도하는 시위대가 무기와 대포를 앞세우고 “빵을 달라”고 외치며 베르사유로 행진하여 왕궁을 에워싼다. 바로 ‘베르사유 행진’, ‘시월 행진’이다.

    이튿날 10월 6일 새벽 시위대와 경비병간에 충돌이 발생하여 시위대가 왕궁까지 난입하게 되고 왕은 시위대에게 파리로 귀환할 것을 약속하게 된다. 결국 이 사건으로 왕은 파리의 튈르리 궁전으로 반강제로 거처를 옮기고 국회 역시 파리로 옮기게 된다.

 

베르사유 행진

맨 왼쪽에 내키지 않지만 동참한 듯한 부르주아 여성 한명이 보인다.

 

    10월 5일 왕은 항의하러 들어간 여성시위대 대표들을 면담하게 되는데 루이종이라는 열일곱 조각공은 왕 앞에서 기절해버리고 대표들은 왕의 알현에 감격해 “왕 만세!”를 외치며 나온다.

    살벌하고 굵직굵직한 사건 중에 있은 사소한 에피소드, 헤프닝일 수도 있는데 이 대목은 소박한 민중이 거대권력을 직접 대면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신입사원이 재벌회장님을, 평신도가 메시아라 자칭하는 사이비교주를, 팬클럽 회원이 슈퍼스타를 직접 만날 때도 비슷할 것이다.

 

    총과 대포를 앞세우고 20여 k를 6시간 동안 폭우 속에서 행진하고 거기다 사냥 나간 왕을 4시간을 더 기다려 만났는데 몇 분, 몇 마디만 나눈 후 감동하여 나온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머릿속이 새하여져 말도 못하고 덜덜 떨다가 급기야 기절하고 만다. (^.^) & (ㅠ.ㅠ)

    그 소녀뿐 아니라 여성대표단 모두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일 것이다. 이들은 나중 루이 16세가 단두대에 설 때 슬펐을까? 기뻤을까? 더 나중 왕정복고가 되었을 때 왕당파에 표를 주었을까? 민중파에 표를 주었을까? 분명한 것은 세월이 흘러 혁명이 좌절되고 귀족들이 복권되고 왕정복고가 되었다는 것은 민중들 중에도 여전히 왕당파가 많았다는 것이다.

 

    혁명은 폭풍처럼 들판을 휩쓸지만 입새를 떨어뜨리고 가지만을 꺾을 뿐! 땅 밑으로는 구시대의 깊은 뿌리가 끈질기게 박혀 있다. 그 뿌리는 법과 제도 뿐 아니라 평민들의 머릿속에도 깊고 단단하게 박혀 있다. 혁명의 변두리인 궁벽한 시골농촌에는 여전히 왕을 사랑하고 귀족을 흠모하는 앙시앵레짐의 정치문화에 익숙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 같은 반동은 혁명세력 내부의 혼란상과 그에 대한 민중의 피로, 왕당파의 강력하고 끈질긴 반격, 민중의 자체 역량부족이라는 여러 요인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농민, 평민들의 생각이 아직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 민주국가의 시민이 아니라 왕국의 신민에 가까웠다.

 

    보통 사람들의 정치적 판단을 결정짓는 요인은 무엇일까? 진보냐 보수냐 좌파냐 우파냐? 위 에피소드에서 보면 그것보다는 더 근본적인 것, 더 결정적인 것은 ‘권위주의와 탈권위주의’라 생각된다. 바로 권력, 강자에 대한 태도와 민중, 약자에 대한 자세다.

    강자, 엘리트면서도 민중, 약자의 편에 서려는 자가 있고 약자, 민중이면서도 권력자, 강자를 선망하며 그에 편입되고 싶은 자가 있는 것은 권력과 민중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편하게 권위에 의탁할 것인가, 힘들지만 스스로 일어설 것인가도 바로 이 지점에서 나누어진다.

 

    보통 사람들은 좌파, 우파 같은 복잡한 정치이념은 모른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조차 구별치 못한다. 그냥 강자, 힘에 대한 태도에서 결정될 뿐이다. 아니면 지역주의(영남패권주의도 이념보단 힘의 논리다)나 남 따라서 찍는다. 주위 사람, 아는 사람 다 1번 찍는데 혼자 2번 찍을 수 있는 사람 별로 없다.

    스포츠 응원하듯 지기 싫어서, 기분 나빠서, 얄미워서 찍는다. 진보 보수 같은 이념은 그냥 있어 보이려고 갖다 붙인 것이다. 같은 정책이라도 예쁜 놈이 주장하면 찬성이고 미운 놈이 주장하면 반대다.

 

    이를 극복하려면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스스로 강자, 엘리트, 책임자라 여기고 권력과 민중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정립해야 한다. 권력에 대해선 노무현 대통령 말씀처럼 두려워하지도 깔보지도 않는 당당한 태도가 필요하고 민중에 대해선 냉소하지 말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충성스런 마음이 필요하다.

 

    - 2권 리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