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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사≫ 1권 <대서사의 서막> 리뷰

어멍 2023. 8. 10. 21:20

 

≪프랑스 혁명사≫ 1권 <대서사의 서막> 리뷰

 

  ≪프랑스 혁명사≫ 전10권을 읽는 대로, 틈나는 대로 간단히 리뷰해보기로 한다. 줄거리보다는 특기할 만한 대목, 생각이 머무는 구절을 중심으로 정리하기로 한다. 원문은 파란색으로 표기한다.

 

<대서사의 서막> 부제 : 혁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역사는 살면서 기억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행동하는 인간의 기록이다. - 12p

 

    기억하라! - 역사는 기억에 대한 투쟁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에 대해 별 관심이 없고 배우지도 않고 배우더라도 금방 까먹는다. 불과 몇십년전 자신의 인생에서 경험했던 역사(현대사)마저도 까맣게 잊고 거기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고지도자(대통령)가 되려는 자는 권력의지, (살림살이) 능력 그리고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수준 있는 민주시민에게도 역사의식은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랄 수 있다. 그러려면 장기적으론 자라나는 어린세대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단기적으론 현재의 역사를 기록하고 여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언론을 곧게 세워야 한다.

 

    생각하라! - 역사를 읽는 것은 시험치듯 외우기 위함이 아니요, 사극보듯 재미를 위한 것도 아니다. 단순 사실의 단순 암기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에 머문다면 ‘역사’가 많이 서운해 할 것이다.

    피곤하더라도, 어설프더라도, 혹 오판한다 하더라도, 보여주는 대로 보지 말고 들려주는 대로 듣지 말고 나름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하는 연습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그놈이 그놈이 아니고 거기가 여기가 아니고 그때가 저때가 아님을 구별할 수 있다. 언뜻 같아 보이는 것에서 다른 점을 발견하고 달라 보이는 것에서 같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해상도가 높아져 희미하게 뭉뚱그려 한 덩어리로 보이는 것들이 속속들이 선명하게 정체를 드러낸다. 가짜와 진짜, 금과 은을 구별함을 넘어서 천국에서도 악당을 찾아낼 수 있고 지옥에서도 천사를 찾아낼 수 있다.

 

    꿈꾸라! -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에 기초한 긍정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강물은 때론 역류하고 때론 지하로 숨어들기도 하지만 결국 돌아돌아 바다에 이르른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낙담하거나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정치적 상상력, 긍정의 상상력이 우리에겐 많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에 갇혀 있다. 이념에 갇혀 있고 지역에 갇혀 있다. 이건 나라고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지만 하여튼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배움을 뛰어넘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더욱더 더 많고 더 좋고 더 바른 경험과 배움이 필요하다.

    팍스 로마나, 팍스 아메리카나에 이은 팍스 코리아나까진 아니더라도 세계인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동북아 중심국가를 꿈꿔본다. 우리가 세계를 호령하는 강대국까진 아니더라도 미중을 중재, 화해시키고 동북아 국가들을 선도하는 강중국까지는 쉽지는 않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종전선언에 이은 평화협정, 북미수교와 상호대사관 개설, 남북평화공존에 이은 통일한국, 세계가 부러워하고 존경하고 닮고 싶은 경제, 문화, 민주주의 선진국의 비전을 모두가 공유하고 꿈꾼다면 지금의 정치문화도, 다가올 우리의 미래도 더욱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오늘은 어제의 유일한 미래가 아니다. 역사는 결정된 도착지도, 결정된 길도 없다. 미래는 열려있다. 그것은 우리가 꿈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행동하라! -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고 집회나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정치혐오가 심해서 무턱대고 부정적으로 비쳐지지만 ‘정치화’ 되는 것,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의식이 깨이는 것은 원칙적으로 좋은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답답하면 벽 보고 소리라도 지르라고 했다.

    치기어린 혹은 완고한 정치적 열정에 들뜬 맹동주의도 경계해야겠지만 이마저도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단 낫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행동하지 않으면 변하는 것은 없다. 기억하고 생각하고 꿈꾸더라도 방구석에만 틀어박힌 채 행동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태극기 집회라도 좋다! 중립을 가장하며 쿨한 척 평생 1번도 정치적 데모를 해보지 않은 무기력하고 냉소적인 삶보다는 낫다. 잘못된 판단이라도 정치적 에너지는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어차피 역사는 도전과 응전, 작용과 반작용에 의해 나아간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 총량이다. 투표결과 못지않게 투표율도 중요하다. 모두가 높은 관심을 갖고 생각하고 참여하고 행동한다면 그 결과는 대개 옳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럴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정치적 미래, 다가올 역사는 결코 어둡지 않다. 원래 한국인은 서로 조심스러워서 그렇지 정치에 관심이 많다. 그 에너지는 여전히 식지 않고 저변에서 도도히 흐르고 있다.

 

  아무도 겪어보지 않은 사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14,15p

 

    ‘아무도 겪어보지 않은 사건’은 프랑스 혁명이다. 즉 당시의 사람들이 그것을 과연 혁명이라고 인식하였을까 하는 의문을 말하고 있다.

    뭐든지 처음은 알 수 없다. 어렵다. 과학적 발견, 성과 역시 당시에는 알 수 없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에 파악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혁명 역시 인류 역사는 물론 유럽사에서 미증유의 사건이었다. 민중에 의해 왕이 공개적으로 목이 잘리고(비유가 아닌 실재로!) 정치와 사회가 뿌리째 갈아엎어지는 경천동지할 사건으로 인해 프랑스는 당시 왕과 귀족이 지배하는 유럽의 모든 국가들의 공공의 적이 된다.

    우리 역시 얼마 전 있은 촛불혁명 역시 처음이었다. 검찰정권이 들어선 것 역시 처음이다. 검사, 판사의 사법권력-사실 검사는 행정부에 속하지만-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좌지우지한 경우는 이집트와 브라질에서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검사(윤석열) 본인이 직을 그만두고 합법적 선거에 의해서 곧바로 최고권력자로 직행한 경우는 아마 인류역사에서도 처음이지 싶다. 결국 현재시점으로 그 후유증과 폐해가 계속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 역사적으로 평가가 가능해질 시점에서는 그 전모를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부터 혁명기까지 프랑스의 국교는 가톨릭이었다. ‘장기적 중세’의 개념 속에는 신분사회,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체제, 많이 낳고 많이 죽는 생물학적 구체제 같은 여러 요소가 함께 들어 있지만 여기서는 종교만 살펴보기로 한다.

  보통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던 관행을 바꿔 5세기부터 18세기까지 가톨릭교회 가치가 가장 중요하며 시간과 공간의 구분과 배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임을 생각한다면, 르네상스 문화를 누린 소수와 달리 대다수가 여전히 중세의 연장선에서 살았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69,70p

 

    혁명 이전의 프랑스 즉 구체제(앙시앵레짐)를 설명하고 있다. 제1신분인 종교인, 제2신분인 귀족, 제3신분인 평민으로 나뉜 가톨릭 국가로 아직 중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농민이 고위성직자와 귀족을 등에 업고 곡괭이로 겨우 지탱하고 있다. - 68p

 

    농민을 포함한 평민은 절대다수(인구의 98%)이지만 왕을 정점으로 한 귀족과 고위성직자가 절대적인 지배층을 형성하고 있다. 세 신분은 1789년 왕의 요청으로 각각 그 대표들을 선출하여 삼부회(전국신분회)를 여는데 이것이 국민의회, 제헌의회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들 중 초기 혁명을 주도한 것은 평민 중 부르주아, 중하위성직자, 소수의 귀족이었다. 공통점은 르네상스에 이은 계몽주의 사상에 크던 작던 영향을 받은 자들이었다.

    가장 중요한 제3신분 평민 대표는 모두 578명이었는데 변호사, 상인, 은행가, 생산업자, 부유한 지주 등 부르주아가 대부분이었고 진짜 경작인, 다시 말해 농부는 단 한 사람뿐이었고 도시의 장인은 한 명도 대표가 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열악한 시대적, 경제적 상황에서는 농부, 장인, 육체노동자들이 피선거권자로 나설 수도, 유세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비록 제3신분인 평민의 대표였으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자본권력, 지식권력을 소유한 엘리트들이었다. 이들이 주축이 된 전국신분회는 앙시앵레짐의 봉건제도를 갈아엎고 인권선언문을 발표하는 등 당시 획기적인 성과를 이룩해냈지만 그 출생에서부터 뚜렷한 한계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즉 엄밀히 얘기해서 그들은 왕과 귀족의 편도 아니었지만 평민의 편도 아니었다.

    이것은 현대 민주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표의 등가성, 비례성을 확보하는 이상적인 선거구, 선거제도를 쟁취해냈다 하더라도 다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는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쉽지 않다. 어렵다! 우리 역시 국회에 학생, 농민, 노동자, 도시서민 출신은 없다시피 희귀하다.

 

    아무튼 시대는 앞뒤로 완전히 단절,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중첩되며 이어진다. 공동체 구성원들 역시 모두가 같은 걸음으로 같은 지점까지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세대와 계층에 따라 앞서기도 하고 뒤처지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얼마간의 지체현상과 그에 따른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짧은 기간에 압축하여 이루어낸 산업화와 민주주의 발전으로 인해 세대와 세대의 갈등이 촘촘하고, 사상과 사상의 갈등이 첨예한 점이 다를 뿐이다. 이념보다는 재미와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는 MZ 세대부터 일제와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권위주의와 좌우이념에 묶여있는 70,80대까지 같은 시공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요인들을 생각한다면 민주주의 세례와 교육을 받은 대다수의 고학력 세대와 달리 70대 이상의 저학력 세대는 여전히 반공을 기치로 한 1970,80년대 권위주의 정권의 연장선에서 살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루이 16세는 재정난을 극복하려고 1787년 명사회를 소집한 뒤부터 계속 밀리면서 결국 1788년 전국신분회를 소집하도록 허락했다. (...) 1789년 막상 전국신분회가 열린 뒤 사정이 급변했다. - 165,166p

 

    혁명의 시작, 그 발단은 경제문제였다. 왕실의 방만한 운영과 미국독립전쟁 지원의 여파로 왕실의 빚이 늘며 재정위기를 맞았다. 가뜩이나 흉년으로 밀가루 가격이 폭등하여 민생이 어려워졌다. 나라에는 돈이 마르고 시장에는 빵이 사라졌다.

    루이 16세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재정, 곧 왕실이 쓸 돈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국신분회를 소집한다. 즉 귀족과 성직자와 평민의 양보를 통한 조세개혁을 추진코자 함이었다. 물론 새롭게 신설될 조세와 부담은 대개 피지배층인 평민이 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막상 전국신분회가 소집되자 사정이 급변하여 혁명으로 줄달음친다. 전국에서 모인 세 신분의 대표자들이 모이자 신분과 신분, 세력과 세력, 인물과 인물들이 서로 갈등, 경쟁, 화합하면서 끓는 솥처럼 화학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들이 선출되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투표라는 대규모 정치행위를 통해 이미 예비된 것이다.

    신민보다 국민, 국민보다 시민, 시민보다 유권자가 위대하다. 의식화, 정치화되어 깨어난 선거권자가 가장 위대하다. 평생 정치와 직접 관련 없이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이 정치화하면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 174p 농민부터 도시민까지 모두 선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혁명이었던 셈이다. 바야흐로 잠자던 거인이 깨어난 것이다.

 

    내년(2024년)에 총선이라는 전국적인 정치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각 정당은 치열하게 경쟁하며 준비한 프로그램들을 가동할 것이다. 불법, 반칙도 마다치 않고 상대당과 시민들에게 기술을 걸 것이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검찰과 언론이라는 든든한 우군, 비장의 무기가 있다. 하지만 혁명전의 프랑스처럼 경제가 가장 핵심문제다. 경제가 받쳐주지 않으면 어떤 묘수도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재해를 당해도, 목숨을 잃어도, 자부심과 도덕을 잃어도 경제만 좋다면 대개가 양해된다. 침략전쟁을 통해 정복지, 식민지를 수탈해도, 타민족에 대해 반인륜범죄를 저질러도 그를 통해 경제호황을 누린다면 정권의 인기는 올라간다.

    1년이 훌쩍 넘은 동안 시민들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쓴맛을 충분히 맛봤다. 모든 면에서 이미 충분히 나빠졌고 여전히 나빠지고 있지만 그 중 경제가 가장 중요한 변수고 이 역시 윤 대통령과 여당에 희망적이지 않다.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기 시작하면 행동도 자유로워지게 마련이다. 이제 전국신분회가 열리면서 급격한 변화가 시작되는 과정을 2권에서 본격적으로 살펴보자. - 248p

 

    보수(기득권)는 지키는 것이다. 그들은 변화를 싫어하고 현상유지를 선호한다. 침묵과 밀실을 선호하고 떠들썩함과 광장을 싫어한다. 혼자 혹은 몇몇이 만나는 것을 선호하고 대중이 모이는 것을 싫어하고 그 자신 대중 속에 섞이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대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혐오를 갖고 있으며 직접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완강히 꺼려한다.

 

    혁명은 언제나 너나없이 자유롭게 말하는 것으로 시작해 군중이 모이는 광장에서 점화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자유의 시작, 모든 자유 중 으뜸은 표현의 자유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인간의 입을 막지 말라! 양심의 자유가 선언적 의미가 크다면 표현의 자유는 모든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가장 실효성 있는 핵심적 자유다.

 

    - 1권 리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