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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리뷰

어멍 2025. 4. 3. 21:11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리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민음사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의 1984년작 소설

 

밀란 쿤데라 : 1929년 체코에서 태어나 2023년 프랑스에서 사망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인 본 소설은 워낙 유명하여 언젠가는 꼭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아들 종서가 구입하여 먼저 읽었다길래 바로 이어서 읽어보았다. 본문은 파란색으로 표기한다.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는 생각... 인생이란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은 ...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 9p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는 내 생각에 이 첫 장에 다 있다. 그것을 더 압축하면 책 제목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되고 이것은 니체의 ‘영원한 회귀(回歸)'를 부연 설명하는 작가의 감성적 토로이자 독백이다.

    니체와 쿤데라의 이런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쇼펜하우어,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성경 [전도서]부터 있어온 아주 오래된 것이다. 지금도 반복되고 앞으로도 반복될 이미 겪었던 일들인 것이다.

 

  쇼펜하우어 : 인간은 의미없이 태어나 의미없이 살다가 의미없이 죽는다.

 

  칼 마르크스 :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전도서 : 해는 떴다가 지고, 다시 떠오르기 위해 그 떴던 곳으로 급히 돌아가는구나. 바람은 남쪽으로 분다 싶더니, 다시 북쪽으로 향하고, 다시 이리저리 돌아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미 있던 것들이 다시 있겠고, 사람들은 전에 했던 일들을 다시 한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어차피 모든 존재는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 영원히 제자리를 돌며 되풀이될 것들이니 모두가 덧없고 가볍다는 것이다.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아틀라스가 어깨에 하늘을 지고 있듯 인간도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 60p

 

    사람들이 바라는 것,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보통은 행복이라 한다. 하지만 행복도 행복 나름이다. 개인의 행복이란 보편적이면서도 취향이나 가치관만큼이나 의외로 다양하다. 노예처럼 업신여겨도 잘 먹고 잘 입기만 하면 만족하는 이도 있겠고 부족하게 살아도 존엄을 지키는 삶을 더 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삶에는 모두가 한결같이 바라는 그 행복보다 더 중요하고 위대한 것이 있다. 그것을 사명, 소명, 운명, 다르마 등으로 부르던 시니컬하게 역할놀이라고 부르던 하여튼 이 세상에 나면 각자에겐 주어진 배역이 있다.

 

    나는 현실적, 세속적인 사소한 행복도 원하고 존중받고 존중하는 데서 오는 가슴 뿌듯한 존엄이 주는 행복도 원하고 내게 주어진 배역, 운명도 넉넉하고 멋지게 해내고 싶다. 욕망이 있어 잘 먹고 잘 살고도 싶지만 그 이상의 뭔가도 원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 해야만 하는 일, 이 셋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이 셋이 일치하면 가장 좋지만 하나를 선택하라면 단연코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대로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기대도 욕심도 없이, 삶이 자신에게 부여한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성이고 위대함이다. 논어의 극기복례(克己復禮)와도 상통한다. 상황이 좋든지 나쁘든지 제 할 일, 자신의 책임과 도리와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상대가 어떻든 상관없다. 내가 지켜야할 예의, 내가 주어야할 사랑을 다할 뿐이다.

 

    인간은 모두가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17p)들이지만 자신의 배역에서 도망치는 자, 자신의 운명을 배반하는 자는 위대함, 고결함 이전에 진정한 행복에도 결국 이를 수 없다.

 

    ※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 니체의 또 다른 주장인 운명애(運命愛). 이것은 숙명론, 인도의 카스트 같은 계급제도 옹호로 오해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바가바드 기타>가 말하는 다르마는 세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인간은 이 안에서 신, 세상, 팀이 부여한 역할을 적극적,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것에 방점이 있다. 만약 운명(숙명)을 극복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운명이라면... 깨지고 실패하더라도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실행해야 한다.

 

    모수자천(毛遂自薦)이다. 나설 땐 나서야 한다. 하물며 모두가 꺼리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에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나서는 이는 위대하다. 멍석이 깔리면 몸치라도 춤추고 마이크가 주어진다면 못 부르는 노래라도 한 곡조 뽑아야 한다. 평소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고 기회와 소명이 주어진다면 용감히 나선다. 수비수라도 골대 앞에서 기회가 왔다면 과감히 슛을 쏘아야 한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 483p

 

    지구의 시간, 우주의 시간은 영원히 회귀하는 원형으로 돌지만 한 인간의 시간은 그 원의 지극히 작은 일점에 불과하다. 그 일점은 확대해보면 짧고 가느다란 직선일 뿐이다. 만약 인간이 백년이 아닌 만년 산다면, 지구 한 바퀴가 아닌 지구 백 바퀴 돈다면 세상은 모두 데자뷔(기시감) 천지일 것이다.

    인생은 짧은 직선이지만 그 안에서나마 인간은 반복의 욕구를 느낀다. 반복은 익숙함이고 안정감이고 루틴이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의 절대조건은 아니다. 전부가 아니다. 인간에겐 그와 상반되는 다른 욕망, 다른 본능 역시 있다.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고자 하는 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49p)이지만 어느 곳에도, 잠시라도 정착하지 못하고 끝없이 방황하고 부유하는 자 역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바꿔 말하면 인간에겐 반복, 익숙함, 안정의 욕구 외에 새로움, 흥미, 호기심, 모험의 욕구 또한 있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조화와 균형이다. 그것을 중용이라 불러도 좋다. 가볍고 무거운 것은 그 자체로 선악이 구별되지 않는다. 가벼움을 유머, 농담, 연예, 연애(토마시에게 테레자와의 사랑은 무거운 것, 사비나와의 사랑은 가벼운 것이었다), 문화, 패션, 먹고 마시고 즐기는 소소한 일상 등으로 보고 무거움을 정치, 이념, 종교, 철학, 문학, 역사 등으로 본다면 우리 삶에는 가벼움도 무거움도 모두 있어야 한다. - 그런 면에서 제목부터 ‘존재’와 ‘존재의 무게’를 거론한 이 책은 아주 무겁고 진지한 책이다.

 

    가벼워야 할 때 가볍고 무거워야 할 때 무거워야 한다. 가벼워야 할 때 무겁고 무거워야 할 때 가볍다면 최악이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사실이다. 오류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행동 방식 혹은 감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존불가능성에 기인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왜냐하면 그는 강했고 그녀는 약했기 때문이다. - 133p

 

    토마시는 강했고, 테레자는 약했다. 하지만 토마시는 테레자의 포로이자 인질이었다. 토마시에게 테레자는 바구니에 실려 강물로 떠밀려온 아기였고 날개가 꺾여 품안으로 숨어든 작은 새였다.

    테레자는 토마시가 늙기를 바랐다. 자신과 같이 약해지기를 바랐다. 드디어 그녀는 그가 늙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가 힘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테레자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는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 506p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하지만 공존불가능할 정도로 서로에게 상처와 불행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결국은 마지막까지 그들은 함께였고 사랑했다. (적어도 테레자는) 슬픈 행복을 느끼면서...

    사랑은 좋은 것이다. 지옥은 나쁜 것이다. 그렇담 지옥 같은 사랑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지옥 같은 사랑을 거쳐 슬픈 행복을 느끼는 이 마지막 장면은 해피엔딩인가 새드엔딩인가? 당신은 이러한 사랑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 소설 속엔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 4명의 사랑, 연애도 있고 구소련의 체코침공을 배경으로 한 정치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과 존재에 대한 질문과 답이다.

 

  문1 : 참을 수 없는 대상은 존재인가, (존재의) 가벼움인가?

  문2 : 참을 수 없다는 것은 좋은 의미인가 나쁜 의미인가? 참을 수 없이 좋다는 강조, 반어법은 아닌가?

  문3 : 가벼움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 무거움은 나쁜 것인가 좋은 것인가?

 

    각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참을 수 없다는 것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고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하지만 조국 체코의 정치와 역사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꿈꿨던 사비나라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야말로 그녀가 간절히 바라던 바일 것이다.

    보통의 인간의 보통의 행복은 무거움보다 가벼운 쪽에 있다. 진지함보다는 경쾌한 쪽에 있다. 극단적으로 우리가 마약의 황홀경 속에서 느끼는 쾌락과 행복은 결코 무거움이 아니라 가벼움에 있다.

    빠르고 가벼운 현대 물질문명과 미디어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들은 무겁고 진지한 것이 불편하고 거북하다. 그들에겐 정치, 종교, 역사, 철학에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쏟을 여력도 의향도 없다. 하지만 무겁든 가볍든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내일이면 모두가 과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들이다. 무한대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일체의 것은 절대적으로 가볍고 작은 것이다.

 

    다시 첫 장, 9p로 돌아와서... 마치 원운동을 하는 손목시계 바늘처럼 세상만물은 돌고 돈다. 해 아래 새로운 것도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덧없고 가볍다.

    이것이 좋든 싫든, 기쁘든 슬프든, 참을 수 있든 없든 진실이다. 부정할 수 없는 팩트, 사실이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