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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작 ≪프랑스 혁명사≫ 읽기를 시작하며

어멍 2023. 7. 21. 22:11

 

10부작 ≪프랑스 혁명사≫ 읽기를 시작하며

 

 

    평소 프랑스 혁명에 관심이 많았는데 2016년 주명철 교수가 전10권 예정으로 책을 펴내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 나오면 전집을 사서 읽을 요량이었는데 한참을 잊고 지내다가 생각이 나서 찾아보니 이미 2019년에 완간되었고 전집도 출판되었으나 2020년에 아쉽게도 전집세트는 절판되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낱권씩 구매해서 차근차근 읽기로 한다.

 

≪프랑스 혁명사≫ 전10권

 

미리 써본 목록

 

    많고 많은 혁명이 있었지만 ‘프랑스 혁명’ 혹은 ‘프랑스 대혁명’은 혁명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프랑스를 넘어 유럽과 인류역사에 큰 이정표가 되는 엄청난 사건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교과서에서 배웠던 게 다다. 기억나는 것은 ‘1789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바스티유 감옥’ ‘삼부회’ ‘자유, 평등, 박애’ ‘개혁의 좌절과 혼란’ ‘공포정’ ‘반동’ ‘쿠데타에 의한 나폴레옹의 부상과 황제등극’ 등 파편적인 몇몇 키워드뿐이다.

 

    ‘자유, 평등, 박애’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다. 그것은 곧 그제까지 자유도, 평등도, 박애도 (전혀) 없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프랑스 하면 얘기되는 똘레랑스(관용) 역시 마찬가지다. 똘레랑스를 얻기 위해 프랑스는 종교와 인종을 둘러싼 숱한 전쟁과 살육을 겪어야만 했다.

    프랑스를 포함한 모든 국가, 모든 인류는 자유, 평등, 박애를 얻기 위해 수백, 수천 년간 서로 죽고 죽이며 피를 뿌려왔다. 지금 우리 인류가 그나마 누리고 있는 자유, 평등, 박애, 평화가 결코 당연한 것도, 자연스런 것도 아니다. 내가 얘기하고픈 것은 세상에 공짜는 없듯이 역사에도 공짜는 없다는 거다.

    역사에 공짜가 없듯이 역사에 예외도 없다. 역사의 탁류, 소용돌이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자유롭지 못하다. 신전의 제단에는 순수한 피, 완전한 희생만 올려지지만 역사의 제단에는 깨끗한 피, 더러운 피, 악당의 피, 의인의 피 가리지 않고 모든 피와 땀과 눈물이 올려진다. 1789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혁명의 물줄기는 의지와 의지의 충돌, 우연과 필연이 겹쳐지면서 거대하고 세찬 물줄기를 이루어 모든 이들을 삼켜버렸다.

 

    루이 16세는 왕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고 목이 잘리고 싶어서 잘린 게 아니다. 우연히 왕으로 태어나 그 때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 역사의 주역, 특히 개혁과 혁명의 주역이 되려 한다면 목을 내놓고 시작해야 한다. 부귀영화의 비단길을 바란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혁명, 개혁가들이 역사의 제단에 목숨을 바쳐왔다. 로마의 호민관이던 그라쿠스 형제가 그러하고 프랑스 혁명 주역들 중 다수도 루이 16세와 똑같이 목이 잘렸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정도전, 조광조부터 노무현, 조국까지 그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개혁, 혁명은 소수가 독점하는 큰 권력을 빼앗은 후 잘게 잘라서 다수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시차가 발생한다. 당장 손해보는 강자들은 소수지만 극렬하게 저항하고 아직 혜택을 체감치 못하는 약자들은 다수지만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 이것을 이겨낼 지속가능한 견고한 개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혁명은 언제고 반동으로 인해 뒤집힐 수 있다.

 

    유시민이 ‘개혁은 어제내린 눈’이라고 했듯이 프랑스 혁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혁명은 흰 눈처럼 새롭고 불꽃처럼 강렬했으나 불완전했고 혼란스러웠다. 시간이 갈수록 시민대중은 지쳐갔고 혁명세력은 사분오열, 지리멸렬했다.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처음은 신선하지만 위험하다. 혁명세력은 그 볼륨에서도 수준에서도 정국을 지속가능하게 주도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이것을 어느 개인의 책임으로만 볼 수 없다. 혁명에 참여한 집단이나 정파들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도 없다. 그 시대가 딱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역시 역사엔 공짜가 없다.

 

    그러면 똑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질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현재 우리 시민사회의 민주적 역량은 어느 수준에 도달해 있는가? ......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나는 안심했다. 방심했다. 이제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봤다. 박근혜 탄핵을 거치며 촛불혁명이 보여준 평화적이면서도 강력한 민주시민의 역량을 보고서 다시 과거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임계선을 이미 넘어섰다고 봤다. 내가 그렇게 본 또 다른 근거는 이미 유권자 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미 주도권이 6070 1세대에서 3040 2세대로 넘어왔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대선, 0.73% 24만여표 차이로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추세가 뒤집혔다. 북미노딜(큰 것), 안희정을 시작으로 연속된 민주당 대권주자들의 소멸 혹은 제거(중간 것), 조국으로 대표되는 국민의힘과 언론과 검찰의 집요한 파상공세(작은 것) 등 크고 작은 수많은 변수가 작용했겠지만 결국은 진보시민세력의 역량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것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결론이다. (자학적인) 성찰, 반성은 사양이지만 우리의 역량, 실력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인정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난 대선을 전후로 윤석열 대통령과 새로운 정권에 대한 내 개인적인 평가와 예상은 얼추 비슷하게 맞아 들어가는 형세다. (☞ 대선을 앞두고 지인들께 보내는 메시지대선결과 평가 및 향후 정국 예측) 다만 그 범위와 속도면에서 내 예상보다는 훨씬 빠르고 넓게 망가지고 있다.

    균형과 실리를 내팽개친 미일 올인외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대리 홍보, 최종 타겟을 향해 진행중인 집요한 정치보복, 부자감세와 그에 따른 공공요금인상과 복지 및 사회안전망 감소, 수준이하 극우 유튜버 인사의 기용, 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 해외순방 중 김건희 여사의 명품쇼핑, 수해재난에 대한 정권의 무능력과 무책임... 열거하기조차 숨 가쁘고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은 것들이다. 한마디로 목불인견(目不忍見)! 생각있는 자라면 차마 보고 있기가 힘들다.

 

    내년 총선 결과가 큰 변수겠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윤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변화의 희망은 없다. 이미 시민들은 간을 충분히 봤고 어느 정도 파악을 끝낸 분위기다. 물론 강성지지층은 여전하겠지만 윤대통령을 찍었던 중도층은 반성까지는 아니더라도 후회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극우 유튜브와 조중동을 열독하는 6070 열혈지지층은 어쩔 수 없다. 소련 해체 후에도 스탈린을 향수하는 구세대들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 후에도 왕들의 화려한 대관식과 마차행렬에 감격했던 옛 시절을 향수하던 백성들이 있었다. 우리 역시 아직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을 향수하는 구세대들이 유의미하게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앞날이 비관적이니 손 놓고 방관만 하고 있어야 하나? 저항하고 행동해야 한다! 최대한 더 이상은 망가지지 않게 막아야 하고, 최소한 전쟁이나 경제위기 같은 파국은 피해야 한다. 파국으로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근본적인 (유리한) 유권자 지형은 그대로고 미래는 새로운 세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한국 시민의 민주적 역량과 수준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 최고수준이다. 다만 전체 국민들의 수준이 편차가 너무 크고 균일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데 이것은 짧은 근현대사의 기간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한국은 경제도 압축성장, 민주주의도 압축성장이다. 지금 우리의 한계도 인정해야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성취한 것에 대해 충분히 자긍심을 가질만하다. 프랑스도 미국도 우리보다 훨씬 오랜 기간, 훨씬 많은 희생을 치러가며 현재에 이르른 것이다.

 

    31, 419, 518, 610, 촛불 ... 이것들이 어디가지 않는다. 역사의 물결은 정점까지 가장 높이 치솟았다가 심연으로 가라앉기도 하고 아예 땅 밑으로 흔적을 감춰 없어진 듯 하다가도 어디선가 다시 맥을 이어 나타나기도 한다. 혁명이 반동으로 좌절되더라도 그 경험, 그 정신은 민중의 기억 속에 남아있어 역사발전의 자양분이 된다.

    현재의 상황에 비추면 촛불혁명은 좌절되어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다. 하지만 미래가 비관적인 것은 아니고 현재가 아무런 가치 없이 버려지고 있는 시간만은 아니다. 적어도 중도층으로 대표되는 정치무관심층들이 정치에 대해 각성하고 학습하여 정치화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특히 군사독재의 보수정권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던 1020 MZ 세대들은 생각하고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다.

 

    지난 대선 윤석열 후보에게 많은 표를 주었던 20대, 그 중 특히 남성(이대남)들은 국민의힘과 조중동 보수언론의 세대포위전략, 남녀갈라치기 전략에 효과적으로 포섭되었다. 하지만 일시적이라고 본다. 젊고 똑똑한 그들은 6070과 다르게 아직 사고가 굳지 않았고 학습능력이 있다.

    MZ 신세대는 아직 젊고 때 묻지 않아서 착하고 순수한 면도 많지만 한편으론 (지나치게) 똑똑하여 개인적 유불리에 유독 민감하다. 빠른 대신에 가볍고, 아직 어려서 감정과 재미에만 맹목적인 반면 지성, 역사의식, 연대의식, 분별력이 부족하다. - 라고 말한다면 듣는 1020 많이 불쾌할까? 이 역시 50대 꼰대의 어줍잖은 훈장질로 들릴까? 하여튼 100%에 육박하는 대학진학률에 스마트폰, SNS 신무기로 무장한 신세대에게 정확하고 균형잡힌 정보만 제공된다면 이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할 리 없다.

 

    정국이 어수선하고 책 내용이 혁명, 역사, 정치에 관한 것인지라 말이 길어졌다. 10권을 완독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기약할 수 없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읽을 생각이다.

    ≪대망≫ 12권을 읽으면서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많이 배웠듯이 ≪프랑스 혁명사≫ 10권을 통해 프랑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나가 역사, 정치의 속살과 본질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고 깨닫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