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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 안개 속에서 ( & 혼자 가는 길 )

어멍 2018. 10. 12. 22:11

 

 

 

 

 

                     안개 속에서

 

                             - 헤르만 헤세 (Herman Hesse 독일 시인 1877-1962)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

 

          숲이며 돌은 저마다 외로움에 잠기고

 

          나무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다 혼자다.

 

 

 

          나의 인생이 아직 밝던 시절엔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건만

 

          이제는 안개가 내리어

 

          보이는 사람 하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조용히 모든 것에서

 

          사람을 떼어놓는 그 어둠을

 

          조금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현명하다 할 수는 없다.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

 

          인생이란 고독한 것

 

          사람들은 서로 모르고 산다.

 

          모두가 혼자인 것이다.

 

 

 

 

 

 

      “거기 누구 없소?”

 

      내가 아플 때 내 아픔을 어루만져줄 이는 누구인가?

 

      내가 힘들 때 내게 힘을 주고 내 손을 잡아줄 이는 누구인가?

 

      내가 외로울 때 내 외로움을 달래주고 내 눈물을 닦아줄 이는 누구인가?

 

      친구? 스승? 가족?

 

      가족이라면 누구인가?

 

      부모? 형제자매? 아들과 딸? 아내와 남편?

 

      이들조차도 안개가 내려앉아 흐릿해지면 멀어지고 낯설 때가 있다.

 

      단지 가까운 거리에 서 있는 나무일 뿐, 결국 모두가 다 혼자인 것인가?

 

      나 이외의 모든 이는 결국 어쩔 수 없는 인 것인가?

 

 

 

      나는 아프다고 했다. 너도 아프다고 했다. 나보다 더 아프다고 했다.

 

      나는 힘들다고 했다. 너도 힘들다고 했다. 나보다 더 힘들다고 했다.

 

      나는 외롭다고 했다. 너도 외롭다고 했다. 나보다 더 외롭다고 했다.

 

      나만 외로운지 알았더니, 내가 제일 외로운지 알았더니, 너도, 그도, 그녀도모두가 외롭다고 한다.

 

      모두가 내가 제일 아프고, 내가 제일 힘들고, 내가 제일 외롭다고 아우성이다.

 

      결국 우리들 모두는 하나같이 아프고 힘들고 외로웠던 거다.

 

 

 

 

      인생은 아름다워야 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때로 혹은 자주 아름답지 않을 때가 있다.

 

      인생은 행복해야 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때로 혹은 자주 행복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인생은 외롭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때로 혹은 자주 외로울 때가 있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행복?

 

      그렇담 행복이란 무엇인가?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나의 혀와 배는 행복하다.

 

      향기로운 냄새를 맡을 때 나의 코는 행복하다.

 

      멋진 것을 볼 때 나의 눈은 행복하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나의 귀는 행복하다.

 

      부드러운 것을 만질 때 나의 손은 행복하다.

 

      이것이 오감(五感)이 주는 행복이다.

 

 

 

      그렇담 이건 어떤가?

 

      인정을 받고 칭찬을 들을 때 나는 으쓱하며 행복하다.

 

      승부에 이겨 남보다 우위에 설 때 나는 우쭐하며 행복하다.

 

      돈을 맘껏 벌고 맘껏 쓸 때 나는 여유롭게 행복하다.

 

      놀이기구를 탈 때 나는 짜릿하며 행복하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나는 달콤하게 또는 두근두근, 조마조마, 울먹울먹 행복하다.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거나 선행을 베풀 때 나는 뿌듯하며 행복하다.

 

      신에게 기도할 때 나는 위안을 얻고 종교적 희열 속에서 평화로이 행복하다.

 

 

 

      오감이든 아니든 이 모든 행복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그럼 기분이 좋아진다.’에서의 기분이란 무엇인가?

 

      과학적, 의학적, 궁극적으로 몸 속 호르몬의 작용?!

 

      그럼 오감을 포함한 모든 행복의 본질, 정체는?

 

      호르몬 작용에 의해 우리 뇌가 느끼는 좋은 기분이란 말인가!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원하고 추구하는 삶의 목표인 행복의 보잘 것 없는 정체란 말인가!?

 

 

 

      건조하고, 낭만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는 이 결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뭔가 인생을 더 가치 있고, 더 의미 있고, 더 숭고하게 만들기 위해,

 

      이 이상 생각을 이어가고 글을 덧붙여야 하는가?......

 

 

 

 

      당신(들)은 왜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당신(들)은 왜 내가 아파하는 만큼 아파하지 않는가?


      이것은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자기중심적 사고다.


      나는 행복해야 한다.


      나는 특별해야 한다.


      나는 사랑받는 존재여야 한다.

 

      이것도 하나의 강박관념. 일종의 쉽게 살아가려는 유혹이다.

 

      너도 나도 욕망에 이끌려 행복을 얻기 위해 자기 것만 주장하는 시끄럽고 사나운 전쟁터의 풍경 혹은

 

      너도 나도 외롭다고, 힘들다고, 아프다고, 자기연민에 빠져있는 적막하고 쓸쓸한 숲의 풍경이다.

 

 

 

      어차피 모두가 외롭다면 외로운 사람끼리 위로하며 살자.

 

      어차피 모두가 힘들다면 기대는 사람보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어차피 모두가 행복을 바라지만 모두가 항상 행복할 수 없다면 행복에 그리 연연하지 말자.

 

      하지만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어렵다. 아주아주,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다.

 

 

 

      즐기되 탐하지 않고 사랑하되 집착치 않는 것.

 

      외로우면서도 외로운 이를 달래고,

 

      아프면서도 아픈 이를 돌보고,

 

      사랑을 구하지 않으면서도 아낌없이 사랑하는 것.

 

      나의 욕심, 기대, 허영심이 단 1%도 섞이지 않은 순도 100%의 사랑을 실행하는 것.

 

      어려운 일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를 미워하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내 사랑을 알아주지 않아도, 어렵게 건넨 그 사랑이 거부당해도 섭섭지 않고,

 

      알뜰한 그 사랑이 더 알뜰하고 더 철저하게 배반당해도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담담할 수 있을까?

 

      넘어지고 짓밟히고 깨어져도, 내 모든 것을 빼앗겼어도,

 

      또다시 용감하게 씩씩하게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을 수 있을까?

 

      슬픔과 노여움과 허무까지 넘어서서 내 모든 것을 남김없이 내어줄 수 있을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 나를 미워하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337P



      사람이든 아니든 내가 증오하고 혐오하고 미워하는 대상을 사랑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체로 모순이고 위선이고 거짓이다.


      불가능한 이것을 가능케 하는 오직 유일한 경우의 수는 사람의 사랑이 아닌 신의 사랑을 통해서다.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메달려 죽으시면서도 인간들에게 베푸신 자비와 용서를 통한 은혜와 축복이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 23:34]) 예수님은 악하지만 어리석고 유한한 인간들이 불쌍하셨던 것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신의 마음이다. 만약 당신이 죽도록 미워하고 증오하는 누군가가 불현듯 불쌍하고 가여워보이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신의 사랑에 이미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이다.





      ※※ 국민학교 1학년 구름 한 점 없는 무더운 어느 여름날,

 

      방과 후 집에 돌아오니 그날따라 엄마, 아빠, 누나, 동생까지 아무도 없었다.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안방과 건넛방과 마당과 대문 밖을 서성여도 아무도 없었다.

 

      2층 옥상에 올라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선명한 먼 골목들을 둘러봐도 개미새끼 하나 없었다.

 

      나는 뼈 속까지 스며드는 고독(사실은 무료함)에 몸부림치며 허공에다 대고 울부짖었다.

 

      “!~~ 심심해!!!”

 

      그때 절대고독 비슷한 것을 처음 맛봤다.

 

      이 지구라는 행성에 나만 남겨진 느낌! 이 광막한 우주에 나만 존재하는 느낌!

 

 

 

      헤르만 헤세도 무척이나 외로웠나 보다.

 

      하긴 그의 삶 자체가 유년부터 말년까지 고뇌어린 방황이고 방랑이었으니까.

 

      나그네처럼 외로운 것이 그의 인생이지 않았을까!

 

 

 

      요즘의 고독은 어떠한가?

 

      더 이상 예전의 낭만적 고독, 절대고독이 아니다.

 

      (낭만적) 고독을 즐기려 해도 들려오는 풍문, 넘쳐나는 매스컴들이 우리를 가만 놔두질 않는다.


      불편하거나 당황스럽지 않았던 우아한 침묵은 고대인(古代人)들의 덕목일 뿐,


      행복, 재미에 목말라하는 현대인들에게 침묵은 곧 죄악이다.


      우리들은 이미 노예수준으로 길들여진 상태,


      무플보다 악플을 환영하고 고통보다 권태를 못견뎌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이 지구상엔 절대고독을 맛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종족이었던 인디언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좁은 보호구역 안에 갇혀있으며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중 하나인 네팔의 히말라야 고원은 이 도시에서 너무 멀다.

 

      이들은 모두 행복에 연연하지 않을수록 행복해지는 역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지구촌이 되어버린 세계, 초연결사회가 되어버린 한국에서 이제 빈곤도 상대적, 고독도 상대적이다.

 

      풍요속의 빈곤, 군중속의 고독이다. (그 군중에는 친구와 가족도 포함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풍요와 군중 속에서 지치고 (상대적) 빈곤과 고독 속에서 다시 지친다.

 

      너무 과도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피곤하고 그 연결된 시스템에서 나만 소외될까 봐 더 피곤하다.

 

      인싸(인싸이더)는 인싸여서 피곤하고 아싸(아웃싸이더)는 아싸여서 피곤하다.


      남자는 남자라서 힘들고 여자는 여자라서 힘들고 늙은이니 늙어서, 젊은이는 젊어서 힘들다.


      너나없이 모두가 지치고 힘들고 외롭고 불행하다.

 

 

 

      힐링, 욜로, 워라밸, 소확행, 럽유어셀, 사토리(得道)가 얘기되고 먹방, 겜방, 여행방송이 인기다.

 

      어떻게든 위로를 받고 행복과 평안을 얻고 싶은 것이다.

 

      대중문화는 더욱 말랑말랑해지고 짧고 빠르고 가볍고 달콤해졌다.

 

      서점도 얇고 가볍고 읽기에 부담 없는 베스트셀러들로 넘쳐난다.

 

      넓은 여백의 지면에 띄엄띄엄 예쁘고 여유롭게 나열되어 있는,

 

      감수성 예민한 소녀취향의 손발이 오글거리는 낯간지러운 문장 혹은


       겉멋 들린 소년취향의 다소 유치한 간지나는 문장들!

 

      그렇게라도 지친 영혼들이 휴식과 위로를 얻는다면 다행이지만

 

      너무 얕고 가벼워져만 가는 문화풍조는 유감이다.





      ※※※ 행복에 연연하지 않을수록 행복해지는 역설 - "우리(인디언)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노래는 물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소. 그런데 당신들 미국인들의 음악을 들으면 전부 사랑 노래뿐이오. 그건 왜 그렇소? 당신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 아니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343p - 물을 갈망하는 자는 물을 노래하고 사랑을 갈망하는 자는 사랑을 노래하고 행복을 갈망하는 자는 행복을 노래한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 '행복' 노래를 하고, '행복' '행복' 노래를 할수록 행복에서 멀어져 간다.





◈  ◈





      & 비슷한 맥락, 비슷한 분위기의 헤세의 다른 시




          



          


                     혼자 가는 길




          땅 위엔 


          크고 작은 길 여럿 있지만


          목표하는 곳은 모두 같다.




          가까이나 멀리 갈 수도 있고


          둘이나 셋이 갈 수도 있지만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만 한다


          아무리 싫은 일이라도


          혼자서 하는 일보다 더 나은


          지혜도 능력도 없기 때문에






      & 헤세의 주요 명언




    

    1. 생각이란, 우리가 그것을 따라 그대로 사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다.


    2. 나는 믿어왔고, 지금 또한 여전히 믿고 있다. 우리의 살아오는 길에 다가올 수 있는 좋거나 나쁜 운들이 무엇이든지간에 항상 가치 있는 것으로 그것을 변형할 수 있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3. 지식은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으나, 지혜는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살아있으나, 길들여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다.


    4. 작가는 독자가 아니라 인류를 사랑해야 한다.


    5.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부과된 길을 한결같이 똑바로 걷고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 굳이 토를 달자면


      첫째 비교하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 때론 구차하고 비루하고 유치한 일이지만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둘째 마지막 한 걸음은 자기 혼자만의 몫인 건 분명하나 나누고 함께하는 것을 미리 포기하거나 저평가 심지어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것은 곤란하다. 그것에 삶의 의미가 있고 숭고한 가치가 있고 또한 성공과 성취를 넘어 행복의 비결이 있기도 하다.




      ※※ 굳이 첨언하자면


      두 번째 헤세의 명언 - 우리의 살아오는 길에 다가올 수 있는 좋거나 나쁜 운들이 무엇이든지간에 항상 가치 있는 것으로 그것을 변형할 수 있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 이와 같은 삶의 태도가 헤세가 많은 고뇌와 방황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그만의 삶을 살아가며 그만의 문학을 이룬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것은 안이하고 비겁한 정신승리도 아니고 쾌락주의-오히려 그 반대편에 가깝다-나 낙관주의도 아니고 희로애락을 초월하여 삶의 곳곳에 숨어있는 어떤 섭리를 적극적(때론 필사적)으로 포착하려는 구도자적 자세에 가깝다. 그는 삶에 매우 진지하고 성실했던 셈이다.




      ※※※ 굳이 첨첨언하자면


      (더 적극적인 간절함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다소 과장된) '필사적'을 덧붙인 이유는 다음의 또 다른 그의 언급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밝을 때나 어두울 때도 나는 인생을 욕하지 않겠습니다. 삶은 무의하고 무자비하며 어리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Even when our lives are bright, dark, I do not blame life. Life is meaningless and heartless, only silly but it nevertheless, is due to important. (1899년 그의 최초의 시집 <낭만의 노래> 중에서)


      단지 하늘에 떠가는 구름뿐이라고 해도 우리가 살아 존재하는 한 기뻐해야 합니다. Even if it's merely just going sky floating clouds, we must be pleased, because we exist and 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