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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스물여섯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 (180812) - 명성교회 세습 적법결정에 즈음하여 (명예훼손 신고로 블라인드 조치 – 복원신청 – 복원 후 재발행함)

어멍 2019. 5. 8. 01:13


 

 


 

    뜬금없는 신고로 잊고 있던 8개월 전(20188) 발행된 글이 다음(DAUM)측에 의해 임시폐쇄 되었다. 블라인드가 되어 나조차 열어볼 수 없게 됐는데 다행히 백업본이 있어 찬찬히, 면밀히 다시 살펴봤다.


    명성교회 김삼환, 김하나 목사 측에서 신고한 모양인데 무엇 때문인지, 어떤 대목이 문제인지 납득이 되지 않아 다음측에 복원신청을 했다. 당시 교계에 국한되지 않고 큰 사회적 이슈가 되어 떠들썩했는데 추후의 사건전개와 현재의 상황은 잘 모르는 상태다. 다음은 다음측에 복원신청하며 올렸던 의견.




    블로그를 취미로 시작한지 벌써 십년이 훌쩍 넘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방문객들과의 의견충돌로 댓글로 논쟁하고 저급한 육두문자도 많이 들어봤지만 명예훼손 게시물이라 하여 삭제요청 신고가 들어오고 해당 게시물이 임시(폐쇄)조치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번이 두 번째. 첫 번째는 세월호 참사 관련해 올린 글이 유병언측 법률대리인에 의한 신고로 임시조치된 경우. 세월호 참사 박근혜 정권과 한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먼저 별 것 아닌 본인의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유감이다. 나부터 돌아볼 일이다. 시비를 따지기 전에 김삼환, 김하나 목사님, 명성교회의 마음과 입장도 충분히 이해되고 그 방어권도 존중한다. 누구라도 찌르면 아프고 움찔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해당 게시물의 내용과 그 표현수위로 볼 때 이는 무분별한 방어권 남용으로 사료된다. 파워블로거도 아니고 큰 반향을 일으켰던 글도 아니어서 삭제되더라도 그만인 일이지만 납득이 안 되므로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이의를 제기해 본다.


 

    명예훼손과 관련한 삭제요청의 요건이랄까?... 내가 생각하는 기준은 이렇다.


    첫째 내용의 진위 허위내용이면 당연 안 된다.


    둘째 표현의 수위 - 사실, 진실이라도 표현이 폭력적, 노골적으로 과격하거나 너무 저급하면 안 된다.


    셋째 의도성 - 개인 간의 원한 등에 의한 명백한 의도성, 목적성이 뚜렷하면 곤란하다.


    넷째 긴급성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 급속도로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안의 경중에 따라 일단 차단, 폐쇄부터 하는 것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다섯째 공공성 공익에 부합한다면 당사자의 기분이 상하고 권리가 일부 침해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비판적 발언권, 표현의 자유는 용납되어야 한다.


 

    해당 게시물이 위 기준 중 어디에 부합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20188월에 작성된 글을 8개월이 훨씬 지난 지금에야 신고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제목인 <스물여섯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 (180812) - 명성교회 세습 적법결정에 즈음하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글은 개인 김삼환, 김하나를 비판, 비난할 목적으로 작성한 글이 아니다. 두 분이 주의 종이라는 목사님이어서, 교회 그것도 작은 시골교회가 아닌 내로라하는 대형교회의 사역을 담당하는 분이어서, 기독교계와 한국사회 전체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계시기에 작성한 것이다.


    이 글은 본문인 기도문과 그 아래 의견을 개진한 후기로 나눌 수 있는데 아마도 이 후기 부분에서 시비가 들어온 것 같다. (다음측에서 임시조치를 취할 때 왜? 어느 대목이 문제가 되었는지 되도록 구체적으로 알려줬으면 좋겠다.)


    기도문은 전혀 해당사항이 없고 후기 부분은 명성교회 세습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구체적으로 담았는데 그와 관련해 쏟아져 나온 수많은 기사, 논평, 비판글들과 비교하자면 그 내용이 새롭거나 특기할만한 건 없고 그 수위도 그리 맵지 않았다고 본다. 짐작컨대 다른 쓴소리들과 구별되는, 문제가 될 만한 일부 언급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부분만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피휘(避諱), 제왕들의 이름을 일반에서 피하여 안 쓰는 옛날 풍습이다. 백성들은 이름으로 쓰고 부를 수 없을 뿐더러 각종 문서에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임금 이름은 옥편에서 찾기 힘든 극히 희귀한 한자를 썼다고 한다.


    십계명 중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 항상 겸손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의 이름은 불순하고 신성모독이라고도 볼 여지가 있다. 이름 그대로 ‘()하나님으로 불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고루하고 권위적인 옛 풍습까지 끌어온 확대해석이고 김하나로 지은 연유와 뜻을 알지 못하니 억지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작금의 사태를 보면 이름을 이렇게 지은 (불순한) 의도에까지 의혹이 미치게 된다. 확실히 하나라는 작명은 예은’(‘예수님 은혜를 줄여)의 경우와는 그 의미와 맥락이 다르다. (‘하나의 동생 이름이 두리인 경우가 아니라면)


 

    바로 위 대목. 확실히 나는 김삼환 목사님에 대해 잘 모른다. 간혹 교인들끼리 전해오는 이야기로 훌륭하다. 존경할 만한 분이다. 라는 먼 풍문, 소문이 다다. 일면식도 없고 가정사도 모르며 따라서 왜 아드님 이름을 하나로 지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에서 따와 하나라고 했을 수도 있고, 동생이 있어 이름이 두리인지 아닌지도 모르며, 아예 하나뿐인 외동아들이라서 하나라고 했는지, 그냥 크다 혹은 편벽되지 않은 한가운데를 뜻하는 순 우리말 에서 따와서 하나라는 지었는지... 그 사정은 전혀 모른다.


 

    목사를 떠나 아빠 입장에서 아들 이름 갖고 시비거는 것 같아 불쾌하셨을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김삼환 목사, 김하나 목사는 단순한 사인이 아니다. 그만한 위치, 그만한 신분, 그만한 사회적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면 굳이 내가 언급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주의 종, 목사님이다. 평범한 비기독교인이라면 자기 자식 이름을 김야훼, 김메시아라고 지은들 제3자가 공적으로 시비걸 일은 없다.


    큰 교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시는 큰 목사님에 대해 작은 교회에 다니는 평범한 한 명의 성도가 합리적 의구심을 표한 것이다. 저간의 사정과 맥락으로 보면 의심이 거기까지 미치는 것이다. 결코 초등학생들이 친구 이름 갖고 놀리는 저급한 수준은 아니라는 거다.


 

    이렇게 이름 갖고 구차하게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유는 이것 말고는 신고인 측에서 제기했을 시비거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이 부분을 콕 집어서 신고하셨다면 이 부분만 드러낼 용의가 있다. 아니면 명성교회 목사인 아버지 김모씨와 그 아들 목사 김모씨라고 익명 처리하여 글을 수정할 수도 있다. 어차피 두 분의 이름 석자가 사태의 본질이 아닐뿐더러 초딩이 아닌 성인이라도 사적인 성격이 있는 이름을 빌미로 쓴소리하는 것이 상쾌한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사람이름을 포함한 모든 이름은 결코 아무 의미가 없거나 하찮은 것은 아니다.)


    이 외에 내가 미처 발견치 못한 문제가 있다면, 혹 내 글에 틀림이 있거나 내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어떤 내용과 표현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알고 싶다. 납득이 된다면 당장에라도 기쁜 마음으로 자진해서 삭제할 것이다. 불량 게시물, 저급한 게시물 자체가 타인보다 본인의 명예를 먼저 훼손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이 정도 수준의 비평은 명성교회와 두 부자되시는 김삼환, 김하나 목사님의 위치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마땅히 용납되어져야 하며 또한 종교를 떠나 시민의 표현의 자유, 표현의 권리란 측면에서도 보호되어야 한다.


 

    첫 번째 빨간 부분은 본 글과 직접적 관련이 없어서, 두 번째 빨간 부분은 명성교회 목사인 아버지 김모씨와 그 아들 목사 김모씨란 언급이 오해건 아니건 좀 비꼬는 느낌이 나는 것 같아서 실제 복원신청문에서는 뺏다.




    처음으로 신고가 들어와 폐쇄되었던 세월호 관련 글은 복원신청 후 이미 복원된 상태다. 두 건을 비교하자면 둘 다 상쾌한 일은 아니지만 이번 건이 좀 더 상쾌하지 않다. 유병언씨야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이고 그 후손된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그 불명예를 씻어드리고 싶은 마음은 효심의 측면에서도 이해할 바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전엔 어떤 영화나 권력을 누렸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미 몰락했거나 그 세가 꺽인 상태다. 하지만 명성교회는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도 부자세습의 의지를 꺽지 않고 있고 자금력, 교인수 등 물적, 인적 네트워크 면에서 교회와 신도들의 세가 막강하다.


    일개 힘없고 평범한 소시민, 블로거,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 둘은 공통점이 여럿이다. 첫째 종교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 둘째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이루고 있는 집단이라는 것. 셋째 웬만한 비판은 참지 못한다는 것. 견문발검(見蚊拔劍)이라도 해서 원천봉쇄하려는 과한 의지가 있는 듯하다.


    넷째 해당 글이 최초 작성되어 노출된 지 한참이 지난 시점(저번 것은 3년 후, 이번 것은 8개월 후)에서 신고된 점이다. 사건 초기 여론이 분분하고 비판이 쇄도할 때는 몸을 사리고 있다가 여론이 잠잠해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만 하자 기력을 회복해서 일종의 반격을 개시한 모양새다. 이러한 행태를 종합해 봤을 때 그만큼 종교(단체)가 권력화, 세속화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설권력의 전횡과 폐해를 방지하려면 사회 모든 부문이 공공의 견제와 감시를 감내해야 하고, 갈수록 이런 추세는 강화되고 있다. 특히 보편적 진리를 전하려는 종교, 막힌 곳을 뚫고 끊어진 것을 잇고 어두워 보이지 않는 곳을 밝게 밝히려는 종교는 대중 앞에 최대한 투명하게 노출되어야 한다.


    막고, 감추고, 신고하고... 이런 식의 대응은 너무 옹졸하여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 김삼환, 김하나 목사님에서 명성교회로, 명성교회에서 한국 기독교 전체로 그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결국엔 한국 교회는 대중들에게 더욱 외면 받고 주님의 말씀과 뜻은 더욱 흐려지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2018.08.12. 최초 작성 발행함 - 2019.04.06. 대한예수교장로회 명성교회로부터 명예훼손 게시물 삭제요청 신고가 접수되어 해당 게시물 임시(폐쇄)조치됨 2019.04.08. 복원신청 - 2019.05.06. 임시조치 한 달 경과 후 복원 게시됨 - 2019.05.08. 그간의 경과를 서두에 추가하여 재발행함.


 

    아래는 임시 폐쇄 후 다시 복원된 원본, 즉 최초 작성된 문제의 게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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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여섯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 (180812) - 명성교회 세습 적법결정에 즈음하여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모든 생명을 낳으시고 그 생명에 복을 부어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한 주를 보내고 저희 모두 또다시 주님 앞에 모였습니다. 저희에게 주신 지난 한 주의 시간을 감사드립니다. 저희에게 주신 매일매일,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게 하시옵소서. 청초한 봄, 뜨거운 여름, 서늘한 가을, 차고 엄숙한 겨울, 그리고 또다시 같은 듯 다른 듯 어김없이 이어지는 산뜻한 봄, 이 모든 시간과 공간이 주님의 것이오니 저희가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섭리를 송축하옵니다. 저희가 주님의 영광과 은혜를 찬미하오니 이 예배와 기도를 기쁘게 받아 주시옵소서.

 

 

 

    주님. 여름 다음엔 가을이 오고, 겨울 다음엔 봄이 오듯이 마땅히 있어야 할 때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있게 하소서. 노인에겐 지혜가 있게 하시고 청년에겐 용기가, 어린이에겐 순수가, 주님의 제자이자 자녀인 저희에겐 주님의 뜻과 말씀이 있게 하소서. 소망을 이루도록 분발하게 하시고, 이룬 후엔 집착치 말고 내려놓게 하소서. 주님은 사심 없는 사랑을 베푸셨으니 저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욕심과 고집을 버리고 말씀대로, 순리대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주님.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있고 포도나무에 포도가 있듯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있게 하소서. 법정엔 정의가 있게 하시고 소문에는 공평이, 시장에는 정직이, 주님의 제단에는 주님의 뜻이 있게 하소서. 세상 모든 것과 이 지상에 쌓은 제단은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언젠간 무너질 것이오니 저희가 항상 누룩을 조심하고 소금이 되길 소망하게 하소서. 항상 입술로 죄짓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하시어 삿되이 주님의 말씀을 오역하지 말고 조금의 더함도 뺌도 없이 그 말씀을 전하고 행하게 하시옵소서.

 

 

    주님. 이 바쁘고 유혹이 넘치는 세상에서 저희를 굳건히 붙들어 주시옵소서. 저희는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빵과 물고기 이외의 맛있고 별난 것을 바라며, 몸을 가리는 것 이상의 멋지고 화려한 것을 원합니다. 저희는 가진 것에 대한 만족과 감사로 기뻐하기보단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과 갈증에 슬퍼합니다. 세상 모두가 주님보다 돈을 쫓더라도 저희는 황금송아지 대신 나무십자가를 택한 주님의 자녀들이오니 저희의 욕망을 줄이시고 저희의 소망을 키우소서. 항상 감사함으로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기도가 곧 감사고, 감사가 곧 기도인 삶이 되게 하소서.

 

    주님. 주님을 향한 감사는 주님이 주신 모든 것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되고, 주님을 경배함은 주님이 만들어 놓은 모든 것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됨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 안에서 저희 성도들은 모두 하나이며, 이 나라와 민족도 모두 하나이며, 세계만방과 온 인류 역시 하나임을 믿사옵니다. 바다와 산천과 하늘에서 뛰노는 생명가진 것들은 모두 한 형제이오니, 대지를 순결하게 하시고 물을 깨끗케 하시어 모든 생명들을 기르게 하소서. 저희 가슴속에 생명 가진 것들, 성장하는 것들에 대해 샘솟는 친절함과 크나큰 평화를 간직하게 하소서. 저희가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세상만물에 넘치는 사랑, 차별 없는 축복, 구별 없는 동정을 베풀게 하시옵소서.

 

 

 

    주님, 저희 우정교회 성도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하나하나 저마다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육체의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주님의 자녀들이 있사오니 이들을 굽어 살피시어 소생시켜 주시옵고 무더위로부터 지치지 않게 이들의 심신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성가대의 목소리에 은혜 내려 주시옵고 교회 각 기관과 곳곳에서 성심봉사하시는 모든 성도들 축복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목자이신 △△△ 목사님과 전도사님, 사모님들을 축복하사 항상 강건케 하여 주시옵고 저희에게 축복의 통로, 은혜의 통로로 굳건히 세워 주소서. 이 분들께 성령을 내려주셔서 주님의 뜻과 말씀을 들려 주시옵고, 이 교회에 성령을 내려주셔서 주님의 뜻과 선을 다함께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모두 들어주실 줄 믿사오며, 예배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의 뜻이 함께 하실 줄 믿사오며,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있고 포도나무에 포도가 있듯이 -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고,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고, 올리브 나무에 거둘 것이 없고, 밭에 거둘 곡식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더라도 [하박국 3:17] 성경읽기 0068

 

 

 

      이 지상에 쌓은 제단은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언젠간 무너질 것이오니 저희가 항상 누룩을 조심하고 소금이 되길 소망하게 하소서. -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여기에 있는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마태 24:2]

 

      화려하고 웅장한 헤롯성전 건물을 가리켜 보이며 감탄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예수님은 인간들 자신들의 영광과 권세를 드러내고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성전은 주님의 뜻이 거하지 않는 단순한 건축물로 보고 철저히 부정하셨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마가 8:15]

 

      권위적인 종교권력(바리새파), 세속적인 정치권력(헤롯당)을 조심하라는 예수님의 당부. 누룩은 소금과 대비되는 오염되고 부패한 양식. 전염성이 강한 거짓교리와 죄악을 상징한다.

 

 

 

 

당대에 가장 크고 화려했던 헤롯성전(미니어처 모형)

지금은 대부분이 무너지고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외벽만이 일부 남아있다.

 

 

 

      삿되이 - ()되다. ()되다. 모두 해당. 곧 제 맘대로, 제 욕심대로, 사사로이 & 바르지 않고 나쁜 마음, 음험한 마음으로

 

 

 

      저희 가슴속에 생명 가진 것들, 성장하는 것들에 대해 샘솟는 친절함과 크나큰 평화를 간직하게 하소서. - 류시화 엮음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181p 중에서

 

 

 

 

      ※ 대표적 대형교회인 명성교회의 당회장직이 김삼환 목사에서 그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 세습된 것에 대해 대한예수교장로회 재판국에서 적법판정을 내렸다. 아버지에서 아들에게 넘어갔는데 세습이 아니라니 술은 먹었는데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식의 말장난! ‘은퇴하는목사의 경우는 세습이고 은퇴한목사의 경우는 세습이 아니라니... 어안이 벙벙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실로 뻔뻔하고도 구차하다.

 

      이는 교회를 서로간의 2세에게 세습하는 교차 세습, 삼각 세습, 일단 분가했다가 다시 합치면서 세습하는 변신-합체 세습에 이어 새롭게 시도되는 기상천외한 변칙 세습, 시간차 세습으로 세상과 기독교인들을 우롱하고 주님을 욕보이는 만행이다. 김삼환 목사는 존경받는 목회자로 알고 있는데 누룩에 눈이 어두워져 초심이 어그러졌든지 아예 초심이 잘못되었든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혹자는 하나님도 예수님에게 세습하였는데 무슨 문제냐며 옹호했다던데 이것이 바로 주님의 뜻과 말씀을 오역하는 것이다. 입술로 죄를 짓는 것이다. 일반 성도는 물론이고 직업 목회자라면 더욱 크고 치명적인 죄다.

 

 

 

      피휘(避諱), 제왕들의 이름을 일반에서 피하여 안 쓰는 옛날 풍습이다. 백성들은 이름으로 쓰고 부를 수 없을 뿐더러 각종 문서에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임금 이름은 옥편에서 찾기 힘든 극히 희귀한 한자를 썼다고 한다.

 

      십계명 중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 항상 겸손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의 이름은 불순하고 신성모독이라고도 볼 여지가 있다. 이름 그대로 ‘()하나님으로 불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고루하고 권위적인 옛 풍습까지 끌어온 확대해석이고 김하나로 지은 연유와 뜻을 알지 못하니 억지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작금의 사태를 보면 이름을 이렇게 지은 (불순한) 의도에까지 의혹이 미치게 된다. 확실히 하나라는 작명은 예은’(‘예수님 은혜를 줄여)의 경우와는 그 의미와 맥락이 다르다. (‘하나의 동생 이름이 두리인 경우가 아니라면)

 

 

 

      목회자들의 죄와 잘못은 일반 성도들이 견제하고 바로잡아야 하는데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대로 세습이 굳어진다고 해도 명성교회의 교인수가 유의미하게 줄어들 가능성은 별로다. 교인수로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개신교회라는데 그만큼 일반 신자들의 수준, 역량이 부족하다는 거다.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하더라도 용인(심지어 종교적인 용서, 이해)되고 유야무야 묻히고 넘어가는 것이 다반사다. 무엇보다 익숙해진 교회를 벗어나기 힘들다. 익숙한 (인간)관계, 익숙한 분위기를 바꾸기가 힘들다. 크고 현대적인 건물, 다양하고 편리한 부대시설, 각종 행사와 모임, 심지어 이제까지 주고받은 경조사비가 아까워 불만이 있어도 훌훌 떠날 수가 없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출석하지만 예수님을 전혀 닮지 않은 교인, 교회에 출석하지 않지만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닮고자 노력하는 교인, 교회에 출석하지도 예수님을 믿지도 않지만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처럼 사는 사람 - 주님이 다시 오신다면 누구를 꾸짖고 누구를 칭찬하실까?

 

      무엇이 옳은 믿음인가? 무엇이 깊고 신실한 믿음인가? 의문이고 고민이다! 남을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은 두려운 일로 나 역시 믿음이 부족하고 죄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 사람의 평범한 성도에 불과하지만 참믿음, 참교인, 참교회가 아쉽고 귀한 요즘이다.

 

      내 생각이 짧고 오만하다면 그것을 바로잡아 주시고 그렇지 않다면 심판 중에도 다만 주님의 보살핌과 긍휼만을 바랄 뿐이다. 오직 주님의 뜻을 묻고 기도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