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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성경읽기 0101 : 빌립보서 1장~4장

어멍 2011. 9. 29. 23:12

    성경읽기 0101 : 빌립보서 1장~4장



    저자 : 사도 바울

    주요 인물 : 바울, 디모데, 에바브로디도

    기록 목적과 대상 : 빌립보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여 졌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섬기는 자가 됨으로써 누리는 기쁨에 대해 얘기하고, 교회의 분열에 대해 한 마음으로 연합할 것을 권면하며 율법주의적인 유대교가 복음의 근본정신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 기록하였다.



1장 15절

어떤 이들은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17절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신들이 높아지기를 원하는 뜻에서, 또 감옥에 있는 나를 속상하게 하려고 더 열심히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2장 5절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합시다.

6절

그분은 하나님과 똑같이 높은 분이셨지만, 결코 높은 자리에 있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7절

오히려 높은 자리를 버리시고, 낮은 곳으로 임하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고 종과 같이 겸손한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도 서로 니가 높네, 내가 높네, 자리다툼이 있었듯이 복음 사역에도 경쟁이 있고 주도권 다툼이 있었나보다. 그만큼 시기, 질투, 이기심이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인가! 하지만 바울은 이것에 개의치 않고 복음이 전파된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한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전하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빌립보 1:18]

    시기, 질투, 이기심으로 출발하였더라도 중간에 주님의 뜻과 의와 사랑을 깨닫고 행함으로서 좋은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 반면 주님의 영광을 확장코자 서로를 격려하며 선의의 경쟁을 시작했더라도 중간에 시기, 질투, 이기심, 오해, 미움이 증폭, 폭발하여 흉한 그림이 되고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경쟁은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해야 한다는 것은 정답이지만 하나마나한 공허한 말일 수 있다.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다.

    경쟁이 지고지순한 최고선은 아니다. 경쟁지상주의는 위험하다. 인간의 탐욕을 절제하기가 힘들듯이 경쟁은 그 자체로 다루기 힘든 것임에는 분명하다. 이 치열하고 혼란스럽고 유혹이 넘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합시다.’ - 치열한 경쟁의 한복판으로 내몰리더라도, 마음속에서 미움과 갈등의 불꽃이 타올라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해결책이다. 그리되기를 예배 전에 기도하고, 예배 중에 기도하고, 예배 후에 기도하듯이 항상 주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경계하고 뒤돌아보는 것이다.

    바로 예수님처럼 낮은 곳에 임하는 겸손이다.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다.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대접하는 것이다. 스스로 낮은 곳에 임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높여주신다. 자신을 가장 낮추는 자가 가장 높은 자다. 이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섬기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크나큰 기쁨을 얻을 수 있다.



4장 4절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하거니와 기뻐하십시오.

6절

걱정하지 말고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고 아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7절

그러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어느 누구도 측량할 수 없는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가운데 풍성히 임할 것입니다.

 

    그 기쁨은 절대기쁨이다. 그 감사는 절대감사다. 예레미야의 절대슬픔 속에서도 기뻐하는 것이고, 욥의 절대고통 속에서도 감사하는 것이다.

    행복하고 잘 나갈 때는 기뻐하며 주님을 찬양하고, 평상시엔 심드렁하니 있다가, 불행하고 고통스러우면 주님을 원망하거나 복을 싹싹 비는 것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전쟁, 기아, 질병, 경제공황 등의 온갖 절대고통, 절대슬픔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혹 미친 놈, 한심한 놈 취급 받지는 않을까? 가능하긴 한 것일까?... 주님을 향한 절대믿음, 완전한 믿음 안에서는 가능하다.


    ‘당신과 함께라면 고통마저도 내겐 축복이야!’ - 연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어봤다면 더없이 행복한 사람이다. 입만 살은 허풍, 닭살 돋는 사탕발림에 불과할 수도 있다. 막상 고난이 닥치면 줄행랑을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은 더없이 멋지고 감동적인 사랑고백이다. 만약 이것이 진짜라면... 절대사랑이다. 완전한 사랑이다. 사랑이 있기에 고통 안에서(도) 기쁘고 감사할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

    ‘주님과 함께라면 고통마저도 제겐 기쁨이고 축복입니다!’ - 주님을 향한 바울의 믿음이다. 그의 믿음은 절대믿음이다. 완전한 믿음이다. 주님을 위한 고난의 길이라면 언제고 기쁘게 뛰쳐나갈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죽는 것도 내게는 유익합니다.’[빌립보 1:21] 살거나 죽거나 그리스도를 위하는 길이라면 상관없다는 거다. 상황이 어떠하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겠다는 거다.

    남녀 간의 사랑도 지극하면, 고통도 기쁘게 헤쳐 나갈 수 있다.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 아무리 시험을 당한대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고 오히려 그것이 사랑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적어도 서로 할퀴고 미움을 키워 파국을 맞진 않는다. 예쁘고 깜찍한 사랑은 두근두근 설레지만 성숙하고 지극한 사랑은 존경할 만한 구석이 있다. 심지어 짓고 까부는 속인(俗人)들이 이해할 수 없어 무시하고 놀리다가도 경탄해마지 않으며 숙연해지기도 한다.

    주님을 향한 바울의 믿음 역시 그러했다. 그에게는 순교를 포함한 어떠한 고난도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것을 통해 주님의 영광이 더욱 드러나고 주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더욱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에게 오히려 더 없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항상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평안했다.

    사랑은 힘이 세다. 믿음도 힘이 세다. 사랑과 믿음 안에서는 폭풍우라도 한낱 미풍일 뿐이다. 완전한 사랑, 완전한 믿음 안에서는 기쁨도 기쁨이요, 슬픔도 기쁨이다. 축복도 축복이요, 고통도 축복이다.


    빌립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