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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성경읽기 0081 : 마태복음 22장~23장

어멍 2011. 6. 30. 21:26
  

    성경읽기 0081 : 마태복음 22장~23장



22장 16절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한 분이며, 하나님의 길을 올바르게 가르치시며,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으시므로 아무에게도 치우치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17절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21절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어라.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

 

    일부러 전후사정을 생략하고 발언만을 적어 보았다. 배움을 구하는 제자들과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과의 정다운 문답인가? 모르고 보면 천상 그렇게 들릴 수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음흉한 마음과 간교한 함정이 숨겨져 있다.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이었다. 의로운 사람들인 척 가장한 정탐꾼들[누가 20:20]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힘있고 음흉한 실력자들은 애궂은 젊은이, 힘없는 수하들을 시켜 못된 짓을 하게 하고 일을 도모한다. 16절 그들의 말은 입에 발린 소리다. 아첨이요, 교언영색(巧言令色)이다. 재밌는 것은 바리새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이 별로 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헤롯 당원들은 친 로마적인 헤롯 가문과 정치적 명운을 함께 하려 했던 사람들로 바리새인들이 정한 엄격한 종교적 규율을 많이 거부하였다. 반면 바리새파는 율법에 편협하리만치 충실하였고 유대주의에 입각하여 로마의 지배를 거부하였다.

    상반된 두 무리가 와서 자신을 살짝 띄워준 후 질문을 한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옳다고 하면 헤롯 당원들이 좋아할 것이고, 옳지 않다고 하면 바리새파 제자들이 좋아할 것이다. 옳다고 하면 하나님의 절대권능을 부정한 것으로 비춰 예수님의 종교적 권위가 추락할 것이고, 옳지 않다고 하면 로마를 부정한 것으로 비춰 역도, 불령(不逞)유대인으로 찍혀 정치적 박해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Yes냐? No냐? 예수님을 딜레마에 빠트린 후 트집을 잡아 올가미를 씌우려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 상반된 입장에 서 있던 종교권력 바리새파와 정치권력 헤롯 당원들도 예수님께 대항할 때는 하나로 뭉친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공동의 적이었던 셈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여라.”[마가 8:15]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악한 생각을 아시고 “너희 위선자들아! 왜 나를 시험하느냐?”[마태 22:18]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세금으로 내는 동전에 새겨진 가이사(로마 황제)의 얼굴을 확인시키시며 하신 유명한 말씀이 21절 말씀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란다. 그리고 예수님께로부터 떠나간다.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지를 발휘해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는 진리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의 것이다. 하지만 가이사의 것은 결국 하나님의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하지만 이 진리의 말씀도 인간에 의해 남용, 오용, 악용되기도 한다. 인간들은 다시 ‘무엇이 가이사의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것인가’를 놓고 싸운다. 무엇이 세속의 것이고, 무엇이 하늘의 것인지 싸운다.




당시 로마황제였던 티베리우스(BC42~AD37)가 그려진 로마동전
예수님이 예로 든 동전이 이것이었을지도...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때 학생을 비롯한 시민들이 매 맞고, 죽고 나라가 어수선했다. 시민들은 침묵하는 종교계를 원망하며 비판했다. 그 때 어떤 목사님이 이 구절을 인용했다던데... 하지만 정국이 안정되자 침묵했던 개신교 지도자급 인사들은 청와대에 들어가 나라와 정권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던데... (물론 개신교를 포함해 중재에 나서기도 하고 직접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던 종교지도자들도 많다.)

    어차피 모두 하나님의 것이고 뜻이고 섭리니, 지금은 이와 같이 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옳다고 여긴 것일까? 어차피 진리의 말씀도 어떻게든 내 편한대로 해석, 이용할 수 있다. - ‘비겁한 자가 받을 것은 비겁한 자에게, 위선자가 받을 것은 위선자에게’


    정교(政敎)분리, 성속(聖俗)분리의 거창한 얘기가 아니라도 이것은 속된 것에 발을 딛고 있는 우리, 성직자가 아닌 일반 성도인 우리가 항상 부딪히고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시장에서 장사하고 교회에서 예배하고 다시 시장에서 장사하고... 끊을 수 없는 고리다. 하지만 이 정도 문제의식만 있어도 다행이다.

    교회 안에선 사랑과 자비를 말하고, 교회 밖에선 단죄와 응징을 말한다. 종교에선 예수님을 따르지만, 정치에선 바리새파를 따른다. 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기보단 세상의 것으로 교회 안을 더럽히고 물들인다.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항상 고민하고 경계하며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자. 적어도 극과 극의 두 얼굴을 한 야누스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은가. 낮에는 성도, 밤에는 도둑인 지킬박사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은가. 입으로는 거룩함을 말하는 신실한 주의 종, 머리속엔 온갖 거짓과 위선, 음모와 협잡으로 가득찬 바리새파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은가. 예수님이 보시기에 성경책을 옆에 낀 마귀로 보실까 두렵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22장 36절

“선생님, 율법에서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합니까?”

37절

“네 모든 마음과 모든 목숨과 모든 정성을 다해서, 네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39절

“두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여라.’인데 이것도 첫째 계명과 똑같이 중요하다.”

40절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 두 계명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번엔 율법의 전문가 한 사람이 질문을 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간단하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사랑’이다. 첫째도 사랑, 둘째도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라. 하늘을 경외하고, 땅을 품어라. 이것 이외의 으뜸가는 율법은 없다.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 두 계명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법규와 성현들의 말씀이 이 두 계명에서 나온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한 일, 곧 너희가 이 형제들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한 일이 곧 나에게 한 일이다.[마태 25:40] 



23장 27절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위선자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하얗게 칠한 무덤과 같다. 겉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안은 시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

28절

너희가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악이 가득하다.

29절

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의 묘비를 꾸미면서

30절

‘만일 우리가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때에 살았더라면, 우리는 예언자의 피를 흘리는 데 함께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31절

그러나 너희는 예언자들을 죽인 살인자들의 자손이라는 것을 스스로 나타내고 있구나.

32절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조상들의 악한 일을 마저 채워라.

33절

뱀들아, 너희 독사의 자식들아! 지옥의 심판을 너희가 어떻게 피할 수 있느냐?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이다. 23장에서 예수님은 당대의 악인, 위선자들인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을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격하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선과 의로움에 대한 열망이 큰 것에 비례해서 악과 위선에 대한 분노 역시 크시다.

    겉은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속은 흉측하게 썩어있다. 겉만 닦인 그릇처럼 속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다. 옛 의인들을 칭송하면서도 현재의 의인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도리어 박해하고 그들을 밀어 넣을 무덤을 만들고 그들의 묘비를 꾸미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지금은 어떤가? 지금 우리 곁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과연 우리는 그 분을 알아볼 수 있을까? 성가시다고 외면하고, 입바른 소리 한다고 미워하지는 않을까? 지가 뭔데 쥐뿔도 없는 것이 예수님 흉내 낸다고 박해하지는 않을까?


    하나님, 하나님, 예수님, 예수님, 오소서, 오소서... 입으로는 소리 높여 찾고 부르더라도 손으로는 예수님을 묻을 구덩이를 파고 있다. 그 옛날 조상들이 악한 일을 했던 것처럼, 지금 여기서 그 악한 일에 악한 일을 더하여 마저 채우고 있다.

    회칠한 무덤에서 독사의 자식들이 꾸역꾸역 나온다. 조급함도 없이, 주저함도 없이 끈질기게 나온다. 눈 먼 자들이 그들 뒤로 끝없이 이어지며 묵묵히 따른다. 분주함도 없이, 지루함도 없이 터벅터벅 따른다.

    뱀들아, 너희 독사의 자식들아! 지옥의 심판을 너희가 어떻게 피할 수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