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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성경읽기 0028 : 느헤미야 2장~13장

어멍 2010. 10. 28. 01:04
 

    성경읽기 0028 : 느헤미야 2장~13장



    저자 - 느헤미야

    주요 인물 - 느헤미야, 에스라, 산발랏, 도비야, 게셈

    핵심어 - 목표, 재건

    주요 내용 -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과 개혁



2장 1절

왕이 포도주를 달라고 해서 나는 포도주를 가져다가 왕께 드렸습니다. 전과 달리 슬픔에 가득 찬 나의 모습을 보고,

2절

왕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소? 아프지는 않은 것 같은데, 무슨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소?”

5절

(나는) 왕에게 대답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그리고 제가 왕의 마음에 드신다면 제 조상이 묻혀 있는 유다의 그 성으로 저를 보내 주십시오. 제가 그 성을 다시 짓겠습니다.”

 

    나(느헤미야)와 왕(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1세)의 대화다. 느헤미야 편은 특이하게도 1인칭으로 서술되어 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이 마시는 술을 관리한 관원으로서 술시중까지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의 술 관원은 고대에 존재했던 직책으로 당시 페르시아 궁전에서는 매우 높은 지위였다.

    계급보다 보직이라고 권력이란 공식서열보다 최고 권력과의 물리적 거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사장보다 회장을 모시고 다니는 기사의 영향력이 때때로 더 클 수도 있다. 삼성그룹역시 사장단보다 비서실의 권력이 더 크고, 대표계열사인 삼성전자 사장이 아닌 회장 비서실장이 2인자다. 회장과의 독대가 얼마나 자유로운가로 그 권력을 가늠할 수 있다. 속된 말로 ‘역사는 밤에 이뤄진다’는 뜻을 담고 있는 베갯잇 송사라는 말도 있듯이 왕보다 왕비가 정치를 좌우한 경우도 많았다.
    권력이 투명하게 공적 경로로 행사되어야 하는 현대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권력이 집중되고 사유화되는 위험이 다분하여 비판의 소지가 크나 권력은 그 속성상 제어되지 않으면 그 방향으로 경도되는 경향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왕이 곧 국가요 법이었던 일인치하의 고대왕국에서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왕의 술 관원은 왕과 왕족, 귀족들의 지척에서 술시중을 들며 때때로 대화를 나누었던 위치이므로 보통 자리가 아니다. 기본적인 학식과 판단력은 있어야 한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없던 지식도 생긴다. 당시의 왕실은 최고 권부이기도 했지만 최고 교육기관이기도 했다. 최고수준의 인재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성경의 중요인물들도 대개 이곳을 거쳐 갔다.

    이집트 왕실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모세, 사울의 경호대장 출신이자 그의 사위였던 다윗, 다음의 에스더 편에 나오는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왕의 비인 에스더, 그리고 왕권과 가까운 숱한 고위 제사장들 역시 다 마찬가지다. 모두 기본적인 지식과 수련을 쌓아 판단력이 뛰어났으며 왕실과 근거리에 있었다. 또한 강직하고도 인자한 인품의 소유자이면서 동시에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런 느헤미야가 폐허가 된 고향 예루살렘을 슬퍼하며 왕에게 간청하는 장면이다. 결국 느헤미야는 왕에 의해 유다 총독으로 임명되어 고향으로 돌아가 산발랏, 도비야, 게셈 등의 협박과 방해를 뚫고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재건한다.

    또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제사장이자 율법학자인 에스라를 시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쳐 회개토록 하고, 백성들을 예루살렘 성으로 이주시키고,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하였으며,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반열을 정하고 각기 임무를 맡겨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 일에 전념토록 하는 등 일련의 개혁정책을 시행하였다.



13장 23절

나는 또 유다 남자들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의 여자들과 결혼한 것을 알았습니다.

24절

그들 자녀의 절반은 아스돗 말이나 다른 나라 말은 하면서도 유다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느헤미야 역시 전편의 에스라와 같이 유대민족의 순수성, 정체성 회복을 위한 혈통보존정책을 취한다. 그러면서 든 예가 바로 언어다. 믿음, 혈통, 풍습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언어에는 중요한 문화와 풍습이 담겨있고 그 이상의 정신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실재로 말글의 씀씀이를 보면 그 사람의 학식, 교양, 취미, 이력, 성품 등 사람 됨됨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어찌 보면 혈통보다 중요한 게 바로 언어다.

    출생지보다 중요한 게 거주지고 거주지보다 지금 현재 어떤 생각, 어떤 정신을 갖고 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혈관 속에 흐르는 피보다 머리 속에 담겨 있는 정신이 더 중요하다. 10년 전에 헤어진 친자식보다 10년 동안 함께 해온 주워온 자식이 내 자식이다. 다만 혈통이란 동질성, 정체성을 담보하는 끊을 수 없는 운명적인 끈으로 무엇보다도 강력하다.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시대에는 그 끈이 느슨해진 상태, 언어와 풍습이 흐트러진 상황이었다.

    전편 <성경읽기 0027 : 에스라 10장>에서 기술한 것과 같이 70년간 이국에서 노예생활을 한 후에 고향에 돌아와 정착해가는 과정이었다. 즉, 이 정책은 지고지순한 정의로운 정책이 아니라 역사적, 시대적으로 특수한 상황 하에서 요구된 정책이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종교를 포함한 모든 것이 세계화, 보편화된 현대에는 이상적이지도 않고 실현가능하지도 않은 정책이다. 또한 성경 자체 내에서도 절대적이지 않은 정책이다.

 

룻기 1장 16절

저더러 어머니를 떠나라고 하거나, 어머니 뒤를 따르지 말라고 하지 마십시오. 저는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따라가고, 어머니가 사시는 곳에서 살겠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제 백성이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제 하나님이십니다.

 

    유대민족에게 시집 온 이방민족 여자 룻의 말이다. (<성경읽기 0017 : 룻기 1장~4장> 참조) 가뭄을 피해 모압 지방으로 이주해 온 시어머니 나오미는 아들 둘의 며느리로 모두 모압 여자를 맞이한다. 집안의 남자들이 모두 죽자 며느리를 놓아주려고 하고, 며느리 오르바는 떠나지만 룻만은 끝까지 나오미 곁에 남아 시어머니의 고향이자 룻에게는 타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온다. 결국 나오미 집안사람 보아스와 재혼하여 아들까지 낳아 준 룻은 나오미가 이웃들에게 "착한 당신의 며느리는 아들 일곱 명보다 낫습니다"라는 칭송까지 받게 한다. 이방민족 모압 출신 룻, 그녀가 바로 다윗의 증조모다.

    다윗에겐 이방민족 모압의 피가 섞여 있는가. 섞여 있다면 얼마나 희석되어 얼마나 남아있는가. 자신의 두 아들을 이방여자에게 장가보낸 나오미는 죄를 지은 것인가.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왕에게 시집간 에스더는 죄인인가. 하나님은 어찌하여 이방민족인 고레스 대왕을 감동시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는 역사를 이루셨는가......

    하나님은 분별하시고 때로 성별(聖別)하신다. 하지만 그것을 포함한 일체의 모든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사랑을 실천하게 하기 위함이시다. 하나님의 뜻은 깊고 그 섭리는 오묘하여 인간이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 그 뜻이 세상을 나누고 다투고, 갈등하게 함에 있지 않을 것이다. 분명 세상을 통합하고 화합하고, 서로 사랑하게 함에 있을 것이다.

    겸허히 묵상할 일이다.


    다윗은 유다의 왕 중 가장 위대한 왕이다. 누구도 룻으로부터 다윗까지 이어지는 유대혈통의 정통성을 시비치 않았다. 지금도 그런 비슷한 얘기는 듣지 못했다. 왜일까. 너무 위대해서? 이미 지난 먼 옛 일이라서?...

    당시는 유대공동체가 비교적 안정적인 시대였다. 룻과 나오미의 경우는 가뭄을 피해 이민족 땅에 이주한 특이한 경우였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민족은 흩어졌고 정체성을 희미해졌다. 예외적인 경우가 일반화되었다. 본래의 특이한 경우로 만들어야 하며 당분간은 일체의 예외도 허용해선 안 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느헤미야는 강력한 이방인 추방정책, 혈통보존정책을 편다.

    유대민족은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개혁으로 차차 터전을 재건하고 민족정체성과 믿음을 회복해간다.


    느헤미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