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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성경읽기 구약을 마치고 신약에 들어가며 (부제 : 예수의 거룩한 죽음에 대하여)

어멍 2011. 4. 2. 23:02


    한동안 성경읽기 포스팅이 뜸했다. 구약편 포스팅을 책으로 엮어 어머니에게 드리느라 시간을 잡아먹기도 했지만 마음이 느슨해졌는지 좀 게을러진 것 같다. 그 사이 관련하여 책 한 권, 영화 한 편을 봤다. 헨드릭 빌렘 반 룬 저 <명화와 함께 읽는 성경 이야기-신약>과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다.




<‘어멍’의 성경읽기 - Ⅰ권, 구약> : 한 권은 내 것, 한 권은 어머니 것.




                 <명화와 함께 읽는 성경 이야기-신약>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이 영화는 구약편 포스팅에도 몇 번 언급했지만 동영상 자료만 다운받아놓고 아직 보진 못했었는데 며칠 전 아내와 함께 보고야 말았다(!) 헨드릭이 지은 <명화와~>는 구약, 신약 두 권으로 되어있는데 얼마 전에 사서 일단 신약부터 읽었다.

    책도 영화도 성경 신약 본문을 읽기 전에 볼까 말까 망설였지만 - 잘못된 인상, 선입관을 갖게 될까봐 - 일단 깊고 빠른 이해를 위해 필요하다 싶어 보고 시작하기로 했다. 헨드릭의 책은 포스팅할 때 필요한 이미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될까하여 구입한 책으로 중간 중간에 기독교와 관련한 많은 고전 명화(名畵)들을 보여주고 있다. 책과 영화 이야기가 주가 될 수는 없고, 말도 너무 길어질 수밖에 없으니 여기서 각설하자.


    성경의 정수는 신약이다. 신약의 정수는 복음서다. 예수님의 생애와 말씀에 대해 네 명의 제자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다. 성경을 정수와 정수가 아닌 것으로 나눈다는 것이 좀 어폐가 있고 불경하기까지 한 일일수도 있지만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진 것, 그 둘이 사뭇 다르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예수님의 신약으로 인하여 비로소 기독교는 유대교를 벗어나 인류의 보편종교로서의 자격을 갖게 된다. 바로 예수님이 인종, 민족, 계급, 남녀, 빈부, 귀천, 노유(老幼)의 차별 없는 사랑을 설파하시고, 온몸으로 실천하시고 증명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사랑’이다. - 뭐야 이거?! - 실망스러운가? 그 흔하디흔한 사랑, 그 뻔하디뻔한 사랑인가? 맞다! 사랑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사랑 아닌 것은 없다. 부모가 자식들을 대하는 마음, 자식이 부모를 대하는 마음, 지도자가 대중을, 대중이 지도자를, 이웃이 이웃을 대하는 마음... 그것을 존경, 우정, 애민, 연민, 긍휼, 신뢰, 자애, 박애 등 각기 표현을 달리하더라도 그 핵심은 모두가 사랑이다. 사람이 사람을, 자아가 타아를 대하는 관계의 기본은 사랑이다.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이다.
    그 중에 예수님의 사랑은 특별히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랑, 크기를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이다. 무엇이든 포용할 수 있고,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는 위대한 사랑, 성스러운 사랑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로서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듯이 말이다. - 주여! 저희를 용서하소서!


    예수(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천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때론 과격하게, 때론 지루하게 끊임없이 논쟁해왔던 흥미로운 주제이다.

    인간 중에서, 선지자 중에서 나온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유일한 성령으로 볼 것인가. 공자, 석가와 같이 깨달음을 얻어 일가를 이룬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이미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로 볼 것인가. 성령으로 잉태하셨으나 인간의 몸에서 인간의 몸으로 나오셨으니 인간으로 볼 것인가, 신으로 볼 것인가. 먹기는 하셨으나 배변을 하시긴 하셨을까.

    어렵고 위험한 질문들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 비기독교도라도 분명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예수가 2000여년전 인간의 육신을 하고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실존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예수(님)의 무엇이 인성(人性)이고 무엇이 신성(神性)인가 나누어보는 것이 부질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인성을 갖고 있는 인간이기에, 신성을 흠모하고 닮으려 하는 인간이기에 예수님의 신성이 우리 곁으로 다가와 인성으로 발현된 모습, 그 가르침을 찾아내고 공부하려는 자세는 필요하다.

    나사렛 예수는 인간적으로 낙천적이었다. 긍정적이었고 담백했다. 온화하고 유머가 넘치는 인물인 동시에 하나님 앞에 홀로 선 단독자로 결단의 순간에 의연하고 단호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순결했으며 거짓과 불의에 대해 분노했다. 고아, 과부, 병든 자, 가난한 자들에게 상냥하게 친절을 베풀고 권력자, 제사장 등의 위선과 불성실과 비루함을 꾸짖었다. 하나님의 성소,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에게 과격하리만치 불같은 분노를 쏟아내기도 하셨다. 물같이 고요한 현인의 풍모, 불같이 거침없는 혁명가의 풍모도 있었다.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인 인물이다.

    반면 예수의 말씀과 가르침은 그 내용에서나 형식에서나 매우 쉽고 단순하다. 그 내용은 한 때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던 케릭터인 졸라맨이 항상 외치고 다니던 모토, 곧 ‘사랑과 정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정의를 사랑하며, 네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신다.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말씀의 형식도 어렵지 않고, 현란하지 않고 쉽고 단순하다. 예수는 설교하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셨다. 연설보다 대화를 즐기셨다. 그 구체적 화법(話法)은 문답법과 비유법이다. 그 문답법은 항상 묻는 자로 하여금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고, 강한 암시를 통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그 비유법은 비, 바람, 물, 불, 동물, 나무, 곡식과 같이 우리 주위 어디에서나 보고 들을 수 있는 쉽고 친근한 것들이다.

    예수의 말씀은 어린아이들도 능히 알아들을 수 있다. 가르침이라면 만고(萬古)의 탁월한 가르침이요, 스승이라면 만인(萬人)의 위대한 스승이다.


    굳이 자질구레 세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굳이 묻지 않는 것에 대답하지 않는다. 작은 것을 물으면 큰 것을 되묻는다. 가지를 좇아 열매를 구하면 뿌리를 좇아 근원을 되묻는다. 대답하더라도 비유법으로 말씀하신다. 그 뿐이다.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 귀가 있는 자는 들을 것이요, 눈 있는 자는 볼 것이다. 간절한 자는 깨달을 것이요, 구하는 자는 얻을 것이다. 그 비유가 무슨 뜻인지 되묻기 전에는 설명하지 않으신다. 밖에서 넣어 주지 않으시고, 안에서 스스로 구하게 하신다. 스스로 구하는 것에 간절함이 있고, 자기 힘으로 얻은 것에 권능이 있다. 심지어 박해자들이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논박하려고 하는 저주의 말에 예수가 이런 식으로 응하면 그들마저도 어리둥절해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사람들은 감화되어 예수님 곁으로 모여들었다. 목수, 어부, 세리, 여인들, 아이들,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 고통 받던 병자들이 점점 구름같이 모여들어 그의 가르침을 경청했다. 그 앞에 무릎 꿇고, 그의 옷자락이라도 만져보려고 모여들었다. 모두가 그의 말씀을 듣고, 그가 행한 이적을 보고 그가 옛날부터 예언되어왔던 메시아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다윗의 자손이기도 했던 예수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 옛날 유대의 지도자처럼 군중을 이끌고 외세에 저항하는 민족의 지도자, 세력을 이루어 정적들을 축출했던 정치적 지도자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예수는 세속의 왕이 되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사랑과 진리를 전파하는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 되기를 바랬다. 사람들이 사랑과 자비와 동정으로 성령의 동반자가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제 바야흐로 예수는 기존 유대교 사제들의 최대의 정적이 되었다. 기득권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알다시피 결국 십자가형에 처해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 나사렛 예수가 30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공생애 사역을 시작한 지 채 3년이 못되어 벌어진 일이다.

    예수의 죽음은 당시 철저히 정치적인 역학관계에서 벌어진 정치적 사건이다. 예수는 종교범(宗敎犯)이라기 보단 정치범(政治犯)이었고 당시의 유대교 사제들은 종교인이라기 보단 정치인 쪽에 더 가까웠다. 예수의 죽음은 종교적으론 가장 거룩한 사건이었지만 정치적으론 가장 더러운 사건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구약시대 이후 당시 유대민족이 겪어왔던 역사와 시대적 배경, 정치・종교적 상황 등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약 말라기를 끝으로 예루살렘은 예언자의 시대가 끝나고 긴 침묵의 시대로 접어든다. 유대민족은 여전히 완전한 독립국을 이루지 못한 채 페르시아의 지배와 간섭을 받고 있다. 이후 페르시아는 마케도니아 출신의 젊은 장군 알렉산더에 의해 정복당하고 유대 역시 그리스제국의 영토가 된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에는 그의 장군 중 하나였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의 왕이 되었으며, 팔레스타인 지방은 여기에 잠시 편입된다. 그러다가 뒤이어 발흥한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국내적으로는 외세에 저항하는 크고 작은 혁명과 독립운동이 있어왔으나 크게, 오래 성공하진 못했다. 도리어 무자비한 피의 보복만이 있었을 뿐이다. 외세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신축적으로 유대민족을 대표하는 지도자, 왕을 인정하기도 하고 종교적, 사상적, 문화적 자율권을 인정해주기도 했는데 로마가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전, 유대민족의 초기 왕가를 이룬 것은 혁명독립가문 출신인 마카비 가문이다.

    마카비 가문은 로마에 대항하다 참수된 안티고누스를 끝으로 막을 내리고 그 뒤를 이어 친로마 행보로 실력을 쌓아온 안티파테르의 아들 헤롯이 왕위에 오른다. 이렇게 해서 예수가 등장하는 당시 유대사회는 로마에 의해 반독립, 반식민지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유럽문화를 이루는 두 기둥은 그리스의 헬레니즘과 유대의 헤브라이즘이다. 유럽문화는 이 두 문화의 끊임없는 변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문학 등 현재의 서구문명에서도 그 흔적을 역력히 발견할 수 있다.

    로마에 자리를 내준 그리스인들의 존재감은 여전히 무겁다. 당시 그리스인들이 예술가, 철학가, 문학가였다면 로마인들은 병사, 정치가, 법률가였다. 이에 비해 당시 유대 땅은 로마와 그리스에 비해서는 머나먼 변방으로 변변히 헤브라이즘이라고 불릴 만한 영향력도, 무게감도 없는 피지배민족이 사는 벽촌이었을 뿐이다.

    정복한 땅에 총독으로 부임한 로마인들의 목적은 그곳에 정의로운 공동체를 세우고 하나님의 뜻이 밝게 빛나는 이상향을 이루는데 있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어떠한 잡음이나 소요 없이 세금을 걷어 로마로 보냄으로서 황제나 실력자들의 심기를 편안히 하는데 있었다.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영전하거나 중앙으로 진출하는 것, 정치적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 유대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형판결과 집행권을 갖고 있던 그는 제사장들과 군중에 의해 끌려온 예수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이 사건을 신속하고도 원만히 마무리 지어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곤혹스런 판결을 회피하고 예수를 헤롯왕에게 넘긴다.

    하지만 헤롯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익히 예수의 이적에 대해 들었던 헤롯, 마법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던 헤롯, 제사장들과 뒷거래의 혐의가 있는 헤롯 역시 굳이 이 얻는 것 없이 위험하기만 한 부담을 지지 않는다. 그는 교활하게 판결을 미루고 다시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긴다.

    결국 빌리도는 로마까지 언급하며 강력하게 압박하는 제사장들의 위협과 군중의 흥분에 굴복하여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한다. 굶주려 사나워진 늑대에게 고깃덩이를 던져주어 달래는 것처럼 사실상 예수의 십자가형을 허락한 것이다.


    한때는 높은 창공을 여유롭게 날던 거대한 바닷새 알바트로스가 뱃사람들에게 잡혀 판자 바닥에서 그 크고 흰 날개를 옆구리에 차고 노처럼 질질 끌며 웃음거리, 놀림거리가 되는 것처럼 이제 예수그리스도는 야유소리 들끓은 지상으로 유배당하여 어느 누구에게든,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하는 기피인물, 혐오인물이 되었다.

    사방이 온통 적이다. 그들은 예수에게 가시면류관을 씌어주고 왕의 자색 옷을 걸치고 왕홀을 쥐어준다. 유대 왕에 대한 최상의 모욕이다. 그리고 예수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서 그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끝내게 된다.

    이 모든 일이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일주일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제 곧 이 예수의 생애 마지막 일주일, 그 극적이고 치열했던 고난의 길을 되새기는 고난주간이 온다. 금년은 4월 18일부터 23일까지다.




카라바조, <보라. 이 사람이로다.(Ecce Homo)>, 1606, 제노바, 로소 궁전.
예수는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인간의 육신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낀 것이다.
예수의 몰골은 이 그림보다는 훨씬 처참했을 것이다. 카라바조가 심리적으로 붓놀림을 하기 힘들 정도로...



    예수의 죽음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감당하기엔 너무 처참하고 잔인한 극형이었다. 대개 범죄자는 돌에 맞아 죽었지만 예수의 경우는 예외였다. 예수의 적들은 예수의 감옥형, 태형에 만족하지 못했고 돌에 맞아 죽는 싱거운 최후 역시 원치 않았다.

    그들의 더러운 죄를 가리고 훼손된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선 예수의 죽음에는 뭔가 수치스러운 것이 있어야만 했다. 뭔가 시범케이스가 될 만한 잔인한 것이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도망가려던 노예가 십자가에 못박혀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죽을 때까지 매달려 있는 것처럼 예수도 십자가형에 처해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예수의 죽음은 눈뜨고 볼 수 없는 비열한 정치적 잔혹극이다. 군중은 감정적으로 예수를 미워했고 제사장 등 최고의회는 현실적으로 예수를 제거해야 할 급박한 필요성이 있었다. 제사장들은 간악했고 군중들은 어리석었다. 헤롯은 교활한 겁쟁이였고 빌라도는 무책임한 비겁자였다. 이것이 예수의 죽음에 얽힌 정치적 관계와 내막의 전모다.

    책임의 유무, 죄의 경중을 따지자면 군중의 죄보다 헤롯의 죄가 더 크고, 헤롯의 죄보다 빌라도의 죄가 더 크고, 빌라도의 죄보다 제사장들의 죄가 더 크다. 직접 예수를 채찍질하고 못박아 손에 피를 묻힌 로마 병사보다도 훨씬 더 크다. 살인한 자의 죄도 크지만 살인을 사주한 자의 죄가 더 큰 것과 같다.


    당시 유대사회의 세력분포는 크게 세 파벌로 나눌 수 있는데 바리새(Pharisee)파와 사두개(Sadducee)파와 에세네(Essene)파가 그것이다.

    바리새파는 가장 중요한 지파로서 ‘분리된 사람들’이라는 헤브라이어의 의미 그대로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광신도적인 열정에 있어서 다른 이들과 분명히 구분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세의 고대 율법을 암기했을 뿐만 아니라 단어와 글자 하나하나에 모두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대중 앞에서는 굉장히 겸손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자신들이 다른 이와 구별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며 엄청나게 자부심을 느끼는 동시에 그들을 매우 경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편견으로, 반론하는 것을 전혀 참지 못하는 성가신 종족이 되어갔으며 고의적으로 미래에 등을 돌렸고, 모세 시대의 사라진 영광만을 바라보았다. 또한 외국 것은 무엇이나 싫어했고, 혁신적인 것을 모두 증오했으며, 개혁자들은 국가의 적이라고 선포했다.

    사두개파는 바리새파 다음의 권력층으로 바리새파보다 수는 적었지만 더 관용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관용은 확신보다는 무관심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보다 당대의 세계에 더 접해 있었고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위대한 그리스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더 현실적이었고 세속적이었고 정치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예수를 탄압한 이유가 바리새파가 더 종교적, 율법적이었다면 사두개파는 더 정치적, 현실적이었다. 그들의 관용을 가장한 무관심은 정적인 바리새파의 무관용만큼이나 편협했다. 그들 역시 골고다의 최후의 사건에 똑같이 책임이 있다.

    에세네파는 ‘성스러운 자들’이란 의미로 의도적으로 ‘삶이라는 행위’에 대해 절제하며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은둔자들이었다. 그들은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에 비해 수도 적었으며 예수의 죽음에 있어서의 역할 역시 미미했다. 사실상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당시의 예루살렘은 예수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았고 그의 가르침에 관심도 없었다. 전체적으로 적대적이었거나 무관심했다. 예수의 적은 많고 가까웠으며 서로 제휴하였다. 그들은 대개 강한 권력자들이었다. 반면 예수의 친구는 적고 멀리 흩어져 있었다. 그들은 대개 약한 백성들이었다. 한마디로 예루살렘은 그를 원하지 않았다.
    유대교 성지인 예루살렘은 당시 종교적 관광지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 순례객들을 위해 성전 안에서 희생재물을 파는 좌판을 벌여놓고 그들의 숙식을 제공하며 경제적 이득을 취하였다. 제사장들뿐만 아니라 이런 상인, 자영업자들에게도 좌판을 뒤엎고 분란을 일으키며 기존의 권위와 질서에 도전하는 예수는 환영받을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예수는 갈릴리 등 변방에서 말씀을 전파하며 어렵고 소외된 백성들과 함께 진리와 사랑을 나누었으나 성지 예루살렘에서 힘 있는 권력자들의 핍박, 세속적 군중들의 외면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변방에서 와서 중앙에서 죽었다. 하지만 이후 모두가 알다시피, 예수는 결국 변방(유대 땅)에서 와서 중앙(로마, 유럽 그리고 세계)에서 크게 그 말씀을 전하게 된다.

    사실 구약 에스라부터 기록되어졌던, 유랑민 유대인들이 가졌던 고향 예루살렘에 대한 뜨거운 열정, 시오니즘도 당시에 많이 사그라들어 있었다. 적지 않은 유대인들이 여전히 바빌론에 남아 있고 싶어 했다. 그들은 척박하고 구석진 고향땅보다 이미 정착해 익숙해진 좀 더 기름지고 안락하고 번화한 알렉산드리아나 다마스쿠스에 매력을 느끼곤 했다.

    정복자들, 외국인들이 예루살렘을 보는 눈도 비슷했다. 결정적으로 변두리였고 종교적, 문화적으로 지나치게 진지한 나머지 외국 것은 무엇이든 경멸하는 편협한 자들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아직도 유럽인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말할 것도 없고 셰익스피어마저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이라는 유대인을 악덕 고리대금업자로 그리고 있다. 이러한 반유대인 감정은 예수의 죽음을 통해 일반화, 극대화되었다. 메시아를 죽인 민족이라는 거다. 하지만 예수 자신 역시 유대인이다. 유대인만이 유독 죄 많은 저주받은 민족도 아니고, 선택받은 축복받은 민족도 아니다.

    예수의 죽음엔 많은 악인, 죄인들이 등장하지만 당시의 정치적 역학관계, 정치적 구조 자체가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측면도 크다는 거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든 바리새파 제사장 같은 권위적인 기득권자, 빌라도 같은 비겁한 보신주의자, 헤롯 같은 교활한 겁장이, 예루살렘 백성 같은 우둔하고 잔인한 군중은 있게 마련이다. 또한 예수 같은 성인, 의인 역시 있게 마련이다. 그 같은 상황 하에서 대개 성인, 의인들은 핍박과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이것이 정치의 더러운 생리,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다. 세상의 악하고 비루한 풍경이다.

    예수는 죽음을 통해서 이런 죄악을 드러내셨다. 단지 드러낸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그 형용할 수 없는 죄악을 깨끗이 정화하고 씻어내셨다. 자신을 때리고 못박은 병사의 죄, 권력자들의 죄, 유대민족의 죄 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것이다. 예수가 내 대신 피 흘리고 죽으셨다.




위대한 인간의 아들 예수. 자애로운 하나님의 아들 예수.
벨라스케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1632,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이제 그 예수님. 우리를 위해 기꺼이 피 흘림의 고통, 십자가의 짐을 짊어지신 예수님. 속죄의 제단 위에 자신을 아낌없이 어린 희생양으로 바치신 거룩한 예수님의 발자취와 말씀을 따라가 보려 한다.

    주여 저와 함께 하소서!



※ 상기 내용 중 많은 부분을 헨드릭 빌렘 반 룬 저 <명화와 함께 읽는 성경 이야기-신약>에서 참고, 인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