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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大望)》 7권 리뷰

어멍 2016. 2. 25. 21:53

 

    《대망(大望)7권 리뷰

 

 

    “간파쿠는 천하를 통일하면 반드시 조선에 출병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못 견딜 사람으로 나는 보고 있다.” (중략)

    “이 같은 곳으로 간파쿠가 나를 보내준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간파쿠 스스로 조선출병을 나에게 강요할 수 없는 입장을 만들었어.” (118~119p)

 

    ‘간파쿠는 관백(關白-관직의 일종) 히데요시다. ‘이 같은 곳은 황폐하고 보잘 것 없는 에도(江戶) 땅으로 메이지 유신 때 도쿄(東京)로 개명한 이래 지금까지 일본의 수도역할을 하고 있다.

    히데요시가 이에야스에게 고향 미카와에서 더 동쪽인 간토(關東) 8주로 영지이동을 명하자 불만에 찬 가신들을 이에야스가 설득하는 장면이다. 결국 이에야스는 오래지 않아 이곳에 에도막부를 열어 새 시대를 개척하게 된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됨됨이까지 보고 후일을 도모한 것이다. 조선출병이 이뤄지면 간토 8주는 전선의 최후방이 되는 셈. 더욱이 열악한 곳으로 이동시켜 할 일이 많을 것이니 히데요시로서는 출병 명령은 고사하고 섣불리 도와 달라 손을 내밀 수도 없는 입장이다. 결국 이에야스는 자신의 전력을 온전히 보전해 히데요시 사후 패권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 승기를 잡게 된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 날카로운 통찰력, 깊은 생각, 심모원려(深謀遠慮)하는 이에야스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다. 이렇듯 멀리 내다보고 준비하고 힘을 비축하여 때를 기다리는 것이 이에야스의 기본 전략이었다.

 

    요즘 정치, 외교, 경제, 안보 등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소식들, 안 좋은 뉴스들이 쏟아지며 정신이 없다. 대부분 즉흥적인, 심지어 감정적인 미봉책으로 대처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빨리빨리도 좋고 다이내믹 코리아도 좋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고 때가 있다. 작은 일에는 짧은 시간, 큰 일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저것 모두 내가 있을 때 빨리빨리 해치우고 말겠다는 조급한 생각은 까딱 잘못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험을 초래한다. 개인사도 가정사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나라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통령의 치적욕심은 개인차원을 떠난 것이다. 작은 잘못은 작은 피해, 큰 잘못은 큰 피해를 입힌다.

 

    지금 아니면 안 된다고 위안부 합의를 엉터리로 해놓아 뒷일이 난감해졌다. 사실 여부를 떠나 개성공단 임금이 핵개발에 쓰였다고 발표해서 다음 정권에서 대북경협을 하기 힘들어졌다. 덜컥 사드를 배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경제, 안보의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한 개인의 일도, 가정의 일도, 나라의 일도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하는 것이 절실한 요즘이다. 마음은 심모원려, 몸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자세여야 한다.

 

 

   그대는 나한테, 소에키를 죽이지 말라고 말리려는 것인가?”

    “아닙니다. 전하께서 소에키를 아끼시기 때문에 목상(木像)을 대신 처벌하신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에야스가 뵈러 온 것은 다른 일 때문입니다.”

    히데요시는 다시 한 번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구명운동을 하러 왔다고 하는 대신, 이미 그 일은 목상을 처벌함으로써 끝난 일로 해버린 것이다. 과연 이에야스는 재치 있는 간언을 한다고 생각했다. (175p)

 

    당대의 다도명인 소에키는 당대의 실력자 히데요시에게 총애를 받는다. 하지만 소에키는 권력자의 총애를 구하거나 그것에 만족하는 인물이 아니다.

    히데요시가 세속적 수완가라면 소에키는 구도적 성직자. 다예가 소에키에게는 도의 경지였지만 히데요시에겐 풍류의 일환이었다. 히데요시는 자신 밑에 다도가 있었지만 소에키는 자신의 다도 밑에 히데요시를 두었던 것!

    산문의 누각 위에 소에키가 세운 목상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틀어지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하나의 계기일 뿐 다도에서 절대를 구하며 걸어가는 소에키와 자신이 바로 절대라고 자부하는 히데요시는 애초부터 서로 궁합이 맞지 않는 인물이었다.

 

    히데요시는 되도록이면 소에키를 처벌하려 하지 않고 이에야스 역시 이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에키의 태도는 일종의 하극상, 역린을 건드린 셈으로 이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휘하 장수들의 과잉충성과 히데요시의 인내심 한계가 겹쳐져 결국 소에키는 할복을 명령받게 된다.

    히데요시가 권력에 취해 포용해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소에키가 눈치 없이 미련하게 건방떨며 자기 고집을 굽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히데요시가 바늘장수 평민출신의 초심을 잃은 것일 수도 있고 소에키가 이제 성장하여 절대 권력자가 된 간파쿠 히데요시를 우습게 여긴 우를 범한 것일 수도 있다.

    둘의 관계는 최근의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의원을 연상시킨다. 딱 떨어지진 않지만 히데요시 자리에 박 대통령을, 소에키 자리에 유 의원을 넣으면 대충 맞아떨어진다.

 

    재치 있는 간언이다. 섣불리 간언하다가는 오히려 고집부릴 양반인 걸 파악하고 하는 이에야스의 지혜로운 간언이다.

    간언하기 전에 상대의 성정, 됨됨이부터 파악해야 한다. 상대의 마음속을 살펴보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상대에 따라 달리하는 맞춤형 방법으로 상대의 마음속에 있는 내 생각과 같은 일면을 자극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상대의 마음속에 있는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제거하고 자신이 찬성하는 의견을 주입하는 것이 아닌 반대되는 의견을 축소하고 찬성하는 의견을 부풀리는 방향이어야 반발심을 초래하지 않고 효과를 볼 수 있다.

 

 

    순진한 게 어째서 나쁘냐! 붓과 종이......붓과 종이......좋은 교훈을 아무리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인간들이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지.” (231p)

 

    덴카이 스님이 이에야스와 대담을 나누고 돌아가자 이에야스는 신불이 나를 위해 보내주신 사자라고 감격해한다. 이에 가신 혼다 마사노부가 참 순진하시다고 놀리니 이에야스가 꾸짖으며 하는 말.

 

    조선출병을 고집하는 히데요시로 인해 마음이 불편한 이에야스를 찾아온 덴카이는 둘이 갈등하지 말고 붓과 종이처럼 상생하라고 조언한다. 사실 인물 면에서 히데요시와 이에야스는 성격, 가치관, 취향 등이 같은 면보다 다른 면이 훨씬 많았다.

    덴카이는 전쟁에 패할 때를 대비해 안을 튼튼히 하여 환란을 막고 평화를 이루라고 한다. 척박한 토양일지라도 히데요시를 토양으로 삼아 이에야스의 평화의 씨앗을 심고 틔우라고 한다. 이에야스는 이를 받아들여 조선출병 결정을 축하하기 위해 서둘러 히데요시에게 상경한다.

 

    이에야스로서는 극한 갈등을 표출하며 조선출병을 반대한 것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앞장서 찬성하거나 히데요시의 패퇴를 예상 혹은 바라는 불순한 의도에서 소극적으로 찬성한 것도 아닌 셈이다. 단지 자신의 현 위치에서 나름대로 때를 준비한 것이다. 맨 앞에 서지도 않고 뒤쳐지지도 않고 2,3위 선두권에서 페이스를 유지하며 레이스를 운영하는 전략인 셈이다.

    이 조언은 현명한 탁견이기도 하였지만 사실 이에야스의 뜻에도 맞는 기분 좋은 의견이었다. 바로 차세대 주자는 이에야스! 전 일본에 이에야스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지금부터 철저히 준비하라는 조언인 셈이다. 하지만 이에야스에게 좋은 의견, 값진 교훈을 허심탄회하게 듣는 순진한 구석이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말하기보다 듣기가 먼저고 더 중요하다. 쓰기보다 읽기가 먼저고 더 중요하다. 하지만 듣기보다 말하려고 하고 읽기보다 쓰려고만 한다. 예나 지금이나 순진한 것이 바보처럼 놀림 받는 세상이다. 다소곳이 있으면 숙맥이라고 무시당하는 세태다.

    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당하고만 살다보면 순진한 마음을 유지하기 힘들다. 번번이 속고 배반당하면 그럴듯한 모든 말들이 다 거짓부렁 같다. 지혜로운 자는 지혜롭지 못한 어리석은 자를 즐거이 속여먹고 가짜가 진짜보다 판치는 세상이라 우리의 마음 둘 곳이 없다.

    하지만 순진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의 마음을 더욱 맑고 투명하게 갈고 닦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도 가짜들 사이에서 도매금으로 매도당한다. 순진하면서도 충분히 명철할 수 있다.

 

    당하고 또 당하고, 속고 또 속아서 한편 불쌍하지만 한편 비뚤어진 사람들이 있다. 좋은 것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나쁜 것을 들으면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 악으로 인해 신음하면서도 자신도 모른 채 악에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순진하지도 않을 뿐더러 현명하지도 않다.

    많이 배우나 적게 배우나 늙으나 젊으나 저마다 마음에 완고한 벽을 치고 살아가고 있다. 자기생각, 자기고집으로 꽉 차 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모두들 혹 당하지는 않을까 속지는 않을까 긴장하며 경계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약은 것일 수는 있어도 현명한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이로운 것도 아니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나를 설득하시오. 그럼 따르겠소.’의 열린 자세여야 한다. 순진한 것과 어리석은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히데요시의 목적은 명나라 원정이지 조선 원정은 아니었다. 조선왕 이연(선조)이 히데요시 군의 안내역으로 함께 명나라에 쳐들어갈 것으로 보고 그 쪽에 대해서는 그리 염려하지 않았다. (266p)

 

    임진왜란 전에 이어지는 조선과 일본의 외교는 서로간의 희망사항만이 이어지는 오해의 연속이었다. 자기의 뜻이 정확히 전달됐다고 여기고 전해져 오는 상대의 뜻은 자기 식으로 멋대로 받아들인다.

    히데요시도 김칫국, 일본사신도 김칫국, 선조도, 조선사신도 김칫국... 모두가 김칫국을 서로 질세라 앞 다투어 들이마시는 김칫국의 향연이다. 어쩌면 이렇게 상대의 생각과 실정에 어두운지 그저 놀라울 따름!

 

    히데요시의 희망은 명나라를 받들고 일본을 왜구로 낮춰보는 소중화(小中華)의 조선으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명가도(征明假道)는 한마디로 난센스! 더욱이 이런 히데요시의 서신은 선조에게 전해지지도 않는다. 일본사신은 공물을 요구하러 갔다가 일본 통일을 보고하고 온다.

    이는 사신의 역할을 담당한 쓰시마의 요시토모와 그의 장인인 사카이 출신 고니시 유키나가가 중간에서 농간을 부린 것이다. 쓰시마는 조선과의 밀무역이 주 수입원이어서 내심 전쟁을 원치 않았다. 한편으론 히데요시를 제외하고 사카이 상인들을 비롯한 모두가 전쟁에 반대하니 설마 전쟁이 일어날리 없다고 여겨 얼렁뚱땅 얼버무린 것이다.

    조선을 방심케 하려는 고도로 계획된 기만술이 아니라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설마설마 하다가 설마가 사람 잡은 꼴이 된 것이다. 이것은 조선도 마찬가지! 조선사신인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의 의견도 갈리고 선조는 보고를 받고 자신의 희망대로 전쟁은 없을 것이라 판단한다.

 

    인간사, 참으로 어이없는 착오와 오해가 많다. 그만큼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있다는 얘기다. 만일 정확한 정보가 히데요시와 선조에게 들어갔다면 그들은 더 현명한 판단을 하였을까? 조선과 일본과 명에 걸친 수많은 백성들의 희생이 없었거나 줄일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순 없지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거간꾼들이다. 가장 증오하는 것이 중간에서 비틀고 왜곡하며 장난치는 자들이다. 물건과 정보를(특히 정보를) 중간에서 매개해주고 가공하는 중간자들! 바로 조중동 같은 간악한 자들! 군대로 치면 허위보고하는 자들!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일그러진 거울은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

 

 

    앞서 고니시 유키나가와 접촉해 온 명나라 사람 심유경과 유키나가는 422일 용산(龍山)에서 다시 만나 강화조건 검토에 들어갔다. (395p)

 

    소설에서 다루어진 임진왜란은? 지들끼리 일본 내에서 다툰 것을 묘사한 것에 비하면 너무할 정도로 짧고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가고 있다. 대략 이순신 장군에 대패하여 곤란을 겪었다정도! 하지만 이 전쟁은 조선은 물론이고 당시 동아시아 전체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온다. 일본의 히데요시는 이를 계기로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명나라 역시 국운이 쇠하기 시작한다.

    일본조선전쟁인데 강화의 주역은 명나라와 일본이다. 가쓰라 테프트 밀약도 마찬가지! 한국전쟁 휴전협정도 마찬가지! 모두 우리는 제외되었거나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우리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문제인데도 명과 일본, 미국과 일본, 북한과 UN(사실상 미국)이 주역이었다. 이러한 외교, 국방의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

 

이것은 개허탈!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의 외교를 보면 한 치도 나아진 것이 없다. 북한 제외 5자회담을 제의하자 중국 반대, 미국 일본 별무반응. 미국 일본마저 현실성을 낮게 보고 큰 의미를 두지 않은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자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추진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와중에 북핵 실험 전 미국 북한 간 평화협정이 추진됐었다는 뉴스가 날아들었다. 비록 불발되긴 했지만 의미하는 바가 크다.

    여기에 더해 어제오늘 미국과 중국이 만나 안보리 대북 제재안에 합의하면서 사드가 물 건너가는 눈치다. 돌아가는 꼴이 우습다! 앞장서 방방 뛰었던 한국의 입장이 궁색해졌다. 흥분해서 막 던지더니 닭 쫓던 개꼴이다. 사드는 그렇다 치고 개성공단은 장차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한 일이다.

 

이것은 개창피!!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청와대도 몰랐던 북미, 미중 간 직거래라면 망신이다. 일련의 강경책이 뻘쭘해진다. 이미 인지, 예상하고서 취한 조치였다면 문제는 더 고약해진다. 전자는 미국에 대한 과잉충성이고 후자는 미국을 인질로 끌고 들어간 셈이 되기 때문이다. 전자는 비루하고 굴종적인 것이고 후자는 야비하고 영악한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눈치 없이 오버하는 것도 문제지만 미국이 유화책으로 돌아설까봐 의도적으로 오버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정권의 이익을 위해 사태를 고의적으로 악화시키는 자해공갈이다.

    굴종이거나 영악이거나, 어느 경우든 자해적 셀프제재인 개성공단 폐쇄의 황당함을 설명할 수 있다. 이 둘이 아닌, 비록 멍청한 것도 불순한 것도 아닌 박 대통령의 순수한 결단이라 해도 현명한 대응책이 아니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다.

 

    지나친 긴장완화는 새누리당에 좋지 않다. 평화무드가 넘실대고 평화협정에 북미수교까지 간다면 대북강경파가 설 자리가 없다. 색깔론을 써먹을 수가 없다. 당장 413 총선에도 악재다. 총풍사건, 전작권 반환 사양, 이번 일련의 대북강경책까지 이것으로 모두 설명가능하다.

    이는 일종의 인계철선으로 미국을 계속 한반도에 묶어두자는 것이다. 계속 적당한 긴장상태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새누리에겐 냉전이 이익이고 편안하다. 일종의 냉혈동물! 가장 살기 좋은 최적의 온도는 36.5도가 아닌 대략 10도 안팎이다.

 

    바야흐로 온도가 10도 이하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낄 데 안 낄 데 구분 못하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 같다. 끼어야 할 데는 못 끼고 끼지 말아야 할 데는 끼이고, 운전이 좌충우돌 엉망진창이다.

    기본적으로 북핵은 미국 북한 간, 사드는 미국 중국 간에 풀어야 할 문제다. 이런 경우 우리는 은근슬쩍 뒤로 비켜서는 것이 현명하다. 반면 한반도 비핵화와 경제협력을 위한 6자회담, 북미 간 평화협정 같은 대화에는 적극 끼어들어야 한다.(물론 훼방 놓기 위해 끼어들란 얘긴 아니고)

    싸움에는 미련하게 중간에 끼어선 안 되고 흥정에는 과감하게 앞으로 나서야 한다. 중간에서 새우등 터지지 말고 이익과 신뢰를 얻어야 한다.

 

    역사를 공부하면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비슷한 곳, 비슷한 역학관계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오해에 오해가 겹쳐 전쟁이 일어났다. 설마설마하다가 사람들이 죽어났다. 누군가 말리겠지 하다가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우리 뜻과 상관없이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가볍게 부화뇌동할 때가 아니다.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비상한 사고가 필요한 시절이다.

 

 

    요도가 또 잉태했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것은 히데요시의 자식이 아니다. 히데요시에게는 자식이 없다. 어디까지나 자차히메 한 사람의 아이니 그리 알고 조처하라. 몇 번이나 되풀이하지만 아이 이름은 히로이라고 부르도록 할 것. 천한 아랫것들에 이르기까지 결코 님이니 하는 경어를 일체 붙이지 말고...... 히로이, 히로이 하고 막 부르도록 지시할 것.” (402p)

 

    자차히메(곧 요도마님)가 또다시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사카를 떠나 있던 히데요시가 네네(첫째 정실부인)에게 보낸 편지다. 네네는 자차히메 측 오쿠라 부인에게 이 편지를 보여주지만 오쿠라 부인은 이 편지에 담긴 진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정을 알지 못하면 누구라도 파악할 수 없다. 표면상 임신을 기뻐하는 말도, 태어날 아이에 대한 애정도 씌어있지 않았지만 실은 이 편지엔 히데요시의 기쁘고 또 기뻐하면서도 자기 스스로 겸연쩍어하고 경계하는 지극한 마음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지금 히데요시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부부 사이의 글은 부부가 아니면 모를 때가 많은 법이다. (403p)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조강지처 네네만큼 히데요시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죽은 쓰루마쓰의 아명은 스테마루(棄丸), 이번엔 히로이(마루) ()이다. (후의 토요토미 히데요리) 첫째는 버려진 아이, 둘째는 주운 아이다. 너무 귀하게 키우면 오히려 잘 자라지 못한다는 속설에 따른 것으로 우리도 못살고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옛날에는 개똥이, 소똥이라고 일부러 천하게 불렀던 풍습이 있었다.

    가뜩이나 첫째를 어린 나이에 가슴 아프게 보냈던 히데요시, 이제는 체념하고 포기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59세의 나이로 늦둥이를 갖게 된 히데요시가 내 자식이 아니라고도 하고 히로이로 부르는 것도 모자라 절대로 님이니 하는 경어도 붙이지 말라고 한다. 그 기쁨이, 그 걱정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이 기쁨과 걱정은 객관적 현실을 부정하고 비현실로 비약시킬 정도로 강하다.

    현실이 비현실인 것 같이 너무도 기쁘기 때문에 오는 역설이다. 이전의 비극적 현실을 이번만은 비현실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조작한 주문이다. 이는 너무도 좋아하면 똑바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너무도 행복하면 이 행복이 깨질까 불안하고 두려운 것과 같다.

 

    히데요시의 서민적 성정과 절절한 아빠사랑이 잘 드러나고 느껴지는 대목으로 일본의 평민영웅인 히데요시는 미소를 짓게 하는 소박함과 예상을 벗어나는 웅대함의 양면을 동시에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대망(大望)7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