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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 DIY

DIY & 짜맞춤 목공 졸업기(卒業記)

어멍 2013. 6. 3. 22:47


    DIY & 짜맞춤 목공 졸업기(卒業記)

 


    DIY 목공 - 2012년 3월 8일부터 4월 26일까지, 대전시 서구 괴정동 우드플랜에서 수강

    짜맞춤 목공 - 2012년 7월 18일부터 2013년 4월 25일까지, 대전시 유성구 상대동 도드리 목공방에서 우익동 선생님으로부터 수강



    졸업기라고 하니 무언가 마스터한 냥 거창하게 들려 쑥스럽지만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굳이 졸업이라면 목공 중딩 과정 졸업이랄까!

    애초에 이사가 겹쳐 집안에 필요한 이것저것 만들고 끝낼 요량으로 흥미 반 필요 반 시작한 목공인데 벌써 1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처음 생각한 여정보단 많이 왔다.

    아직 실력도 미천하고 배워야 할 것도 많지만 시간도 많이 지났고 웬만한 건 다 만들었으니 이제 잠깐 쉬고 후일을 기약할까 한다. 아마 내 나이 이르면 50대 후반쯤에는 다시 취미목공을 시작할 수도 있으리라.


    목공은 동적이면서도 정적이고 정적이면서도 동적이다. 이론과 실기, 힘과 섬세함, 과감함과 치밀함이 동시에 요구된다.

    이론과 실기 중엔 역시 실기가 중요하다. 목공은 기본적으로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닌 몸으로 하는 것이다. 톱질, 끌질, 대패질은 몸이 익히고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몸이 기억하는 정도에 따라 발달되는 근육도, 몸의 모양도 변해간다. 아무리 우람한 미스터 코리아라도 호리호리한 목수의 대패질을 따라갈 수가 없다.

    힘과 섬세함 중엔 힘이 중요하다. 기계로만 작업한다거나 쉬엄쉬엄 일 년에 하나 만든다면 모를까 수공구로 꾸준히 작업하려면 어느 정도 힘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과감함과 치밀함 중에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면... 치밀함이다. 목공은 1미리와의 싸움이다. 1미리 코앞까지는 과감하게, 시원시원하게 접근하고 코앞부터는 세심하게, 치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100미리 앞부터 깔짝깔짝 소심하게 접근해서는 일의 진척이 없고 1미리 앞에서 함부로 과감하게 힘자랑을 해서는 작품을 망치고 만다. 이제까지의 모든 수고가 물거품이 된다.


    목공은 일련의 과정이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의 모든 과정을 꿰고 있어야 하며 항상 다음 단계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진행하는 용의주도함까지 요구된다. 그 과정은 첫째 구상과 컨셉, 둘째 디자인, 셋째 수작업과 마감이다.

    가구, 목공예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본다면 때와 장소에 어울려야 하며 더 나아가 개성과 메시지, 시대적 조류와 철학까지 담을 수도 있다. 샤넬에는 샤넬풍이 있고 작가에겐 자신만의 예술 세계가 있다.

    디자인은 이러한 구상과 컨셉을 기반으로 시각적, 입체적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이고 실재 작업은 단지 이것을 실현, 실행하는 과정에 불과할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실재 공정보다 디자인이 상위 개념이고 디자인보다 구상과 컨셉이 상위개념이다.

    의류회사라면 경영진이 유행과 트렌드를 고려하여 컨셉을 잡고 방향을 제시하면 디자이너들이 이에 맞게 그림을 그리고 이 디자인의 옷들을 공장에서 재단하고 바느질해서 만들어내는 식이다. 애플이라면 잡스가 방향을 제시하면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램을 짜고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해서 공장에서 아이폰을 조립생산해내는 식이다.

    하지만 1인 목수의 목공은 이것을 구별할 수 없다. 분업할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팔방미인이 되어야만 하고 자기 결과물을 100% 책임져야 한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우선인가?


    이론과 실기 중 실기가 중요하듯 목공기술, 손기술이 우선이다. 아무리 좋은 구상, 디자인이라도 기술수준이 받쳐주지 않으면 구현해 낼 수 없다. 현장의 기술을 익히고 사정을 알아야 역으로 좋은 디자인, 가능한 디자인이 나올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 단, 어느 정도의 타고난 자질은 필요하다. 그 자질이란 목공기술을 포함한 미적 감각과 철학, 인문학적 소양이다.

    예를 들면 (전통) 구조와 문양의 미적 가치를 알아보고 그것의 유래, 그것이 상징하는 바, 그 상징이 뜻하는 더 깊은 역사적 철학적 의미를 알면 그것을 디자인과 구상에 적용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전통과 현대성을 접목하여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목공에 웬 철학, 인문학까지... 너무 멀고 거창한가?! 물론 취미가 아닌 업으로 삼아 일가를 이루려면 반드시 공부해야할 분야일 수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에게 가까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제국주의의 전범기나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나치 문양으로 일명 ‘갈고리 십자가’)를 멋있다고 무턱대고 디자인에 가져다 쓰는 것은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무식하기 때문이다.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소양은 차치하고 최소한의 지식과 교양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디자인이 아닌 쓰레기, 일탈이 아닌 무지

얼마 전 디자인 전공의 일부 젊은이들이 일제 전범기(욱일기)를 배경으로

나치식 거수경례를 하는 합성사진을 별 문제의식 없이 SNS에 올려 물의를 빚었다.



    각설하고... 결론은? 반드시 실기를 기본으로 하여야 하고 그 바탕 위에 미적 감각과 인문학적 소양이 덧붙여져야만 더 넓고 더 깊고 더 높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거다. 잡스는 창고에서 컴퓨터 부품을 만지던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문학, 철학 등 인문학을 중시했고 샤넬은 바느질부터 배웠던 봉제사 출신이지만 미적 감각과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디자이너였다. 그들의 성공의 밑천은 기계조립과 바느질이었다. 모두 밑바닥 실기부터 익혀서 최고자리까지 올라간 입지전적 인물이란 공통점이 있다.

    연주할 줄 모르는 음악가, 그릴 줄 모르는 화가, 톱질할 줄 모르는 목수는 난센스다. 간혹 음악가를 육성하고 화가를 후원하고 사람들을 부려서 대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음악가, 화가, 목수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들은 단지 사장님, 회장님으로만 불릴 뿐이다. 그들은 연주와 붓질과 톱질이 주는 느낌을 알지 못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이건희보다 잡스를 좋아하고 이수만보다 양현석, 양현석보다 박진영을 좋아하는 이유다. 이건희는 애초부터 기술자가 아닌 재벌 2세 예비 회장님이었고 이수만은 가수를 접고 회장님으로 완전히 변신했다. 그를 가수라 부르는 것이 이제는 어색해졌다.


    목공은 재밌다. 그리고 유익하다.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창작을 통한 예술세계를 맛볼 수도 있다. 육체적으로 건전하고 정신적으로 유익하다. 한마디로 요모조모 머리를 써야하는 작업이다. 또한 정서적으로 좋다. 훗날 조용한 교외에 아담한 작업실이라도 만들어 음악을 들으며 쉬엄쉬엄 목공을 할 수만 있다면 참 행복할 것이다. 예수님도 목수 출신이셨는데 만약에 고난과 희생의 공생애를 사시지 않으시고 계속 목공을 하셨다면 개인적으로는 훨씬 행복하셨을 것이다.

    목공의 단점을 굳이 몇 가지 꼽으라면 시간과 정력이 많이 들어간다는 거. 하지만 오디오, 자동차, 사진, 골프, 낚시 등 몰입하면 어느 취미건 이건 다 마찬가지다. 오히려 어떤 취미보다도 경제적으로 유익하고 생산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먼지와 소음으로 인해 작업환경, 공간에 제약이 있다는 거... 정도. 부상의 위험이 있다는 정도다.


    나사못으로 뚝딱뚝딱 만드는 DIY 목공이야 너나 할 것 없이 수준차이가 별반 없지만 짜맞춤 목공에서는 개인별로 수준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덧셈, 뺄셈의 초딩 산수에서는 대부분 90점 이상을 받지만 변별력 높은 미분, 적분의 고등 수학에서는 0점에서 100점까지 천차만별인 이치다.

    나는? 객관적, 종합적으로 평가하기에 내 (짜맞춤) 목공 자질, 손기술은 중하 수준이다. 점수를 주자면 60점 정도?! 어차피 취미목공이니 좌절감까지야 아니지만 스스로에게 답답하고 화가 날 때도 종종 있었다. 사람이란 게 뭐든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속상하기 마련이니까.

    결론은? 노력과 반복이다! 노력에 노력을 더하고 100번 1000번 반복하다 보면 자질이 특출나지 않더라도, 아무리 자질이 꽝이라도 스스로 만족할 수준,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수준, 100점은 아니더라도 90점 정도에는 반드시 도달할 수 있다. 그러려면 장시간의 끈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정 여의치 않다면 기대수준을 낮추고 욕심을 줄이는 것이 현명하다. 누군가에게 100점 만점에 60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50점 만점에 60점을 주는 것이다. (ㅋ.ㅋ.ㅋ) 어차피 인생은 주관 아닌가!

    하지만 누구든 가능하지만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있음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목공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행복을 맛보는 건 상관없지만 쉽게 우쭐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칭찬에 시험받는다고 작은 칭찬에 천방지축 나대서는 안 된다. 멋모르는 문외한이 “오~! 대단한데!!” 감탄하더라도 전문가 고수에겐 귀여운 애교, 심심한 코미디로 보일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행위는 주관 결과는 객관, 작업은 주관 작품은 객관, 사건은 주관 사물은 객관이다. 그리기, 연주하기, 글쓰기, 만들기, 사랑하기는 주관이지만 그려진 그림, 연주된 곡, 쓰여진 글, 만들어진 것, 사랑 이야기는 객관이다. 꽁꽁 숨겨놓고 혼자 감상하고 자기 일기장에만 써놓지 않을 바에야 타인의 시선과 객관적 평가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결론은? 주관과 객관의 조화와 균형이다. 주관적으로 행복을 느끼고 객관적으로 실력을 닦는다. 속으로 행복을 느끼고 겉으로 겸손히 배움을 구한다.




고목에도 꽃을 피우고 칠팔십 노인도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세상에는 많은 사랑이 있지만 영화로 만들 만한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는 흔치 않다.



가구라기 보단 예술품에 가까운 우 선생님이 만드신 서안.

세상에는 많은 목공 결과물들이 있지만 예술이라 불릴 정도의 작품들은 흔치 않다.



내가 종서를 위해 얼렁뚱땅 거칠게 만든 종서 아기 헬펭의 침대.

하지만 모든 사랑, 모든 목공이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목공을 일단 접으려 하니 아쉬움 때문인지 실력 없는 아마추어 주제에 시시콜콜 감상도 많고 글이 길어졌다.

    이제까지 큰 부상 없이 목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참 감사하고 다행스런 일이다. 내가 만든 것 중 어디 가서 대놓고 자랑할 만한 전문가 수준의 작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위 여기저기 눈에 띌 때면 새록새록 반갑고 정이 간다.

    그동안 이끌고 가르쳐주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특히 목공의 진수는 톱, 끌, 대패임을 가르쳐주시고 새로운 목공의 신세계를 보여주신 우익동 선생님께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미루어 알아야 하는데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까먹으니 이 부족한 제자가 많이도 답답하셨을 거다.


    다시 톱과 끌을 잡을 그날을 기약하며...

    I will be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