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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열한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 (150308)

어멍 2015. 3. 8. 16:07


       열한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 (150308)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심판보다 용서를 기뻐하시는 온유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 길 잃은 양같이, 길 떠났던 탕자같이, 저희 성도들 세상에서 돌아와 주님 앞에 모였사오니 저희를 긍휼히 여기시어 저희의 지친 영혼을 품어 주시옵소서. 저희를 어여삐 여기시어 저희의 때 묻은 얼굴을 씻어 주시옵소서.


    주님. 지난 한 주 저희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지난주도 죄짓고 지난해도 죄짓고, 다음 주도 죄짓고 내년에도 죄지을 죄인입니다. /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는 이런 저희의 고집과 뻔뻔함마저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죄짓고도 무엇이 죄인지도 모르고, 잘못하고도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는 이런 저희의 오기와 어리석음마저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 저희는 회개 없이 축복만을 원하고, 기도 없이 응답만을 원하고, 헌신 없이 상급만을 원하고, 희생 없이 부활만을 원하였습니다. 저희는 교회 안에선 주님을 섬겼지만 세상 밖에선 바알과 마몬을 섬겼습니다. 교회 안에선 주님을 찬양했지만 세상 밖에선 주님을 매달았습니다. / 저희는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 평화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오소서 오소서 하면서도 막상 주님을 몰라보고 바리새인의 뒤를 쫓아 주님의 참뜻에서 멀어졌습니다. 교활하고 악한 이들의 말에 홀려 정직하고 의로운 이들을 때렸습니다. / 저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심장이 있어도 깨닫지 못하고, 깨닫더라도 간직하지 못하였습니다. 금세 잊어버리고 양처럼 흩어져 제 갈 길을 갔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도 각기 왔던 길을 그대로 다시 갔습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곳을 헤매며 주님께 닿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바라옵건대 저희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씀이 아니라 저희들이 들어야 할 말씀을 들려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원하는 것이 아닌 저희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고, 저희들이 탐하는 것이 아닌 저희들에게 부족한 것을 주시옵소서. / 눈먼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지성과 성령님을 영접할 수 있는 영성을 함께 주시옵소서. 못난 저희를 어여삐 여기시어 다윗의 용기와 솔로몬의 지혜를 이 나라의 시민들에게 부어주시옵소서. 교만한 저희를 긍휼히 여기시어 윗물이 썩었다면 탁하다면 아랫물을 맑게 하시고, 아랫물이 썩었다면 탁하다면 윗물을 맑게 하여 주시옵소서. / 주님의 맑은 생명수가 샘물처럼 솟아나게 하소서. 주님의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주님의 은혜가 파도처럼 넘치게 하여 주소서. / 그리하여 문화가 융성하고 풍습이 건전하고 도덕이 바로 선 염치를 아는 나라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나라에 주님의 참뜻을 따르는 진실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넘쳐나게 하시고, 그리하여 이 땅에 슬픈 예레미야의 비탄의 노래가 아닌 기쁜 천사들의 환희의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하시고, 그리하여 온 세상에 주님의 평화와 축복만이 가득 차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 우정교회 성도들 이러한 주님의 말씀과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라옵니다.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이 되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작은 씨앗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이 지신 큰 십자가를 따라 저마다 작은 십자가를 지고 뒤따르기를 감히 원하옵니다. 이런 저희를 어여삐 여겨 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저희를 보우하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고통 대신 평안을, 심판 대신 용서를 주신 예수님, 저희에게 기쁨을 주시고 대신 슬픔을 가져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 처음부터 끝까지 소박한 기복(祈福)보다 용서를 구하는 철저한 회개기도이고자 했다. 예전 기도문들에서 썼던 성도들의 건강과 안녕을 비는 기도, 목사님을 위한 기도까지 뺏다. 용서를 구하면서 상급을 기대할 순 없는 노릇. 그런 심정이랄까!

    과감한 생략으로 여느 주일 대표 기도문과는 다르게 파격적이다. 주제에서 내용, 표현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이고 무난하고 평범하고 소박한 기도문이 아닌 튀는 감이 많은 다소 무겁고 거창한 기도문이다. 지는 얼마나 깨끗하고 잘 났기에 회개를 빌어 이웃을 욕보이느냐, 무슨 자격으로 모두를 대표해 장황하게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느냐는 오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 사실, 오해가 아닐 수도 있는 이러한 합당한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완곡하게나마(혹 듣는 이에 따라선 노골적으로) 이 기도를 올린 것은 작금의 시대상이 내 감수성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 너무나도 답답하기 때문이다. 미안하고 부끄러워 아이들 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화나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깝기 때문이다. ㅠ.ㅠ

 


교활하고 악한 이들의 말에 홀려 정직하고 의로운 이들을 때렸습니다. - 이 부분은 현실에 있어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정치적 암시, 옳고 그름을 떠나 정파에 따라선 동의할 수 없는 내 개인적인 생각과 주장을 담고 있어 실제 대표기도 때는 뺐다. 즉, 교활하고 악한 이들은 이명박 박근혜 무리를, 정직하고 의로운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 무리를 뜻한다. 물론 현실정치에서 100% 악한 인간, 100% 선한 세력은 있을 수 없지만 이 둘은 '거기서 거기' 수준을 벗어나 뚜렷이 구별할 수 있는 비교우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윗물이 썩었다면 탁하다면 아랫물을 맑게 하시고, 아랫물이 썩었다면 탁하다면 윗물을 맑게 하여 주시옵소서. - ‘썩었다면’을 ‘탁하다면’으로 순화했다. 오늘날의 현실을 볼 때 마음 같아선 썩어문드러졌다는 표현마저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 문구는 윗물도 아랫물도 모두 탁하다는 간접적이고도 부드러운 표현인 셈.

    거세개탁!(擧世皆濁, 온 세상이 탁하다!) - 이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2012년에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그 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였다. 이를 증명하듯 이명박,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이 들어선 이래로 인권, 부패지수, 언론자유도, 국가경쟁력 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리고 사정이야 어찌됐든 이들은 우리가 선택한 정권이고 이 모두는 우리가 초래한 결과다.

    윗물이 썩으면 아랫물도 썩게 되고 아랫물이 썩으면 윗물도 썩게 되고,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게 되고 아랫물이 맑으면 윗물도 맑게 된다. 결국 윗물과 아랫물은 따로 있지 않고 함께 있는 하나다. 윗물이건 아랫물이건 한곳에 담겨 있는 모두의 책임이다.


    이 속담이 ‘윗물(상류)이 맑아야(만) 아랫물(하류)이 맑다’는 다른 공간, 다른 시간대의 물리적 의미라면 80점! 상류가 탁하더라도 중류, 하류를 거치면서 주변 환경이 깨끗하다면 정화되어 맑아질 수도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이 속담이 ‘상류사회(사회주도층)가 맑아야(만) 하류사회(일반시민대중)가 맑다’는 (거의)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의 사회적 의미라면 40점! 왕조사회라면 몰라도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시민의 권리와 함께 의무도 강화됐다. 시민이 깨끗해야 되고 깨끗하다면 얼마든지 깨끗하고 유능한 인물들(윗물)을 위로 밀어 올릴 수 있다. 한 사회가 부패하고 타락했다면 그 사회의 구성원인 일반대중, 시민, 유권자의 책임이 가장 무거워진 것이다. 따라서 다윗의 용기와 솔로몬의 지혜가 가장 필요한 것 역시 바로 이들이다. 바로 우리들이다.

    무엇보다 윗물 아랫물, 상류사회 하류사회, 지배층 피지배층으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사고방식이다. 굳이 좀 더 현실에 맞게 수정한다면 ‘아랫물이 맑아야(만) 윗물이 맑다’ 정도 될 것이다. 원래의 속담은 이미 (정치사회적으로는) 시대에 맞지 않은 유물이 되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