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0103 : 데살로니가전서, 후서
저자 : 사도 바울
주요 인물 : 바울, 실루아노, 디모데
기록 목적과 대상 : 데살로니가전서, 후서는 데살로니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여진 편지로 바울이 쓴 13권의 서신 중 일반서신으로 분류된다.
데살로니가전서는 그리스도께서 곧 다시 오시리라고 단정하고 무위도식하거나, 신자가 된 후로도 부도덕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먼저 죽은 자들의 부활 문제로 고민하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대망과 성결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데살로니가후서 역시 그리스도께서 곧 오신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일상생활에 충실하지 않고 들떠 있는 일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성도의 인내와 일상에의 충실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
형제 여러분, 정확한 때와 시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6절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깨어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5장 15절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서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도록 힘쓰십시오.
16절
항상 즐거워하십시오.
17절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18절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님의 재림, 최후의 심판에 대해 정확한 때나 시간을 말하는 것은 백이면 백 사이비이단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이제까지 시간을 특정한 어떠한 심판의 예언도 맞은 적이 없다. 종말론은 사람을 미혹하는 사술(邪術)이다.
그런데도 왜 매번 사람들은 넘어가는가? 인간이 원래 약하기 때문이다. 어리석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음이 약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탄은 인간의 ‘악한 죄성’과 더불어 ‘나약한 비루함’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어찌해야 하는가? 강하고 올바른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각성과 감사와 기도다. 항상 즐거워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언제나 깨어있어야 한다.
그 감사는 빌립보서 4장 4절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하거니와 기뻐하십시오.’처럼 절대기쁨, 절대감사다.(☞ 성경읽기 0101) 그 기도는 죄를 지었으면 용서받기를, 죄를 짓지 않았으면 계속 짓지 않기를 기도하는 끊임없는 기도다. 그 각성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기다리며 항상 깨어있는 것이자 나태와 방종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의 윤리적 감수성을 예민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보통은 감사와 기도가 교회 안에서 주로 강조되고 있다. 각성은 이에 비해 덜 얘기되고 있는 느낌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도합니다.’ ‘기도합니다.’ 많이 할수록 좋다. 하지만 어느덧 습관적 관용어가 되지는 않았는지... 진짜 감사하는지, 진짜 기도하는지, 무얼 감사하는지, 뭘 위해 기도하는지... 한번쯤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주님의 가르침에 충실한 깨어있는 종으로서 진정한 감사, 정당한 기도를 하고 있는가? 돈, 명예, 권력, 자랑 등 세상의 것들을 바라며 아침에 기도하고 저녁에 감사하고 있지는 않은가? 감사와 기도는 주님의 가르침에 대한 깊은 이해와 주님의 공의에 대한 각성 안에서만 참되고 가치 있다. 도덕적 각성 안에서만 빛난다.
기쁨과 감사와 기도는 좋다. 슬픔보다 좋고, 미움보다 좋고, 저주보다 좋다. 하지만 기뻐하라고, 감사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때리면서 웃으라는 것이 괴로운 일이라면 이것은 불편하고 고약한 것이다. 기쁨, 행복, 감사, 기도는 철저히 자발적으로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은 참된 것, 옳은 것을 원하신다는 거다. 10억 자랑질을 100억 자랑질로 통쾌하게 날려버릴 때의 기쁨, 사기치고 들키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 몸은 더럽고 냄새나도 포만감에 단잠에 빠진 돼지의 행복,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위한 기도는 주님이 원하시는 그것이 아니다.
아 행복하다! 아 감사하다!
우리는 어떤가? 나는 어떤가? 참된 기쁨, 진정한 감사, 올바른 기도를 하고 있는가? 지금 당장 주님이 내게 오신다면 떳떳하게 그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나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깨어 있는가?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항상 즐거워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단, 깨어서 하십시오. 어둡고 낮은 지하에서 하지 말고, 밝고 높은 망루에서 하십시오. 흐리멍텅한 상태가 아니라 맑고 명료한 상태에서 하십시오.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
누가 뭐라고 해도 속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지옥에 속한 악의 자녀가 나타날 때, 주님의 날이 임할 것입니다.
4절
그는 심지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그 곳에 앉아서 자기가 하나님이라 주장할 것입니다.
9절
그는 사탄의 힘을 빌어서 큰 능력을 보일 것입니다. 많은 거짓 기적과 표적을 행하는 것은 물론,
10절
진리를 사랑하고 따르기를 거부한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꾀를 사용할 것입니다.
‘악의 자녀’는 사탄의 대리인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많은 기적과 표적을 행하는 등 초자연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출현은 일시적인 현상이고 그 후에 주님이 재림하셔서 그를 멸망시킨다.
동트기 전의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어둠이 빛을 모두 몰아내 사방이 암흑이다. 힘센 도둑이 몽둥이를 들고 선량한 행인들을 패고 있다. 악인들이 대로를 점령하고 의인들은 구석에 숨어있다. 악의 우두머리는 성전에 들어가 그 곳에 앉아서 자기가 하나님이라 주장한다. 이 정도는 돼야 우두머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정도 권능과 담대함이 있어야 적그리스도라 불릴만 하다. 가장 악한 이야말로 가장 선하게 보인다. 이것이 악마성의 진면목이다.
두 얼굴을 동시에 보이는 야누스는 어설프다. 짝퉁 야누스, 가짜 야누스다. 심지어 해학적인 웃긴 야누스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사실주의 연극을 좋게 보지 않는다.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뭐가 연극이고 뭐가 현실인지 관객을 혼란에 빠뜨릴 위험성도 있다.
연극은 연극다워야 한다. 몰입을 위해 사실성을 강조하더라도 항상 연극임을 드러내는 장치를 알게 모르게 숨겨둬야 한다. 탈춤은 정직하다. 시작부터 탈을 드러냄으로서 오히려 정직하듯이 연극은 현실을 지나치게 흉내 내서는 안 된다.
그림도 그림다워야 한다. 사진과 구별이 안 되는 극사실주의 화풍의 그림은 가치가 없다. 그럴 거면 차라리 사진이 낫다. 잠시 신기함, 호기심, 낯설음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다. 하지만 얼굴을 디밀어 훑어보고 지나칠 뿐 특별히 남는 감흥이 없다.
의인도 의인다워야 한다. 그럼 악인은 악인다워야 하는가?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악인은 의인답다. 완벽히 의인다워야 완벽한 악인이다.
하급 야누스 - 동시에 두 얼굴을 보여주는 어설픈 아수라백작
<마징가 Z>에게 매번 도전하고 매번 무참히 깨지는 사랑스런(!) 감초 케릭터
중급 야누스 - 얼굴이 뒤에 있지만 정직하긴 마찬가지
고급 야누스 - 인심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희대의 학살자 아돌프 히틀러
종말의 날, 심판의 날은 언제인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모두가 모른다. 단, 언제인지는 몰라도 그 때의 모습은 이러할 것이다.
선이 악이고 악이 선이다. 위가 아래고 아래가 위다. 사탄이 천사고 천사가 사탄이다. 예수님이 바알세불이고 바알세불이 예수님이다. 모두가 뒤집혀졌다. 하지만 뒤집혀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느 풍경처럼 정상적으로 보인다. ‘누가 뭐라고 해도 속지 마십시오.’ 하지만 모두가 모르고 속고, 혹은 알면서도 속는다. 못 본 체 속아준다.
무엇인가? 그 때의 모습은 이상해 보이지 않고 평범해 보일 것이다. 살과 피가 튀는 붉은빛이 아니라 냉소와 무관심의 회색빛일 것이다. 뜨겁지 않고 차가울 것이다. 그 차가움이 극에 달했을 때 불의 정화가 있을 것이다. 심판은 불로 하지만 심판을 받는 세상의 모습, 그 본질은 차가운 얼음이다. 참으로서 거짓을 심판한다. 악은 흉한 얼굴 위에 아름다운 가면을 쓰고 있다. 흉하든 아름답든, 가면을 벗든 쓰든, 악의 본질은 거짓이다.
끓기 전의 물은 언뜻 보면 다르지 않다. 지금은 몇 도인가? 온도계, 그도 없으면 손이라도 넣기 전에는 알 수 없다. 9도인지 99도인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주님의 뜻을 행하며 항상 깨어있으라!
데살로니가전서, 후서. 끝.
PS : 이거슨?................ 코믹 야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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