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때론 먹의 향내가 나는 글과 음악 그리고 사람

성경, 신앙생활

성경읽기 0056 : 예레미야애가 2장~5장

어멍 2011. 2. 12. 00:01
 

    성경읽기 0056 : 예레미야애가 2장~5장



    저자 및 주요 인물 : 예레미야

    핵심어 : 분노, 비탄

    주요 내용 : 하나님의 분노와 예루살렘 성의 멸망과 예레미야의 슬픈 탄식. 예레미야 哀歌, 곧 Lamentations (of Jeremiah)는 예레미야가 부르는 슬픈 노래란 뜻으로 lamentation은 비탄, 애도.



2장 11절

내 눈이 눈물로 상하고 간과 심장이 녹는 듯하다. 딸 같은 내 백성이 망했으므로, 창자가 끊어진다. 어린이와 아기들이 성 광장에서 쓰러져 죽어 가고 있다.

12절

그들이 자기 어머니에게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에 있어요?”라고 묻는다. 그들이 부상당한 군인들처럼 성 광장에서 쓰러지고 어머니 품에서 죽어 간다.


4장 9절

칼에 죽은 사람이 굶주려 죽은 사람보다 낫다. 밭에 먹을 것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고통 속에 굶주려 죽는다.

 

    전편 <예레미야>에 이어 계속해서 예루살렘의 멸망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전편이 왕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한 굵직굵직한 사건, 전쟁의 참상에 집중했다면 이편은 백성들을 중심으로 한 자세하고 구체적인 멸망의 모습과 비참한 좌절, 도덕적 타락, 무질서의 모습을 굶주림에 집중하여 슬픈 곡조로 노래하고 있다. 전편이 비교적 서사적이라면 이편은 비교적 서정적이다.

    전쟁과 기아와 질병, 인간이 태초부터 고통당해온 3대 재앙이다. 전쟁과 약탈이 휩쓸고 간 예루살렘에는 이제 기아와 질병만이 남아있다. 차라리 적군의 칼에 맞아 죽을 것을... 초점을 잃은 어린이와 아기들이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헤매다가 광장에서 픽픽 쓰러지고 있다. 이 어린 자녀들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지상의 살아있는 지옥, 고통스럽다기보단 슬픈 지옥이다.


    간과 심장이 녹고 창자가 끊어진다. 보통 감당할 수 없는 극한의 슬픔을 단장(斷腸)이라고 표현한다. 예루살렘의 죄악상을 꾸짖고 그 멸망의 앞날을 내다본 예레미야는 끊임없이 경고하지만 끊임없이 외면당할 뿐이다. 이제 그에게 남겨진 일,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슬퍼하는 일뿐이다. 그가 긍정적이지 않고 부정적인 인간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저주와 악담을 퍼붓는 불평불만자이기 때문은 아니다. 정직하고 진실하고 명철한 주의 신실한 종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빛으로 나가고 있는가? 어둠으로 나가고 있는가? 우리에겐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 그 지으신 세계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예언자가 필요한가? 우리의 죄를 경계하고 다가올 앞날을 경고하는 예언자가 필요한가?


    요 며칠 우울하고 슬픈 뉴스가 잇달았다. 자세히 언급하기에 너무 슬프고 부끄러울 지경이다. 부모가 3살배기 아기를 때려죽이고, 자식은 부모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30대 시나리오 작가가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번번이 정말 죄송합니다"란 쪽지를 이웃에 남기고 죽었다.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대량으로 매몰되는 광경은 가슴을 할퀴는 야만의 풍경이었다.

    사람도 죽고 소, 돼지, 닭도 죽고 그것이 묻힌 흙과 물도 죽어가고 있다. 4대강, 난개발로 산도 죽고 강도 죽고 자연도 죽어가고 있다. 들짐승, 산짐승, 물짐승에 가축과 인간까지... 줄지어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가고 있다. 분명 무언가 잘못돼가고 있다.



<황금광 시대> - 구두를 먹고 있는 찰리

시나리오, 영화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냉엄하고 비참할 뿐!



    사회가 전체적으로 활력을 잃었다. 모두가 말을 잃은 듯 침묵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들도 오기가 바닥난건지 뻘쭘해져서 입을 닫고 있다. 감싸주기도 지쳤고 비판하기도, 대안을 내놓기도 지쳤다. 심지어 한나라당, 조중동마저 무기력하니 생기를 잃었다. 오직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만이 연신 떠들어대고 있는 형국, 하지만 모두가 그러려니 체념하고 있는 모양새다.

    왜 이리 인심이 흉악해졌나. 도덕이 땅에 떨어졌나.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게 됐나. 생명이 아닌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나... 활력↓, 자부심↓, 신뢰↓, 희망↓, 긍지↓, 도덕심↓, 이타심↓, 측은지심↓, 수오지심↓, 겸양지심↓, 품위↓, 정의감↓... 모든 게 추락, 후퇴하고 있다. 심지어 요 몇 년 사이 성직자들의 범죄율도 올라갔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소망교회 얘기며, 한기총 회장 선거를 둘러싼 얘기며, 그 자세한 뒷이야기들을 듣노라면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교회 다닌다고 말도 못할 지경이다.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적 위치에 있는 지식층, 권력자, 위정자들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의 진정한 선지자, 예언자라면 분명 예레미야처럼 죄를 꾸짖고 재앙과 심판을 경고할 것임이 분명하다.


미국에서 유명한 CEO들을 많이 만나봤다.

그런데 첫 번째 이명박은 별로 잘 아는 것이 없다.

샌디와이어 시티그룹 CEO를 처음 만나봤다. 프리젠테이션을 하면 그 말이 맞는지를 체크해봤다. 시티그룹 160개 회사 하나하나를 잘 알았다.


CEO는 디테일한 지식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명박은 디테일이 없다.

하나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분석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간다고 해보자.

문 두개 열고 가면 쉬울 텐데, 제일 빠른 거리로 벽을 부수면서 가는 스타일이다.

대가리를 박아가면서 가는 스타일이다.


경제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그때 당시 2000년, 이명박보다 훨씬 잘 알았다.

언어가 되지 않았다. 대화가 되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몰랐다.

 

작전 중 해적들이 못 알아듣게 우리 군인들이 선원들과 한국말로 대화하라는 아이디어는 이 대통령이 냈다.

 

    첫 번째 박스는 2007년 12월 19일 김경준씨가 변호인 접견시 이명박 당시 대통령후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답한 말이다. 두 번째 박스는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친히 낸 아이디어라고 자랑하는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설마 소말리아어나 아랍어는 아닐 테고) 거칠고 배운 것 없는 사회 밑바닥 해적들이 영어를 알아들었을까? 알아듣든 못하든 같은 한국인끼리 비밀스레 주고받을 대화를 영어로 광고할 일 있나? 그 전에, 한국인 선원과 한국말로 대화하지, 그럼 영어로 대화하는가? 선원들이 한국말보다 영어에 더 능통한 최고 엘리트 인재였나? 해적들과 선원들을 비하하자는 말이 아니고 이치가 그렇고 상식이 그렇다는 거다.

    이것을 아이디어라고 낸 대통령이나, 그것을 무슨 번뜩이는 아이디어인양 홍보하는 참모들이나, 그것을 또다시 앵무새처럼 내보내는 방송언론이나 참 보기에 민망하고 한심할 따름이다. 해가 동쪽에서 뜬 게 당연하고 그래서 뉴스가 아니듯 이것은 아이디어도 아니고 자랑거리도 아니다. 한마디로 하나마나한 얘기다.

    단무지! 단순, 무식하다. 맨 위가 바보니 모두가 바보! 한통속으로 코미디다. 청와대가 봉숭아 학당이 됐다. 김경준씨의 일방적 주장이더라도 이러한 이 대통령의 숱한 언행을 보면 그의 인물 비평이 소름이 끼치도록 현실과 일치함을 부정할 수 없다. 딱 “벽을 부수면서, 대가리를 박아가면서 가는 스타일”이다.(대가리란 말이 비속어라 성경읽기 포스팅에는 어울리지 않으나 인용의 정확성을 위해서 그대로 옮겨온다.)


    내가 특히 아쉬운 것이 이것이다. 도덕성은 물론이고 지적 수준뿐만 아니라 품위가 너무 없다. 인간의 기본적 품성, 인간성이 너무 낮다. 공은 챙기고 과는 떠넘기고, 좋은 일엔 숟가락만 달랑 들고 덤벼들고 궂은 일엔 36계 꽁무니를 빼는 폼이 정이 안 간다. 이명박씨가 대통령 자리에 있음으로 해서 사회의 전체적인 문화 수준, 품격이 땅에 떨어졌다.

    ‘인간’ 이명박이 ‘대통령’ 이명박을 훼손하고 국격까지 떨어뜨리고 있다. 대통령 수준이 너무 천박해서 국민 노릇하기 힘들고 창피하다. 자부심이 없다. 무엇보다 거짓말 좀 안했으면 싶다. 거짓말 하더라도 좀 미안한 시늉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약 올리듯 싱글생글 웃고 까불며 말을 바꾸고 거짓말 하는 것을 보면 뭐 저런 인간이 있나 싶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일곱 가지 중에 하나도 거짓말이고, 십계명에도 거짓증언하지 말라 했으며, 예레미야 역시 거짓말을 늘어놓는 예언자와 제사장들을 가장 증오, 저주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상습적 거짓말 하나만으로도 국민들에게 불신임, 탄핵받기에 충분하다. 죄와 악의 본질은 거짓(말)이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겁난다.



5장 7절

우리 조상들이 죄를 지었으나 이제는 가고 없습니다. 그들의 죄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당합니다.

 

    세상만사 주인 없는 무덤 없고 원인 없는 결과 없다. 길흉화복이 다 그 연유가 있다. 우리사회의 수많은 질곡과 모순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극복치 못하고 있다. 더욱 빠져들고 있다. 성스러움보다 비루함을, 빛보다 어둠을, 생명보다 죽음을, 하나님보다 돈을, 참됨보다 거짓을 좇으며 죄를 쌓고 있다. 쌓아 왔다.

    그 질곡과 모순의 뿌리는 무엇인가. 그 근원을 쫓다보면 대부분의 문제가 분단문제와 맞닿아 있고 거기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까지 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만으로도 우리 조상들의 죄요, 우리의 죄다. 유대민족 역시 그 멸망을 거슬러 올라가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분열과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이 쇠퇴와 멸망의 시작이었다.


    조상들의 죄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당한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 자손들이 고통을 당한다. 그리고 그것에서 우리 교회와 기독교인들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크다.

    주 앞에 정직하고 신실함으로서 죄를 면하고 멸망과 쇠퇴의 길에서 벗어나 평화와 번영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국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예레미야처럼 비탄에 젖어 통곡하는 일뿐이다. 거칠고 비루하고 유혹이 넘치는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들은 더욱 경계할 일이다.


    예레미야애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