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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성경읽기 0047 : 전도서 6장~12장

어멍 2010. 12. 26. 21:55
 

    성경읽기 0047 : 전도서 6장~12장



6장 1절

나는 사람들 가운데 흔히 일어나는 또 다른 악을 보았다.

2절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부와 재산, 영예를 모두 주셔서 더 바랄 것이 없게 하셨지만, 동시에 그가 이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시며, 타인이 대신 누리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허무한 일, 큰 재앙이 아닌가?


8장 14절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또 다른 허무한 일이 있다. 그것은 악인이 받아야 할 처벌을 의인이 받고, 의인이 받아야 마땅한 보상을 악인이 받는 것이다. 이것 역시, 내가 보기에 허무한 일이다.

 

    6장, 8장 모두 비슷한 맥락의 말씀이다. 남 보기엔 안타깝고 본인에겐 억울한 일이다.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조금이라도 맛본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남 보기에 그의 영광과 수고가 인정받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고군분투 고생만 하고 공을 이루었는데도 낼름 빼앗기고 도리어 오명, 누명을 쓰거나 잊혀진다면 그 누가 알아줄 것인가.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돈 없고, 빽 없고, 섹시하지도 약지도 않고 착하기만 한 아내, 수더분한 며느리가 수십 년 동안 알뜰살뜰 고생하며 집안을 일으켜 놓았더니 어디서 웬 젊고 야시시한 여자가 나타나 남편에게 여우처럼 꼬리치고, 자식들에겐 사탕 주며 꼬득이고, 시어머니에겐 온갖 선물을 갖다 바치며 알랑방귀를 뀌니 모두에게 구박받고 외면받아 쫓겨난다.

    나머지 식구들이 핀 가세로 호의호식하고 자신은 끝내 잊혀지고 고생만 하다가 쓸쓸히 홀로 죽어간다면 얼마나 가엾은 인생인가! 얼마나 억울한 사연인가! 죽은 본부인만 불쌍하다. 설혹 잘못 들인 아내로 집안이 풍비박산, 망한다 해도 과연 쫓겨난 조강지처, 속 깊었던 며느리, 자애로운 어머니를 어리석은 남편, 욕심 많은 시어머니, 철없던 자식들이 기억하고 용서를 빌까???


    드라마에서 자주 보이고 주위에서도 가끔 들을 수 있는 스토리다. 비유하자면 다윗이 고생고생 나라를 부흥시켜 놓았는데 정적에게 역적으로 몰려 쫓겨나거나 살해되고 어린 솔로몬은 왕위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통일왕국의 영광은 그 정적이 누리는 것과 같다.

    밥 짓는 사람 밥 먹는 사람, 똥 싸는 사람 치우는 사람, 돈 버는 사람 돈 쓰는 사람, 씨 뿌리는 사람 수확하는 사람, 수고하는 사람 누리는 사람이 다 틀릴 수 있다. 비유하자면 김영삼 대통령이 IMF로 나라를 말아먹고 김대중 대통령이 그 뒤치다꺼리를 하며 다시 일으켜 세우고, 노무현 대통령이 돈을 벌고 이명박 대통령이 그 돈으로 경제를 그럭저럭 꾸려나가는 것과 같다.

    금년에 있었던 미국 중간선거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오바마의 민주당이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크게 패배했는데 재밌게도 유권자를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이전 부시의 공화당 정권의 경기침체 책임이 더 크다고 답한 것이다. 결국 책임은 공화당에 있는데 민주당이 미워서 공화당 찍었다는 얘기! 인내심 없는 유권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고착화된 양당제의 패해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고 불합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스스로 인식하고 있으니 미국 유권자들은 그나마 낫다. 한국 유권자들이라면 경기침체의 책임은 이전 노무현 참여정부 때문이고 아직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거나 더욱 더 나빠지고 있는 건 노무현 탓, 세계경기침체 탓이다.

    착한 아내, 효성 깊은 며느리가 노무현이었다. 사랑받지 못한 아내, 쫓겨난 며느리가 노무현이었다. 국민들을 일방적으로 짝사랑한 죄, 하지만 국민들의 사랑을 얻지 못한 죄로 노무현은 오지 않는 국민들을 기다리다 죽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의 노무현 탓, 습관성 증오증후군은 아직도 그칠 줄을 모른다.

    불쌍하고 불쌍하다.




눈같이 포근했던 사람. 꿈같이 아름답던 사람



    무엇이 뿌리고 무엇이 열매인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눈 밝은 사람이다. 서로 반대되고 모순된 것 사이에서도 관통하는 공통점을, 서로 비슷하고 똑같아 보이는 것 사이에서도 차이점을 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명철한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날카로운 통찰력, 섬세한 혜안이다. 재물보다 값진 지혜다.

    봄에 씨를 뿌려야 가을에 추수를 할 수 있다. 모든 일엔 다 시차가 있다. 억울해도 할 수 없다. 덤탱이를 쓸 때도 있고 횡재를 할 때도 있다. 억울하게 욕먹을 때도 있고 이유 없이 칭송을 받을 때도 있다. 다 때가 있다.

    자신이 거두지 못한다고, 누리지 못한다고 수고를 아끼고 씨를 뿌리지 않을 텐가. 구더기를 저어하여 장을 담그지 않을 텐가. 후임자의 먹튀를 저어하여 지금의 살림살이에 힘쓰지 않을 텐가. 치워도 치워도 쓰레기는 생기고 먹어도 먹어도 배는 다시 고파 오니 손 놓고 있어야 할까. 모든 것이 허무할 뿐이니 부지런함은 소란일 뿐이고 지혜도 의로움도 신실함도 모두 무의미할 뿐일까. 우리 삶의 그 무엇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을까......

    자칫하면 극단적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다. 공(空)이고 무(無)다. 실지로도 욥기 이하 교훈, 지혜, 진리를 얘기하는 시가서들의 내용이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것이, 세속적 영광과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고민한 불교 등 동양사상과 유사한 점이 많다.


    뜻을 지키고 때를 기다려라. 감사함을 품고 현실에 충실하라. 하나님이 주신 빛나는 날들을 즐겨라. 모든 것엔 때가 있다. 모든 때는 공평하다. 썰물이 들 때가 있고 밀물이 들 때가 있다. 의인도 악인도 하나님의 법정을 회피할 수 없듯이 의인에게도 때가 있고 악인에게도 때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때(시간)를 초월하고 곳(공간)을 초월한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사랑은 영원하시다. 하늘 아래 그 분 외에 영원한 것이 없고 그 분 외에 의지할 곳이 없다.



7장 15절

나는 내 허무한 인생을 살면서 이런저런 일을 다 보았다. 의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망하는 의인이 있는가 하면, 죄악된 생활을 하면서도 오래 사는 악인이 있다.

16절

지나치게 의로운 체하지 말고, 지나치게 지혜로운 체하지 마라. 그러다가 망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17절

지나치게 악하게 굴지 마라. 어리석은 자처럼 굴지도 마라. 어찌하여 제 수명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죽으려 하는가?

18절

이것도 잡고, 저것도 놓지 않는 것이 좋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극단을 피할 것이다.

 

    의인의 고난, 악인의 형통... 욥기 이후 계속해서 제기되는 고민이다.

    제 아무리 의롭다 해도, 죄짓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전도서 7:20] 진정으로 의롭기는 어렵다. 완전하게 지혜롭기는 불가능하다. 지나치게 의로운 체하지 말고, 지나치게 지혜로운 체하지 마라.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 재앙을 받을까 두렵다.


    위선도 나쁘지만 위악 역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교만도 나쁘지만 과공도 보기에 좋지 않다. 과공은 비례(過恭非禮)라 했다. 겸손하게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야 한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억지로 꾸미지 않는다. 스스로 겸손하고 솔직한 이는 과공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가리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의 실세로 보선에 당선돼 특임장관이 된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이 여의도에 돌아와 여야 할 것 없이 만나는 이마다 90도 인사를 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예전보다 겸손해진 것일까? 하지만 12월 초에 있었던 새해 예산안 강행통과를 주도한 이가 바로 그였다. 그는 이에 항의하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고 뒤로 나가라는 동작을 취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런 경우는 과공비례가 아닌 과공사기(過恭詐欺)라고 해야 하나?!




교만한 사람을 멀리하고 굽신거리는 사람을 조심하라!



    “이것도 잡고, 저것도 놓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말은 한손엔 케익을 들고 한손엔 떡을 쥐고 무얼 먹을까 결정치 못하고 고민만 하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입에 문 고기도 먹고 싶고 물속에 비친 고기도 먹고 싶은 어리석은 개의 욕심을 뜻하진 않는다. 여차하면 이것을 잡고 여차하면 저것을 잡는 기회주의를 뜻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기계적 중립을 뜻하지도 않고 양비양시론을 뜻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균형, 조화, 중용을 말함이다. 열린 사고를 말함이다. 겸손이 실생활에서 드러나는 삶의 양식, 삶의 지혜다. 올인하지 말고, 극단으로 치닫지 말고, 폭주하지 말고, 어느 경우든 외통수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극단을 피할 것이다.”



12장 5절

그 때, 너는 언덕 오르기를 무서워하고, 거리에 나서는 것조차 두려워할 것이다. 살구나무에 꽃이 피고 메뚜기도 다리를 질질 끌 것이며, 식욕도 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영원한 네 집으로 돌아가면, 조문객들이 분주히 길거리를 오갈 것이다.

6절

은줄이 풀리고 금그릇이 깨어지기 전에, 물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두레박 끈이 우물에서 끊어지기 전에 너는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7절

그 때에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8절

설교자가 외친다. “인생은 허무하다. 세상만사가 허무하다.”


13절

세상만사의 결론을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다.

14절

하나님은 선악간의 모든 행위와 남몰래 한 모든 일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 때’는 죽음이 멀지 않은 늙은 때이다. ‘살구나무에 꽃이 피는 것’은 머리털이 희어지는 것을 이름이다.

    허무하다. 심지어 숙연하고 우울하다. 전도서의 핵심어는 허무다. 반면 허무한 인생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라고 한다. 매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즐기고 충실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것이 삶의 행복이요 목적이라고 한다. 듣기에 모순되는듯 하지만 이것이 결론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전도서의 핵심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Yet)’와 ‘그러므로(Therefore)’다. 둘을 통합하여 묵상할 수 있다면(‘Yet’ and ‘Therefore’) 모순은 해결된다.


    이 지상에서 선이 흥하고 악이 망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Yet) 의로워야 한다.

    인생은 허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Yet) 즐겨야 한다. 충실해야 한다. 감사해야 한다.


    인생은 허무하다. 그러므로(Therefore) 이것 말고는 인간이 달리 해야 할 일이 없다. 궁극의 보람이 없다.

    인생은 허무하다. 그러므로(Therefore)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좇는 일 외에 달리 우리의 본분이 없다.


    인생은 허무하다. '그러므로' and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유하고 의로워야 한다.

    하나님은 선악간의 모든 행위와 남몰래 한 모든 일을 심판하실 것이다.


    전도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