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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서른세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 (191013) - 조국정국과 명성교회 세습의 길을 터준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단 총회 결정에 즈음하여 (명예훼손 신고로 블라인드 조치 - 복원신청 - 복원 후 재발행함)

어멍 2019. 11. 16. 00:05

 



      대한예수교장로회명성교회 측의 신고로 지난 달 13일 발행하였던 <서른세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이 다음(DAUM)에 의해 임시폐쇄 되었다. 2018812일 발행, 201946일 동 명성교회 측의 신고로 임시폐쇄, 201956일 복원 게시된 <스물여섯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에 이어 두 번째다. 역시... 어떤 대목이 문제인지 납득이 되지 않아 복원신청을 했다. 다음은 다음(DAUM)에 복원신청하며 올렸던 의견.

  

    안녕하십니까? 수고가 많으십니다. ^.^

 

    이렇게 인사말로 복원신청서를 시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서요. 총 세 번째이고 대한예수교장로회명성교회 측 신고로는 두 번째군요.

    본인을 알 리 없으시겠지만 미지의 담당자 분이 왠지 낯설지가 않은 느낌이네요. 명성교회 측에서 직접 신고했는지 대리인을 통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동일인이실테니 신고인과도 정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

    혹 판단에 도움이 되신다면 저번 신고건인 <스물여섯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 (180812) - 명성교회 세습 적법결정에 즈음하여>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제 블로그에 복원 후 재발행된 상태입니다.

     또 신고하셨으니 귀찮지만 또 똑같은 취지로 복원신청을 해야겠군요. 거의 복사하여 붙여넣기 수준이지만 사정이 이러하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턴 대화체가 아닌 독백체로 하겠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를 취미로 시작한지 벌써 십년이 훌쩍 넘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방문객들과의 의견충돌로 댓글로 논쟁하고 저급한 육두문자도 많이 들어봤지만 명예훼손 게시물이라 하여 삭제요청 신고가 들어오고 해당 게시물이 임시(폐쇄)조치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중에서도 이번엔 특이한 케이스다. 똑같은 신고인에게 똑같은 취지로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먼저 별 것 아닌 본인의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유감이다. 나부터 돌아볼 일이다. 시비를 따지기 전에 김삼환, 김하나 목사님, 명성교회의 마음과 입장도 충분히 이해되고 그 방어권도 존중한다. 누구라도 찌르면 아프고 움찔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해당 게시물의 내용과 그 표현수위로 볼 때 이는 무분별한 방어권 남용으로 사료된다. 파워블로거도 아니고 큰 반향을 일으켰던 글도 아니어서 삭제되더라도 그만인 일이지만 납득이 안 되므로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또다시) 이의를 제기해 본다.

 

    명예훼손과 관련한 삭제요청의 요건이랄까?... 내가 생각하는 기준은 이렇다.

    첫째 내용의 진위 - 허위내용이면 당연 안 된다.

    둘째 표현의 수위 - 사실, 진실이라도 표현이 폭력적, 노골적으로 과격하거나 너무 저급하면 안 된다.

    셋째 의도성 - 개인 간의 원한 등에 의한 명백한 의도성, 목적성이 뚜렷하면 곤란하다.

    넷째 긴급성 -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 급속도로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안의 경중에 따라 일단 차단, 폐쇄부터 하는 것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다섯째 공공성 - 공익에 부합한다면 당사자의 기분이 상하고 권리가 일부 침해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비판적 발언권, 표현의 자유는 용납되어야 한다.

 

    해당 게시물이 위 기준 중 어디에 부합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제목인 <서른세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 (191013) - 조국정국과 명성교회 세습의 길을 터준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단 총회 결정에 즈음하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글은 개인 김삼환, 김하나를 비판, 비난할 목적으로 작성한 글이 아니다. 두 분이 주의 종이라는 목사님이어서, 교회 그것도 작은 시골교회가 아닌 내로라하는 대형교회의 사역을 담당하는 분이어서, 기독교계와 한국사회 전체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계시기에 작성한 것이다.

  

    이 글은 본문인 기도문과 그 아래 의견을 개진한 후기로 나눌 수 있는데 아마도 이 후기 부분에서 시비가 들어온 것 같다. (다음 측에서 임시조치를 취할 때 왜? 어느 대목이 문제가 되었는지 되도록 구체적으로 알려줬으면 좋겠다.)

 

    기도문 본문은 명성교회나 김삼환, 김하나 목사님에 대해 일언반구 직접적 언급이 없으니 전혀 해당사항이 없을 테고 후기 부분은 명성교회 세습공방과 관련된 교단 측 총회결정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구체적으로 담았는데 그와 관련해 쏟아져 나온 수많은 기사, 논평, 비판글들과 비교하자면 그 내용이 새롭거나 특기할만한 건 없고 그 수위도 그리 맵지 않았다고 본다.

 

    후기를 쓰는 데 참고한 링크된 두 글 중 하나는 네이버 블로그 글(명성교회 장로님의 주일 아침 대표 기도)이고 하나는 오마이뉴스 기사(명성교회 세습인정, 현장서 벌어진 황당함을 고발한다.)인데 표현수위나 맥락, 구체적 내용 등이 하등 내 글과 차이가 없다. 저번 명성교회 측이 신고한 글은 공방이 벌어질 여지가 있는 대목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이번 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두 번 세 번 다시 읽어봐도 시비거리를 찾을 수가 없다. 도대체! ! 무엇 때문에! 신고한 것이냐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내가 미처 발견치 못한 문제가 있다면, 혹 내 글에 틀림이 있거나 내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어떤 내용과 표현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알고 싶다. 납득이 된다면 당장에라도 기쁜 마음으로 자진해서 삭제할 것이다. 불량 게시물, 저급한 게시물 자체가 타인보다 본인의 명예를 먼저 훼손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이 정도 수준의 비평은 명성교회와 두 부자되시는 김삼환, 김하나 목사님의 위치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마땅히 용납되어져야 하며 또한 종교를 떠나 시민의 표현의 자유, 표현의 권리란 측면에서도 보호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고인측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본인과 교회의 명예도 소중하고 방어권도 존중하지만 이런 식으로 무차별적, 상습적이면 곤란하다는 거다. 무고는 아니더라도 제도를 악용하시는 것이 된다. 검색해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언급된 게시물이라면 무차별적으로 폭탄 던지듯 신고하지 마시고 각각의 게시물 내용을 면밀히 살펴서 기준에 합당한지 고려한 후 정밀하게 조준하여 절제된 신고를 하시라 당부하고 싶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일방적인 힘이나 엄포가 통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아직 교회, 교단 안은 이런 식으로 컨트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시대, 이 사회에는 통하지 않는다.

  

      명성교회의 입장이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슬슬 기지개를 켜더니 이젠 확연히 노골적, 공격적이 되었다. 이젠 대놓고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아예 이참에 교회세습을 합법화, 관례화하려는 자세다. 스스로 멈추지 않고, 멈출 수 없고, 끝까지 폭주하는 것 - 죄의 주요한 특성 중 하나다.

      비단 교회, 종교 뿐 아니라 모든 사회집단이 마찬가지다. 정당(대표와 의원들), 검찰(검찰수뇌부와 검사들), 언론(사주와 기자들), 교회(목사와 장로들), 사학(이사장, 교장과 부장들), 노조(위원장과 노조간부들) 등 일부 부패하고 병든 조직의 공통점은 시민 여론, 외부의 감시와 견제를 극도로 싫어하는 폐쇄적 구조라는 것이다. 모두 조직 이기주의, 이익 집단화, 사설 권력화, 패거리 문화를 그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스스로 권력화하는 것, 또는 큰 권력 주위에서 권력에 복무함으로서 작은 권력을 분양받으려 하는 것으로 큰 방앗간 앞에서 떡 한 접시를 얻으려 하고 떡 먹는 주위에서 떡고물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큰 권력이든 보잘 것 없는 소소한 권력이든 모두가 오만하여 갑질하는 재미에 폭주하기 십상이다.

 

      (조직) 안팎의 갈등 뿐 아니라 (조직 안에서의) 상하의 불통, 소수와 다수와의 불화다. 교회만 하더라도 강단 아래 앉아 있는 대다수의 신도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지만 강단 위의 목사, 장로의 절대다수는 남성이다. 평신도들의 여론은 교회세습반대가 압도적이지만 몇몇 대형교회 목사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독불장군식이다. 어떻게든 세습의 길을 뚫으려고 온갖 꾀를 지어낸다. 상층부의 이권과 권력을 독점한 똘똘 뭉친 소수가 높은 성벽을 쌓고 그 아래 평범한 다수 위에 군림하며 자신들만의 세상, 자기들만의 왕국을 구가하려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기독교에 대한 흉한 이야기들에 더해, 한창 몇몇 거친 정치목사들로 인해 세상이 더욱 시끄러운 요즘이다. 몇몇, 일부 교회의 잘못으로 책임을 떠넘길 수준을 넘어섰다. 이런 식이면 기독교가 비판을 넘어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평신도를 포함한 모든 기독교인들은 크게 반성하고 경계할 일이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진정 주님의 본래 뜻이 무엇인지 묵상해야겠다.

 

 

      2019.10.13일 최초 발행 - 10.16 대한예수교장로회 명성교회로부터 명예훼손 게시물 삭제요청 신고가 접수되어 해당 게시물 임시(폐쇄)조치됨 10.17 복원신청 - 11.15 임시조치 한 달 경과 후 복원 게시됨 - 11.16 그간의 경과를 서두에 추가하여 재발행함.

 

      아래는 임시 폐쇄 후 다시 복원된 원본, 즉 최초 작성된 문제의 게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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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세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 (191013)

    조국정국과 명성교회 세습의 길을 터준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단 총회 결정에 즈음하여






    주님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지난밤 저희의 호흡을 멈추지 않도록 지켜주셔서 이렇게 새로운 하루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이 아침 성전에 올라와 주님께 예배할 수 있는 시간, 주님을 볼 수 있는 눈과 주님을 찬미할 수 있는 목소리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 저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기도와 찬양을 드리오니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주의 영이 성전을 가득 채우셔서, 이 예배가 주님께는 한없는 영광이, 저희에게는 넘치는 은혜와 축복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주님은 선하시며 그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하지만 저희는 모두가 선하지 않고 선한 이라도 완벽히 선하지 않으며 아무리 사랑이 지극한 이라도 그 사랑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받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미움받는 사람도 모두가 신이 아닌 사람일 뿐이며 칭송하는 사람도 칭송 받는 사람도 비판하는 사람도 비판 받는 사람도 모두가 완전하지 않은 부족한 존재들이옵니다. 그러니 다만 겸손과 감사로 주님의 완전하심과 자비로우심을 찬미하게 하시옵소서. 오직 멈추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주님을 닮기를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저희가 주님이 계신 곳에 사랑과 정의가 있고 정의와 사랑이 있는 곳에 주님이 계심을 믿사오니 오직 주님의 정의와 형평으로 심판하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과 긍휼로서 용서하게 하시옵소서. 저희들은 (아무리 짓고 까불어도)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부족하고 고집 센 존재들이오니 다만, 오직, 그저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저희를 죄에서 구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세상의 가볍고 비루한 이들과 똑같이 - 혹은 더하게 돈, 권력, 명예, 대형화, 세력 확장, 사유화, 인간 숭배를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소서. 이것들은 주님의 가르침이 아닌 세상의 속된 욕심이며 주님의 은혜가 아닌 바빌론의 마법이오니 이를 경계케 하시옵소서. 저희 안의 비겁함과 겸손함을 구별하게 하시고 오만함과 담대함을 구별하게 하시고 사람의 온정과 정실을 주님의 사랑과 자비와 구별하게 하시어 밖으로는 관대하게 하시고 스스로에겐 준엄하게 하시옵소서.


    저희가 저희의 죄를 인정하게 하시되 인정함에 그치지 않고 회개하고 바로잡게 하시옵소서. 저희가 저희의 죄를 바로잡게 하시되 반드시 그 부끄러움을 옆에 두고 영원히 기억하게 하시옵소서. 부끄러움은 벗어던지는 것이 아닌 항상 입고 다녀야 할 옷이오니 저희의 방종과 안일의 수치스런 알몸을 가리는 경계로 삼게 하시옵소서. 저희는 어리석고 고집 센 양떼이오니 죄를 짓더라도 되도록 적은 죄, 작은 죄를 짓도록 하시고 부끄러움을 소중히 간직하여 다시는 같은 죄를 범치 않게 하시옵소서.



    주님, 저희 우정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육체의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주님의 자녀들이 있사옵니다. 그들을 굽어 살피시어 소생시켜 주시옵소서.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성가대의 목소리에 은혜 내려 주시옵고 아동부, 청년부, 한나회, 강단에서 식당에서, 교회 안팎 여기저기서 묵묵히 성심봉사하시는 모든 성도들과 기관들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목자이신 △△△ 목사님을 축복하사 항상 피곤치 않고 강건케 하여 주시옵고 주님의 말씀을 전할 때 영광 있게 하시옵소서. 모든 성도들 하나하나의 간구를 긍휼히 들어주시옵고 이 교회에 성령을 내려주셔서 모두가 합심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선을 이루는 복된 교회와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심판보다 용서를 좋아하시는 하나님, 그리하여 자신을 재물로 바쳐 떨어져 있던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시고 사랑의 결합을 이루어 평강을 회복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주님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지난밤 저희의 호흡을 멈추지 않도록 지켜주셔서 ......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주의 영이 성전을 가득 채우셔서, 이 예배가 주님께는 한없는 영광이, 저희에게는 넘치는 은혜와 축복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 지난 6월 명성교회 장로 중 한 분인 정장로란 분이 올렸던 대표기도 중 일부. 일련의 명성교회 사태에 대해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고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자는 취지의 기도를 올려 교회 내에 큰 소동이 일었다고 한다. 대표기도 후 정장로는 당회실에서 동료 장로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 명성교회 장로님의 주일 아침 대표 기도)


      전문을 보면 그렇게 직설적이지도, 맵지도 않은 회개기도 아닌 회개기도였지만 이마저도 김삼환, 김하나 목사의 명성교회측은 몹시도 불편했나 보다. 부디 정장로님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안이 함께하시길 빈다.





      주님은 선하시며 그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06:1]





      정의와 형평 - 정의만으론 부족하다. 선택적 정의, 선택적 분노, 선택적 심판은 그 자체로 불공정이며 부정의이다. 선택적 수사(검찰), 선택적 보도(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과속단속에 걸려 벌금과 벌점을 받는 것은 정의일 수 있지만 과속했다고 구속시키거나 내 왼편 오른편으로 200k, 300k로 쌩쌩 추월하는 차들은 놔둔 채 나만 잡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게다가 평소 폭주족 혐의, 상습 난폭운전 혐의, 차량 불법개조 혐의, 음주운전 혐의, 약물마약 혐의까지 내 소식으로만 온 방송과 신문이 도배되면 혐의만으로도 이미 나는 유죄다. 아침에 들뜬 마음으로 초행길에 나섰다가 저녁에 거리의 양아치, 파렴치범, 중죄인이 돼 있다.


      그래서 정의는 반드시 형평과 함께여야 비로소 완성된다. 더구나 하나님과 다르게 모든 것을 볼 수 없고 모든 것을 관장할 수 없는 인간의 경우에는 자신의 생각과 힘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항상 적극적으로 형평을 염두에 두고 판단하고 행동해야만 한다. 정의의 저울은 정확하며 균형이 맞아야 한다. 빨간 고추든 파란 고추든 1kg은 1kg으로 10kg은 10kg으로 그 무게에 따라 정확한 눈금을 가리켜야 한다.


      이 같은 이치로 보면 현재 이 나라를 온통 뒤흔들고 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공방은 조 장관에겐 매우 부당하고 억울하게 비춰진다. 잘잘못이 드러나지도 않았지만 언급되는 사안들이 과연 그렇게 무거운 죄인가, 이렇게 온 나라를 뒤흔들 사안인가 하는 점이다.



      왜인가? 조국 개인 뒤에 더 큰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예송논쟁처럼 조국을 빌미로 한판 큰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작게는 검찰개혁을 둘러싼 윤석열 검찰과 조국 법무부의 싸움이고 크게는 내년 4월 총선을 둘러싼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구세력과 더불어민주당으로 대표되는 개혁세력의 싸움이다. 여기에 언론, 교육, 종교(일부 개신교)까지 참전하여 불길이 치솟고 포성이 멈추지 않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포연이 자욱하여 상황파악, 피아식별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모두가 정의와 공평을 부르짖고 나라와 국민을 들먹이지만 의인은 없다. 국민편 백성편은 없다. 그저 검찰은 검찰(정치검찰)편, 언론은 언론(기레기)편, 교육은 교육(비리사학)편, 종교는 종교(사이비)편, 기업은 기업(비리재벌)편, 노조는 노조(귀족노조)편이다. 그저 모두가 예외 없이 자기편일 뿐이다.


      백성편 국민편은 오직 광화문과 서초동에 모인 백성들 국민들 자신뿐이다. 다만 얼마나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정보를 분석해서 사태의 진상을 종합적, 능동적으로 파악하는가 아니면 그저 보여주는 대로 보고 들려주는 듣고 사태를 단편적, 수동적으로 파악하는가 하는 차이로 편이 나뉘었을 뿐이다.




서초동의 조국수호, 광화문의 조국퇴진 집회

누가 국민들을 둘로 나누었는가?




      곧 먼지가 가라앉으면 정확한 사태가 파악될 것이다. 차분하게 바라보게 된다면 이 난리가 난 것이 좀 황망할 것이다. 조국 장관으로부터 시작된 이 사태는 이미 검찰개혁을 넘어 언론개혁까지 전선이 확대된 한국사회의 중차대한 문제가 되었지만 조국 개인과 그 가족에 한정하여 비춰보면 매우 작고 단순한 사건이다.


      지금의 상황은 비유하자면(개를 들어 좀 민망하고 저속하지만) 천적없는 사나운 도사견(검찰)에 목줄을 걸고 치명적인 송곳니를 뽑아서 주인(국민)에게 충성, 순종하는 안전하고 믿음직한 반려견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런데 저항이 극렬하여 똥 묻은 개의 기획 하에 흙 묻은 개떼들이 등에 겨 묻은 개 한 마리를 조리돌림하자 나머지 얼굴에 겨 묻은 개, 배에 겨 묻은 개들이 함께 욕하며 짖어대는 모양새다.



      일이 이렇게 커진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아직도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세력과 국민들이 냉가슴만 앓으며 단단히 벼려왔기 때문이다. 조 장관과 얽힌 사안들이 국민이라면 누구나 관계될 수밖에 없고 관심을 갖게 되는 매우 선정적인 사안(특히 입시와 관련된 표창장 문제)이기 때문이다. 검찰과 언론은 이심전심으로 이것을 효과적으로 공략했다. 호기심과 함께 인간의 가장 강한 심리인 시기, 질투심을 효과적으로 부추겼다. 바로 상대적 박탈감, 상실감이다. 정의로운 심판을 자처한 분노, 복수심, 가학심리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분노는 잔인하고 화는 사람을 삼키지만, 질투처럼 파괴적이지는 않다.[잠언 27:4] 하지만 무엇이든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며[마가 4:22]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으니 하나님이 갚으실 것이다.[로마서 12:19]


      부디 조국 장관과 그 가족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안이 함께하시길 빈다.





      (아무리 짓고 까불어도) - 표현이 저속하여 실재 기도 때는 뺏다. 또 다른 이유는 옳고 그름을 떠나 광화문과 서초동에 모인 민초들의 진지한 목소리를 폄훼하고 그들의 간절한 현실참여의 노고를 조롱하는 느낌이 들어서 생략했다. 나는 그들 밖의 국외자, 그들 위의 심판자가 아니다.


      하지만 이 상황이 비정상인 것만은 사실이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조국전쟁, 조국대전(大戰)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긍정적, 고무적이기도 하다. 한국사회, 한국인들이 에너지가 넘친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또 하지만 너무 뜨겁다. 끓어 넘친다. 민중의 에너지는 인위적으로 컨트롤 할 수 없고 스스로 길을 찾아 흘러가는 것이지만 조금만 더 차분해졌으면 좋겠다.





      사람의 온정과 정실을 주님의 사랑과 자비와 구별하게 하시어 밖으로는 관대하게 하시고 스스로에겐 준엄하게 하시옵소서. - 지난 9월 23일 한국교회 역사에 또 하나의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향후 명성교회 세습의 길을 터준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단 총회의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이 본회의장에 깜짝 등장하여 희한한 사과를 했다고 한다. 다음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어느 목사님의 참관기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 명성교회 세습인정, 현장서 벌어진 황당함을 고발한다.)




    그것이 희한한 이유는 이렇다. 첫째, 김삼환 목사는 '명성교회가 총회와 언론으로부터 너무 많이 맞았다'고 했다. 이것은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꼴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었다. 물리력으로 동남노회(명성교회가 속한 장로교 지역 교회 연대체)를 지옥처럼 만든 이들이, 또 통합교단 전체를 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게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가? 바로 명성교회 아닌가.


    둘째, 김삼환 목사는 '합동교단은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만을 위해 없는 법도 만들어 주었다'며 '통합교단도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 '교단 나가면 갈 곳이 없더라'면서. 이 발언은 요청을 가장한 협박이었다. '우리가 나가면 너희들이 손해를 보니 명성교회를 위해 법을 바꿔내라'는 것 아닌가. 교단을 얼마나 무시하면 이런 발상을 하겠는가. 또 합동교단이 그렇게 해서 사랑의 교회를 품은 것이 잘한 일이라 보나 보다. 착각이다. 그 결정을 존경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셋째, 그 사과는 아무런 구체적 조치도 없는 것이었다. 제대로 사과하려면 작년 103회 총회의 결정과 재판국 판결에 승복하며 세습을 철회한다고 선언이라도 해야 했다. 그런 핵심 조치들 없이 한 사과는 총대들의 온정주의에 호소하려는 교묘한 심리전일 뿐이었다.




     이 사과가 있은 후 상황이 급변했다고 한다. 그토록 세습에 반대했던 대의원들이 마법에 걸린 듯 태도가 돌변해 세습안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한다. 협박이 통하고 인정에 호소한 것이 먹혔던 것이다. 그 중에 무엇이 더 크게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교단내에서 차지하는 명성교회 측의 막대한 물적, 인적 비중을 생각하면 내심 협박에 겁먹어 은근슬쩍 온정을 베풀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김삼환 목사의 명성교회측은 치밀, 노회했고 총회원들은 비겁, 유약했다. 적어도 죄의 어두움과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감수성이 철저하지 않았다.





      저희의 죄를 인정하게 하시되 인정함에 그치지 않고 회개하고 바로잡게 하시옵소서. - 죄를 인정하지도 뉘우치지도 않고, 죄를 바로잡으려고도 않고,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도 않고 죄사함을 받을 수는 없다.


      사과, 사죄, 회개는 얼렁뚱땅, 두리뭉실해서는 안 된다. 최대한 구체적이고 철저해야 한다.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부끄러움은 벗어던지는 것이 아닌 항상 입고 다녀야 할 옷 - 김삼환 목사와 명성교회를 편들었던 대의원들의 기본 입장은 '많이 맞았다'는 것이다. 어디 가서 잘한 일이라고 자랑할 일은 아니라서 사과는 하겠는데 이미 많이 맞아서 아프다, 이제는 그만 벗어나고 싶다, 벗고 싶다는 것이다. 문제의 근본해결책이 아닌 단지 스트레스 회피일 뿐이다.


      부끄러움과 죄의식은 부정적 심리, 불편한 심리다. 스트레스다. 하지만 십자가만큼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없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거룩한 희생과 사랑을 상징하는 동시에 우리의 죄와 부끄러움을 상징한다. 내가 갚아야 할 죄를 대신 갚고,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지신 것이다.



      부끄러움을 벗고 싶다. 죄의식에서 자유롭고 싶다. - 이것은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역시 마찬가지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아무 이해관계 없는 제3자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측이 아닌 한국사람 중 일부가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를 부정하고 언급하기 꺼려하는 것은 이것이 기본적으로 밝은 주제가 아닌 어두운 주제, 우울한 주제, 스트레스를 주는 부끄러운 주제라는 이유 때문이다. 가해자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도 않았지만 속된 말로 창피하다, 쪽팔린다, 기분 나빠진다는 거다.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피해자는 부끄러움을 뛰어 넘어야 하고 가해자는 부끄러움을 받아 안아야만 한다. 당사자들은 마주앉아 용기 있게 문제를 직시해야 하고 관찰자들은 애정을 갖고 관심어린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때 피해자는 자학적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있고 가해자는 회개를 통해 진정 거듭날 수 있다. 공동체 모두가 건강하고 강해질 수 있다.





      떨어져 있던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시고 사랑의 결합을 이루어 - 떨어져 있던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시고 사랑의 결합을 정하신다. <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455P








      한국사회도 어수선하고 한국교회도 어지러워서 예전 글보다 더 내 생각이 많아졌다. 기도 본문도 밝고 가볍기보단 어둡고 무거워졌고 이어지는 사설도 무척 길어졌다. 아무리 간접적인 은유와 암시로 맵지 않게 썼더라도 둔한 성도가 아니라면 기도문 속에 숨어있는 내 정파적 의견을 눈치 챘을 것이다.


      종교는 정치와 분리되어야 하고 대상이 신자든 아니든 공공의 장소에서의 종교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쉽지가 않다. 매번 유념하고 조심하는데도 완전치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론 완전히 완전할 수 없다고 스스로 변호하기도 한다. 아무리 공명정대하고 중립을 지켜야 하는 선관위장, 대법원장, 목사나 스님들도 기권하지 않는 한 투표소에 들어가면 어느 한 칸을 선택해 도장을 찍어야 될 터이다.


      정치도 종교도 우리 삶과 얽혀있고 모두 진선미의 최고 가치를 추구하는 상위범주들이니까 완전히 따로 분리할 수는 없다. 지금처럼 조국 사건, 명성교회 사건이 뜨거운 화두가 되어 판단을 강요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래도 개인기도가 아닌 대표기도기에 두 번, 세 번 읽어보고 어휘, 수위 등을 조정, 교정하며 검열 아닌 검열을 한다. 주님 말씀보다 내 얘기, 주님 뜻보다 내 생각을 앞세울까 두려울 뿐이다.



      딱히 흠잡을 수 없고 누구도 시비걸 수 없는 무난한 기도, 평범한 기도는 있다. 모범적인, 표준적인 대표기도문 형식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구애받고 싶지는 않다. 그것보단 내 생각, 내 마음에 충실하고 주님 앞에 솔직하고 정직하고 싶다. 그것이 개인기도든 대표기도든 모든 기도의 기본이지 싶다.


      나는 불같은 성령에 충만하여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통성기도, 나도 모르게 나오는 나도 모르는 의미의 방언기도를 할 줄 모른다. 내 기도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성령이 쓰게 한 기도문이 아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 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쓴, 최대한 그렇게 쓰려 한 기도문이다. 다만, 오직 주님의 뜻을 가리고 입으로 죄를 짓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