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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간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불가역적, 최종적 해결책은?

어멍 2016. 1. 5. 23:08

  한일 간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불가역적, 최종적 해결책은?

 

다영 : 이종서 너 자꾸 이럴래!

종서 : (무성의하게) 알았어. 미안해.

다영 : ~~ 어떻게 좀 해봐요!

종서 : (짜증섞인 목소리로) 알았다니까! 미안하다고 했잖아!

: 종서야. 그게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의 태도냐? 화내면서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이 어딨어? ....... 다영이도 종서도 누구라도 살다보면 의도치 않게 이런저런 잘못을 서로 간에 할 수 있지만 잘 사과하고 그 사과를 잘 받아들여야지....... 어떻게 해야 되겠냐? 무엇이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냐? 잘못한 사람은 당한 사람이 제발 그만하라고 말릴 때까지, 귀찮아 도망다닐 때까지 필요이상으로 사과하는 것이 최고고 당한 사람은 별 것 아니니 그만 사과하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너그럽고 흔쾌하게 용서하는 것이 최고지. 그런데 너희들은 이렇게 매번 티격태격할래!...... 종서는 누나에게 다시 진정으로, 상냥하게 사과해!

종서 : 누나. 미안해.

 

2 다영, 6 종서가 이런저런 자잘한 걸로 아웅다웅 다투는 걸 보면 견토지쟁(犬兎之爭)을 보는 것 같아 화가 나기보단 웃음이 나는 경우가 많다. 싸움이 그리 커지지 않으면 끼어들지 않고 지켜보는데 대부분 서로 알아서 해결하거나 잊혀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서로 싸우고 조정하고 화해하고 해결하는 것도 연습이고 학습이니까.

 

(귀찮게) 사과를 반복하는 가해자, (너그럽게) 그만 사과하라는 피해자가 서로 옥신각신 다투는 이상적인 그림은 현실에선 흔치 않다. 오히려 그 반대가 대부분이다. 그럼 사과에 인색한 가해자, 용서에 인색한 피해자가 충돌하는 경우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사과를 되풀이해야 한다. 이것이 사과, 사죄의 원칙이다.

 

1. 사과, 사죄는 담백해야 한다.

2. 사과, 사죄는 최소한 피해 당사자의 용서를 얻어야 한다. 최소한 피해자가 그만 됐다, 이만하면 됐다 할 때까진 사과, 사죄하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3. 피해자가 용서한 후라도 필요하다면 백번이고 천번이고 영원히 사과, 사죄해야 한다.

4. 피해자가 아닌 제 3자가 피해자에게 함부로 용서와 화해를 권하거나 강요해선 안 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과, 사죄, 용서, 화해에 대한 원칙이다.

1번은 사과는 사과로 깨끗이 끝내고 구질구질하게 군말, 뒷말, 조건을 붙여서는 안 된다는 것! 억울하고 손해본 것 같은 마음에 상대방에게도 옛 것, 상관없는 것까지 끌어다가 사과를 받거나 다른 조건을 붙이려 드는 경우가 많다. 정 억울하고 사과를 받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다음에 따로 꺼내는 것이 낫다.

2번은 말 그대로 사과가 갖춰야할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3번은 사건이 공공성, 역사성이 있는 경우 특히 중요하다. 경우에 따라선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사라진 후 그 후손의 후손에게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공공기록물과 역사책에 기록되어 부단히 되새겨야 한다. 한두 번 사과했다고, 백번 천번 사과했다고 잘못한 것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번 잘못한 것은 영원히 잘못한 것이다.

4번은 당사자 원칙이다. 자기 일도 함부로 심판해서도, 함부로 용서해서도 안 되는데 하물며 제 3자에 대한 것은 더욱 더 조심해야 한다. 남의 일이라고 쉽게 얘기해선 안 된다. 이것은 가해자에게도 마찬가지다. 함부로 사과, 사죄하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 사죄도 용서도 제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야 한다. 떠밀려서 억지로 하는 것은 꼭 뒤탈이 난다.

 

이 같은 원칙과 입장에서 볼 때 이번 한일 간(정확히 얘기해서 미국이 뒤에서 중재 혹은 강권한 한미일 사이의) 위안부 합의는 어느 것 하나 잘된 것이 없다. 한국, 일본, 미국 어느 하나 잘 한 나라가 없다.

1. 불가역적 합의라느니 최종적 사과라느니 소녀상을 옮기라느니... 사과를 하면서도 구질구질하다. 잘못한 자가 오히려 뻣뻣하고 무례하다.

2. 최소한의 조건인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용서를 얻지 못했다. 일본은 물론이고 심지어 한국정부마저 이번 협상에서 할머니들을 철저히 배제했다. 일언반구 귀띔도 없었다.

3. 할머니들이 만약 용서하신다고 해도 편지를 쓰든 성명, 담화를 하든 일본 총리나 일왕이 정식으로 사죄해야 한다. 일본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명백히 기록하여 후세까지 교훈으로 삼아 한일 간의 화해와 용서를 담보해야 한다. 역사성, 공공성이 큰 사안이기 때문이다.

4. 일제 황군과 조선 처녀, 일본 정부 대 한국 민간인 사이에 벌어진 문제다. 원칙적으로 일본 관리와 위안부 할머니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한국 정부는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고 주체는 어디까지나 할머니들이다. 적어도 협상과정에서 할머니들을 배석시키거나 수시로 긴밀히 협의하며 진행했어야 했다.

드러나진 않았지만 미국의 압력도 불문가지! 오랜 시간 스스로 성찰하지도, 서로를 이해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국 일본 모두 미국에 떠밀려(일본은 내심 못이기는 척) 급하게 억지로 결과물을 내놓은 완전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은 합의안! 결국 뒤탈이 나고 있다.

원칙적으로 미국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사안이다. 정부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고 온 국민이 이제 그만 됐다 해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안 됐다고 하면 안 되는 문제다. 남의 나라, 힘없는 국민, 고집 센 어르신들이라고 쉽게 얘기해선 안 된다. 오바마 당신이 식민지 조선의 아픔을 아는가! 박근혜 당신이 힘없는 국민들의 사정을 아는가! 엄마부대 당신들이 위안부 할머님들의 고통을 아는가!

   

           

일본에도 양심이 있고 한국에도 비양심이 있다.

천국에도 악인이 있고 지옥에도 의인이 있다.

 

구체적 합의안의 주요 내용과 문구는 일본정부차원의 (미온적) 사과와 책임인정, 위안부 지원 재단에 10억엔 출연(법적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 차원), 불가역적 합의안으로 이 문제가 최종적으로 종결됐다는 인식, 소녀상 이전과 관련한 언급 등이다. 종합해보면 일본입장은 다음과 같다. - (마지막으로) 사과하고 10억엔을 줄 테니 이 문제는 다시는 언급하지 말고 소녀상을 이전하는 것으로 한국정부는 이 약속을 담보, 증명하라.

! 10조엔도 아닌 10억엔 우리 돈으로 99억이라니...! 우리가 거지인가? 분한 마음에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말이 많다. 한국이 들어서는 정권마다 사과를 요구하며 골대를 매번 옮긴다고 불만인 아베가 불가역적, 최종적이라는 문구에 집착한 모양인데 왜 아베는 골대 자체를, 문제 자체를 없애려 하는가? 골대가 곧 역사적 사실이다. 설혹 무릎이 닳도록 백번 천번 사죄한다 해도 있었던 역사가 없어지지 않는다. 역사도 골대도 소녀상도 무시할 순 있어도 없앨 수 없다.

더 이상 사과하지 않는 조건하에서 하는 사과는 애초에 글러먹었다. 더구나 아이들끼리의 사소한 잘잘못도 아니고 공소시효를 없애는 추세인 반인륜적인 전쟁범죄다. 지금 당장은 소녀상을 이전한다 안한다 시끄럽지만 이번 합의의 불가역적, 최종적이란 문구가 멀리 보면 더 치명적인 독소조항이다. 스스로 외교상의 중요한 무기를 포기하고 향후 대일외교, 국제외교에서 한국의 발언권을 약화시키는 더없이 어리석은 자충수다.

그러면 경제, 안보상으로 밀접하게 얽혀있는 한미일 관계에서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과거사 문제의 (이상적이 아닌) 현실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나라와 나라간,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역사 정립, 화해와 전진은 양심적인 시민사회에 깊게 뿌리를 둔 민주정권 하에서만 가능하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어느 한쪽이라도 양심적 민주정권이 아니라면 불가하다. 아베 정권과 박근혜 정권과의 과거사 정리, 진정한 화해와 협력은 불가능하다. 아베는 사과할 능력이 없고 박근혜는 사과 받을 자격이 없다.

 

예전에 포스팅했던 글(대망(大望)읽기를 시작하며)의 일부다. 일본은 독일이 아니며 한국 역시 프랑스가 아니다. 전후 일본은 철저히 반성하지 않았고 한국은 철저히 일제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일본은 뉘우친 후 양심을 회복한 가해자가 아니며 한국은 민족존엄을 다시 세운 당당한 피해자가 아니다.

이 문제는 일본에 과거사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과 회개를 전제로 한 양심적인 민주진보정권이 들어서지 않는 한 원천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진정으로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지금과 같은 일본의 보수우익정권이라면 한국에 일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정통성이 허약한 정권이 들어섰을 때 얼렁뚱땅 합의하고 종결지으려 할 것이다. 이번도 마찬가지! 그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 때의 한일협정도 마찬가지!

반대로 한국은? 먼저 정통성 있는 진보적 민주정권을 세워놓고 일본에도 똑같은, 적어도 유사한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정권이 들어서길 기다려 완전한, 적어도 안정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게 최소한의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럼 우리는 그때까지 마냥 기다리며 손만 놓고 있어야 하나?

 

언제고 그런 날이 왔을 때 기쁘고 당당하게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 안의 어두운 과거사부터 반성하고 일제잔재를 깔끔히 정리하면 된다. 우리나라를 더 민주적으로 더 양심적으로 더 진보적으로 세워나가면 된다. 그 때까지 미국, 일본, 세계만방의 양심세력(주로 시민사회)에 호소하고 그들과 연대하면 된다.

정부는 정부대로 아베도 만나고 오바마도 만나고 김정은, 시진핑도 만나서 눈도 맞추고 악수도 하고 담소도 나누고... 대신 중심을 잡고 주장할 것은 격식에 맞추어 강하고 똑 부러지게 하면 된다.

혹 일본과 미국이 경제와 안보를 빌미로 구슬리거나 위협하기라도 한다면 우리에겐 일본의 과거사 문제라는 무기가 있다. 일본이 못되게 군다면 이 문제를 더욱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 된다. 국제회의 때마다 슬쩍슬쩍 언급하며 일본의 체면과 발언권을 깍아내리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도 우리에게 훨씬 이익이다. 그깟 불성실한 사과와 푼돈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렇게 해서 실지로 우리나라가 덕을 봤다. 총체적 국력에서 일본에 뒤지는 우리가 먼저 UN 사무총장을 배출한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 외교의 승리, 그 전략의 유효성을 여실히 증명하는 사건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외교관 출신 반기문 총장이 굳이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이번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의 합의안을 극찬하고 나섰다.

그 역시 미국의 영향권 안에 있다는 것. 차기 대권에 의욕을 가지고 있고 이와 관련하여 박 대통령과 이미 교감을 주고받았거나 주고받으려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적어도 역사의식과 철학이 투철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과거사 문제는 과거사 문제대로 분리하며 길게 보고 의연하고 느긋하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현실적인 외교술이다. 급하고 아쉬운 건 일본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 반민족과 독재 인권탄압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라고 요구하면 순식간에 낯빛이 변하며 불쾌해하는 것처럼 이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국제외교에서 가장 취약한 아킬레스 건이다.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을 것을 최우선 조건으로 내건 것은 그만큼 언급되는 것이 괴롭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더구나 유력한 미국 차기 대권주자인 힐러리가 기존의 위안부(comfort women)보다 한층 강경한 성노예(sex slave)란 표현을 썼다. 차후 미국이 이 문제에 대해 인권, 인도적 원칙에 입각해 훨씬 강경해질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피해자인 우리에겐 너무 비참하고 적나라한 표현이지만 위안부보단 성노예란 말이 보다 실상에 가깝다. 일본군을 위로, 위안한 것이 아닌 일본군의 성욕을 배출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자신이 중독임을 인정하는 것, 문제를 풀기위한 첫걸음은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 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은 자신이 노예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괴롭더라도 문제의 본질을 봐야 올바른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위안부 문제는 굳이 해결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해결책이다. 서로 간에 도저히 합의할 수 없다면 당분간 그대로 내비 둘밖에! 하지만 모든 것을 여기에 연계해선 안 된다. 밭도 매고 소도 키우고 진도 나가야지!

그런데 이번에 워~워~ 미국과 일본에 몰려 광속으로 덜컥 합의해 버렸다. 너무도 어둡고 어리석다. 박근혜 정권이 원칙도 없고 변변한 외교 전략이나 비전이 없으니 중심을 잃고 온탕과 냉탕을 오간다. 중한 것(위안부 문제)을 가벼이 여기고 가벼운 것(산케이신문 기소)을 중히 여기고, 분리해야 할 것을 묶어버리고 묶어야 할 것을 분리하니 일이 물 흐르듯 진행될 리 없다. 외교와 역사문제를 섣불리 한 데 묶어 정권의 인기를 높이는 데 이용함으로서 스스로 운신의 폭을 제한했다.

정권 초부터 아베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느니 하는 기사가 조선일보 등에 실리면서 대중의 말초적 반일감정을 이용하더니 결국 미국으로부터 값싼 박수를 받기 위해 민족감정을 국내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핀잔을 듣게 했다. 몇 번이고 문전박대하고 바람맞히면서 엄청난 사죄와 결과물을 얻어낼 것처럼 하더니 결과는 기승전병!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새침떼기 여학생이 콧대만 세우더니 돈 몇 푼에 손에다 가슴까지 한꺼번에 내 준 셈!

 

           

과거 나름대로 재미를 보았던 박근혜식 여학생 외교

                            아   베 : (한국어로) 박근혜 대통령님 만나고 싶었습니다.

                            박근혜 : ...................................................

                            오바마 : .

 

24년간 미뤄왔던 것을 해결한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의 외교성과? 그 긴 세월의 무게를 가볍게 여긴 너무도 조급한 외교참사다! 어르신들이 살아계실 때 어떻게든 사과를 받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냐고? 할머니 어르신들이 정녕 이런 사과, 이런 해결을 바라셨단 말인가! 할머니들의 한은 절대 이런 식으로 풀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합의로 상처만 더하여 자국정부에 배신감을 느끼며 분노하고 계시다.

지금도 할머니들의 생계에는 큰 지장이 없다. 나름대로 국가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할머니 우리가 돌본다. 할머니들도 일본의 더러운 푼 돈 10억엔을 받느니 우리가 모금해서 몇 백억 지원재단을 세워드리는 것을 더 기뻐하실 것이다.

 

역사는 흐른다. 한시도 멈추지 않는 진행형이다. 세상 어느 것 하나 독립적으로 완전한 것, 완결된 것은 없다. 과거로부터 현재가 있고 현재로부터 미래가 있다. 그러므로...

역사에서 불가역적, 최종적 완결이란? - 없다!

한일 간 위안부 문제의 불가역적, 최종적 해결책이란 것도? - 없다!

오직 영원히 기억하고 끊임없이 반성하는 것에서 담보되는 화해와 상생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