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아내’님이 오래전에 쓴 장문의 글이지만 교육에 관심이 많은,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유익하기도 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아 강조, 첨언하여 올립니다.(원문은 검정색으로 강조를 위한 밑줄 외엔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원문주소는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1&uid=175474 입니다.)
우리 집 자녀 교육
(서프라이즈 / 변호사의 아내 / 2008-10-31)
오늘은 마치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가 관보에 게재된 날처럼 많이 슬펐습니다. 국제중학교 설립이 결정됐다는 소식에 드디어 이 나라의 정치꾼들이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교육이 무너지는 정도가 아닌 인간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을 느꼈습니다.
시골훈장님의 글처럼 수준있게 뭘 보여주는 글은 아니지만, 서프앙님들의 자녀 교육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글을 올립니다.
우선 저희 아이들은 외고도, 과학고도, 국내 명문대학도 갈 수가 없을 것이며 관심도 없다는 전제를 달아 둡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 모두가 저희 부부의 교육 방법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면 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주관이 뚜렷한 특이한 케이스! 대단한 용기!)
사회적인 기준으로 보면 저희 부부는 확실히 망하는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불안할 때도 있지만, 저희는 망한다는 그런 생각 안 합니다. 인간이 망하고 안 망하고 하는 기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불법과 양심을 속이고도 대통령 되고, 투기로 돈 불려 정치한다고 설치는, 이런 인간들이 망한 인간들이지요.
9명의 사기꾼이 있는 사회보다는 1명의 사기꾼이 있는 사회가 더 좋다는 서글픈 희망을 부인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인생은 아무도, 아무것도 미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오직 희망만 걸고 갑니다. 아무리 세상과 거꾸로 간다고 해도 이 방법이 우리 부부가 가장 아이를 제대로 키운다고 생각하기에 그대로 가는 것 뿐입니다. ( 저희는 자녀가 '2+1+2'입니다. 마지막 2는 멀리 있어서 아직 얼굴도 본 적은 없고 사진만 보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프라이버시로 …)
만남
'분명히 아무도 없었는데…'
자리에서 돌아서자 한 남자가 소파에 비스듬히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모르게 문을 열고 들어온 것 같았다.
"쇼팽의 폴로네이즈란 곡이죠?"
"네……"
"잘 들었습니다."
건물을 빠져나와 내리막길로 가고 있을 때. 뒤에서 뛰어 오는 발걸음 소리….
"헉! 헉! 잠깐만… 내일 6시 **찻집으로 꼭 나와 주세요."
(척 보니 강의 시간 30분 정도는 늦은 것 같았다. 이 사람아! 빨리 뛰세요.)
우리 부부는 그렇게 만났다. (그 이후의 애틋하고 애절했던 사랑 이야기는 정치판 사이트에서 어울리지 않으므로 생략. )
부모는 부부가 함께 미리 준비하는 것
첫 만남 후, 학과 메일 박스에 편지가 자주 왔었다. 사람은 만나지도 못하고 우리는 거의 한 학기가 다 끝날 때까지 서로 편지만 주고받았다. 찻집에서 마주 보고 사랑만 속삭이기엔 귀중한 젊은 시절의 시간이 아까웠으므로…. 인생과 삶에 대한 고뇌와 클래식 음악에 대한 높은 지식이 보내온 편지의 주된 내용이었다. 가끔 마주치면 눈웃음 정도 하고 지나갔지만 우리는 이미 서로의 인생관과 가치관에 서로 경애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내용을 쓰는 이유는, 부부의 서로에 대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일치되는 가정은 모든 교육의 가장 기본이 된다고 생각하기에…(자녀교육에 관하여 부부간의 갈등도 적고, 아이들도 부모의 일관된 교육관으로 인해 혼란이 적음)
촌놈답게 맹자, 논어, 중국의 문인 두보의 시를 무척 좋아했었고, 한문에 무식한 나는 그냥 아는 척하고 시침 떼고 공자 말을 듣고 있었다. 지금도 그때 나눈 두보의 시는 아이들을 교육하고 우리 부부가 인생을 살아가는 시간에 많은 의미를 던져 주고 있다.
첫 만남 후 3개월 만에 만났을 때 책을 갖고 나왔었다. 당시, 3번째 반복해서 보고 있다는 루소의 "교육론"을 보여 주었다. 부모도 아닌데 왜 그런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나중에 부모가 되면 자식을 제대로 한번 키우고 싶어서 그 책을 읽는다고 했다. 아버지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 자신에게 인생에 대한 방향을 아무도 조언해 주지 못한 아쉬움 같은 것이 있다고… 루소가 아이들 교육에 가장 중요시했다고 한 것이 "음악교육"과 " 여행"이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런 남자 사랑하지 못하면 눈먼 여자지…^^)
교육이란 결혼 이후 아이들이 생기면 그때 하는 것이 아닌 결혼 전에 나름대로 자기 자식에 대한 교육관을 정립하고, 아이들에게 바른 인생관을 심어줄 준비를 하는 것은 부모로서의 작은 준비인 것 같다. 모든 교육의 바탕은 부모가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가정이 우선 되면 좋다.(두말하면 잔소리!)
교육은 장기전이다.(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
우리는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하고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아이들을 기른다. 그래서 한때 못하더라도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 아직 긴 시간이 있기 때문에 게임은 계속 된다고 생각한다. 본격적인 공부와 미래의 직업과 관련된 것은 대학 때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스포츠처럼 어떤 단 몇 초의 상황에서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학교에서의 단기간의 성적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대학, 대학원 때 공부를 많이 한다. 그런 것은 보지 못하고 어찌 어린 아이들의 창의성을 죽이고 지식만 머리에 집어넣는 그런 학교를 만들려고 하는지 정말 그 사람들의 뇌 속을 한번 보고 싶다. 정치도 과거로 가고, 세계의 흐름에 꼭 반대로 역주행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TV가 없는 가정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최근의 최진실 자살 건도 아이들이 그 여배우를 아예 몰라서 가슴을 쓸어 내렸다. 결혼 때부터 우리 엄마는 혼수로 책상을 사주고 TV는 사 주지 않았다. 뉴스는 DNV를 통해서 본다. TV가 있으면 좋은 것인지 없으면 나쁜 것인지는 몰라도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틀림없다. 가족끼리 책 읽고, 신문보고 이야기하고 하는 것이 더 좋아 우리 부부는 그렇게 했다.
주위에서 그런 분들이 있긴 있는데 처음에는 적응 못 하지만 나중에는 곧 좋은 결정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부모는 TV를 보고 아이들에게는 학원이나 공부방으로 내보내는 것은 어찌 보면 그리 좋은 본보기는 아닌 것 같다.
개인 책상이 없다.
방에 큰 테이블을 두고 가족 공동책상으로 사용한다. 컴퓨터도 하고, 책 읽고, 숙제하고, 공부하고, 하는 모든 것이 가족과 함께 한 곳에서 이루어진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그 자리에서 아빠와 엄마와 토론하고 우리는 큰 방향만 제시해 준다. 개인 책상보다 더 학습적으로 효과가 있다. ( 방이 넉넉하게 있으면 좋지만 보통 방이 3개면 큰방은 아이들이 같이 쓰고, 부부가 한 개 그리고 하나는 이런 식으로 하면 된다. 그렇지 못한 가정은 TV를 없애고 거실에 꾸미면 되고…. 어떤 경우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아이디어는 많음.)
가장 좋은 선생님은 부모다.(당연한 말씀! 하지만 부모에게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부담되는 말씀!)
이런 말 하면 모두 믿지 않는다. 한 번도 아이들 사교육 시킨 적 없다. 사교육비는 큰아이가 화실에 3개월 다닌 것… total 십오만 원… 이것이 전부다. 아이들 과외비라도 버느라고 식당 일을 한다는 기사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여기서는 제목대로 우리 부부의 방식만 소개한다.
학습지, 문제집, 총정리, 이달의 학습 그런 것도 사준 적이 없다. 우리는 4개 중 하나 고르는 공부에는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는다. 돈 없어서 과외 못하는 것과, 돈 있고도 과외 안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지만 우리 부부는 과외에 그리 좋은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세상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기에 제일 편하고 쉬운 방법이 과외 아닌가. 돈만 싸서 보내기만 하면 되니깐…. 그 쉬운 방법이 아이들을 버리게 하는 가장 흔한 코스다. 나쁜 것은 우리 아이들의 친구가 없다는 것…. 다른 아이들이 전부 학원가니깐 우리 아이들이 학원이 어떻게 생겼나 하고 호기심으로 가보고 싶어 했지만 조금 크니깐 그것도 없어졌다.
과외를 하지 않으니 시간이 많다, 주중에도 테니스도 하고 수영도 하고 튼튼한 아이들이 되었다. 외국어도 하나씩 더 배울 시간도 된다.
부모가 고등학교만 나와도 자녀와 같이 공부하면 중학 과정은 과외 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학력이 따라가 주지 못하고 형편도 어려운 사람들 보면 진짜 눈물이 난다.
그러나 가난해도, 과외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 그러지 않고 비관하는 것보다 낫다.
나도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다른 집처럼 잡고 가르쳤다. 악바리처럼 시키면 잘하지 싶었다. 머리도 쥐어박고, 선행학습도 해봤는데 아이와 사이만 나빠지고 효과도 없었다. 큰아이가 2학년 때 아이에게 손 떼라(말처럼 쉽나?)는 남편의 의견에 동의하여 모든 부분에서 손을 뗐다. 스스로 하게 하고 분위기만 만들어 주고 큰 방향만 잡아 준다. 이 방법이 가장 좋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우리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과외는 아이들이 혼자 공부하고 스스로 부족을 느껴 선택했을 때 가장 효과를 얻는다. 그렇게 하는 과외는 찬성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어떤 교육관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과 주위의 분위기에 절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역시 말처럼 쉽나! 주위의 발걸음이 빨라지면 나도 모르게 이유도 필요도 없이 걸음이 빨라지는 게 인간인 걸! ㅠ.ㅠ) 다른 사람들의 교육 방법에 우왕좌왕하지 말고, 아이들에게도 늘 일관된 교육방법을 보여 줘야 한다. 그리고 부모이기 이전에 선생이라고 생각하면 아이들 앞에서 함부로 말할 수 없다. 학원 보내 놓고 집에서 땅 투기나 할까 하는 생각을 어떻게 감히 할 수 있을까. 돈에 굶주린 부모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다 안다. 부모가 늘 좋은 모범을 보이는 것이 제일 좋은 선생님이다.
음악 교육은 꼭 시킨다
정서적으로 음악은 아이들이 사춘기를 잘 넘기게 도와준다는 설도 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하는 예술이 많이 있지만, 음악은 아주 어릴 때, 세상에 나오자마자 들려 주면 좋다. 바하의 피아노곡을 우리는 많이 들려 주었다. 자라면서 그 곡을 다 외울 정도로 가까이 해주면 늘 마음에 선율이 흐르는 심성이 안정된 아이가 될 수 있다. 피아노, 바이올린은 집에서 배운다. 나중에 실력이 좋은 선생님이 필요할 때는 그때 돈이 들어 갈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음악 교육은 굳이 흔히 말하는 사교육의 범주에 넣고 싶지 않다.
학교만 믿고 있지 말자
학교에서는 공부가 제일이다. 아무리 인간성이 나빠도 공부만 잘하면 장땡이고, 착해도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열등생으로 모는 것이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 전과 14범도 대통령이 되는 사회가 되고 보니 인간성과 도덕성은 필요 없고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되었다.
세상에 어떤 것 하나라도 다른 사람의 수고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 입고 있는 옷이 저 멀리 인도의 어느 오지 시골의 뙤약볕 아래서 불과 몇 푼의 삯으로 힘들여 재배한 목화일 수도 있고, 자기가 보는 책 한 권도 남태평양의 어느 외딴 섬에서 여러 사람의 땀과 노력으로 생산된 목재가 먼 길을 돌고 돌아 그렇게 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교육은 부모가 시켜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다른 사람뿐 아니라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아이가 된다. 동정심이 많은 아이로 만들려면 우리 사회의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음을 알게 해준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 아이들을 맡기면 아이들의 창의성과 인성을 죽이는 것 같아서 우리 부부는 늘 그 부분에 신경을 쓴다. 교육에서 배우는 것보다는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쪽으로 신경을 쓴다.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참으로 아픈 대목!! 구조적으로 수능, 점수와 관련한 경쟁력이 사교육에 비해 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국가에 의해 행해지는 공교육이 최소한의 전인교육, 인성교육도 내팽개치고 세속적인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어리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자유와 인권을 무시하고, 체벌과 폭력도 불사하며 공부기계, 점수기계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육체와 정신을 혹사시키며 아이들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은 이 땅의 모든 부모와 학생들의 불행이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그게 그리 말처럼 쉽나?)
학교에서 자기 자식들 작품이 교실 뒤쪽에 붙지 못하면 인생 다 산 것처럼 하는 여자들 많이 본다.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상 받은 것들이 지금 나의 인생을 좌우할 만큼 큰 영향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아무런 소용없다. 그런데 한국 엄마들은 그런 것들이 인생을 바꾸어 놓는 것처럼 목숨을 건다. 자신의 욕심이다.
우리 부부가 항상 말하는 것이지만 아이들을 망치는 사람은 바로 부모다. 천재도 한 부분에 대한 천재가 필요하지 모든 방면에서 완벽한 천재를 바라는 엄마들의 욕심으로 결국 아이들의 미래는 망쳐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아이의 잠재력과 미래의 가능성으로 볼 때 섣불리, 너무 빨리 한 방향으로만 정해주고 집중하는 것도 경솔한 결정이 될 수 있다. 삶은 깊이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경험과 넓은 폭도 중요하다. 아이의 의지, 재능, 흥미와 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할 듯) 미술과 음악, 이런 심성을 아름답게 하는 교육도 한국에서는 모두 경쟁으로 생각한다. 기계처럼 화려한 테크닉은 있는데 표현이 없다. 한국에서 피카소가 나오지 않는 것은 그림에 생명력이 없는 학원에서 배운 수학적인 표현만 있다는 말을 화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아이들은 세상에 나오면 자기만의 살아갈 길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자식들의 점수에 목숨거는 그런 부모는 되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명문대 가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는 그런 논리는 없기에 마음을 비우는 것이 좋다. 결국은 그것이 좋은 영향으로 작용한다는 믿음을 갖고 늘 아이들에게 방향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 개곰님의 글 속에서 한국의 엘리트는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명문대 나온 사기꾼과 나라를 환란으로 몰고 간 사람들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아마 국제중을 졸업한 인간들도 권위의식, 특권의식, 지만 잘났다는 사람들이 될 확률이 백 프로일 것이다. 가슴은 없고 머리에 좀 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사랑해서 큰 인물이 될 거라는 것은 착각이고 정말 섬뜩한 미래가 아닐 수 없다.
선행학습은 NO
대부분의 가정에서 선행학습을 한다. 유치원 때 구구단을 외우고, 초등학교 때 중학교 수학 풀고, 중 3 정도 되니깐 미적분도 푸는 아이들 봤다. 선행학습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하지만, 대학에서 결국 어려운 문제 극복하고 한 단계 뛰어넘는 것은 미국 아이들이었다. 한국인은 처음에는 주름잡다가… 나중에 결국 넘어야 할 것은 결코 넘지 못하는 것을 미국유학 때 알았다.
세계에서 제일 머리 좋다는 유대인들도 선행학습은 아이들을 망치는 지름길로 알고 있다. 국제중을 만들어 아이들 뽑는 기준이 뭐가 되겠는가. 외국의 명문대학에서 한국인의 학습 포기가 제일 많은 이유도 선행학습으로 인한 창의력 상실 때문이다.
남을 누르고 일등이 되는, 암기만 해서 다른 사람이 넣어준 생각으로는 학문의 길을 높은 수준까지 올려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어떻게 저런 아이디어어와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것도 결국은 그들의 어린 시절의 교육에서 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한국의 교육은 창의성이 없다. 비슷비슷한 사람은 많이 나지만 백만인을 먹여 살리는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나오기란…
(탑클래스 인재와 탑클래스 국가를 위해선 엘리트 교육, 영재교육, 창의성 교육도 일정부분 필요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보통교육, 기술교육도 필요하다. 슈퍼엘리트의 수준에선 한국이 미국에 훨씬 못 미치지만 국민들, 노동자들의 전체적인 교육수준, 기술수준에선 한국이 앞선다. 같은 조건에서라면 한국노동자들이 더 빨리 습득, 적응하며 생산성이 더 높을 것이다. 공동체가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선 여왕개미도 있어야 하고 병정개미, 일개미도 있어야 하고 각 분야, 각 계층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특출난 소수 엘리트의 수준도 높아져야 하지만 유능한 다수 대중들의 수준도 전반적으로 향상돼야 한다. 하나하나가 개체로서 유능해야지만 그 총합으로서의 전체도 유능해지고 경쟁력이 강해진다. 미국에 비해 시장이 좁은 우리 현실에서는 이러한 바탕위에서만이 천재, 슈퍼엘리트의 발굴과 양성이 가능하다. 높은 산은 높은 산중에 있어야 높다. 에베레스트는 히말라야에 있기 때문에 높다. 어쩌면 빌 게이츠가 백만인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백만인의 인터넷 유저가 빌 게이츠와 인터넷, 디지털 산업을 먹여 살린다고 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 국제중, 자사고, 특수고 등의 수월성, 엘리트교육으로만 폭주하는 이명박식 교육정책은 제고해 보아야 하며 평준화, 보통교육에 무게중심을 옮겨 투자와 비중을 늘려야 한다. 성급하게 대롱, 꽃에만 물을 주어 웃자라고 줄기, 뿌리와 간격을 벌려 허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줄기, 뿌리에 물을 주어 튼튼하고 균형있게 나중을 생각하며, 간격을 줄이며 함께 커야 한다. 위에서 끄잡아 올리는 것이 아닌 아래에서 밀고 올라가는 방식이라야 한다. 서바이벌 TV프로처럼 단계마다 일부를 버리고 포기하고 가는 교육이 아니라 되도록 많이, 되도록 끝까지 함께 가는 교육이라야 한다. 언제라도 패자부활전이 보장되고 항시적으로 인재, 천재가 건져올려지고 발굴되어지는 교육이라야 한다. 대학 이전의 고등학교까지는 절대 이러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교육은 초등부터 대학까지 거대한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쟁투다. 그리고 그 규칙마저 공정하지 않다. 타고난 천재, 뼈를 깍는 성실성도 돈과의 경쟁에서 패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얼마나 많은 천재와 인재가 사장되고 좌절하였을까. 천재란 것이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하늘로부터 타고난 재능이란 의미에서 돈으로 만들어지고 찍어낸 영재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우리같이 만들어진 영재가 타고났지만 불우한 천재를 패퇴시키는 나라에서는 영재, 엘리트교육은 차라리 혁명에 가까운 완전 사회주의식으로 가는 게 오히려 더 효율적이고 국가적으로도 이익이다. 일정 수준과 자격만 갖추면 유치원서부터 수시로 국가가 심사, 발굴, 받아들여 최고수준에서 책임지고 교육시키는 거다. 생활비며 유학비며 모든 비용을 100% 국비로 충당하고 졸업후의 진로까지 책임지는 대신 일정한 조건, 기간 동안 국가에 대한 충성, 의무를 지우면 된다. 천재적 재능을 돈이 아닌 국가가 키우고 국가를 위해 써먹자는 거다. 경제력, 권력을 배제한 채 오직 재능과 가능성, 잠재력만을 보고, 모든 국민에게 열려있어야 하며 동시에 사학 포함 타 교육기관과의 경쟁에서도 공정성과 개방성이 보장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이 또 다른 명문, 특권으로 만들기 위해 제도를 막고 뒤틀고 훼손, 악용, 결국에는 무력화하려 시도하겠지만 부담이 덜어지니 국민에게도 좋고 인재유출도 적어지니 국가에게도 좋고 모두에게 윈윈하는 방법일 것이다.
또한 주입식 암기란 것도 어느 단계까지는 필요한 수업방식인데 예를 들어 구구단이나 기역니은 등은 수학과 국어의 기초, 학문 이전단계인 학습을 위한 도구로서의 무조건적인 습득사항이랄 수 있다. 미분적분, 문학론 등을 창의적이고 원리에 맞게 수업한다는 것은 가능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구구단의 원리나 기역니은, 알파벳 등의 기원, 창제 원리, 음운학적 원리에 대해 이해시키는 것은 대학원 박사과정에서나 연구해야 할, 오히려 성인에게도 벅찬 심오한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 물론 그 원리란 것을 아이들이 받아들일 정도로 눈높이에 맞게, 얼마나 쉽게 설명하는 것이 관건이겠지만 가장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긴 쉬워도 가장 어렵고, 심오한 것을 쉽고 정확히 말하긴 완전히 체득하기 전에는 지난한 일이다. 고작해야 ‘알파벳이란 단어와 발음이라는 집을 지을 때 쓰이는 블록‘이라는 설명 정도!-엄마! 왜 A가 에이야?-A니까 에이지!-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때로는 닥치고 외워야 할 경우도 있는 것이다.)
집은 항상 도서관과 가깝게
집을 구할 때나 이사 갈 때, 항상 도서관과 가깝게 정하는 것을 고려했다. 지방 근무를 몇 번 갔던 우리는 항상 그렇게 했다. 두세 살 때부터 무조건 도서관에 데리고 다닌다. 물론 자기도 하고 책도 꺼내기도 하다가 결국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책을 만나게 된다. 15년이라는 긴 주기의 시간에 비하면 1년, 2년이라는 시간은 그냥 도서관에서 놀기만 해도 그리 아까운 시간은 아니다.
매점에서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점심도 거기서 먹고… 아이들이 도서관을 놀이터로 여기게 하는 것 매우 쉽다. 부모가 하지 않을 따름이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책값도 아낄 수가 있다. 도서관을 이용하여 생긴 돈과 과외를 하지 않고 모은 돈으로 나중에 정말 좋은 것을 할 수 있게 준비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큰 아이는 도서관에 있는 책 들 중 그 나이에 맞는 책은 거의 읽어서 따로 도서관에 새책을 신청하기도 했다.
수학 공부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말보다 글보다 수학을 먼저 가르치는 엄마들 많이 본다. 100% 전부 그렇게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연산만 시키는 것이다. 하루는 도서관에서 6살 꼬맹이가 구구단을 외우기에 이삼은 육이 무슨 뜻이니 하고 물었더니 '몰라요. 그냥 엄마가 시켜서 외우는 거에요. 못 외우면 죽어요.'라고 하는 아이들을 자주 봤다.
아이가 글을 읽을 때 피라미드에 관한 이야기로 된 수학책을 사줬다. 수학이란 옛날부터 우리 생활에 살아가는 방법으로 쓰였다는 사실과 기하학이나 그 외 수학적인 재미있는 사실로 수학이란 그냥 우리가 살아가는데 이렇게 쓰이는구나 하는 것을 먼저 알게 해준다. 학습지로 하는 연산보다는 원리를 알려주는 것이 긴 안목에서 보면 수학에 대한 흥미를 오래가게 해주는 것 같았다. 모르는 것은 답을 알려 주기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려도 우리는 혼자 스스로 하게 하던지 방향만 제시한다.
글쓰기
우리 부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책을 읽고 나면 반드시 글을 남기게 한다. 말은 사라지지만, 글은 영원히 남는다. 즉 머리에 있는 것들을 끌어내는 효과가 있다. 아무리 많은 독서를 하더라도 글을 쓰는 것과 그러지 않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꼭 논술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면 나중에 논술을 따로 공부하는 그런 번거로움을 덜게 해줄 뿐만 아니라 글 쓰는 두려움을 없애게 해준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능력과 함께 논리적인 아이가 된다. 무엇이든지 서두르면 실패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장기전이라는 생각을 늘 한다.
독서(독서+글쓰기/독서후에 글쓰기/독후감/독서, 독후감 노트/책에 느낌, 생각 등을 첨삭)
최고로 가치를 부여하는 교육 방법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동화로 시작을 많이 한다. 어떤 천재는 과학이나 수학 이런 책을 좋아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천재가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평범한 아이들을 천재로 키우는 교육이 진짜 교육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학이나 사회, 역사, 등등 시각을 조금씩 넓혀 준다.
자신이 소장하고 싶은 책은 아무리 어려도 꼭 한 달에 한 권씩(귀한 줄 알게? 심도있고 집중적으로?)은 갖게 해주면 책을 사랑하게 된다. 서점에 가는 것도 도서관과 같은 효과를 누린다. 부모가 유치해져야 한다. 무조건 '와~!' 하고 아이들의 편을 들어주고 의사를 존중해주는 것이 최고다. 하지만, 자식에 목숨 거는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기들이 골라서 읽게 한다. 무조건 공부와 관련된 것만.
지금 시중에 나오는 물리나 수학 경제 철학 등 전문가가 쉽게 설명해 놓은 베스트 책도 읽는다. 대학교 수준의 책이지만 어려운 것은 아빠와 토론하고 설명도 해주면 거뜬히 읽는다.
학습적인 공부는 언제든지 시간을 내면 따라잡을 수 있다. 독서로 다져진 시간은 절대 단시간에 따라올 수가 없다. 독서로 성장한 아이와 책은 읽지 않고 문제집만 푼 아이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갭이 생긴다. 선진국 아이들은 수학에서는 한국 아이들에게 뒤지지만, 나중에는 한국 아이들보다 빨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
세계는 넓고 무대는 크니깐 국제중 만들어 선진국 아이들 따라잡고자 하는 착각은 버리는 것이 좋을 텐데 머리에 무슨 뇌들이 들어 있는지 정말 한심해 죽겠다. 한국적인 시각에서 일등 해봐야 결국 독서가 강한 선진국의 아이들 못 따라간다. 결국은 독서를 많이 한 아이는 책을 이해하고 읽는 양도 많고 속도도 빠르다. 가정 경제가 어려운 젊은 부부들은 실망하지 말고 이 방법만으로도 성공하는 아이들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루에 한 개의 소재를 준다
아이가 글을 쓰게 되면 6학년 때까지 하루에 한 개씩 소재를 주면 좋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주는 것이어야 한다. 무거운 짐이 되지 않게… 그러나 고학년이 될수록 그 깊이가 깊어지고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
글을 모르는 꼬맹이들도 소재를 주고 말로서 표현하게 하는 것도 좋다. 가령 '바람'이라는 소재를 주면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동시를 짓든, 동화를 짓든, 거기에 맞는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바람 할아버지는 외로웠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전부 날아가 버리는 것이에요."(캬아~! 감탄이 절로!) 이런 식으로 글을 만들기도 했다.
대학노트 프로젝트
무엇이든지 자기가 읽고 싶은 것 읽고 거기에 나오는 모르거나 궁금한 것은 백과사전을 찾아서 적는 프로젝트를 주었다. 물론 3~ 4개월의 기간을 주고 하는 프로젝트다. 가령 퀴리 부인을 읽고, 노트에 체코라는 나라를 찾고, 노벨상을 찾고, 화학에 관한 백과사전에서 제시하는 글을 적도록 했다. 학교에서 배울 지식들을 가랑비에 옷 젖듯이 머리에 스며들게 해준다.
교과서에서 배울 내용들을 거의 자기가 스스로 찾아서 알게 하는 효과가 있다. 모든 지식이 자연스럽게 다가오게 하면서 그것이 곧 자기 것이 된다. 외워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시험 끝나면 잊어버리는 그런 방법과는 비교가 안 된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는 반드시 상을 주기로 미리 약속을 했다. 이것은 정말 큰 효과가 있다. 아이들이 유식해지고 이해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 후에 교과서에 자기가 조금 아는 것들이 나오면 눈이 초롱초롱 빛나게 된다.
학교는 되도록 일찍 보낸다.
생일이 빨라서 7살 때 입학하게 되면 주위의 친구들은 일 년을 미루는 것을 봤다. 그러니 우리 아이는 어떤 아이들보다 2년이 뒤진 경우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버벅대다가 2~3학년 되면 거의 수준이 같아진다. (다른 아이들은 거의 차이가 안 나지만 우리 아이는 좀 머리가 나빠서 그랬을 거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을 일찍 학교에 보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을 다른 아이들과 경쟁의 시각으로 보니깐 뒤처진다는 걱정에 한해 늦게 보내는데, 자기 자식 교육하는데 자꾸 다른 사람을 경쟁자로 생각하면 안 된다, 자기 아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잠시 힘들어하고 뒤쳐진데도 아이의 인생에서 보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남편의 말로는 "재수한다고 점수 올라가지 않더라.^^"
동기를 부여한다 (넓은 세상을 보여준다)
글쓰기가 좀 꺼려지는 부분이지만…. 외국여행이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은 과외를 시키지 않고 도서관을 이용하고 하여 절약한 돈으로 아이들에게 큰 세상을 보여 줄 수 있다. 사실 큰 세상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초등학교를 막 넘기려는 시간… 5학년 정도 되어서 이탈리아를 보여 주면 좋다. 어릴 때부터 과외 시키는 돈 10년 정도 모은다고 생각하면 세상을 매우 많이 보여 줄 수 있다. 돈을 과외로 쓰냐, 아니면 그 돈으로 여행하느냐 하는 시각으로 생각해 보길 바란다. (굿 아이디어!)
아이들이 지쳐가는 나이가 될 때 여행만큼 좋은 동기 부여는 없다. 방학 때 미국의 라스베가스 가서 아이들하고 갬블링 했다는 사람들 보면 이해 못 한다.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이탈리아가 좋다. 서양 문화의 중심이었고 바티칸의 꼭대기에서 로마를 보는 것은 아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한 그 무엇을 남기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기차를 타고 프랑스와 영국 정도는 갖다 오면 좋다.
세계사를 배워도 그곳을 본 아이들이랑 그렇지 못한 아이들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느낌이 다르다. 늘 꿈은 넓고 큰 세계로 닿고 더불어 작은 것에 왈가왈부하고 친구들을 적으로 보는 경쟁심 이런 것 없어진다. 너그러운 아이가 된다. 적어도 꿈은 넓고 크게 잡는다.(세계와 경쟁하고 자기 자신과 경쟁한다)물론 어릴 때부터 국내를 여행하는 방법도 아주 좋은 일이다. 우리는 나의 문화 유적 답사기를 중심으로 거의 국내는 다 돌았다. 그리고 간 곳을 자주 간다.
박물관
우리 집 안방처럼 많이 간다.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다. 도서관처럼 그냥 박물관에서 논다 하는 마음으로 데리고 다닌다. 국립 박물관은 매주, 매달에 한번은 입장료가 무료이다. 한번 본 것은 두 번 다시는 잘 보러 가지 않는 부모들이 많다. 우리 부부는 여러 번 갔던 곳을 자주 간다. 더 깊이가 있고 더 친근하게 그런 것들을 접하고 받아들인다. 대학 박물관도 있고 시내의 고궁에는 가이드와 함께 하는 코스도 있다.
휴가 때는 정말 좋은 역사 공부시간이다. 리조트 가서 즐기고 노는 것보다는 문화유적을 찾아다닌다. 남편이 무척 좋아하니깐 시작했지만 이제는 우리 것이 그리 편할 수가 없다. 어찌 보면 가장 큰 교육인데, 하루는 아이가 놀러 온 친구에게 박물관에 있던 사진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런 것은 몰라도 돼. 우리 엄마가 그러던데 그런 것은 나중에 외우기만 하면 된데, 영어와 수학이 가장 중요하대" 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비하면 우리 국민들이 우리 것을 너무 무시하고 잘 모른다. 비록 초라한 것도 많지만, 그 속에 수많은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아이들에게 계속 설명한다. 보통 우리 부모들을 그런 것 안 한다.
영어와 미국 것이 제일 아닌가, '어린쥐'처럼.. 경주만 우리는 단골로 간 적이 있다. 경주에 왜 보문 단지가 생겼느냐 하면 사람들이 하도 안 오니깐 그것이라도 만들어서 손님 끌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무조건 '영어가 제일이다' 하기 전에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 이렇게 자란 아이는 대통령이 되어도 저질 쇠고기 사오지도 않고, 일본에 가서도 고개 빳빳하게 들고 다닌다. 노짱처럼 부시에게 가서도 '까불지 마!!' 하는 배짱있는 대통령이 된다. 공부는 좀 못하면 어때…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은 것일 뿐이다. 누가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선택의 폭을 넓혀 주고 많이 보여 준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신발을 하나 사더라도 동대문시장을 찾았다. 백화점에서 사면 편하지만, 스스로 하나를 고르면서 선택의 폭도 넓혀주고 자연히 시장이라는 개념을 알게 된다. 꼭 발에 맞는 것을 고르는 나와 조금 큰 것을 고르는 남편… 아이도 고민한다. 그리고 결정은 자기가 하게 한다. 발이 신발에 맞을 때쯤 되면 다 떨어진다는 경험도 갖게 해줬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청계천에 가면 벼룩시장이 있었다. 고물 파는 곳… 오래된 물건도 있고 지금 시대에 보기 어려운 것들.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앉아서 구경할 때 정말 좋아했다. 마음에 드는 물건도 몇천 원에 사곤 했다. 정말 좋은 박물관이었는데, 촛불 들 때 처음으로 청계천을 구경 했었다.
절약하는 습관을 길러준다
아직 핸드폰 사주지 않았다. 대학교 들어가면(요즘은 너무 늦지 않나?) 사주기로 약속했기에 조르지도 않는다. 돈이 있든지 없든지 항상 절약하는 정신을 심어준다. 자신의 인생도 소중히 하고 아끼는 품성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비싼 브랜드의 옷은 그 정도가 지나친 것은 한 번도 사 준 적 없다.
그리고 행동에 대한 대가가 용돈이 되게 한다. 부모와의 사이에서도 거래를 확실히 한다. 엄마 아빠의 지원은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자식이니깐 얼마든지 해준다 하는 그런 지원은 없음을 분명히 한다. 결혼이나 대학 졸업 후의 일은 본인이 하도록 하는 것을 계속 약속화시킨다.
(고민되는 대목! 독립심을 기르고 사회에 나가 적응을 하려면 이런 교육방침도 필요하지만 가족간에 너무 사무적, 계산적인 계약관계가 되는 것 같아서 거래나 보상이 개입된 말과 행동은 좀 머뭇거리게 된다. ‘숙제하면 장난감 사줄게‘라고 말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는 ’청소했으니까 장난감 사줘‘라고 말하게 된다. 언젠간 ’장난감 사주면 청소할게’라고 말할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결국엔 생각이 어리고 당돌한 아이들은 당연한 것에도 조건을 걸게 되고 이것은 부모가 ’100점 맞으면 기뻐해줄게‘, ’착한 일 하면 사랑해 줄게‘하고 말하는 것과 본질에서 같은 것이다. 내가 좀 극단적이고 예민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이들에게 ’A하면 B해준다‘, ’B하면 A한다‘ 라고 말하고 듣는 것이 거북하고 상쾌하지 않다.
거래, 기브 앤 테이크, 계약관계 등의 개념이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긴 하나 가족간의 관계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 사랑의 핵심, 정수, 본질은 아낌없이 주는 것, 무조건적인 희생이 아니던가! 부부지간이야 엄밀히 얘기해서 선택에 의해 계약관계로 묶인 사이라지만 부모자식간은 피와 사랑만으로 묶인 관계다. 이혼소송은 들어봤어도 부모자식간의 절연소송은 들어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부모가 자신을 언제나, 지극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 어느 상황에서도 그 사랑을 저버리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만은 갖게 해줘야 할 것이다. 물론 사랑만으로는 안 되고 훈련도 필요하고 혹 무분별하고 헤픈 사랑, 과보호로 아이를 망쳐서는 안 될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혹 노벨상(?)을 타면 그 돈으로 우리가 혜택을 입은 도서관에 돈을 기부한다는 계획을 짜 두었다. 우리가 은혜를 갚아야 하는 도서관은 8개 정도 된다. 늘 그 고마움과 언젠가는 우리가 보답해야지 하는 생각은 늘 갖고 살아간다.
그리고 아이들이 졸업한 한 학교에 꼭 아이들의 이름으로 장학 재단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다. 시작은 부모가 하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사회적 책임감을 주기 위해 그렇게 할거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자식들도 그렇게 할 것이고…. 그런 시간이 꼭 왔으면 좋겠다. 이것이 진정한 부의 세습이 아닐까. 강부자 정권에 있는 사람들과 비싼 아파트에서 살면서 투기해서 자식들에게 왕창 물려 주는 그런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할 것이다.
잘하는 것만 시킨다 (아이의 소질을 파악해라)
한국 부모들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도록 가르친다. 분당에 사는 내 친구는 과외만 14개를 시키는 것도 봤다. 남편의 수입의 거의 대부분을 과외비로 지출한다. 아이는 완전 로보트다. 고학년이 되니깐 엄마도 지치고. 아이는 아무것도 시키지 말라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 모든 방면에 과외를 시켜서 천재를 만들어야 하는 욕심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 우리는 잘하는 것만 시킨다. 아이들의 소질과 흥미를 빨리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시간과 노력을 벌 수 있다.(역시 언제까지? 어느 타이밍에? 가 중요!)
물론 꿈이나 적성이 크면서 바뀌는 것이 당연하지만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어릴 때부터 한 방향으로 집중시키는 방법이 좋을 수 있다. 의사, 변호사, 법관, 등등 미래는 부모가 하고 싶은 것을 시키는 시대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은 경쟁 사회이므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사는 사람이 성공하고 행복을 누리며 살기 때문이다. 행복은 돈과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역사 상자 만들기
우리 부모님이 하셨던 것을 따라 한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입었던 배내옷과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사진에 박혔던 옷이나, 신발 이런 것들, 의미가 있는 것들을 버리지 말고 잘 정리 해둔다. 학교에서의 작품이나 아이들의 내면이 표현된 것들을 다 정리해서 아이들이 자기의 성장의 역사를 보게 해준다,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 자신이 귀중한 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며… 이런 아이들은 절대 커서 자살하지 않는다. 한 인간의 역사를 보존해 주는 것이다.
…………………………………………
난 국제중학교가 생기는 것 대단히 반대했고 무산되기를 기도했다. 나와는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나라가 이렇게 가면 절대 안 된다. 한국 사람의 유전자에는 과외와 투기가 있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유전자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상황. 학벌에 치이고 불이익을 받으면서도 학벌과 명문을 선망하고 부동산 투기를 비분강개하면서도 투기를 통해 불로소득을 얻고 재산을 늘리는 것을 부러워함) 너도나도 그 학교를 보내야 사회에서 성공한다는 강박 관념이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할 것이다. 주위에서는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다들 교육 때문에 질렸는데 또 혹이 하나 더 붙은 것 같다.(돌아가는 모양새가 혹은 늘어만 가고 짐은 점점 무거워져만 간다. ㅠ.ㅠ)
망국의 길로 가는 지름길로 가고 있는데 교장이라는 사람들이 국제중 찬성한다며 삭발을 하고 또 그 학교가 들어서야 아파트 값이 오른다며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찌 우리나라가 이런 수준의 나라가 되어 가는지….
국제중 없어서 노벨상을 타지 못했나? 국제중이 없어서 그런 부도덕한 인간이 대통령 되었나? 국제중 나오지 않아서 하버드 졸업하고도 햇볕정책보다는 삐라가 효과적이다 하는 돌대가리가 국회의원 되었나? 국회의원은 왜 하나. 지가 원하는 정책 적어서 삐라로 뿌리면 되는데 뭐 때문에 국회에 번거롭게 나오는지 잘난 얼굴이 아깝다.(홍뭐시기 의원)
명박이 졸개 대신 회장님 아들 역이 딱 어울리더구먼 분장실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이 국회에 있으니 이것도 국제중학교가 없어서 그럴 것이다. 선진국에는 국제중 이런 것 없는데 무슨 재주로 노벨상도 싹쓸이하고 선진국이 되었을까?
인재를 양성하고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설립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사회의 특권층이 부를 세습하고, 이제는 지배도 세습하고 싶다는 얄팍하고 비겁한 수작이다. 부패한 명박이의 정권이 물러나기 전에,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 하나 만들어 놓고 가겠다는 것이다.
공정택 이 사람아!!! 당신이 잘나서 그 자리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네. 더럽고 검은돈으로 당선된, 양심과 법을 어긴 당신을 처단 못 하는 정권이 당신보다 더 썩은 것이니깐 봐 주는 거라네.
당신이 참여정부의 교육감이었으면 한나라당의 하이에나들이 당신을 파면이 아니라 능지처참했을 것이라네. 더러운 정권의 보호 아래 있음이 감사해서 그런 교육정책을 내 놓았나 본데… 당신 손자가 성적 때문에 자살한 초등학생이라면 그런 정책을 내 놓았을까 하는 물음을 던지고 싶다네….
국제중… 이것이 나라 망치는 지름길이라네. 국제중 만들지 말고 사기꾼과 전과자, 땅 투기하는 사람들 잡아다 사람 만들어 주는 재활학교를 만들어 주는 것이 노벨상도 타고 선진국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것 말하고 싶다네. 당신 같은 사람이 교육감이 된 행운은 인재가 아닌 인간이 없는 부패한 정권 덕분이라네…
당장!!!! 취소해. 나라와 이 땅의 희망인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나름대로 각자의 교육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도, 우선은 자기의 유익보다도 서로 서로 평등을 이루게 하는 한국 교육이 되면 좋겠다. 돈으로 한 사람의 장래가 결정되는 그런 비극은 꼭 막아야 하는데…
------------------------------------------------------------------------------------------------
후기 : 예전에 토머스 고든(Thomas Gordon)이 지은 <부모역할훈련(Parent Effectiveness Training : P.E.T)>을 읽은 적이 있다. 참 인상깊고 유익했던 책이었는데 내용을 최대한 요약해 보면
아빠, 엄마 되기도 공부가 필요하다.
(학습, 훈련은 물론 수양까지...헉헉 -.-:;)
①적극적 듣기
②나-메시지로 말하기
③무패방법(No-Lose, Win-Win)으로 문제를 객관화시키고 공유하여 함께 참여하여 해결하기.
(①②는 기존의 가치판단 없이 감정을 중심으로 듣고 표현한다. ①②③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것은 아이든 어른이든 모든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존중되어야 할 독립된 개체라는 믿음 또는 입장!)
우리에겐 낯설고 생소한 가장 이상적인, 민주적인 심지어 자유방임적인 교육철학이랄 수 있다. 보수적, 유교적인 일부 극성맞은 학부모들에겐 가축(!)적인 분위기의 무책임한 방목, 방기로 읽힐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라(탈무드)---X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스스로 그 방법을 탐구하고 찾게 하라---O
즉 어린 이, 자기 자식이라 하더라도 완전한 독립체로 보고 믿음과 존중을 전제로 한 일임, 혹은 방임까지도 감수하는 자세이다.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도 오만한 태도라는 입장이며 어른과 어린이, 부모와 자식이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협력하는 관계이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장유유서, 가부장적, 권위적 교육문화가 뿌리깊은 우리 실정에서는 쉽게 이해하기도 실천하기도 어려운 교육철학이랄 수 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참을 인자를 새겨가며 수도자적 자세로 임해야 할 철학이고 사교육이건 공교육이건 기존의 교육기득권자들에겐 혁명에 버금가는 위협이 되는 교육철학이랄 수 있다. 설혹 어렵게 이런 방식의 교육을 수용하고 실천한데도 개인과 가정만으로는 한계가 많다. 학교가 담당해야할 몫이 따로 있고 사회, 국가와 조화를 이루어야 제대로 효과가 날 수 있다.
아빠로서 자녀교육은 아내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다. 그리 열성적이지 않아서라기보단 어차피 아이들 사정도 더 잘 알고, 아이들에게 쏟는 시간과 수고가 나보다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유리한, 책임있는 위치에 있어 우선권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훗날 혹시라도 ‘애를 어떻게 길렀길래 이 모양이야‘ 라고 아내에게 자조적 비수를 꽂는 못난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 관심과 성의를 보이고 면피를 구하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 가르치는데 아빠로서, 부모로서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사랑의 매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개가 자기감정, 자기절제를 못한 어른들의 분풀이인 경우가 많다. 공포에 질린 아이의 눈을 본 적이 있는가? 육체적인 상처도 상처지만 영혼에 남기는 상처의 흔적은 더 치명적이고 유해하다. 손쉽게 아이들을 다룰 수는 있으나 그 때뿐이다. 폭력으로 가르친다면 아이는 폭력으로만 설득할 수 있는 아이, 폭력 앞에서만 마지못해 굴복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단지 고통과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교육의 효과가 나타나는 순간 그 교육은 이미 실패한 교육이다.
물론 부족한 자제력, 절제력, 규율, 성실함을 단지 말만 갖고 가르치긴 힘들다. 하지만 폭력만은 안 된다. 부모가 폭력을 쓰는 순간 자신도 거기에 노출되게 되고, 자신에게도 행사한 꼴이 된다.(드라마, 특히 외국드라마에서 보면 분을 참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손찌검을 한 후 당황해하고 괴로와하는 부모가 나온다.-내게 일체의 폭력을 강요하지 말라. 그것이 나에겐 폭력이고 벌이다). 자녀 학대의 일종인 무관심과 방치 혹은 과보호보단 매가 낫다는 의미에서 '매 끝에 정나고 효자난다'란 속담이 생기기도 했겠지만 여자입장에서 '여자와 북어는 삼일에 한번씩 패야 한다'란 흉악살벌한 속담이 황당하고 혐오스럽듯이 힘없는 아이입장에서는 일방적이고 억울한 폭언이 될 수도 있다. 아버지가 잘못한 자식을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패고 괜히 미안해서 신나게 놀아준다거나, 어머니가 회초리로 엄하게 벌을 준 후 자식이 잠들기를 기다려 몰래 약 발라주며 눈물짓는 것이 지극한 자식사랑의 정겹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부모로서 자식교육의 무능과 실패의 고백에 다름 아니다. 매번 이런 상황이야 아니겠지만 사정이야 어떻든 상황이 여기까지 이른 총체적 책임은 결국 부모에게 있다. 자율적 교육방법으로 책임감있는 성인으로 키우는 것, 타율로서 키우는 것, 매로 효자를 만드는 것, 사랑으로 효자를 만드는 것...무엇이 성공한 교육인지, 어느 부모가 유능한지는 자명하다.
생각해보면 선행에 대한 보상도 그렇고, 잘못에 대한 벌칙, 규제에도 다양한 수단과 방법이 있다. 폭력만이 능사가 아니다. 부작용이 가장 크며 장기적으로 보면 효과면에서도 가장 떨어지는, 가장 피해야 할 벌칙이다. 부모가 자녀와 상의해서 벌칙에 대한 다양한 옵션을 미리 정해놓고 원칙에 벗어나지 않는 한도내에서 그때 그때 자녀와 협상, 타협해서 그 방법과 강도를 스스로 선택하게끔, 스스로 받아들이고 납득하게끔 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유도 모르고 받는 벌은 억울함만 키운다. 잘못에 비해 과하다고 생각되는 벌은 원망만을 키운다. 스스로 받아들이고 납득할 수 있는 벌만이 반성과 개선, 자아성장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둘째가, 올바른 언어생활.
행동만큼이나 말 씀씀이가 중요하다. 물리적 폭력만큼이나 언어의 폭력은 강력하다. 비속어, 욕설뿐만이 아니다. ‘너 때문에 내가 미쳐’, ‘못살아 내가 증말’,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 ‘이것밖에 못해’...... 아이는 부정적이고 억눌릴 수밖에 없다. 짜증내며 말하는 부모의 아이들의 말에는 항상 짜증이 묻어난다. 아이들은 부모의 언어습관, 억양, 뉘앙스까지 따라배운다.
나머지는 뭐 잡다한 것. 눈높이에 맞출 것. 생각만 맞출 것이 아니라 실재로 무릎 꿇고 행동으로 맞춰야 한다. 그것도 진지하게. 의견을 경청하고 선택권을 가능한 한 보장할 것.
하지만 이런 나도 아이들 공부를 봐주다 보면 울화통이 터져서 뭐라도 집어던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밖에서 학교에서 안 좋은 언어를 배우고 와서 써먹는 것을 보면 속상하고 앞집 뒷집 뭐 시킨다, 뭐 다닌다 하면 내 생각이 한가하고 안이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학교에서 뭉둥이로 시푸르덩덩 맞고 들어오면 어쩌지???)
교육에 철학이 있고 없고 하는 한가한 얘기에 앞서 생계에 바쁘고, 부모는 부모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생존경쟁에 치이다 보면 의도적이든 아니든 자녀교육을 회피하게 되고 떠넘기게 된다. 아빠는 엄마에게 엄마는 학교와 과외에, 학교는 가정과 사교육에 떠넘기고 국가는 개개인에게 떠넘기고......돈 있는 사람은 사람사서 과외에 떠넘긴다지만 여유가 없고 배우지 못한 부모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자기자식들 좀 잡고 있어달라고, 집에선 잠만 자게 해달라고, 몽둥이로라도 때려서 가르쳐달라고, 심지어는 머리 좀 짧게 자르고 용모 좀 단정하게 해달라거나 핸드폰 좀 적게 사용하게 해 달라거나 하는 시시콜콜한 것까지......엄한 학교, 때리는 학교, 숙제 많은 학교, 시험 자주 보는 학교, 공부 많이 시키는 학교, 뺑뺑이 많이 돌리고 오래 잡고 있는 학교가 인기다. 가정에서 엄마아빠도 잡지 못하는 걸 선생님에게 잡아달라니...... 선생님을 신으로 아는 건지, 머슴으로 아는 건지......비단 학부모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교육에 문제의 핵심은 교육에 대한 확고한 비전 없이 단지 시험점수를 위해 다 같이 미쳐돌아가면서도 남 탓만 하면서 책임회피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면 모두의 책임인가? 모두의 잘못은 아무의 잘못도 아니다?.....아니다! 잘못은 국가에 있다. 책임질 능력이 있고 해결할 능력이 있기에 국가책임이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 눈치보며, 자기자식 챙기는 것은 화재시 비상구로 너나 할 것 없이 몰려드는 것과 같은 본능적인 인지상정이다. 개개의 자유가 보장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발전, 유지된다는 시장의 원리는 대개 덩치 좋고 힘센 강자에 의해 유포, 강요된 논리이다. 개개의 이익이 항상 전체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시장의 실패의 대표적인 예가 투기와 사교육이다. ’변호사의 아내’님의 표현처럼 그것이 유전자처럼 박혀있는 한국인에게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런 것을 적절한 정책수단을 써서 조정하고 절제시켜야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은 교육의 공공성을 방기하는 것을 넘어 이러한 개개의 욕망을 부추기는 방향으로만 폭주하고 있다. 더구나 기름도 붓고 부채질도 해대면서 공교육을 강화한다느니 사교육비를 절감한다느니 듣기 좋은 엉뚱한 말만 해대고 있으니 제정신갖고 지켜보고 있는 입장, 당장 아이의 교육이 걸려있는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복창이 터질 노릇이다. 비단 교육정책뿐만이 아니다.
이것은 뭐랄까??? 부패나 무능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거다. 왼손이 쓰는 정책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왼쪽으로 우회전? 네모산 세모? 미래의 기억?? 시쳇말로 개념이 없다라는 표현이 딱 맞다. 일부러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원래 그런 것 같기도 하고......국민들을 허탈, 황당하게 만들고 급기야 약올려 죽이기라도 하려는 듯한 기세다.(말하다 보니 또 열받네!!) 새로 계발된 국민탄압정책치곤 너무 세련되고 고차원적이지 않은가!
모두에게 유리하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이란 없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은 대다수의 평범한 학생과 학부모에게 피해를 끼치며 절대다수를 피폐하게 만드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또한 내놓는 정책마다 역주행인 것은 그렇다치고 서두르긴 왜 이렇게 서두르나. 누가 쫓아오나. 졸속에, 백화점식 중구난방에, 교육을 공기에 쫓겨 삽질, 공구리치듯 하니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가 없다. 선무당이 사람잡듯 노가다가 애들잡고 있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라 했는데 5년지계, 정권지계도 못되는 수준이다. 다른 정책과 달리 교육정책은 좋은 정책이든 나쁜 정책이든 너무 빨리 자주 바꾸면 안되고 특별히 신중해야 한다. 학생, 학부모, 국민에게 주는 혼란과 영향이 너무 크고 공교육의 경쟁력만 떨어뜨린다. 수능, 입시, 점수 특히 점수만 놓고 볼 때는 어느 정책이든 몸집이 작고 날렵한 사교육이 절대유리하다. 과목개설과 배정의 커리큘럼을 자유자재로 짤 수 있는 것에서부터 하루아침에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도 없어지기도 하는 학원시장의 민첩한 적응력과 경쟁력을 절대 공교육이 따라잡을 수 없다.
교육에 관해서 누구나 불평하고 관심이 많다. 학부모며 자녀며, 교육자며 학생이며 관련되지 않은 국민이 없다. 하지만 푸념만 하고 국제중이며 일제고사며 새로운 정책의 총성이 울리면 재빨리 적응하고 편승하기 바쁘다. 모두가 힘들어 하면서도 핀란드식 교육정책을 부러워하기만 할 뿐 정책을 바꾸기 위해 세를 모으고 정치적 의사표시와 압력을 넣는 것에는 무관심하다. 얼마 전의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는 다행히 반이명박 후보가 당선이 되었지만 20%에도 한참 못 미친(12인가 13%) 투표율은 반성해보아야 한다. 4월말에 있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또 얼마나 관심을 갖고 투표를 할지...교육감 하나 바뀐다고 개선될 상황이 아니다.
서울대권력으로 대표되는 학벌엘리트와 강남, 대치동권력으로 대표되는 지역 및 사학이해집단의 결합은 공고해졌고 우리의 국민성, 유전자로선 자발적으로 이를 해체, 극복하기엔 한계가 많다. 서울대를 나와 강남구 대치동의 수십억 아파트에 살며 자녀는 근처 학원에서 고급과외학습을 받는 법관, 고위관료, 정치인들이 법과 정책을 주무른다. 서울대 폐지나 사교육 금지 등은 수도이전보다도 저항이 심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혁명에 준하는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전두환식 과외금지 같이 독재적 방식이 통하는 시대도 아니다. 결국 국민투표가 답이다. 국민투표에 부치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고 자격이 있는 이슈이다.
아무리 주관이 뚜렷하고 귀가 두껍더라도 한 개인, 한 가정이 이러한 교육환경에서 중심을 잡기란 힘들다. 자녀교육에 허리가 휘는 것이 아니라 꺽이고 두동강 나더라도 교육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 한국부모들이다. 설혹 경제력이 빵빵하고, 고상하고 뚜렷한 교육철학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격류에 휩쓸리거나 코가 꿰어 끌려가기가 십상이다. 눈치보고 어울려 따라가느냐, 신경끄고 내 갈길 가느냐? 교육은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결단의 문제가 되었다. 국가가 해결해주지 않으면 개인이 해결해야 할 밖에...자기안의 혁명이다. 이 땅에서 그러한 결단력과 능력 없이 해결할 방법은 이민, 유학 등의 도피밖에는 없다.
쌀이 질어서 (모종의) 실험을 망쳤다?
“살기 싫다~ 시험 x_x”
얼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중고등학생이 유성펜으로 쓴 듯한(초등학생일지도 모르겠다) 낙서다. 보기 그래서, 내 아이가 볼까 봐, 지울 수가 없어서 “쌀이 질다~ 실험 x_x”로 고쳤다. 이 무슨 슬픈 코미딘지 ㅠ.ㅠ
아이들도 죽이고, 부모들도 죽이고, 나라도 죽이는......지금의 교육은 살리는 교육이 아니라 죽이는 교육이다.
졸린 눈, 늘어진 어깨, 힘없는 발걸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집과 학교와 학원을 뺑뺑이 도는 우리 아이들의 고생, 고난의 행군을 보노라면 참 안쓰럽고 어른으로서 못할 짓 시킨다는 미안함이 든다. 어른들이 잘 해야 한다.
'잡설, 상념, 기타등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사랑한 사람-고 노무현 전 대통령 (2) | 2009.05.25 |
---|---|
시청자 두번 죽이는 '아내의 유혹' (0) | 2009.04.18 |
검은 진실, 하얀 거짓말 그리고 검하얀 역사 (14) | 2009.04.10 |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기부? 난 반대! (6) | 2009.03.30 |
다시 보는 2007 이명박후보 대선광고 리뷰(감상 및 해석-'욕쟁이 할머니'편) (7) | 2009.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