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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성경읽기 0023 : 열왕기상 12장~22장

어멍 2010. 8. 18. 23:10


12장 13절

르호보암 왕은 백성에게 무자비한 말을 했습니다. 르호보암은 나이 든 지도자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14절

젊은 사람들이 일러 준 대로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는 너희에게 힘든 일을 시켰지만, 나는 너희에게 훨씬 더 힘든 일을 시키겠다. 내 아버지는 너희를 가죽 채찍으로 쳤지만, 나는 너희를 가시 돋친 채찍으로 치겠다.”


    솔로몬이 죽은 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잇는다. 백성들이 새로운 왕에게 힘든 일을 덜어달라고 청원하자 르호보암이 백성에게 하는 말이다. 힘든 일이란 솔로몬이 이루었던 성전과 왕궁 건축에 관한 노역이라 생각된다. 왕은 나이 든 원로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자기와 함께 자란 젊은 측근들의 말을 듣는다.

    젊고 혈기왕성하지만 교만하고 서투르다. 아버지 솔로몬의 강력한 권력만 당연한 듯 상속받으려 하고 솔로몬이 스스로 쌓았던 업적, 치세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각오로 겸손해야 한다. 아버지의 공덕과 유산에 감지덕지해야 한다. 자기 뜻을 펼치려 해도 일단 내부세력을 강화, 정비하고 선왕 주위의 옛 인물들을 무리없이 정리한 후에 해야 한다. 더구나 새 왕이 세워진 마당이다. 떡도 하고 술도 빚고 잔치라도 벌여 선정을 베풀어야 한다.

    그런데 청원을 단호히 거절하고 도리어 가시 돋친 채찍으로 치겠다며 무자비한 말을 했으니 아무리 힘없는 백성이라도 젊은 왕이 걱정되고 괘씸해 보였을 것이다. 권력이 이양되는 불안정한 시기, 일시적인 권력의 공백기에 아버지 솔로몬에 비해 새파란 애송이로 보였을지도 모르는 르호보암은 이렇게 처음부터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만다. 아직 정치에 서툴렀던 것일까. 측근들만의 의견만 듣는 귀가 얇은 인물이었을까.

    결국 하나님의 뜻과 민심은 떠나가고 통일왕국 이스라엘은 르호보암의 남왕국 유다와 여로보암의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열된다.


    르호보암(세력), 아버지 솔로몬이 이미 이룩해놓은 왕권만을 보존, 강화하려던 르호보암. ‘젊은 보수’, ‘신진 수구’다. 언뜻 ‘하얀 검정’, ‘네모난 세모’처럼 형용모순처럼 들리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젊을수록 진보에 가깝고 나이들 수록 보수에 가까운 것은 일반적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의의로 ‘젊은 수구’, ‘늙은 진보’도 있을 수 있다. 간혹 당황함을 넘어 충격을 받는 경우도 있다. 슬프던지 신선하던지 하여튼 충격은 충격이다. 체제수호를 주장하는 초딩, 혁명을 꿈꾸는 영감님......하여튼 낯설고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이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육체적으로 활력이 떨어지고 정신적으로도 고집이 세지고 완고해진다. 과거만을 회상하고 상상력이 줄어든다. 보수화는 자연적, 생리적인 흐름이다. 그뿐만 아니라 원래 인간은 변화를 기피하고 주저하는 보수의 본성을 갖고 있다. 패기있고 진취적인 혁명세력도 공신에 올라 세월이 흐르면 변화를 거부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도덕과 대의에 목숨을 걸었던 신진사대부도 관직에 올라 권세를 맛보면 어느새 훈구세력이 돼 있기도 하다. 불의를 못 참는 의협심, 맑은 눈동자를 지닌 청년은 노욕과 간교함, 탁하고 음흉한 눈빛을 지닌 노인으로 변해간다.

    아름답게 늙으며 주위의 존경을 받으려면 우리 모두가 경계할 일이다. 하지만 더욱 경계할 일은 젊은 수구, 타고난 수구들이다. 도덕적인 철학이나 가치관은 빈약하지만 노회한 정치인 못지않은 선천적인 간교함과 술수, 출세지향주의로 무장해 있다. 탐욕, 승부심, 생존본능으로 똘똘 뭉쳐있다. 젊고 활기차고 부지런하며 무모할 정도로 저돌적이다. 상대가 누구든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다. 진보는 물론 기존 보수도 방해가 된다면 잡아먹는다. 태어나 눈을 뜨자마자 자기 어미를 잡아먹는 살모사(殺母蛇)다.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이름만 그럴뿐 실지로 살모사가 어미를 잡아먹진 않는다고 한다. 이런 죄악은 어쩌면 인간만이 저지르는지도...)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는 어떤가.


    사회가 급속히, 전체적으로 보수우경화 되다보니 젊은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수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젊은 보수가 꽤 늘었다. 그리고 원래 한국은 보수의 나라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넥타이 부대까지 거리로 나왔던 87년 6월에도 집안에서 불안하게 TV를 보며 혀를 끌끌 차는 국민들이 더 많았다. 그나마 우리 때는 데모도 하고 사회과학서적, 문학서적 등도 읽기도 하였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스펙 쌓기 바쁘다. 정치, 정의, 문학, 낭만은 줄어들고 입시, 취업, 유학, 고시, 아니면 연예, 연애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6,70대 기성세대의 눈에는 집과 학교만을 오가며 묵묵히 책만 파는 건실한 청년, 착한 아들딸들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심각한 청년실업을 극복하기엔 한계가 있다. SKY 학벌이나 천재이거나 특별한 빽이 없으면 간단치 않다. 차라리 도서관을 나와 광장에서 데모와 집회를 해야 한다. 정치인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을 정도로 투표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80%면(이 정도만 되도 경악이다!) 반값 등록금 실현할 수 있다. 90%면 이사, 사장 보수를 줄여서라도 일자리가 더 많이 주워질 수 있다. 만약 100%에 근접한다면(헉! 혁명이다!)... 당장 군 근무월수가 대폭 줄어들고 모병제가 가시권에 들어온다. 기존질서에 길들여지고 순응만 하는 젊은이, 주위에 무관심하고 공동체를 방관하는 소아적인 나약한 젊은 세대에게는 밝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40대 선배가 보기에 지금 젊은 세대는 옳고 그름을 떠나 있다. 심각하지 않고 진지하지 않고 탈이념 되어있다. 고통보다 지루함을 못 참고 악플보다 스크롤 압박에 취약하다. 개인화, 파편화 되어있고 어찌보면 나약하다. 또 한편으론 쫓기고 몰리고 끼이고 불쌍하고 안 됐다. 올바른 가치관과 젊은 기상으로 세상에 도전하여 변화를 이끄는 신진세력이 되기를 바란다. 적어도, 옳고 그름을 떠나 자기 밥그릇은 누가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만은 명심하시기를....


    지난 8월 8일 이명박 대통령이 개각을 하였다. 그 면면을 보면 이 정권의 성격이 더욱 확연해졌다. 원래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이 땅의 정통 보수, 수구세력의 계보로 볼 때 젊은 세대, 1.5세대에 속한 정권이었으나 이번에 더욱 두드러졌다. 기존에 40~50대 차관급 핵심실무세력이었던 이주호, 박영준, 조현오, 신재민, 김태호 등이 이들이다. ‘젊은 보수’, ‘신진 수구’들의 전면 전진배치다.

    하나같이 젊고 하나같이 썩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것들이 못된 것만 배웠다. 위장전입은 기본이고 급기야 아무개 한나라당 대변인은 위장전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나 뭐라나...... 지난 정권 때 위장전입 갖고 그렇게 난리부르스를 추더니 지들도 얼렁뚱땅 넘어가기엔 겸연쩍고 일말의 미안함은 있었나보다. 하지만 빙빙 둘러대지 말고 합법화하자고, 법을 고치자고 하는 편이 정직하다. 국민들도 더 이상 스트레스 안 받고, 억울하지도 않고...... 이편이 오히려 낫다.

    늙은 보수들마저 혀를 끌끌 차고 부끄러워 할 지경이다. 구악을 능가하는 신악이다. 세련되면서도 젊은 패기와 완력으로 무장하고 있다. 친박이 정통보수 세력, 지금은 쇠락해가는 왕년의 실력자들이라면 친이는 돌연변이 세력, 좌충우돌 천둥벌거숭이랄까. 이 땅의 (정통)보수 세력이라는 게 변변한 도덕성과 품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친이 보수세력보다는 낫다.

    이명박 정권과 박정희, 전두환의 군바리 독재정권을 비교한다는 것이 그야말로 깻잎 한 장 막상막하, 부질없는 일이지만 그나마 구(舊)보수가 쬠 더 도덕적이고 순수하고 정이 남아있다. 결정적으로 박정희씨가 1970년대에 1970년대 정치를 하였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에 1970년대 정치를 하고 있다. 명백한 퇴보다. 최악이다. 이제 이 젊은 폭주족이 가속페달을 밟으려 한다. 지켜보는 남녀노소 걱정이 앞선다. 친이 젊은이들은 친박 늙은이들의 의견이라도 참고해야 한다.

    젊은이는 늙은이에게 늙은이는 젊은이에게 서로 겸손하게 배움을 구해야 한다.



15장 26절

전에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를 짓게 했는데, 나답 역시 여로보암이 지은 모든 죄를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34절

전에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를 짓게 했는데, 바아사도 여로보암이 지은 모든 죄를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16장 13절

그들(바아사와 엘라)은 자기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까지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헛된 우상들을 만들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했습니다.

19절

전에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를 짓게 했는데, 시므리도 여로보암이 지은 모든 죄를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25절

오므리는 전에 있던 다른 왕들보다 더 악했습니다.

30절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아합은 전에 있던 다른 왕들보다 더 악했습니다.


22장 52절

그(아하시야)는 그의 아버지 아합과 어머니 이세벨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지은 죄를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을 죄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여로보암-나답-바아사-엘라-시므리-오므리-아합-아하시야로 이어지는 (분열된) 이스라엘 왕의 계보다. 악한 왕들의 퍼레이드! 8명 모두 100%다! 르호보암 이래의 유다 왕의 계보 역시 따로 이어진다. 유다왕국의 사정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다윗과 솔로몬 왕에 견줄 인물이 나와주지 않는다. 그 둘이 다스렸던 통일왕국의 영광은 재현치 못한다.

    죄 짓고 죄 짓고 또 죄 짓는다. 악하고 악하고 더 악하다. 그 중 아합 왕은 가장 탐욕스런 왕으로서 당시 바알과 아세라 등 우상숭배가 극성을 부렸다고 한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죄 짓게 된다. 빛에서 멀어지면 어둡고 악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모두 왕들의 잘못일까? 일국의 흥망성쇠가 모두 이들의 책임일까?

    물론 왕이 다스리던 시대, 백성들을 잘못 인도한 왕들의 죄가 크다. 하지만 나오는 족족, 8명의 왕이 왜 하나같이 악한 인물들이었을까. 어찌하여 한 번도 반전의 인물이 나오지 않은 것일까. 하나님의 선택, 역사하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함은 법과 제도를 말함이다. 더 나아가 문화와 풍속을 말함이다.

    “여호와의 예언자라고는 나밖에 남은 사람이 없소. 그러나 바알의 예언자들은 사백오십 명이나 있소”[왕상 18:22] 아합 왕 앞에서 벌어진 바알 예언자들과의 대결에서 예언자 엘리야가 한 말이다. 얼마나 바알 등의 우상숭배가 기승을 부렸는지 알 수 있다. 이 대결에서 바알의 예언자들은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찔러 피가 나게 하며 바알신을 불렀다. 바알숭배는 자식을 제물로 드리고, 음행적 의식 등의 부도덕한 요소가 강조되었다. 왕들은 곳곳에 산당을 짓고 산당에는 남창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런 바알신앙이 민중들, 백성들 사이에서 횡행했던 것이다. 얼마나 도덕과 풍속이 타락했었는지 알 수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정권을 바꾸는 것보다 중요한 게 제도를 바꾸는 것이고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중요한 게 국민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화된 시대에 이것만 완벽하게 확보된다면 좋은 제도는 항상 법제화될 수 있고 나쁜 지도자는 언제고 갈아치울 수 있다. 주인인 시민을 존중하고 눈치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시민이 깨어있지 않으면 악한 왕, 못된 지도자는 8명이고 100명이고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 속고 속고 속아도, 당하고 당하고 당해도 계속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간혹 어려운 여건에서도 탁월한 지도자가 나타나 시민을 각성시키고 나라를 부흥시키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이어받은 솔로몬보단 자수성가한 다윗이 더 위대하다. 김대중, 노무현이 정권을 획득한 당시 상황들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인물에다 운까지 더한 승리였다. 간신히 이겼다. 반면 이명박의 승리는 1:1 세력간의 정면승부의 승리였다. 김대중, 노무현의 승리가 비정상이고 이명박의 승리가 정상이다. 그만큼 김대중, 노무현은 시대를 앞서간, 심지어 너무 앞질러간 감이 있는 탁월한 인물이었다. 두 분 다 위대하다.

    세상이 하수상하여 벌써 까마득한 먼 옛일처럼 느껴지나 불과 2,3년전 일이다. 아무리 최고지도자라도 여론과 세력이 받쳐주지 않는 개인으로서는 한계가 있고 일시적이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리에서도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일엽편주 신세'라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역부족과 외로움을 호소하였다. 반면 이명박 후보는 막강한 세력들의 총체적인 지원에 힘입어 사상 최대의 표차로 대승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는 명목상의 최고권력이었을 뿐 한번도 명실상부하게 국가전체를 안정적으로 장악한 실질권력이 아니었다. 이렇다 할 권력기반, 세력기반이 없이 뿌리가 약한 정권이었다. 재벌, 법조, 관료, 교육계(특히 사학), 종교계(특히 기독교) 등이 세력권 밖이었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국민들의 생각, 문화와 풍속 역시 조중동 등 수구보수언론이 줄곧 장악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두 정권하에서의 여론과 각종 선거결과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시민의 생각, 풍속과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시대는 곧바로 후퇴, 쇠퇴한다. 어찌 보면 김대중, 노무현은 우리에겐 과분한 인물들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야말로 우리에게 딱 맞는, 우리 수준에 합당한 인물이다.


    부패에 둔감한 것을 넘어 부패를 부러워하고 법과 정의의 심판을 짓뭉개는 무도한 권력을 선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도덕이 밥 멕여주냐’, ‘결과만이 중요하다’, ‘협동보단 경쟁이 좋다’라는 황금만능주의, 출세지향주의, 경쟁지상주의가 만연하는 한 희망은 없다. 일확천금만을 노리고 부동산 불로소득을 부러워하며 자기 돈만 불리고 자기 것만 챙기려 한다면 다음 정권도 똑같거나 더한 정권이 들어설 것이다. 벌써 사회가 우울하고 희망을 잃고 있다. 자살률 최고, 출산율 최저다. 사회가 각박하고 살벌해지고 심심치 않게 엽기범죄가 발생한다. 자식들 교육시키기가 힘들다. 남부럽지 않게 해주기는 난망이요 원망만 면하면 성공이다. 밖에 내보내도 안심하지를 못한다. 무엇보다 자신있게 도덕과 정직을 가르칠 수가 없다는 것이 슬프다. 한탄하거나 정권을 욕하기 전에 우리의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장기적으론 교육이고 단기적으론 언론이다. 이것이 우리의 생각을 바꾼다. 생각이 바뀌면 문화와 풍속도 바뀌고 행동도 바뀌고 정치도, 우리네 삶(의 질)도 바뀐다. 그래서 시민이, 특히 젊은이들이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이 조중동 등의 수구언론들이다. 조선일보의 자사 광고 문안인 '신문 그 이상의 신문'과 같이 이들 조중동은 '언론 그 이상의 언론'이다. 정치이익집단에 가깝다. 유아낫언론이다. 한나라당은 어찌보면 껍데기에 불과하다. 한나라당의 실세가 누군가. 박근혜? 정몽준? 오세훈?... 모두 조중동의 간택을 오매불망 바라보고 있는 후보들일 뿐이다. 한나라당의 실세는 한나라당 내 인물이 아니라 조중동이다.

    어르신들은 바뀌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깨어있어야 한다. 경제걱정, 취업걱정하면서 조선일보를 보는 청년실업자라면.....대략 난감이다.(ㅠ.ㅠ) 남의 기호나 생각까지 일방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오만하고 무례한 일이지만 조중동을 열독하는 젊은이를 간혹 보게 되면....참 그렇다.


    인사청문회다, 조현오 망발에다,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세다, 4대강 관련 PD수첩 불방이다... 연속되는 열 뻗치는 일도 일이려니와 정치와 관련된 여러 왕들의 이야기다 보니 또다시 정치관련 푸념이 길어졌다. 내가 너무 이명박 대통령, 한나라당 보수세력에 부당하게 인색한 것일까.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하버드대 교수는 진보든 보수든 정의의 생명은 공정성이라고 하였는바 나는 과연 정치적으로 정의롭고 공정한가? 나 역시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는 아닌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위장전입 문제로 낙마하였던 인사들의 경우 한심해하며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 나로서는 더 이상 필요이상으로 자문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정치란 최후의 순간까지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것으로 여기는 나로서는 한나라당이 차악이라면, 어느 정당보다 덜 썩고 덜 악날하고 덜 무능하다면 당장이라도 찍어줄 용의가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베스트셀러지만 아직까지 일반인들은 <투자란 무엇인가>, <부동산으로 10억 만들기> 따위에 관심이 더 크다.



    어리석은 짐승인 목자의 양들은 생각하고 말하는 왕들의 백성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투표권, 저항권이 없거나 적었던 왕들의 백성들은 그것이 있는 민주주의 시민들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현대 민주주의 시민들은 정치를 욕할 권리도 있지만 스스로 욕먹을 책임도 있다. 악한 왕과 악한 백성은 함께 간다. 악한 대통령과 악한 국민은 함께 간다. 악한 왕보다 악한 대통령의 책임이 덜하다. 악한 백성보다 악한 국민들의 허물이 더하다.

    성경이 일부 성직자에게만 보급됐던 중세도 아니고 조중동 종이신문, 땡전뉴스의 어용방송만 판치는 7,80년대도 아니다. 성경은 누구든 읽을 수 있고 정보도 인터넷으로 언제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시대다.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을 욕하고 비판할 수 있지만 거기에 머물러선 안 된다. 우리 모두의 선택에 대해 공동 책임진다는 자세로 겸허하게 반성해야 한다. 수고스럽지만 보여주는대로 보지 말고 스스로 보고 찾고 생각해야 한다. 정치는 시민들이 생각하는 만큼만 전진한다.


    하나님의 축복이 이 땅에 드리우기를 기도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앙 안에서 올바로 믿고 행동하기를 기도한다. 예수님의 품행을 닮고 그 분의 마음을 닮는다면 선한 왕과 선한 백성들이 대를 이어 살아가는 지상의 천국도 가능하리라. 그런 목자를 주시기를, 그런 양떼가 되기를 기도한다. 양떼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선량하고 명철한 목자, 목자의 교만함을 바로잡을 힘 있고 용기 있는 양떼가 되기를 기도한다.

    (최고)지도자를 욕하기 전에 평범한 시민들의 평균적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목사, 전도사, 장로 등 교계의 지도자들보다 일반 성도들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성도들 먼저 성경에 충실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야 한다.

    악한 목자도 죄이지만 어둡고 우매한 양떼 역시 죄다.


    열왕기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