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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Black Swan) - 완벽을 추구한 가냘프고 순수한 영혼

어멍 2011. 3. 26. 21:31



‘니나’역의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가 돋보인다.



    무서운 영화를 봤다. 아름다운 영화를 봤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깜짝깜짝 놀래키는 영화, 깊은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는 슬픈 영화를 봤다.

    그 놀래킴은 무지막지하게 살과 피가 튀는 공포가 아니라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음향과 시각을 동원한 시의적절한 오싹함, 썩어 문드러진 몸과 깊게 패이고 일그러진 마음의 상처를 들추어보는 것 같은 원초적 전율이었다. 그 페이소스, 동정심은 이유 없이 늑대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어린 비둘기에 대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져야 하는 무게, 지고자 하는 무게와 그것을 감당치 못하는 순수하고 여린 영혼에 대한 이유 있는 동정심이기에 더욱 보호본능과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며 가슴을 아리게 했다.


    니나는 순수했다. 아마도 발레단 예술 감독(뱅상 카셀 분)을 남몰래 짝사랑하며 순정을 간직해오고 있었던 처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약했다. 몸도 마음도 약했다. 그런 약한 정신과 몸에 백조와 흑조의 1인 2역이라는 과중한 부담과 임무가 주워졌다. 거기다 그녀는 불타는 예술혼, 완벽한 예술미를 추구하는 위대한 열정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전반부는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를 좇느라 여념이 없었고

    중반부엔 깜짝, 깜짝, 오싹, 오싹 놀랬기에 긴장한 가슴이 벌렁벌렁

    종반부엔 아름답고 웅장한 사운드, 화려한 안무를 배경으로 니나와 슬픈 백조의 이야기가 오버랩되면서 감동의 쓰나미가...... 어느새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숨은 잦아들고 심장이 고동친다.

 

    높은 담장 위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외로이 비를 맞고 있다. 어디서 가시에 찔렸는지, 순백의 가슴엔 선홍빛 상처가 선명하다. 어디서 담벼락에 부딪혔는지, 다리는 부러지고 날개는 꺾였다. 너무도 작고 흰 이 가엾은 비둘기는 고개를 숙인 채 파르르 떨고 있다. 닿기만 해도 부숴질 것 같아,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아 어떻게 어루만져야 할 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듬어 안아야 할 지 모르겠다.

    이 비둘기가 날개짓을 한다. 퍼득, 퍼득, 퍼드득... 나래 칠 때마다 출혈의 고통, 뼈마디가 끊어지는 고통이다. 그 고통을 열정으로 극복하고, 그 아픔을 속으로 삼키며 그 날개짓은 더욱더 빨라지고 힘차진다. 담장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비상한다. 이제 그 날개짓은 크고 우아하다. 눈부신 창공 속으로 점점이 사라진다.

    연약한 비둘기가 백조처럼 우아하게, 독수리처럼 힘차게 비상한다. 상처받은 영혼의 위대한 비상이다. 아름답고 우아한 비상이다. 완벽을 이루고 순간에서 영원으로 사라져간 어느 가녀린 영혼의 슬픈 비상이다.

    굳이 이 눈물을 멈출 필요는 없다. 굳이 이 감동을 아낄 필요는 없다. 감동시킨 만큼 감동하고, 주는 대로 향유하는 것이 예의다. 그것이 예술(藝術)에 대한 찬사(讚辭)다. 완벽한 미(美)에 대한 조사(弔辭)다.


    비록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파멸에 이르른대도, 그 무엇이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치며 자신을 새하얗게 불태우는 인생...

    비록 상처받지 않고 안온하더라도, 자신의 전부를 걸지 않고 그 무엇에도 열정을 쏟아 붓지 않는 안전하고 평범한, 하지만 무미건조한 인생...

    둘 중에 과연 무엇이 위대한 삶일까? 무엇이 올바른 삶일까?


    결론은...... 예술은 위대하다. 그리고 나는 본전을 뽑았다.




백조 대 흑조 or 백조이자 흑조



    스포일러가 되기에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여담이지만 어제(25일, 금요일)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에 좀 크게 넘어지는 사고(피해자 본인, 가해자 본인)를 당했기 때문에 가슴이 진정돼지 않아서 중반부에 유독 가슴이 깜짝깜짝, 벌렁벌렁했던 것 같다. 지하주차장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가다가 턱을 못 보고 걸려 넘어졌는데 마침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있어 뺄 사이도 없이 그대로 얼굴이 땅을 향하여 앞으로 쿵! 꼬꾸라지고 말았다.


    그 2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도 몇 가지 잡다한 생각이 드는 게...

    처음에는 “어? 어!...” (뭔가가 걸려 몸이 앞으로 기울 때)

    다음에는 “넘어지지 말아야지. 손은 빼고, 무릎을 앞으로!!” (하지만 이미 상체와 지면의 높이가 무릎을 넣기엔 좁아졌을 때)

    다음에는 “아~! 넘어지는구나!! ㅠ.ㅠ” (이미 상체와 얼굴이 지면에 가까워졌을 때) - 언뜻 넘어지거나 구르거나 떨어질 땐 저항하지 말고 몸을 내맡기는 것이 데미지가 덜하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다음에는 “악! 아프다! 창피하기보단 아프다...... 아~~!!! 창피하다. 아프기보단 창피하다. 이대로 엎어져 있어야하나? 벌떡 일어서야 하나?” (넘어져 정신이 황홀하고 통증이 엄습할 때...... 정신이 수습되고 통증을 감당할 때) - 엎어진 채 힐끗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웬 대형 쓰레기통이 코앞에... ㅠ.ㅠ 누가 보지는 않았을까? 마음의 눈은 뒤통수 방향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한 1,2분 일어서지 못하고 앉아서 심신을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안경은 날아가고 왼쪽 무릎과 오른쪽 팔꿈치, 입과 얼굴이 얼얼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이 일을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던 아내는 나보다 더 놀란 듯 이 상처받은 영혼, 망신당한 영혼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어안이 벙벙하다. 그저 내 얼굴과 머리를 양손으로 받치고 쓰다듬고 어루만질 뿐 어쩔 줄을 모르며 말문을 못 연다.

    다행이 깨지지 않고 구부러진 안경을 고쳐 쓰고 간신히 일어서니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 아내의 부축을 받고 한참을 걸어가려니까 무릎에서 흐른 피가 바지와 붙었는지 걸음을 뗄 때마다 스치고 잡아당기며 아파온다. 윗입술도 붓고 오른쪽 광대뼈도 얼얼하다.

    아내가 걱정할까 봐 별로 힘들게 연출할 필요도 없이 부은 입술로 “어버버버. 나 영구 대~엣따!”라고 하니 아내도 긴장이 풀렸는지 자신도 놀라고, 한편으론 웃겼다(!)면서 넘어진 모양새를 설명한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걱정스런 마음에 내 팔을 부축해 일으켜 앉히니 얼굴이... 얼굴이... 굴뚝 청소부처럼 검댕이가 여기저기 묻어있었다나 뭐라나. 아마도 번개처럼 순식간에 스쳐지나간 날카로운 첫 키스나 급브레이크의 타는 타이어 자국처럼, 내 얼굴이 스쳐간 그 바닥은 스크레치가 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어둡고 검은 흔적이 아니라 반짝반짝 밝고 윤이 나는 흔적일 것이다. (청소아짐! 한 턱 쏴!)




어멍 읍~따. 아니 있~따.
옐로어멍(Yellow Emeng) - 완벽을 추구한 어설프고 웃긴 영혼



    영화를 보고 난 후, 아내 역시 놀란 가슴이 진정돼지 않아서 영화 내내 더욱 놀랐다고 한다. 하긴 코미디는 웃을 준비를, 스릴러는 놀랄 준비를 하고 봐야 몰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내가 느끼기에 무섭고 기괴한 스릴러라기보단 슬프고 아름다운 비극이다.


    하여튼 나의 “슬랩스틱 영구”의 넘어지는 연기는 나탈리 포트만의 “블랙스완 니나”의 비상하는 연기 만큼이나 완벽했다. (I am perfect!) 우쨋든 나는 아내에게 큰 웃음, 큰 충격을 주었고 영화는 나에게 큰 슬픔, 큰 감동을 주었다.

    여러모로 기억에 남은 날, 기억에 남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