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초반 판세는? 문재인 상승, 안철수 하강, 박근혜 정체
대선전(戰)이 점점 뜨거워지면서 달아오르고 있다.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쏟고 흥분하는 것은 그것이 게임의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식, 논리, 가치, 신념의 충돌 이전에 니편 내편의 진영논리가 우선하는 부작용이 크게 나타나기도 한다.
전쟁의 최소치가 정치, 정치의 최대치가 전쟁 - 투쟁 위주의 살벌한 표현일수 있겠지만 실지로 정치의 세계는 전쟁터다. 거짓, 음모, 협잡, 배신이 난무한다. 가장 악독한 사기꾼부터 가장 올곧은 의인까지 뒤엉켜 가장 극적인 드라마를 보여주는 곳이다.
이것이 마음 훈훈해지는 국민대통합의 모습!
사이좋게 가위바위보로 순번을 정해 2년씩 대통령을 하기로 합의에 이른 세 후보?
부디 비겁한 수 쓰지 말고 정정당당한 진검승부나 펼쳐주시길
그런 면에서 최근 안철수 후보의 행보는 우려를 자아낸다. 무소속 대통령으로 여야를 대화로 설득하여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구상은 너무 나이브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정치불신, 혐오, 무용론을 넘어 반정치, 무정부주의의 냄새까지 풍기는 과격한, 혹은 유아적 발상이다. 독재를 할 것이 아니라면 왕정국가나 선인, 철인들만이 사는 유토피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무소속 대통령 당선은 희박하긴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소속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국회 과반을 갖고도, 가장 강단 있는 인물이던 노무현 대통령도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안 후보가 무소속 대통령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면 노무현처럼 탄핵을 당하거나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권력유지를 위해 친일파를 중용했던 이승만 정권처럼 새누리당이 득세하게 될 것이다.
나보다 더 똑똑한 안철수 후보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그의 일련의 발언들이 오히려 더 염려가 된다. 스트레스를 감당치 못하고 절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뱉어진 발언일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염려했던 착한 안철수의 한계랄까. 정치는 착한(착하기만) 사람이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영역이다. 치열하고 투철한 사람, 자신을 밑바닥까지 던져봤던 사람, 그러고도 무사히 자신을 보존하여 귀환한 강인한 사람, 선인(善人)이 아닌 의인(義人)이 가장 적당한 영역이다.
안 후보의 출마 전 유시민씨가 안 후보에 대해 ‘고맙고 안쓰럽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박근혜 후보의 대세론을 깬 것이 고맙고 자의반 타의반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 안쓰럽다는 의미일 것이다.
요즘 안 후보의 얼굴이 예전 같지 않고 많이 상했다. 근엄한 정치인 흉내를 내는 건지 표정이 예전처럼 해맑지 않다. 내 주관적 인상인지 모르겠지만 스트레스를 소화하지 못한 어둡고 피곤한 인상이다. 반면 문재인 후보의 얼굴은 더 밝고 생기 있어졌다.
문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깨진 시신을 수습하며 직접 봤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영결식장에서 백원우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삿대질하며 소동을 일으키자 상황을 일순간에 정리한 후 이 대통령에게 깍듯이 예를 다했던 사람이다. 놀라운 절제력의 소유자다.
단일화를 위한 초반 기싸움에서 문재인 측이 점수를 따고 있다. 안 후보는 스트레스에 약한 모습, 문 후보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문 후보가 더 믿음직하다. 제다이였던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어둠의 힘에 이끌려 다스베이더로 타락한 것은 본디 악해서가 아니라 약해서다. 안 후보가 경계할 일이다.
초반 판세는? 박후보 정체, 안후보 하강, 문후보 상승이다. 박근혜 새누리당이 원래 그렇다. 처음부터 정체고 끝까지 정체고 언제나 정체다. 상대적으로 야권이 못하면 상승하고 야권이 잘하면 하강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 지지층은 붙박이다. 호재에도 늘지 않고 악재에도 줄지 않는 주로 저학력층 60, 70대의 콘크리트 지지자들이다. 박정희 정권 18년을 자신의 빛나는 청춘,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분들이다. 거기다 625이후 반공교육까지... 박정희, 박근혜, 새누리당과 정서적으로 완전히 일치되어 있다.
이 분들 앞에서 박정희를 정면으로 비판하려면 얼굴 붉힐 각오, 관계가 크게 틀어질 각오를 하고 말을 꺼내야 한다. 이 분들을 설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려니와 본인들에겐 자신들의 신념, 살아온 일생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것과 같은 잔인한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노병의 가슴에 붙어있는 찬란한, 하지만 오래되어 초라해진 마지막 훈장을 뜯어내는 것과도 같다.
여기저기 소총과 폭탄이 터지며 어수선하지만 이럴 땐 보다 크고 멀리 보는 것이 필요하다. 안보다 밖, 잔물결보다 큰 파도, 일진일퇴보다 역사를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오바마 등 세계의 정상들 옆에 누가 서야 덜 쪽팔리고 더 믿음직스러운가. 독재의 후예 김정은 옆에 누가 서야 더 떳떳하고 당당한가. 남한마저 북한 따라 해서 김정은, 박근혜가 나란히 서는 쪽팔린 모습을 세계 앞에 연출해야 되겠는가.
큰 파도란 선거구도다. 야권 대 여권 구도로 짜지면 문 후보가 유리하고 구정치 대 신정치로 짜지면 안 후보가 유리해지는 식이다. 지지율, 그것도 들쭉날쭉 상반된 지지율 조사에 정신을 뺏길 이유 없다. 그보다 몇 가지 의미있고 재미있는 여론조사가 있는데 박정희 대 노무현의 가상대결에서 노무현이 47.2%로 42.3%에 그친 박정희를 이겼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권교체 여론이 63.3%로 새누리당 재집권 여론 31.8%의 두 배나 나왔다는 것이다.
선거구도는 단순할수록 위력을 발휘한다. 유권자들 역시 복잡한 것 싫어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도는 <박정희의 구세대, 구세력> 대 <노무현의 신세대, 신세력>으로 짜여질 확률이 크고 벌써부터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이 노무현을 선거판에 끌어들이고 있다. 아직 노무현 왕따 심리의 관성이 남아있어서 그렇지 민주당 문후보에겐 결코 불리한 구도가 아니다. 정작 불리해지는 건 안철수 후보, 급격히 존재감이 없어진다.
세월이 바뀌고 시대가 흘렀다. 2002년 노무현을 뽑았던 30대는 40대, 40대는 50대가 되었다. 유권자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 강고했던 박정희 세대, 박정희 세력이 저물어가고 있다. 정치지형이 49대 51에서 51대 49로 바뀌는 경계선이다. 한 번 넘어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이번이 박 후보에겐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50대 50의 고비를 넘어갔는가, 아닌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문후보, 안후보가 독자 출마해 삼자대결이 된다면 야권 필패인 것은 분명하다. 새누리당의 이간책을 경계하면서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좋은 모양으로 단일화가 성사된다면 필승이다. 단일화가 된다면(될 확률이 더 크다) “[문>안]>박”이고 안 된다면 “박>>문>안”이다.
물론 삼자대결시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전략적 지지율이 쏠려 “문>>>안”이 될 경우(“안>>>문”은 없다.) 박과 문의 승패를 알 수 없게 되지만 그래도 박의 지지율을 넘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머리에 쥐가 나는 고차원 3차 방정식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문, 박, 안” 순으로 성공확률이 높다고 본다.
새누리당 당사에 이승만, 박정희의 사진은 걸려있지 않지만 민주당 당사엔 김대중, 노무현의 사진이 걸려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이승만, 박정희] 대 [김대중, 노무현]의 승부는 이미 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아직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제 실질적으로 박정희를 떠나보낼 때가 됐다. 박정희 패러다임을 극복하는 것이 역사진보의 당면한 과제다.
박정희 향수가 강한 만큼 친일, 쿠데타, 독재로 상징되는 박정희를 반대하는 반 박정희 정서도 강하다. 박정희의 귀환은 민주화와 정보화 세례를 받은 신세대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과 같다.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마지노선이다.
그의 딸인 박근혜가 최고통치자를 넘보며 최일선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 어느 때보다도 보수, 진보 양 진영의 응집도가 높을 것이다. 응집도가 높으면? 투표율이 올라가면? 유권자 구조상 진보, 야권이 유리하다.
이번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의미가 크고 중요하다. 바야흐로 이명박 정권 심판을 뛰어넘어 박정희 구세력과 노무현 신세력의 건곤일척, 마지막 전쟁인 아마겟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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