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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옛것을 새것으로, 레드오션을 블루오션으로 - 역사적 도약을 성취하는 대선을 바라며

어멍 2012. 7. 24. 22:41


    한국 정치, 옛것을 새것으로, 레드오션을 블루오션으로 - 역사적 도약을 성취하는 대선을 바라며

 


    안철수 “상처받고 망가지는 것 두렵지 않다.”


    오늘자 경향신문 1면에 실린 안철수 원장 관련 기사 제목이다. 훌륭한 분이고 이제까지의 행적을 보면 딱히 흠잡을 데 없는 분이기는 하지만 노파심에서 몇 자 적어본다면 (현실)정치는 두려워해야 할 무시무시한 세계라는 것이다. 단순히 상처받고 망가지는 차원이 아니라 파멸과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할 영역이란 것이다. 발을 담근다면 두 번 세 번, 열 번 백 번이라도 심사숙고하고 결단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대권도전이다.

    그를 지지하는 많은 유권자 중에서 그의 대권도전은 도리어 반대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혹시라도 그가 상처받고 망가지는 것이 싫어서, 자신의 기대와 생각이 배반당하는 것이 두려워서다. “안철수도 별 수 없군! 어차피 그놈이 그놈. 정치판은 아사리판, 나완 상관없는 다른 세계니 신경 끄고 사는 게 편해!” - 상실, 실망, 체념의 코스가 두렵다.


    그 역시 당연히 열 번 백 번 생각하고 결정을 내릴 것이고, 너무 뜸들이고 장고해서 간만 본다, 우유부단하다, 말들이 많지만 솔직히 위의 저 멘트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바로 고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다. 대통령 취임 전, 임기 중, 퇴임 후까지 줄곧 온갖 세간의 험담과 소문, 모함을 버티어 오던 그, 항상 강철같이 단단할 것 같은 그가 무너지는 것을 보며 그 어떤 이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안 원장은 이제까지 맷집을 검증받은 적이 한 번도 없지 않은가.

    정치인이 도덕적이어야 함은 필수지만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강단이 있어야 한다. 스트레스에 강해야 한다. 지금은 너무 강단 있는, 사람을 질리게 할 정도로 대소사를 생까며 딴전을 피우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비되어 그의 착한 이미지, 도덕적 이미지가 조명되어 인기를 끄는 면이 있지만 대선의 본 게임이 시작되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기존의 닳고 닳은 정치인, 송곳으로 찔러도 오히려 튕겨 나올듯한 철판을 두른 두꺼운 면상에 비교하면 순두부처럼 너무 유약하고 너무 취약하다. 그가 어떠한 예상 외의 강인한 풍모를 보일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이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감히 그의 대권도전을 지지하고 요구한다. 지금은 그가 갖고 있는 민주적 리더십, 소통의 리더십, 수평적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대다. 어렵더라도 그런 리더십이 통하는 시대를 다 같이 만들어 가야 한다. 되든 안 되든 그의 출마는 현 상황에서 정치발전과 한국사회에 도움이 된다.

    중요한 것은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인물이 대통령이 되고 그 자리에서 버틸 수 있는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다. 보통사람도, 특별한 각오나 희생 없이도, 정치를 할 수 있는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 정치는 정치인이 해야 한다는 말도 언뜻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비록 기업인 출신이지만 뼛속까지 정치인이었다. 가치판단을 떠나 정치적 야망이 크고 정치적 수완이 탁월한 인물이다. 무엇보다 날 때부터 정치인인 사람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보통사람, 생활인이 정치도 하고 대통령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궁극적이고도 이상적인 사회상이다.

 

 

 

우습게 보인다고 우습게 보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다시 문제는 현실정치, 정치현실이다. 바로 ‘현실’이다. 현실은 취업걱정, 육아걱정, 노후걱정 하는 보통시민이 정치를 할 수 없다. 자식마누라 먹여 살릴 걱정으로 근면성실 일을 하는 가장, 한 푼이라도 아껴 쓰려 가계부를 끼고 사는 주부 등 평범한 생활인들은 죽었다 깨나도 대통령이 될 수 없는 현실이다.

    현실은 수백억 자산가만이 여유 있게 정치를 할 수 있다. 돈을 벌어보지 못했어도, 가정을 꾸려보지 못했어도, 독재자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은 비련의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다. 국민 평균으로 보자면 전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다. 큰 부와 성공을 이룬 안 원장 역시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란 말이 말인즉슨 맞다.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형광등 백개의 후광에 넋을 잃고 있다가는 눈이 멀기 십상이다.

 

 


    한국사회의 현실, 특히 정치 현실은 상생, 선순환의 블루오션이라기 보단 살생, 악순환의 레드오션에 가깝다. 아귀다툼의 레드오션에서는 뻔뻔한 놈, 비열한 놈, 교활한 놈이 경쟁력이 있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 강자일수록 그럴 확률이 높다. 이명박 정권하에서 숱한 문제를 안고 있는 숱한 인물들이 인사청문회에 추천되고 고위직에 임명되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사실 안철수 같은 인물은 한국에 쌔고 쌨다. 하지만 정치판에서 힘깨나 쓰는 인물 중에선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들다. 원래 그런 인물들이었나, 정치에만 입문하면 그렇게 바뀌는 건가, 하여튼 몇몇 안 된다. 이제까지 안 원장 같은 인물은 현실정치에선 경쟁력이 없었다. 잠깐 반짝하다가도 노회한 정치인들과 조중동 수구언론들에게 왕따와 다구리를 당하고 좌절하고 잊혀졌다. 정치현실이 바로 레드오션이란 증거다.

 

 

 

현실 정치의 두 강자

"이명박근혜와 함께 정권교체! 국민성공!" →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정권심판연장! 국민행복!"

 

 

    천민자본주의가 득세하는 세속화된 현실은 ‘돈’과 ‘힘’으로 압축된다. ‘도덕’과 ‘정의’는 가볍게 무시된다. 부도덕하다는 손가락질보다 힘없고 가난하다고 무시하고 멀리하는 눈길을 더 못 참아한다. 더 비참해한다. 그래서 양심에 불을 지르는 것보다 욕망에 불을 지르는 것이 더 쉽다. 더 빠르다. 더 강력하다. 한나라당과 이 대통령의 뉴타운, 747, 주가 3000 공약이 그것이다. 욕망에 불을 지르니 탐욕으로 화답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짐승과 구별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다. 부끄러움이다. 인간이 비로소 인간일 수 있는, 인간성의 진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타인의 불행을 불쌍해하는 마음, 타인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돈과 힘에 압도되면 부끄러움은 변질되고 측은지심은 증발된다. 타인의 불행은 다 지 못난 탓! 지 팔자 탓이다. 동정할 가치도, 여유도 없다.


    담벼락에 소변을 누는 것을 들킨 것보다 차가 없거나 소형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더 부끄러워한다. 부정부패가 들통 나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 영향력을 상실하고 알거지가 된 것을 더 부끄러워한다. 전두환이라면 국가변란죄,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하는 것보다 통장잔고 29만원의 폐지 줍는 노인이 되는 것을 더 부끄러워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라면 부정부패, 거짓말, 무능력으로 벌거벗은 임금의 정체가 탄로나는 것보다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땡전 한 푼 없는 노가다 가난뱅이, 초라한 신세로 전락하는 것을 더 부끄러워할 것이다.

    초딩들마저 착하고 재밌는 친구보다 성질은 못됐어도 덩치 크고 힘센 친구, 50평대 넓은 집에 사는 부잣집 친구를 더 부러워하고 더 따른다. 대통령부터 초딩들까지 돈과 힘의 광풍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공직 사회는 대통령을 따라 배우고, 어린이들은 어른들을 따라 배운다. 누가 우리 현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n/1은 아니더라도 1을 갖고 있는 사람은 1만큼, 100을 갖고 있는 사람은 100만큼 책임이 있다. ‘모두의 책임은 아무의 책임도 아니다’라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이렇게 된 현실에 대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직도 516을 쿠데타로 인정하고 않고 미화하면서 쿠데타 원조 독재자의 딸을 대권주자로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는 우리의 현실과 사고가 비정상적으로 비뚤어져 있다는 증거인 동시에 우리 모두, 적어도 우리 중 무시할 수 없는 다수에게 책임이 있다는 또 다른 증거다.

    박근혜 의원을 비롯한 유력 대권주자, 정치세력들이 국민들의 시험대 앞에 섰다. 하지만 그들 앞에 국민들 역시 시험대에 올랐다. 5년 전 국민들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과오를 범했다. 실망도 했고 자부심, 자긍심도 잃었다. 하지만 그럭저럭 살만 했다. 살아 왔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최소한의 자부심이 시험받고 있다. 인간이라면 먹고 마시는 것 이외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자긍심, 마지노선이란 게 있다.


    쿠데타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고 유신의 추종세력에 의해 굴러가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법과 양심과 역사를 말해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생각만 해도 난처하고 괴롭다. 이것은 진보, 보수, 좌파, 우파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모로 이번 대선은 의미가 큰 선거가 될 것이다. 한국사회가 박정희를 아이콘으로 하는 개발독재시대의 왜곡된 향수를 극복할 것인가? 과연 한 시대를 정리하고 새 시대로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구시대에 머물 것인가?


    한국과 한국인들이 시험대 앞에 섰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선언은 지금 시점에서 큰 의미가 없다. 한국인은 도덕과 양심과 상식이 있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동정심이 있고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임을 자신과 세계에 증명하는 ‘인간선언’이어야 한다.

    이번 대선이 역사가 도약하는 일대 분기점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