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절 많이 찾아다니고 쫓아다니며 그를 만났다. 조중동에 휩쓸려 떠도는 악성루머를 확인하기 위해, 내가 반대하거나 의아해하는 정책에 대한 입장과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그의 글을 읽었고 그의 담화, 토론, 연설을 웬만하면 빼놓지 않기 위해 TV를 챙겨보고 인터넷을 찾아다녔다.
재밌었다. 때론 감동도 되고 배울 점도 많았다. 때론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혁명가의 선동을 듣는 듯했고 때론 재치있고 능수능란한 강사의 강의, 곰삭은 깊은 맛이 느껴지는 대석학의 강의를 듣는 듯했다. 정치, 경제, 행정, 역사에서 철학까지. 그리고 그것은 비서가 써준 것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것이 아닌 언제나 그의 머리를 통해서 몸으로 울려나오는 온전한 그의 생각이었다.
호감이 가는 정치인중 한명일 뿐이었던 그에게 내가 정색하고 주목하고, 자세를 고쳐잡고 귀 기울이게 만든 계기가 바로 이 공터연설 동영상이다. 수많은 명연설, 명장면이 있지만 가장 인상깊었고 그가 나를 가장 강력히 끌어당긴 장면이었다. 뒤돌아보면 그의 제도정치권에서의 위치, 국민들에게도 외면받아 끝끝내 홀로 생을 마감하였던 그의 삶과 운명을 상징하고 예시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뭐라고 말해야 되지? 할 말을 잊어버렸는데......”
난처해하지만 당황하거나 주눅들지 않았다. 허세나 만용을 부리지도 않았고 솔직하고 담담하게 연설을 이어갈 뿐이었다.
‘아. 쇼가 아니구나. 참 솔직하면서도 용감하구나. 어쩌면 이 사내는 입신양명이나 치부가 목적이 아닌, 정치에 중독된 맹목적이고 치기어린 열정이 아닌, 말 그대로 정치를 국민에 봉사하기 위해 수고와 고난도 감수하려는 의무로, 소명으로 여기는 정치인일 수도 있겠구나’
"이의 있습니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홀로 노라고 했던 사람!
내가 보기에 그의 정치역정, 그의 생애에서의 하이라이트는 역설적이게도 대통령 당선 등 영광의 순간이었다기 보단 잇따른 낙선, 탄핵 등의 고난과 좌절의 순간이었다. 그가 좋아했던 바보라는 별명과는 별개로 승부사란 세간의 평가에서도 보듯이 매번 정면돌파하고 정세를 반전시켜 오뚝이처럼 일어서던 그였기에 필요없는 갈등과 승부를 즐겨하고 심지어 함정으로 유도하는 간교한 마키아벨리스트로까지 오해와 억측을 사기도 했었다. 정치적 반대자, 패배자들의 자기변명, 덮어씌우기였지만 그의 지사적, 투사적 풍모로 볼 때 고난과 좌절의 순간에 오히려 더욱 힘을 내고 도전하는 스타일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젊었었기도 하려니와 그런 고난과 좌절의 순간에 그의 눈은 가장 날카로왔었고, 그의 머리는 가장 맑았었고, 그의 피는 가장 뜨거웠었다.
그렇게 그와 그의 정적들은 끊임없이 일합을 겨루워왔고 때론 지고 때론 이기기도 하였지만 모두들 그 앞에서 악역과 조연을 자처하며 본 모습과 밑천을 드러내고야 마는 시험을 피하지는 못했었다. 그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다소간의 열등감을 느끼는 피하고픈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그에 의해 가짜와 진짜가 나뉘고 옥과 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은 한나라당, 조중동뿐만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한겨레와 경향 오마이까지 무차별적이었다. 정치인이 아닌 심지어 난다긴다하는 논객, 시민운동가, 지식인, 교수, 학자들까지 그로 인하여 원치 않은 시험에 임하였다. 그렇게 거대한 파도와 맞서고 세찬 폭풍우를 넘나들었던 시절이 오히려 그에겐 황금기였다.
그런 그가, 그렇게 강인했던 그가 갔다.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돌이켜보면 검찰수사와 관련된 글을 제외하고 그가 마지막으로 올렸던 글이 ‘관용’에 관련된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길이도 짧았고 예전보다 날카로움이나 힘이 덜 했었다. 그때부터 심적 압박과 고통에 힘들어하고 있었던 거다. 결국 그는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했다. 가엾다. 그에게 있어 읽고 쓰는 것은 먹고 마시는 것만큼이나 소중하지 않았던가.
슬프다.
아쉽다. 그립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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