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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책읽기

《대망(大望)》 4권 리뷰

어멍 2016. 2. 16. 23:34

 

    《대망(大望)4권 리뷰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사고방식에서 볼 때 나와 오다님은 벌써 어느 쪽인가 멸망했어야만 될 터, 그런데 서쪽의 오다님과 동쪽의 내가 동맹해온 게 운 좋았던 것이다. (79p)

 

    서로 붙어있는 서쪽의 오다 노부나가와 동쪽의 나(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동맹하여 더 동쪽의 다케다와 호조를 멸망시킨다.

 

    먼 곳과 친교하고 가까운 곳을 공격한다는 원교근공은 전통적인 외교술이다. 가까운 곳은 현존하는 위협이고 먼 곳은 그렇지 않기 때문! 하지만 교통과 기술이 발달하여 거리와 공간이 사실상 무의미해진 현대에는 맞지 않다. 오히려 가까운 곳과 더 친하고 가까운 곳이 더 잘 나가는 것이 나에게도 좋다. 가까운 곳과 먼저 상생하고 뒷마당이 안심이어야 밖으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한국은 아프리카보다 행운이고 유럽보단 불행한 나라다.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이 잘 나가야 한다. 이웃이 더 잘 살고 더 도덕적이고 더 문화적인 성숙한 민주국가라면 우리나라도 같이 수준이 높아질 텐데 북한 김정은, 일본의 아베, 중국 시진핑에 한국의 박근혜까지 상향평준이 아닌 하향평준화되는 느낌?! 아쉬운 부분이 많은 요즘이다.

 

 

    손톱과 손가락을 태웠으니 뜨겁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이 지금의 겐자부로에게는 오직 하나의 사는 보람이며 생명 지속의 묘약이었다. 원망할 대상도 없고 싸울 상대조차 없는 옥중생활이었으면 그의 육체는 벌써 오래 전에 죽고 말았으리라. (229~230p)

 

    이에야스군에 속한 겐자부로는 6년 전 다카텐진 성이 다케다군에게 함락된 후 6년 동안 어둡고 습한 지하감옥에 갇혀 있다. 갖은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고 전향을 거부하며 이에야스를 기다리는 그는 복사뼈까지 썩어 들어가고 머리와 얼굴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몰골이 처참하다.

    그러나 어쨌든 살아있다. 만약 고문도 없이, 찾는 이 없이 6년 동안 홀로 남겨두었다면 그는 그 세월동안 생존할 수 없었으리라.

 

    인도에서 캐나다로 이민 가는 배를 탄 파이가족은 폭풍우를 만나 파이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배가 난파된 후 구명보트에는 파이와 얼룩말과 하이에나, 오랑우탄 그리고 호랑이만 남게 된다. 시간이 지나 결국 파이와 호랑이만 남게 되고 파이는 이 맹수와 함께 거친 바다위에서 227일 동안 표류한 후 아메리카 대륙에 함께 상륙하게 된다.

    호랑이가 없었다면... 호랑이 덕분에(!) 긴장하지도 도망다니지도 않았다면 파이는 태평양을 건너지 못하고 바다 위에서 죽었을 것이다. 독백이라 해도 말을 걸 수 있는 상대, 단지 살아 움직이는 상대라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파이에겐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호랑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영화 <Life of Pi>

 

    생명줄을 끊지 않는 한 고문이 고독보다 낫다. 날 잡아먹지 않는 한 호랑이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낫다. 간혹, 이어지는 극한 고통에 죽음을 소원하기도 하고 긴장과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어떠한 자극도 자극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그것은 모든 생명은 상호작용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약은 고독인 셈이다. 그래서 문제 있는 죄수에게 가해지는 가장 무거운 징벌은 독방감금이다.

 

    겐자부로에겐 고문이 주는 고통이 사는 보람이며 생명 지속의 묘약이기까지 했다. 파이에게 무서운 대상과 피해 다닐 상대인 호랑이가 고마운 존재였듯이 그에게 원망할 대상과 싸울 상대는 고마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2% 부족하다. 그에겐 또 하나의 존재 - 반드시 만나야할, 만나고 싶은 사람, 곧 그의 충성의 대상인 주군 이에야스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 같은 처절한 생존의지는 생명을 유지하여 삶을 지속시켜야할 뚜렷한 동기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에야스가 다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 그 때 다시 만나 자신은 결국 배신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미션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가 본능이다.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다. 먹고 싶은 것은 허기진 것을 달래어 편안함을 얻기 위한 것, 혀의 말초로 느껴지는 맛이라는 쾌감을 얻기 위한 것 이전에 살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유전자의 명령이다. 추위를 막고 맹수로부터 도망치는 등 위험을 회피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성욕 역시 쾌락 이전에 생명과 관련 있다. 모두 생존, 번식과 관련한 본능이다.

    둘째가 존엄이다. 자신이 존귀하고 엄숙한 존재라는 자각이 있으면 어떤 악조건과 고통, 고난 속에서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자신이 하찮거나 아무 의미 없는 존재라고 느낄 때, 아무에게도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거나 멸시받을 때 사람은 살아갈 용기를 잃는다.

    셋째가 미션이다. 자신이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느낄 때, 자기에게 주워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임무가 있다고 느낄 때 사람은 죽음의 문턱에서도 삶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다.

 

    첫째는 가장 강력하지만 저차원적, 1차원적인 것이다. ‘단순히살아남기 위한 본능이다. 둘째와 셋째는 고차원적인 것으로 서로 상통한다. 의미 있는 미션이 주어진 존재는 그 자체로 이미 의미 있는 존재기 때문이다. ‘의미 있게살아가기 위한 결단이다.

    존엄한 존재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임무란 무엇인가? 파괴보단 생산이다. 증오보단 사랑이다. 무시보단 존중이다. 그러면 인간은 단순히 살기 위해존재하는 것이 아닌 살리기 위해존재하는 숭고한 존재로까지 높아진다.

    인간이 살기 위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모든 게 투쟁의 씨앗이 된다. 생존 본능의 탐욕이 서로의 불안을 끝없이 키워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찮은 차이지만 살리기 위해서......’가 되면 그 내용은 완전히 바뀐다. 그것은 종이 한 장 차이. 앞 것을 내세우면 무간지옥, 뒤 것을 내세우면 극락에 이른다. (433p)

 

    생존 본능은 선도 악도 아닌 말 그대로의 본능이다. 때론 악의 길로 비약하여 방어에서 공격으로, 생존에서 탐욕으로 폭주하기도 하지만 파이와 호랑이의 경우처럼 살아남기 위한 1차적인 동기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본능, 지력 체력 등의 객관적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서 항상 역경을 딛고 끝끝내, 최후에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그 위에 존엄과 미션이라는 더 강력하고 더 위대한 동기가 있다. 생존 본능 없이는 생존할 수 없지만 이것이 없이는 끝끝내, 최후에, 살아 돌아올 수 없다. 극한 상황,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생명과 삶에 대한 존엄이 없이는 결코 삶으로 귀환할 수 없다.

    따라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생존력이 강하다. 자신이 존귀하고 엄숙한 소중한 존재라는 자각이 강한 사람이 삶의 의지가 강하다. 살아남아 돌아갈 사람이 있는 사람, 해야 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 남아 있는 사람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겐자부로에겐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 주군 이에야스가 있다. 아마도 사랑과 존경, 주군과 가신을 뛰어넘어 사나이 대 사나이로 이에야스에게 반했으리라. 당연히 이에야스 역시 자신을 존중하여 자신의 충성을 인정해주리란 믿음이 있다. 존엄한 이에야스와 존엄한 자신이 만나야할 존엄한 미션이 아직 그에게 남아있는 것이다.

    겐자부로는 처음부터 이런 의식이 있었고 파이는 이런 의식이 없었거나 희미했지만 호랑이 덕분에 바다 한가운데서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사건들을 겪으면서 깨닫고 눈뜨게 되어 결국 살아남아 태평양을 건너게 된다. 그곳에서 신과 1대 1로 대면함으로서 우주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존엄성을 깊이 체험한 것이다.

 

    이에야스가 성을 탈환 후 겐자부로는 이에야스 앞으로 불려온다. 눈이 부셔 잠시 주위를 볼 수 없었지만 겐자부로는 정신이 들자마자 이에야스를 향해 이에야스를 빨리 만나게 해달라고 졸라댄다. “주군은 어디 계시오? 오코우치 겐자부로, 빨리 주군의 얼굴을 뵙고 싶소.” (237p) 이에야스의 얼굴은 잊었을지 몰라도 지난 6년간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파이는 천신만고 끝에 대륙의 해안에 닿아 탈진하여 엎드려 있다. 그가 눈을 뜨자 호랑이가 먼발치에서 잠시 머물더니 숲속으로 유유히 뒷모습을 감춘다. 파이는 흐느끼며 절규한다. 살아났다는 안도감보다 어느덧 유일한 친구,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린 호랑이와 인사도 없이 이별하게 된 것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파이에겐 더욱 새롭고 놀라운 삶이 기다리고 있고 호랑이는 숲속에서 맹수의 왕으로서 포효하며 살아갈 것이다.

    믿음과 존경으로 살아남든, 긴장과 균형으로 살아남든, 이에야스도 겐자부로도 파이도 호랑이도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살린 셈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존엄했고 지금도 존엄하며 앞으로도 여전히 존엄할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엄하다.

 

    진정한 행복의 비결도, 생과 사를 결정짓는 갈림길의 단서도, 다 여기에 있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육체적으로 편안하더라도 존엄이 없으면 (높은 수준의) 행복을 누릴 수 없고 단지 쾌락에 그칠 뿐이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단지 생을 유지하는 것에 그칠 뿐이다. 때에 따라 삶에 절망하고 생을 포기하기도 한다.

    아무리 가난하고 고통스러워도 존엄이 있으면 높은 수준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생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때에 따라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듯 고난 속에서 위대한 인물, 찬란한 정신이 탄생하기도 한다.

 

    존엄이 있으면 극한 상황에서 생을 이어갈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는 참다운 행복과 고귀한 삶을 살아가게 할 수 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존중하고 존중받는 것에 삶의 행복이 있고 생의 의지가 있다.

 

 

    훌륭하신 분을 죽여 그보다 못한 사람이 천하를 잡게 되면, 농민들은 또다시 평생 울 수밖에 없지요.” (중략)

    이 소박한 농민의 술회가 어딘가에서 이에야스의 양심을 세게 채찍질했다. 이에야스는 농민들을 진심으로 가엾게 여겨 잘해준 것은 아니었다. (399~400p)

 

    오다 노부나가가 교토의 혼노사(本能寺)에서 가신 아케치 미쓰히데의 쿠데타에 의해 분신 자결하는 혼노사의 변이 일어난다. 교토 근처 사카이에 있던 이에야스는 적진을 뚫고 고향으로 급히 귀국해야 되는데...

    소수의 인원으로 산길에서 미쳐 날뛰는 농민 폭도와 맞닥뜨린 이에야스 일행은 도망칠 수도 싸울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지는데... 이에야스는 기지를 발휘해 폭도의 우두머리에게 농민, 백성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하려는 무사의 도를 설파하며 난이 평정되면 자신을 찾아오라며 손수 쓴 증서와 황금을 내린다.

 

    폭도는 살기등등하다가 어리둥절하여 고분고분해지고 급기야 속으로 울먹울먹, 감동을 먹는다. 도망치거나 저항하거나 벌벌 떨 줄 알았는데 떡 하니 버티고 앉아 세상이 어지러울 동안 경거망동하지 말고 동료 농민들을 보호하며 치안에 힘쓰라고 격려하니 어리둥절할 밖에!

    소출의 7할을 세금으로 내며 항상 무사계급에게 무시 받고 짓밟혀온 그들이 최초로 자신들의 하소연에 귀 기울여주는 무사, 처음으로 자신들을 인간으로 대접해주는 영주를 만났으니 감동할 밖에!

 

    결국 그들은 이에야스의 부탁을 받고 길 안내를 하는 것도 모자라 다른 무리들까지 불러 모아 이에야스를 목적지까지 무사히 경호하게 한다.

    이에야스는 백성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행동이 아니라 단순히 위기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임기응변으로 기지를 발휘한 것뿐이었다. 그래서 이에야스는 그들의 순진한 감격에 양심이 찔린다. 그래서 이에야스는 더욱 백성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더 존중하고 더 사랑하게 된다.

    처음 동기야 어찌됐든 농민들은 이에야스를 살리고 이에야스는 농민들을 살린 것이다.

 

    황금과 증서도 재밌다. 이에야스는 처음 상을 내린다고 하면서 광포한 폭도 속에서 우선 계산과 이성을 끌어내려는 시도를 한 후 황금과 증서를 그 상으로서 제시한다. 황금이 계산이고 증서가 이성인 셈!

    돈 싫어하는 사람 없다. 피를 보고 흥분한 군중에게 돈을 제시함으로서 급한 대로 그들의 광란을 현실적 이기심으로 살짝 방향을 튼, 혹은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멍석 깃발과 피 묻은 창칼 앞에서 붓과 종이로 증서를 써내려가는 장면도 폭도들의 눈엔 기이하긴 마찬가지!

 

    일자무식의 농민들이 글자를 알 리는 없다. 그들에겐 글자도 무사계급도 열등감인 동시에 경외의 대상이다. 아마도 그 증서를 일생 최대의 훈장이나 대대로 전해줄 가문의 가보처럼 여길 것이다. 이로서 광란이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난폭한 폭도는 온순한 양이 되어버렸다.

    순식간에 생각해낸 대처라면 천재다. 평소 생각해놓은 대처라면 사람과 심리에 대한 이해가 깊은 수재다. 어쨌든 이에야스의 시도는 보기 좋게 성공하여 그들을 계산과 이성으로 이끄는 것을 넘어 의도치 않게 그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그들의 마음에 감동까지 주게 된다. 이를 통해 이에야스 역시 의도치 않게 깨닫게 되고 분발하게 된다.

 

    만약 농민들이 이에야스를 죽여 버렸다면 일본의 통일은 훨씬 더 늦춰지고 농민, 백성들은 더 피눈물을 흘리며 고생하고 죽어나갔을 것이 분명하다. 일본통일의 여정은 오다 노부나가에서 시작하여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 완성된 것이지만 당시 전국(戰國)의 일본에서 이에야스만한 식견과 능력과 뜻을 지닌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훌륭하신 분을 죽여 그보다 못한 사람이 천하를 잡게 되면, 농민들은 또다시 평생 울 수밖에 없지요. = 훌륭한 사람을 외면해 그보다 못한 사람이 정권을 잡게 되면, 국민들은 또다시 평생 고생할 수밖에 없다. (현대식 버전이다)

    과연, 지금, 여기, 우리는 어떤가?

 

    김대중, 노무현을 외면해 그보다 못한 이명박, 박근혜가 정권을 잡게 되어 국민들이 고생하고 있다. 가득이나 경제도 나쁜데 413총선을 앞두고 북핵, 사드, 개성공단폐쇄 등등 요새 정세가 하도 불안하고 뒤숭숭하다.

    에효~~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의 행태에 한숨만 나오고... 할 말은 많지만 너무 길어지고 옆으로 샐 것 같아... 가슴만 더욱 답답해질 것 같아 이만 마무리하자.

 

    옛날엔 힘센 사람 위주로 저들끼리 칼로서 정치했지만 현대엔 평범한 소시민들이 투표로, 선거로 정치하는 시대이므로 그만큼 시민의 책임이 커졌다. 표로서 죽이고 살린다. 표로서 정치인도, 우리 자신들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

    시대가 엄중하다. 시민들이 잘해야 한다.

 

    《대망(大望)4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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