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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 100주년, 국치일을 되새기자.

어멍 2010. 8. 26. 22:51
 

    한일병합 100주년, 국치일을 되새기자.


    다가오는 8월 29일은 대한제국이 망한 경술국치일이다. 1910년의 일이니 정확히 100년이 된 셈이다. 신 냉전의 남북긴장, 미국 올인외교, 4대강 등 독선·독단의 정치,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지는 한국사회의 타락상(이런 인물들이 그 위치까지 올라가고 지명받았다는 것 자체가 한국사회 전체의 타락상을 웅변하고 있다.) 등 요즘 시절이 하 수상하여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희망이 없다. 731부대를 항일독립군이라 알고 있는 인사가 최고위직 국무총리가 되어 출세하는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굴러갈 리가 없다. 또다시 식민지, 분단이라는 두 차례의 비극적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식민지화

● 한일의정서 (1904년)

● 제 1 차 한일협약

● 제 2 차 한일협약 (1905년 을사늑약)

● 제 3 차 한일협약

● 기유각서

● 한일병합조약 (1910년 경술국치)


    학생 때 국사시간에 배운 지식으론 을사늑약과 경술국치 등 굵직굵직한 사건이 다다. 하지만 역사란, 인간의 일이란 큰 사건의 전후로 길고 자잘한 사건의 연속이 있다. 하다못해 이완용도 처음부터 친일파 매국노는 아니었으니까. 한국의 식민지화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너무 길고 거대한 주제이므로 일단,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조약 전문만 올려본다. 존재만 알지 이제까지 한 번도 그 내용은 접해보지 않았으니까......




을사늑약 : 왼쪽이 대한제국측, 오른쪽이 일본측 문서 원본. 규장각 소장



               을사조약 乙巳條約


일본국 정부는 한국 정부와 양 제국을 결합하는 이해 공통의 주의를 공고히 하고자 한국의 부강지실을 인정할 수 있을 때에 이르기까지 이 목적을 위하여 다음의 조관을 약정함. (日本國政府는 韓國政府와 兩 帝國을 結合하는 利害 共通의 主義를 鞏固히 하고자 韓國의 富强之實을 認定할 수 있을 때에 이르기까지 이 目的을 위하여 다음의 條款을 約定함.)


- 제1조. 일본국 정부는 일본 외무성을 경유하여 금후 한국이 외국에 대하는 관계 및 사무를 감리·지휘하고 일본의 외교 대표자 및 영사는 외국에 있는 한국인 신민 및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가하다. (第1條. 日本國政府는 日本 外務省을 經由하여 今後 韓國이 外國에 對하는 關係 及 事務를 監理·指揮하고 日本의 外交 代表者 及 領事는 外國에 있는 韓國의 臣民 及 利益을 保護함이 可함.)


- 제2조. 일본국 정부는 한국과 타국 간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수하는 책임에 있어서 한국정부는 금후 일본정부의 중개를 경유하지 않고서는 국제적 성질을 가진 어떠한 조약이나 약속을 하지 않기로 상약함. (第2條. 日本國政府는 韓國과 他國 間에 現存하는 條約의 實行을 完遂하는 責任에 있어서 韓國政府는 今後 日本政府의 仲介를 經由하지 않고서는 國際的 性質을 가진 어떠한 條約이나 約束을 하지 않기로 相約함.)


- 제3조. 일본국 정부는 그 대표자들로 하여금 한국 황제폐하의 궐하에 1명의 통감을 두되 통감은 전적으로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함을 위하여 경성에 주재하고 친히 한국 황제를 알현하는 권리가 있음. 일본정부는 또한 한국의 각 개항장 및 기타 일본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역에 이사관을 설치하는 권리를 가지며, 이사관은 통감의 지휘하에 종래 재한국 일본 영사에게 속하였던 일체의 직권을 집행하고, 이울러 본 협약의 조관을 완전히 실행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일체 사무를 관리함이 가함. (第3條. 日本國政府는 그 代表者들로 하여금 韓國皇帝陛下의 闕下에 1名의 統監을 두되 統監은 전적으로 外交에 關한 事項을 管理함을 위하여 京城에 駐在하고 親히 韓國皇帝를 謁見하는 權利가 있음. 日本政府는 또한 韓國의 各 開港場 及 其他 日本政府가 必要하다고 認定하는 地域에 理事官을 設置하는 權利를 가지며, 理事官은 統監의 指揮下에 從來 在韓國 日本領事에게 屬하였던 一切의 職權을 執行하고, 이울러 本 協約의 條款을 完全히 實行하기 爲하여 必要로 하는 一切 事務를 管理함이 可함.)


- 제4조. 일본국과 한국 간에 현존하고 있는 조약과 약속은 본 협약 조관에 저촉되지 않는 한 모두 그 효력을 계속하는 것으로 함. (第4條. 日本國과 韓國 間에 現存하고 있는 條約과 約束은 本 協約 條款에 抵觸되지 않는 限 모두 그 效力을 계속하는 것으로 함.)


- 제5조. 일본국 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유지하도록 보증함. (第5條. 日本國政府는 韓國皇室의 安寧과 尊嚴을 維持하도록 保證함.)


위의 증거로서 하명(下名)은 본국 정부의 상당한 위임을 받아 본 협약에 기명, 조인함.


광무 9년 11월 17일 외무대신 朴 齊 純 印 (박제순)
명치 38년 11월 17일 특명 전권 공사 林 權 助 印 (하야시 곤스케)





한일병합조약 : 왼쪽이 대한제국측, 오른쪽이 일본측 문서 원본. 규장각 소장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

 

한국 황제 폐하와 일본국 황제 폐하는 두 나라 사이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시키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자고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자고 하면 한국을 일본국에 합병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에 두 나라 사이에 합병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위하여 한국 황제 폐하는 내각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을, 일본 황제 폐하는 통감(統監)인 자작(子爵) 사내정의(寺內正毅,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각각 그 전권위원(全權委員)으로 임명하는 동시에 위의 전권위원들이 공동으로 협의하여 아래에 적은 모든 조항들을 협정하게 한다.


    1.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겨준다.


    2. 일본국 황제 폐하는 앞 조항에 기재된 넘겨준다고 지적한 것을 수락하는 동시에 완전히 한국을 일본 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낙한다.


    3. 일본국 황제 폐하는 한국 황제 폐하, 태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와 그들의 황후, 황비 및 후손들로 하여금 각각 그 지위에 따라서 적당한 존칭, 위신과 명예를 받도록 하는 동시에 이것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연금을 줄 것을 약속한다.


    4. 일본국 황제 폐하는 앞의 조항 이외에 한국의 황족(皇族) 및 후손에 대하여 각각 상당한 명예와 대우를 받게 하는 동시에 이것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줄 것을 약속한다.


    5. 일본국 황제 폐하는 공로가 있는 한국인으로서 특별히 표창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대하여 영예 작위를 주는 동시에 은금(恩金)을 준다.


    6. 일본국 정부는 앞에 지적된 병합의 결과 전 한국의 통치를 담당하며 이 땅에서 시행할 법규를 준수하는 한국인의 신변과 재산에 대하여 충분히 보호해주는 동시에 그 복리의 증진을 도모한다.


    7. 일본국 정부는 성의 있게 충실히 새 제도를 존중하는 한국인으로서 상당한 자격이 있는 자를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한국에 있는 제국(帝國)의 관리에 등용한다.


    8. 본 조약은 한국 황제 폐하와 일본국 황제 폐하의 결재를 받을 것이니 공포하는 날로부터 이 조약을 실행한다.


이상의 증거로써 두 전권 위원은 본 조약에 이름을 쓰고 조인한다.


융희 4년 8월 22일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

명치 43년 8월 22일 통감 자작 데라우치 마사타케

 


    나라가 망했다. 전쟁으로 패해 망한 것도 아니고 동족에 의해, 지 혼자 호의호식하려고 팔아먹었다.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이 땅의 황제(황제폐하와 고관대작의 이름위에 저주있으라!)의 백성들이 졸지에 벼락을 맞았다. 조약은 8월 22일 체결되고 극비에 부쳐 숨겨지다가 8월 29일 공표되어 알려진다.

    부끄러운 일이다. 참담한 역사다. 굳이 친일파가 아니더라도 한 민족으로서 숨기고 싶은 과거다. 그래서 숨기잔다. 공공연히 까발리고 배우면 자학사관이란다. 어차피 지난 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모두 화해하고 미래만을 보고 힘을 합치잔다. 단죄가 아니라 교훈을 위해 조사하고 정리만 하자는데도 길길이 날뛴다. 너라도 그 때 그 상황에선 친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되레 삿대질이다. 뜬금없이 친일보다 친북이 나쁘다며 빨갱이를 쳐 부셔야 된다고 시치미 떼고 난리법석이다. 친일전력자의 후예, 면면이 이어져온 그 세력을 비호하는 모 정당의 얘기다.


    국사 교육이 많이 축소됐다. 여전히 친일과 매국의 뿌리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 사회의 주류와 정권을 잡은 세력 입장에서는 역사교육강화는 탐탁치 않은 일이다. 아무리 미화, 윤색하려 해도 근현대사는 뭐...답이 안 나온다. 근현대사를 주름잡던 주인공과 주류세력 곧 조선말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송시열의 노론, 이완용의 친일파,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 김영삼의 민자당, 이회창의 신한국당, 이명박의 한나라당으로서는 입장 곤란해진다. 아예 접근 차단하는 게 상책이다. 체면이 서지 않으면 종국에는 영(令)도 서지 않는다.

    부끄럽다. 친일파도, 독립지사도, 너도, 나도 자랑스럽지 않은 굴종의 역사다. 하지만 기억하고 되새겨야 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정부에 8월 29일을 국가 공식 기념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타국에 망명 중이었던 임시정부 요인들을 비롯한 해외의 항일운동가들은 이 날이 오면 어김없이 국치기념 행사를 가지고 독립의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이후 국치일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명확한 이유없이 삭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1절, 815는 알아도 829는 모른다.


    오왕 부차는 섶 위에서 자고, 월왕 구천은 쓸개를 핥으며 패전의 굴욕을 되새기고 자신을 경계했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조약은 우리에게 섶과 쓸개와 같은 존재다. 부끄럽고 거북하다. 쓰고 괴롭다. 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소중한 유산이다. 항상 곁에 두고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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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부차와 구천에서 보여지듯이 원래 중국인이 은원을 중요시하여 원수는 대를 이어 갚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부차와 구천은 복수를 꿈꿨다. 하지만 우리가 국치일을 되새기자는 것은 복수를 위함은 아니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 도덕적이고 평화롭게 번영하는 동북아 공동체를 이뤄 세계가 따라 배우고픈 모범이 되자는 것이다.


    쪽바리, 짱께(떼놈), 양키, 로스케 - 각각 일본인, 중국인, 미국인, 러시아인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을 비하하고 얕잡아 본다고 해서 우리가 더 높아지거나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다. 잠시 분이 풀리고 자만심을 만족할 뿐이다. 대접받으려면 스스로 먼저 대접해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비하하는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이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우리가 한참 떨어지거나 많이 못 미친다.


    친일파(親日派), 혐일파(嫌日派)보다 지일파(知日派)가 필요하다. 지중파, 지미파, 지러파가 필요하다. 특히 가해자였던 일본에 대해선 존경받는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꿇리지 않고 제대로 된 사과를 요구하려면 실력을 갖추고 도덕적으로 우월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정권차원이 아닌 일본 내 양심적인 시민사회세력과 손을 잡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우리안의 군국주의 일제의 잔재와 친일파를 청산하고 양심적 시민사회의 역량을 키워야 함은 물론이다.



한일병합조약이 조인됐던 현장에 세워진 ‘통감관저터’ 표석. 글씨는 신영복 선생



    8월 29일에는 당시의 현장에서 경술국치 100주년을 기념하여 ‘통감관저터’ 표석 제막식이 있었다. 일본 측에서도 시민사회를 대표하여 여러 인사들이 참석하였다고 한다. 마침 본 포스팅에 일본에 거주하시는 Hare님이 댓글을 다셔서 생각난 김에 덧붙인다. - 2010. 0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