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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마라톤

제12회 3대하천마라톤대회 - 종서와 함께 5K 참가 후기 (2015/04/19)

어멍 2015. 4. 21. 22:16


    제12회 3대하천마라톤대회 - 종서와 함께 5K 참가 후기 (2015/04/19)

 


 

 



대전의 대표적인 마라톤대회 <3대하천마라톤대회>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5K는 부담이 없어 처음엔 다영(여중 2년), 종서(남초 6년), 아내, 나 이렇게 가족 모두가 참가하기로 하고 3월 1일 시험 삼아 갑천으로 나가 뛰어보았다. 목표는 기록과 무관하게 가족 모두 걷지 않고 뛰어서 함께 결승선을 통과하는 거!

    처음이기도 했지만 하필이면 그날따라 날씨가 춥고 바람이 강해서 5K에 55:42! 거의 덜덜 떨며 뛰기보단 걷기만 했던 기억. 때문에 다영이가 심한 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괜히 나 때문에 아픈 것 같아 미안하고 마음이 무겁다. (ㅠ.ㅠ)

    일단 다영이와 아내는 불참하는 것으로 하고 가족 모두 나가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4월 19일 대회당일 아침, 평소보다 좀 일찍 일어나 가족 모두 밥상에 앉았다.

    나 : 종서야. 걱정이다. 연습도 저~~번에 한번밖에 못했고 오늘 비가 온다는데... 이따가 비 많이 오면 뛰지 말자. 너무 무리할 필요 없어!

    종서 : 아무리 비가 와도 뛸 거예요! 색다른 경험이 되겠죠.

    내심 하고자 하는 의지와 결단력, 도전정신이 대견하다.

    나 : 다영아 종서야. 어제 아빠가 해준 얘기 기억하냐?

    다영, 종서 : 예! 여행가서 이성 사귀지 말란 말씀 말이죠.

    나 : 그래. 여행가면 환경이 바뀌고 마음이 들떠서 모든 게 마~~악 아름답게 보이고 사랑스레 보이고 그런 거야. 잠깐 어울려 교류하고 즐길 순 있어도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선택할 순 없지. 1년 365일 여행하며 살 순 없잖아. 일상을 함께 해 봐야지. 가능하면 힘든 일, 싫은 일, 지루한 일도 함께 해보는 것이 좋아. 네 몸도 소중하고 네 마음은 더 소중한 것이니까 함부로 맘을 주어선 안 돼! - 오늘은 인생의 팁을 또 하나 알려주겠노라! 세상 살면서 가장 쓸모 있고 소중한 세 마디 말은 무엇이겠니?

    종서 : 무슨... 문제인가요?

    나 : 문제는 아니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지. 그냥 아빠 생각이야. 세상엔 한 가지 정답보다 수많은 해답이 있을 뿐이지. 아빠 생각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인데 나머지 한 가지는 무엇일까??

    다영 : 사랑합니다?

    나 : ‘사랑합니다.’도 쓸모 있고 아름다운 말이지! 하지만 아빠 생각은 ‘안녕하세요.’다. 인사만 잘 해도 세상 사는데 도움이 많이 되지. 종서야! 이따 아빠 주주클럽 회원 만나면 인사 깍듯이 잘해야 한다. 알았지?

    종서 : 네~에!

 





    대회장에 도착하고 보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게, 광장 뒤로 보이는 야트막한 산등성이엔 운무까지 피어오르는 듯하다.

    주주클럽 부스를 찾아가보니 여기저기 대회준비에 분주하다. 홈그라운드에서 열리는 대회라 그런지 저번 예산대회보다 더 시끌벅적 많이 오신 듯하다. 종서와 함께 회원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스트레칭을 위해 둥글게 같이 선다.

 




‘좋은아침’님이 찍어주심




스트레칭을 마친 후 ‘고운’님께 부탁해서 또 한 컷

 



    9:00 풀과 하프코스 출발 후 10분 간격으로 10K, 5K 그룹이 출발한다. 순서가 되자 종서가 내 손을 끌더니 슬금슬금 맨 앞줄로 나간다. 덕분에 종서는 권선택 대전시장과 인사도 하고 악수도 했다.

    드디어 출발! 동시에 종서가 내가 쫓아가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치고 나간다. ‘역시 초보 초딩! 내 그럴 줄 알았지!’

    종서 : 아빠! 일등하면 뭐 줘요? 빨리 좀 쫓아와요!

    나 : 종서야! 원래 우리 목표가 뭐였지? 욕심내지 말고 걷지 말고 완주만 해! 속도 줄이고 말도 아껴! 벌써부터 오버하면 이따 힘들어.

    아니나 다를까. 2K를 지난 후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진다.

    종서 : 아~~~ 미치겠다! 걷고 싶다!!

    묻지도 않았는데 정신이 황홀한 듯 혼잣말을 내뱉는다. ㅋ.ㅋ.ㅋ 이제 겨우 마라톤 러닝의 참맛을 쪼~금 알아가기 시작하는군! (^.^)

 




점점 느려지는 초보자의 전형적인 페이스 유형

 



    연습량이 없는 생초보 상태에서 이런 페이스와 흐름은 당연한 이치!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거다. 말은 그래도 아직 목소리가 살아있고 동작이 무너지지 않았다. 발을 계속 움직이며 멈추지 않을 눈치다.

    나 : 종서! 잘하고 있어! 저기 반환점 보이지? 벌써 반이나 왔어. 봐봐! 니 앞에 어린이가 하나도 없지? 이대로만 가면 니가 어린이 일등이야!

    아직까지 ‘어린이밥’과 ‘어린이물’만을 고집하며 - 잡곡밥 등은 안 되고 하얀 쌀밥만, 보리차 등은 안 되고 맑은 생수만 - 언제까지고 어린이날을 누리고픈 종서에게 어린이 세계 특유의 승부욕을 자극하며 응원한다. 좀 힘이 나는지 약간 페이스를 되찾는다. 계속 힘을 내라고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붙여준다.

    나 :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종서 : 아빠 이제 그만해요. 민망해요.

    나 : ................

 


    내게 무안을 주어 좀 미안했던지 내내 달리다가 4K 못 미처 혼잣말인지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불쑥 내뱉는다.

    종서 : 내 한계를 끌어 내겠어! 하얗게 불태우겠어!!

    의지, 각오보다 표현력이 더욱 놀랍다.

    이제 다리를 건너 결승선이 눈에 보인다. 채 300M도 남지 않았다.

    나 : 종서야! 결승선 보이지? 마지막이니까 힘 내! 30분을 넘길지 아닐지 모르겠구나. 통과하면서 잘 보고 기억해!

    종서는 대답이 없다. 아마도 지금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을까!

 




꿈속을 달리듯 빗속을 달리고 있는 종서 ㅋ.ㅋ

결승선 10여 미터 앞 ‘the앞으로’님이 찍어주심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보니 29:19! 첫 5K 러닝 치고는 훌륭하다. 무엇보다 한 번도 걷지 않고 완주한 것이 대견하다. 내심 해낼까 아닐까 반반이었는데 내가 모르는 사이 종서가 부쩍 큰 느낌이다.

    나 : 와우! 이종서! 29분 19초야. 대단한데!

    종서 : (고개를 숙이며) 아빠. 머리에 물 좀 부어 주세요. 먹는 물이니 조금만요.

    호들갑을 떨며 기고만장하리라 예상했지만 왠지 묵묵히 머리의 열기만 식히려 한다. 갑자기 무르익어 꽉 찬 이삭같이 묵직해진 낯선 이 느낌! (^.^) 열로 인한 상기인지 흥분으로 인한 상기인지 양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파마머리는 비에 젖은 배추머리가 되어 무럭무럭 김을 뿜어내고 있다. 보기에 흐뭇하고 대견하다.

 


    주주클럽 부스에 도착하니 '울트라'님이 수고했다며 방금 쪄 올린 따끈따끈한 돼지 수육을 석석 썰어 통통한 새우젓과 함께 한 접시 내 주신다. 갑자기 어릴 적 시골 대청마루에 앉아 처마 끝에서 똑똑 떨어지는 빗물소리를 들으며 뿌옇게 희미해진 앞산 산등성이를 바라볼 때, 그 때 호호 불며 먹었던 뜨거운 부침개가 생각난다. 비에 젖어 차가와진 몸속으로 넘어 들어가는 뜨거운 수육이 가볍게 전율하는 육체를 진정시킨다.

    대지를 어루만지듯 끊임없이 조용히 내리는 비, 산등성이를 떠다니는 운무, 희미해진 먼 풍경, 맑고 차가운 공기... 모든 것이 그 때와 흡사하다. 다만 그 때는 나른하면서도 서늘하고 차분하면서도 약간 외로운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시끌벅적 활기가 넘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지금도 먹고 싶어 생각나는 모락모락 김이 나던 그 수육의 맛! 나 못지않게 맛있게 먹었던 종서에겐 또 다른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

 


    아직 들어오지 않은 회원들도 많고 수고하고 계신 분들도 많아 먼저 자리를 뜨기가 죄송했지만 으슬으슬 한기에 감기라도 들까 걱정되고 늦게라도 교회에 가기 위해 회장님 이하 회원 분들께 간단히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떴다.

    일단 집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녹여야겠다.

 




집에 와서 완주메달을 들고 한 컷

 



    나 : 종서야. 어땠어? 좋았어?

    종서 : 좋았어요!

    나 : 다음에도 뛸래?

    종서 : (주저 없이) 뛸 거예요.

    나 : 내년에는 엄마하고 누나도 같이 뛸까?

    종서 : 당근이죠! 엄마도 누나도 그 고통을 맛봐야 해요!

    (엄마와 누나를 사랑하는 건지 미워하는 건지 헷깔리누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