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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홍수시대, TMI(Too Much Information) 시대의 슬기로운 인터넷, 모바일 생활

어멍 2020. 12. 26. 16:21


정보홍수시대, TMI(Too Much Information) 시대의 슬기로운 인터넷, 모바일 생활

 

 


 


 

안물안궁! 그래서 뭐 나보구 워쩌라구...

 


 

      바야흐로 정보홍수시대, TMI(Too Much Information) 시대다. SNS에서 오고가는 개인 간의 가벼운 일상에서 포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방면의 갖가지 뉴스와 기사까지... 거대한 해일에 자동차에서 양말까지 온갖 잡동사니가 뒤섞여 들이닥치듯 우리를 정신없이 몰아치고 있다.

 

      인터넷, 모바일 뿐 아니라 TV까지 다매체, 다채널의 거의 무한의 정보가 생산, 유통, 소비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 모바일 세상은 그 규모와 다양성, 편차 등에서 일찍이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다. 허접한 쓰레기 정보로부터 대학원 논문 수준의 고급정보까지 혼재되어 있고 초딩과 석박사, 양아치와 성인(聖人)이 한 공간에서 동등한 자격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SNS에서 유통되는 동영상에서 캡처한 장면을 가족 카톡에 재미삼아 올린 것이다. 아마도 60~70대 시니어 그룹들 간에 오고가며 소비되는 동영상인 듯한데 화면이나 흐르는 배경음악이나 편집기술 등 그 특유의 분위기와 정서가 있다. 하여튼 정보의 양부터 질, 정서가 이렇듯 너무 제각각이고 다양해서 수천, 수만 가지 메뉴가 차려진 뷔페에 들어선 것같이 혼란스럽다. 즐길 거리도 배울 거리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넘쳐난다.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전도서 12:12]


 


      성경에 의하면 2000여 년 전에도 TMI Stress를 호소하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이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일 것이다. 전도서의 저자는 분명 활자와 서적에 접근이 자유로운 학문 깊은 귀족, 성직자, 학자 등 특수신분이었을 것이다. (전도서는 성경의 다른 편보다 확실히 철학적, 학구적, 사색적이다.) 그 밖의 대다수 일반 백성은 정보다운 정보에 접근할 기회가 극히 적었을 것이고 집에 책 한 권도 없는 백성도 많았을 것이다.

 

      성경만 하더라도 특정 인물(성직자)만이 특정 의식을 거친 후 특정 도구로 필사하였고 일정기간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등 외국어로 번역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일반 백성은 정보를 독점한 특정 계급이 보여주는 대로 보고, 들려주는 대로 들을 수밖에 없는 피지배 계급이었을 뿐이다. 이것은 동서고금,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1970, 80년대만 해도 먹고 살기 바빠 변변찮은 정보를 접할 여력이 없었고 집에 있는 책은 기껏 잡지 포함 수십여 권이요 신문이라도 읽으면 식자층에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이미 백성도, 신민도 아닌 (민주)시민이고 좀 번거롭지만 찾으려고만 하면 정확하고 고급진 정보는 얼마든지 있다.

 

      옛날과는 다른 이러한 사정으로 볼 때 지금은 정보의 주체적, 비판적 취사선택이 더욱 중요해졌다. 유저의 책임과 자질이 더 중요해졌다. 지식과 인성을 고르게 성장시켜 올바른 가치관과 심성을 갖추기 위해선 더욱 슬기롭고 비판적인 인터넷, 모바일 생활이 요구되는 것이다.

 


 

 

 


      <창조-생산-가공-유통-소비-파괴> 상품과 마찬가지로 정보(활동)도 가장 이상적인 것, 고차원적인 것부터 순서대로 나열하면 이와 같을 것이다.

 

      창조는 혁신적인 창작물로 가장 고차원적인 생산이다. 생산은 낳는 것으로 창조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가공은 남이 창조하고 생산한 것을 2, 3, n차 수정, 가감, 변형하는 것이다. 유통은 이렇게 창조, 생산, 가공된 콘텐츠들을 실어 나르고 전달하는 것이다. 소비는 이렇게 전달된,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다. 파괴는 앞선 모든 활동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글을 짓거나 발행물을 만들어 포스팅하는 것은 창조, 생산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타인의 콘텐츠를 빼고 덧붙이고 응용하는 것은 가공이다. 이러한 콘텐츠들을 소개하고 펌질하는 것은 유통이다. 읽고 보고 듣고 감상하고 의견을 다는 것은 소비다. 가짜뉴스, 거짓정보, 왜곡, 흑색선전 등의 나쁜 콘텐츠, 악질 정보를 생산 가공 유통하는 것은 정보시장을 문란하게 하는 파괴(행위).

 

      불량식품으로 우리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 불량정보로 우리의 정신을 상하게 하는 것이 더 큰 죄다. 인간의 얄팍한 호기심, 관음증, 시기, 질투, 물질적 욕망과 오감의 쾌락만을 자극하는 저급한 콘텐츠와 간교한 저의가 뻔히 들여다보이는 가짜뉴스, 편파보도들에 대해선 적극적인 관리와 주의가 필요하다.

 

      요즘 보면 언론사의 허위보도, 흑색선전도 많이 늘었지만 일반 유저들의 인터넷 활동도 많이 문란하고 저급해졌다. 조회수를 늘리고 돈만 된다면 물불 안 가리기로 작정한 듯하다. 최근에 문제가 된 유튜브 뒷광고나 조두순 유튜브 생중계는 이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알권리를 빙자해 자행된 관종짓, 돈벌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이 같은 부정적 상황전개는 (인터넷) 시장의 문제이기도 하고 유저의 문제이기도 하다. 유통되는 정보만큼이나 유저들의 양과 수준 역시 마찬가지로 광범위하고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원래 좁은 도서관에서는 양아치, 깡패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넓은 시장바닥에선 쉬운 법이다.

 

      유저에 따라 미디어가 변모하고 미디어가 유저의 입맛에 맞춰 아부함으로서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시장지배력을 확장하는 것은 홈드라마가 안방마님들의 취향에 맞추어 제작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TV, 그것도 종편 TV가 주도하는 트로트 열풍도 설명가능하다. 이미 구 미디어가 되어버린 종이신문에 뒤이어 TV도 구 미디어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K-Pop으로 대표되는 아이돌 십대는 이미 인터넷, 유튜브, 넷플릭스로 떠나가고 상대적으로 고령인 구세대가 터줏대감처럼 TV를 점유한 것이다. 원래 안방 TV의 채널 선택권은 엄마나 아빠에게 있다.

 

      TV가 동해, 앞바다라면 인터넷, 모바일은 태평양, 큰바다다. 그러나 그 바다에는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인 무의미한 정보, 허접한 정보가 넘쳐난다.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고 우리의 마음을 황폐하게 하여 종국에는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독극물 같은 불량정보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자 위의 삐침이 너무 제멋대로여서 전혀 먹을 아끼는 뜻이 없다. - 추사 김정희가 고람의 글씨에 대해 평한 글의 일부


 


      한 문장도 아니고, 한 글자도 아니고, 작은 삐침 한 획이다. 그만큼 금강안(金剛眼)이라고 불린 추사의 눈매와 평가가 철두철미했음을 보여준다.

 

      동서고금 갖가지 서적의 跋文(발문)에는 심심찮게 겸양의 표현으로 자신의 저작을 拙作(졸작)이라 부르는 것을 보곤 한다. 서고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책들 위로 자신의 책 한권이 또다시 헛되이 얹어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된다느니, 자기 때문에 장안의 값비싼 종이와 먹이 낭비되었다느니, 독자제현의 소중한 시간과 수고를 빼앗았다느니 하는 표현도 등장한다. 의례적인 겸손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정보홍수시대인 지금 오히려 더욱더 새겨둘 필요가 있는 글귀다.

 

      시간이 남아 아무 유튜브 동영상이나 무심코 보고 있노라면 ~ 내가 왜 이 쓸데없는, 영양가 없는 동영상을 보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1분이고 10분이고 이제까지의 시간이 아깝다. 책도 이런 책이 있다. 마지막 장을 덮고도 아무 감흥이 없는 책, 새롭게 느낀 것도 배운 것도 얻은 것도 없는 책이다. 다시 책꽂이에 꽂으려는데 차지하는 책장 공간이 아까워 아예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은 책이 있다. 정말 돈과 시간과 수고와 자원의 낭비다!

 

      반면 책장을 덮고도 쉽게 손이 떨어지지 않는 책이 있다. 무의식중에 손에 쥔 채 곰곰 생각하고 감상하게 하는 책이 있다. 오랜 연인을 떠나보내듯 다시 책장에 꽂아 넣는 것이 애석하고 아쉬운 책이 있다. 들인 시간과 수고가 전혀 아깝지 않은 책, 정말 잘 읽었다, 읽기 잘했다고 작가에게 감사의 마음이 샘솟는 책, 나를 이어 내 딸아들까지 읽었으면 싶은 책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뚝- 하고 눈물이 떨어진 적이 있는가?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설레고 뿌듯한 적이 있는가? 뭔가 쇠망치 비슷한 것으로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는 깨달음의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가? 가슴 깊숙한 밑바닥 심해에서 진도 9.0 강진의 진동을 느낀 적이 있는가? - 단언컨대 책을 읽으며 이런 비슷한 순간은 있었어도 인터넷을 하면서는 한 번도 없었다.

 

      멋지다! 아름답다!, 그렇다! 바로 이거다! 나도 이렇게 살아야겠다! - 단언컨대 책을 읽다가 이런 느낌, 이런 생각이 든 적은 종종 있었어도 인터넷을 하면서는 별로 없었다.

 

      책이라면 유행 따라 읽는 한창 장안의 화제인 베스트셀러가 아닌 스테디셀러, 스테디셀러가 아닌 고전인 경우가 많았다. 고전 읽기는 언제나 옳다. 백에 아흔아홉은 책값과 들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그 중 하나가 그렇지 않다 해도 부족한 내 수준을 감안한다면 필경 내가 그 진가를 이해하고 소화하지 못했을 경우일 것이다.

 


      내가 너무 인터넷, 모바일 세계를 저평가하는 것일까? 확실히 인터넷은 인류를 이롭게 하는 이기(利器)이고 커다란 진보다. 무엇보다 많은 부작용과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넉넉히 용해하고도 남을 넉넉한 바다다. 일베, 극좌 극우 꼴통, 원리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사기꾼, 장사꾼, 관종 등 온갖 별종들이 날뛰더라도 그 무한대의 정보 때문에 인류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하향평준화보다 상향평준화되었다. 거의 신세대, 신세력, 신인류의 출현이다.

 

      하지만 그 전체 양에 비해 양질의 고품격 정보와 콘텐츠가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는 것, 그래서 그것을 찾아들어가 접근하기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인터넷도 세상과 마찬가지로 다이아몬드보다 금이 흔하고 금보다 동, 동보다 모래가 흔하다. 비유하자면 책 속에서 뭔가 얻는 것은 금광에서 금덩어리를 찾는 것처럼 비교적 손쉽고 흔한 것이라면 인터넷에서의 그것은 백사장에서 사금을 찾는 것처럼 어렵고 희귀한 것이다.

 

      인터넷 세상에서의 진리는 치킨에는 맥주가 진리류의 진리지만 책에서는 진리는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 아침에 도(진리)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류의 진리다. 책에서는 나는 신과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과 죄를 원합니다.’(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중의 주인공 존의 대사)라고 부르짖지만 인터넷 유저들은 그저 나는 오직 더 큰 즐거움을 더 빨리, 더 많이, 더 오래, 가능하다면 영원하도록 원합니다.’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이들의 최고덕목, 절대선은 '재미'다.

 


 


 

국보 제180호 추사의 <세한도>

과연 인터넷 유저 중에 추사의 고졸한 멋과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즐거운 것도 좋다. 재밌고 유쾌하고 가벼운 것도 좋다. 하지만 너무 과하거나 치우치면 오히려 자신을 망치는 해로운 독이 된다. 정신없이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시대, 죽도록 즐기기에도 모자라는 볼거리, 놀거리가 지천으로 널려있는 인터넷, 모바일, IPTV 시대에 좀 더 진지하고 긴 호흡의 책, , , 화 등의 고전적인 정보매체와의 균형이 더욱 요구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