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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성경읽기 0074 : 마태복음 3장~4장

어멍 2011. 6. 10. 22:47
 

    성경읽기 0074 : 마태복음 3장~4장



3장 3절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한 사람의 소리가 있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주님의 길을 곧게 펴라.’”

7절

수많은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왔습니다. 요한은 그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들에게 다가올 하나님의 벌을 피하라고 일러 주었느냐?

11절

나는 물로 회개의 세례를 준다. 내 뒤에 오실 분은 나보다 능력이 더 많으신 분이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도 없다. 그분은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3장 3절의 이사야 말씀이 곧 이사야 40장 3절이다. 또한 말라기 4장 5절에서 언급된 예언자 엘리야 역시 주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을 뜻하기도 한다.

    요한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사촌 엘리사벳과 제사장 즈가리야 사이에서 예수보다 12개월 먼저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매우 진지했고 일찍 고향을 떠나 사막으로 들어가 사해의 외로운 바닷가에서 경건함에 대해 묵상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선지자는 에세네인들처럼 입고 살긴 했지만 그들처럼 세상을 등지지는 않았다.

    그는 신념이 매우 강했으며 다소 거칠기까지 하였다. ‘독사의 자식’[3:7]이란 말은 예수님 역시 썼지만 요한의 태도나 그 공격 방식이 예수님의 취향에 딱 들어맞지는 않았다. 예수는 북쪽의 쾌적한 초원지대에서 그리고 요한은 남쪽의 불모지대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경험이 두 사촌의 성격을 특정지은 듯하다.


    요한이 하늘나라가 곧 도래할 것이니 회개하라고 설교할 때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요한은 신념이 강한 고귀한 목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이 세상의 부조리와 사악함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형제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부정한 사랑에 빠져 본 부인을 버리고 그녀와 재혼한 헤롯왕을 비난했다. 헤롯과 헤로디아는 분노했고 당국은 백성을 선동해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위기감을 느꼈다. 예수님에 앞서 온 요한 역시 정치적 박해에 직면한 것이다.

    요한을 붙잡아온 헤롯은 선뜻 그를 죽이지 못한다. 교활한 겁쟁이인 그는 이 미지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힘과 그를 따르는 백성들에게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매서운 아내 헤로디아는 아니었다. 남편이 의붓딸인 살로메를 굉장히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녀는 살로메를 시켜 헤롯 앞에서 춤추게 한다. 헤롯이 기뻐하여 맹세로 살로메에게 무엇이든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허락하자 살로메는 요한의 목을 원한다고 말한다. 요한은 이렇게 다소 허무하게 갔다. 예수의 죽음이 장편이라면 요한의 죽음은 단편이다.

    쾌락만을 추구하던 세상에서 용기 있게 진지한 것을 이야기한 요한, 세속적 정치권력에 맞서 과감히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외친 요한은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




거칠은 광야의 선지자 세례 요한
El Greco(엘 그레코), <St, John The Baptist(세례 요한)>, 1600, 샌프란시스코 미술관.



3장 14절

“제가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되는데 도리어 예수님께서 제게 오셨습니까?”

15절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자.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다.” 그제서야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16절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 밖으로 나오시자, 하늘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처럼 자신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17절

그 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찾아오신 예수님에게 요한이 하는 이야기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손수 닦이시는 등 이 땅에 군림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받들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것을 위해선 형식도 율법도 부차적인 것이다. 형식(율법)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형식(율법)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자.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첫 말씀이다.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있는 예수님
Tintoretto(틴토레토), <예수의 세례>,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4장 6절

마귀가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시오. 성경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천사들에게 명령하실 것이다. 그들은 손으로 당신을 붙잡아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소.”

7절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성경에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은 후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게 된다. 그 중 두 번째다. 첫 번째는 40일 금식으로 배가 고픈 예수님에게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는 마귀의 시험이고, 세 번째는 세상 모든 나라와 영화(榮華)를 보여준 후 나(마귀)에게 경배한다면 그 모든 것을 주겠노라는 마귀의 유혹이다.

    마귀의 말도, 예수님의 말씀도 성경이다. 마귀의 것은 [시편 91:11-12]이고, 예수님의 것은 [신명기 6:16]이다. 마귀는 성경구절을 끌어와 예수님을 시험하고, 예수님 역시 성경구절을 끌어다 마귀를 꾸짖는다.

    적그리스도, 거짓 메시아, 가장 큰 마귀의 말은 가장 달콤하다. 그 겉모습은 더 없이 선하고 아름다우며 그 말은 가장 그럴듯하고 심지어 엄숙하고 근엄하기까지 하다. 큰 마귀가 아닌 작은 마귀, 마귀가 아닌 악인, 악인이 아닌 속인 역시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함부로, 제 편의대로 성경말씀을 끌어다 쓰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지고지순하고 훌륭한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라도 잘못 쓰이면 독이 될 수 있다. 의도와 목적이 불순하면 성경말씀이라도 천박하고 쌍스런 육두문자보다 더 폐해가 크다. 창녀의 천박한 쌍욕보다 귀부인의 품위 있는 요설(妖說)이 사람의 마음에 더 생채기를 내며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환멸과 슬픔마저 느끼게 하는 것과 같다.


    물이 벌의 몸속에 들어가면 꿀이 되지만, 뱀의 몸속에 들어가면 독이 된다. 경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