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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진실, 하얀 거짓말 그리고 검하얀 역사

어멍 2009. 4. 10. 10:47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

바보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

- 뵈브 메리(Beuve-Mery, Hubert) -



    멋진 말이긴 하나 현실은 그리 멋지지도 않고 간단치도 않다.

    진실은 대개 안개에 싸여있어 모호하고, 어렵게 꼬리를 잡아 정체를 밝히더라도 때론 거북하고 때론 가혹하여 진실을 마주하기에, 진실과 눈맞추기에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호사가들이 흔히 하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남자지만 그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라는 말처럼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 경우가 많고(The truth is out there) 때론 아주 사소한 일상의 것이 결정적일 때도 있다.


    

    당신을, 우리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진실들은 무엇인가? 황당하지만 드라마틱하게, 철전지 원수가 알고 보니 아버지였다든가(I'm your father!) 말도 한 번 못 부치고 멀리서 바라만 모았던 젊은 날의 첫사랑이 사실은 게이였다든가. 좀 현실감있게, 컴도저로 여겼는데 알고 보니 컴퓨터는 고사하고 브레이크도 핸들도 없이 미친 엔진만 있는 쇳덩어리에 불과했다든가, 청렴한 줄 알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알고 보니 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던가(그것이 본인이든, 부인이든, 인척이든, 측근이든) 그도 아니면 허름한 고기집의 구수한 욕쟁이 할머니가 강남 40평대서 벤츠로 출근해서 몸빼로 갈아입는 알부자라든가.

    누구든지 일상에서 크고 작은 진실의 충격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허름한 인테리어와 구수한 욕이 단지 컨셉이고 영업전략이었다면, 자신은 정을 주고 받았다고 여겼는데 오직 돈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라면 배신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진실이란 것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다면 우리는 그것을 파악하기가 더욱 어렵다.

    일년전 경주에 있는 신라밀레니엄파크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천궤의 비밀'이라는 대형 야외공연이 있었는데 내용인 즉은 미시랑이라는 화랑에 의해 당나라를 격퇴하고 승리를 이룬다는 것.
    당나라를 몰아내려는 갈등 혹은 전쟁이 신라 당나라 연합군과 백제, 고구려 사이의 치열한 통일전쟁에 이어 파생된 전쟁이란 측면에서, 독립전쟁에 비해 통일전쟁이 차지하는 역사적 비중이 훨씬 크다는 점에서 어색한 느낌이었으나 현실적으로 일반국민, 관객 앞에서 백제, 고구려를 적군으로 상정하고 공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 현실, 현대엔 거북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북한 느낌의 근거인 한(韓)민족이란 개념이 당시에도 있었을까? 신라에게 백제가, 백제에게 고구려가 과연 같은 민족으로 인식되었는지, 당시 당나라와 별반 차이 없이 인식되었는지, 언어와 풍속은 얼마나 공유되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또한 당시 고대국가가 한 국가로서 이루는 일체감, 동질감은 어느 정도였는지 당시의 씨족, 부족, 민족의 범위와 분포는 어디까지였으며 어느 단위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사회였는지는 현재의 잣대로 추측하거나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외세(?)를 끌어들여 같은 민족(?)인 백제, 고구려를 정벌한 나당연합군과 신라에 의한 통일로 인해 결과적으로 왜소해진 영토 등을 현재의 잣대로 비판하는 것도 의미없고 난세스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당시의 전쟁이 독립전쟁보단 통일전쟁이 주였다는 것. 외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한 방어전쟁, 호국전쟁보단 패권전쟁, 침략전쟁의 성격이 더 강했다는 것이다. 이는 신라뿐만 아니라 고구려, 백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라 안이 어수선하고 국력이 약해지면 수비에 치중하다가도 나라 안이 정비되고 국력이 강해지면 공세로 전환하기를 반복하면서 삼국은 엎치락뒤치락 패권승부를 줄기차게 벌였다. 그리고 그것은 한 나라 안에서의 내전이 아니라 침략을 하고 침략을 당하는 엄연한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이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한반도 안에서 강한 민족적 동질성만으로 묶여 사이좋게 오순도순 산 것만이 아니라 서로 물고 뜯기는 각축장이었다.

    고구려의 일부시기를 제외하곤 한 번도 힘을 축적하여 잉여의 무력, 총체적인 국력이 한반도 외로 넘쳐흘러 본격적인 대규모 정복전쟁을 벌인 적이 없다. 담지 못하면 자연적으로 넘쳐흐르기 마련이고 그렇지 않으면 인위적으로라도 탈출구를 열어주어야 사회가 유지된다. 압력이 내부에서 폭발하지 않게 외부로 구멍을 내주어야 한다. 평화적으로는 문화의 전파요, 무력이 되면 전쟁과 정복이다. 그리고 이 둘은 대개 동시에 전개된다.

    한창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의 사내놈은 괜히 힘자랑하고 싶은 법이며 주체할 수 없는 힘을 감당치 못해 여기저기 들이받고 뭐라도 때려 부수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넓은 사냥터를 마련해주고 큰 샌드백을 달아 주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민족을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사는 순박한 민족’, ‘흰 옷을 즐겨 입는 평화를 사랑하는 온순한 민족’, ‘수많은 외침의 고난을 당하면서도 한 번도 침략을 하지 않은 착한 민족’으로만 보는 것은 과장됐거나 왜곡된 이미지다. 물론 한 곳의 풀을 다 뜯어 먹이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유목민과는 달리 씨를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고 갈무리하며 한 곳에 정주하는 농경민들의 생활양식과 문화가 민족적으로 내면화된 영향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평화를 사랑해서 침략하지 ‘않았다’는 말보다 힘이 없어서 침략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진실에 가깝다.

    이렇듯 진실이란, 특히 역사적 진실이란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어렵고 지금의 시점에서 일방적으로 규정할 수 없으며 정치적 필요나 희망에 따라 함부로 왜곡해서도 안 된다.

 

    일제강점기 만주와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무장독립단체에서는 속고 속이는 치열한 첩보전으로 인해 어제까지 총을 같이 들고 싸웠던 동지라도 의심이 들면 심문하고 처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의복과 무기를 동지들에게 나누어주며 조국광복을 부탁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동지들의 총탄에 쓰러져갔다. 그들은 일제의 첩자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오직 자신과 하나님만이 아는 진실일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악당, 매국노와 영웅, 애국선열들은 과연 진실일까? 예를 들기가 번거로울 정도로 밝혀지지 않은 친일행각이 후일 드러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극히 소수!)

    매국노인양 친일진영에서 암약했던 항일독립투사도 있기야 있을 것이고 같은 독립투사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역사에서마저 영원히 친일파로 기록된다면 개인과 가문으로선 너무도 억울한 씻을 수 없는 불명예가 될 것이다. 이것이 지난 참여정부때 과거사 정리를 반대한 진영의 주요주장이기도 했다. 진실은 애당초 완전무결하게 밝혀질 수 없으며 억울한 희생자와 필요없는 갈등만 양산할 수 있다는 것. 일리있는 말이며 원론적으로 보면 너무도 성숙하고 민주적인 견해이다.


    87년 헌법개정이후 형식적 민주주의가 완성됐다고도 하는데 실질적이고 성숙한 민주주의의 참된 모습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수결의 원칙이 아닌 소수의견의 존중,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아닌 단 한 명이라도 절대소수의 최소행복(생존을 포함한)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것이 아닌 힘없고 소외된 소수를 위해 다수가 불편과 희생을 감수하는 성숙함이다.
    그렇지 않다면 몇몇 이용하지도 않는 외딴 곳의 공중화장실을 포함한 공공시설은 물론이고 각종 장애인 편의시설은 쓸모없는 낭비, 불편한 방해물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효율과 경쟁의 자본의 논리만이 횡행하여 급기야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까지 벌어진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10명의 행복보다 1명의 불행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 10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어선 안된다는 것. 참으로 고귀한 정신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거사 정리를 반대하는 진영, 친일 전력이 있는 진영의 주요방어논리로 이용, 악용되고 있는 것은 흉악범이 맑은 영혼의 천진난만한 아기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것만큼이나 분노와 환멸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협박과 공갈에도 불구하고, 가엾은 희생자에게도 불구하고, 잠시 멈추고 후퇴하고 호도될지라도 결국 역사는 진실을 향해 끊임없이 앞으로 나간다. 그것은 인정(人情)과 가치판단을 넘어서는 역사 자신의 의지와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한다는 막연한 신념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역사는 검을 수도 힐 수도, 아름다울 수도 추할 수도,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는 가치중립적인 존재다. 이것이 내가 ‘검하얀 역사’라고 이름붙인 이유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말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역사는 (승자든 패자든) 기록하는 자의 기록이다’라는 말이지만 결국은 ‘역사는 역사 자신의 것'이다. 기자(記者)의 선입견과 가치관이 개입된 기록으로서의 역사, 무비판적으로 주어진 역사가 아니라 스스로의 동력으로 스스로의 논리로 굴러가는 의지가 있는 듯한 독립체이다. 그러므로 나는 승자든 패자든 어느 누구도 옹호하지 않는다. 오직 역사 그 자체를 옹호할 뿐이다.


    민주주의와 역사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지만 얼마나 많은 이름 모를 목숨들의 희생과 사연들이 있었나! 매 순간 정의가 승리하는 것도 아니고 씨 뿌리는 사람, 일구는 사람, 따 먹는 사람은 대개 일치하지 않았다. 역사란 때론 똥 싸는 놈 따로 있고 똥 치우는 사람 따로 있고, 희생하는 사람 따로 있고 그 와중에 낼름 주워먹는 놈 따로 있기도 한 불합리한 것이었다.

    히틀러 독재에 전 민중이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고 희생을 치렀던 소련이 곧이어 스탈린 독재를 맞았다던가, 홀로코스트의 학살을 경험했던 유대민족이 팔레스타인을 박해한다던가, 경제도 더 안 좋고 더 부패하고 더 무능하면서도 이명박 정권이 더 기세를 올리고 여론은 더 무덤덤하다던가 하는 것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역사적 아이러니이며 사실(史實)이다.

    92년 대선때 부산에서 주요기관장들이 YS 당선을 돕기 위해 모의한 적이 있다. YS가 떨어지면 영도다리에 빠져죽자라며 ‘우리가 남이가‘의 유행어를 만들어 낸 그 유명한 초원복국집 사건이다. 모두가 YS는 끝났다며 당연시하였지만 사태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급소, 정곡이 찔리면 사실, 진실, 옳고 그름 이전에 위기의식과 보호본능이 조건반사적으로 작동하듯이 부정적 지역주의, 패거리의식이 작동하여 PK(부산경남)와 보수층이 빠르게 똘똘 뭉치는 결과를 가져와 도청의 불법성만이 조명, 처벌되고 YS는 결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비록 언론을 위시한 기득권층의 호도가 있었지만 여론, 역사라는 게 언제나 정도와 상식의 길로 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단기간에 부정적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진실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알고 있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안다고 하더라도 상황과 현실이 꼭 올바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진실의 거북함과 더불어 우리가 진실에 절망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정말 진실이, 오직 진실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이 동시에 진실이 진실일 수 있는 이유고 우리가 감내해야할 이유다. 진실은 진실일 뿐이다. 그럼으로서, 비로서 진실일 수 있다. 진실은 우리를 자유케 하기보다는 우리를 겸허케 한다.


    유시민이 말하길 박정희씨는 ‘성공한 독재자’라고 했다. 독재자란 추종자에게 불편하고 성공이란 비판자에게 불편한 말이지만 성공했다고 해서 독재자란 걸 부인할 수 없고 독재자라고 해서 성공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란 의미라 한다. 하지만 비판자들은 독재자임은 물론이고 부패와 실패의 무능력한 친일파이자 대한민국을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한 원흉으로서 경제적 성과도 원천부정하고 폄훼하기 일쑤고 추종자들은 조국근대화의 아버지, 단군이래로 굶주림을 면케 해준 최초의 지도자, 악역도 마다않고 살신성인, 멸사봉공을 스스로 실천한 위대한 독재자-독재까지도 카리스마와 결합시켜 리더쉽, 통치술로 미화하고 수용하는 입장이다. 그들에게 박정희란 신에 버금가는 숭배의 대상, 선과 악을 초월한 존재다.

    오일쇼크도 있었지만 미국의 전폭적인 원조를 포함한 호의적인 대외환경, 삼분파동 증권파동 등의 경제실책, 양적성장에 비해 초라한 질적성적표, 그리고 무엇보다도 18년이란 긴 통치기간으로 볼 때 그의 경제성적을 성공으로 보지 않는 이도 있고 박정희기 때문이 아니라 박정희에도 불구하고 이룬 성적이기에 말 그대로 (경제)기적을 이루었다는 이도 있지만 결과만을 놓고 봤을 때 경제적인 성공이라는 데에는 이의를 달기 어렵다. 2차대전후 신생독립국 중에서 우리만치 경제적 성공을 이룬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지 않은가. 그리고 아직도 개발이 덜 된 후진국가에겐 박정희식 개발독재모델이 여전히 유효한 본보기다.

    19C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산업자본이 축적되기 시작하는 초기, 원시적 자본축적단계에서는 개발독재, 아동을 포함한 비민주적인 노동착취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것은 가치판단을 떠나 역사진행단계, 자본주의 발전단계상의 통과의례적인 불가피한 필요악일 수 있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부작용 없이 빠져나올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하지만 지금은 신흥개발국를 지나 세계화를 거쳐 신자유주의 위기와 파국이 논의되는 시점, 21C 대한민국이다. 한참전의 IMF는 바로 그러한 박정희식 개발독재모델의 사망선고, 파산, 부도를 뜻함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그 경제몰락을 가져온 시효도 한참 지난 후진국형 박정희식 모델을 향수하는 것은 퇴행이다. 더구나 합리적이고 민주화된 시대에 박정희식 "화끈한" 독재형 리더쉽을 향수하는 것은 일탈이다.


    식민지 근대화론도 마찬가지다. 일제가 놓은 철도로 황군이 먹을 군량미며 무기를 만들 쇠붙이들이 수탈되어 수송된 것도 사실이며 해방 이후 그 철도가 근대화, 산업화의 기본 인프라가 된 것도 사실이다.

    결국은 역사를 보는 눈이다. 사실은 사실대로, 진실은 진실대로 있지만 어느 면을 인용하고 선택하고 강조하느냐 하는 입장, 가치관에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일단 사실, 진실의 왜곡, 날조는 논외로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역사적 평가는 전체적이고 총체적이어야 한다. 역사에서 가정법이란 검증할 수 없는 무의미한 일이지만 비교를 통한 총체적 평가를 위해선 간혹 의미있는 방법일 수도 있다.

    당시 대통령이 박정희씨가 아니었다면, 일제식민지를 거치지 않았다면 당시의, 현재의 모습은 어땠을까. 박정희씨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고 차지철의 건의를 따라 부마항쟁을 탱크로 밀어부쳐 수만명의 희생자를 낸 후 프랑스혁명처럼 민중에게 개 끌려가듯 끌려가 교수형에 처해졌다면 지금의 평가, 특히 부산, 마산, 경상도민들의 평가는 어떨까? 갑작스런 비명횡사로 최후를 맞은 것은 독재자 박정희씨에게 오히려 행운(!)이었을 수도 있다. 반대로 그가 살아 20년, 30년, 종신토록 통치했더라면 이미 우리는 일본을 넘어서는 세계초일류 선진국이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추종자도 있을 것이다.

    그였기에 가능했다는 주장이든, 그이에도 불구하고 가능했다는 주장이든 모두 증명할 수 없는 선입견과 가치관이 개입된 주장이다.

    역사 전체에 관해선 엘리트, 권력자의 비중, 역할을 중심에 놓고 볼 것이냐 민중, 시민을 중심에 놓고 볼 것이냐 하는 사관(史觀), 시선과 가치관이 나누어진다. 일본 때문에, 박정희씨 덕분에 그나마 우리가 여기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주장은 민중, 민족의 능력,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고 무시한다는 측면에서 이것이야말로 식민사관이요, 자학사관이랄 수 있다.
    박정희씨의 성공, 대한민국의 산업화, 경제성공을 논함에 있어 이 같은 영웅사관, 민중사관과는 별도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사항은 한반도의 지도상의 위치, 소위 말하는 지정학적 위치이다. 경제적으로는 장사가 잘 되는, 될 만한 위치이다. 사람과 돈이 몰리고 거쳐갈 수밖에 없는 목좋은 사거리랄까. 정치, 군사적으로도 요충지로서 분쟁의 가능성도 많은 반면에 그만큼 기회도 많은 유리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아프리카 어느 모퉁이 땅끝에 위치해있다고 가정한다면 쉽게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박정희씨가 그토록 열망했다던 (절대)빈곤탈출 정도는 그가 아니어도 어차피 이룰 수 밖에 없는, 충분히 이룰 수 있는 위치였다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박정희씨에도 불구하고’란 입장이며 김영삼 전대통령 이전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씨는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마지막까지 양보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 가치관이 있는데 내겐 권력을 위해서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거다. 아무리 잘 먹고 잘 살게 해준데도 가족을 죽이고, 이웃과 국민을 죽이고 꿰찬 권력은 인정할 수가 없다. 피묻은 밥은 넘기려 해도 넘어가지 않는 체질인가보다. 그래서 총칼로 국민을 죽이고 겁박하며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했던 쿠데타 군바리 출신들은 대통령 자격에서 열외다.

    그렇다고 박정희씨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며, 그의 경제성장이 성공이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 시대에 필요했던 리더쉽,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약으로 치자면 단기간에 소량 쓰여졌어야 했는데 너무 오래 너무 많이 쓰여져서 결국 비극을 맞았다는 게 아쉽다. 결국 그도 역사의 무대, 역사의 제단에 뿌려진 희생양, 하나의 배역에 불과했던 것일까! 

 


오른쪽이 바실리, 왼쪽이 다닐로프


    예전에 2차대전때 있었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Enemy at the gates>를 본 적이 있다. 하루종일 그 여운이 남았던, 내가 본 전쟁영화중에선 최고였는데 내게 가장 인상깊은 인물은 주인공 바실리가 아니라 10살 남짓한 어린 소년 사샤였다. 소련군 저격병 바실리와 독일군 저격장교 코니그 소령 사이에서 자발적 이중간첩을 하던 소년 사샤는 내심 바실리를 형처럼 따르며 그의 실력을 흠모하고 자랑스러워한다. 결국 소년은 바실리를 불러낼 목적으로 코니그 소령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미끼가 되어 매달리게 된다. 바실리는 슬픔과 분노에 치를 떨지만 소련 선전장교인 다닐로프의 목숨을 바친 희생에 의해 코니그 소령을 저격하게 된다.

    다닐로프의 희생은 그렇다 치고 어린 사샤의 죽음은 무슨 의미인가. 통조림과 과자, 쵸코릿을 좋아했던 어린 사샤에게 정치란, 전쟁이란, 역사란 무슨 의미였을까.


    역사앞에 겸허해야 한다. 아무리 처참하고 억울하고 불합리하고 슬프더라도 받아들여야만 한다. 영웅호걸이든 이름 모를 민초든, 선하든 악하든 역사의 탁류, 격류에 휩쓸려가는 무력한 개인, 역사의 주역이라기보단 역사의 도구인 경우가 많다.

    우기에는 왕불에도 불이 붙지 않지만 바짝 마른 건기에는 작은 불씨에도 큰 불이 나며 때론 나무와 나무사이의 마찰만으로도 온 평원을 다 태우기도 한다. 역사란 인간위에 있어 스스로 굴러간다.

    민초들이 31운동에 참여한 동기, 감춰진 사실이 무엇이든간에 31운동의 근본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며, 프랑스 혁명의 상징적인 사건인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으로 구출해낸 사람은 단지 7명, 그것도 정치사상범이 아닌 사디즘으로 유명한 야설의 아버지 사드 남작이 대표적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자유, 평등, 박애의 혁명정신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며, 혹 억울한 희생자가 생긴다 하더라도 과거사 정리,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의 필요성, 당위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3.1 운동의 불편한 사실 참조)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포위된 자신들을 방문한 외국선교사에게 독립군 지휘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도 우리가 질 줄, 결국 죽을 줄 알고 있소. 어쩌면 당분간, 영원히 독립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역사에 기록될 거라는 거요. 나라를 빼앗기고도 아무도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는 건 후손에게, 역사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오!”

    그는 기꺼이 역사의 제단에 자신을 바치고 결국 죽었지만 얼마 안 있어 조국은 독립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독립된 조국에서 친일파들이 득세하게 되는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이것은 자랑스럽고도 부끄러운 우리 역사의 엄연한 진실이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대로변에서 남의 차 창문을 깨부쉈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 안에 오랫동안 갇혀있던 아기가 숨을 할딱이고 있었다는 것은 진실이다.

    진실도 급이 있다. 한 남자가 오랫동안 순정을 주고받은 여자에게 불치병으로 인해 일방적이고 매몰찬, 모두에게 고통스런 이별을 고하는 것도 진실이지만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떠나보내는 여자는 더 큰 진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것을 극복하고 다시 만나 사랑을 이룬다면 남겨진 오직 하나의 진실은 둘 사이의 극진한 사랑만이 다일 것이다.
    진실과 진리는 차원이 다르다. 진실이 '진짜 사실', '깊은 사실', '한 묶음 사실들의 총합'이라면 진리는 이러한 수 많은 진실들의 공간적, 시간적인 총체적 모습이다. 하나하나의 진실들이 묻히고 패배할 수도 있다. 때론 세상은 불의와 모순이 득세할 수도 있다. 역사는 잠시 후퇴하거나 샛길로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들은 언젠가 빛을 발하고 역사란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결국엔 진보의 길로 나아간다. 개별적인 인간은 간혹 퇴화, 퇴행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종으로서의 인류는 끊임없이 진보한다. 진실은 순간순간 명멸할 수 있으나 진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영원하다. 진실이 아무리 아름답고 의로와도 언젠가는 희미해져 잊혀지고 때론 죽음을 맞을 운명이라면 진리는 죽어서 사는 이치, 잠깐 죽어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언제나 살아 있는 불멸의 이치이다.
    우리가 용기를 내어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고백했을 때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깃드는 것은 진실(그 자체)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다. 진리(에 대한 믿음)만을 부여잡고 진실을 받아들이고 고백하라는, 범생이의 도덕적 권유는 나약하고 평범한, 세속적 풍파에 이리저리 부유하기 바쁜 인간에게는 때론 너무도 잔인한(혹은 난센스하거나 무의미한 뜬 구름 잡기식) 주문이 될 수도 있다. 진실은 거북한 것에 그칠수도 있지만 진리는 때론 자아의 존재론적 일대결단, 생사여부까지 강요할 정도로 잔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거북하고 잔인하지만...
    진실은 우리를 겸허케 하고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할 것이다.


    사샤는 죽었지만 어머니에겐 사샤가 실은 독일 첩자, 배신자로서 독일군 쪽으로 달아났다고 거짓으로 알려준다. 어머니는 분노와 슬픔보단 살아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피난길의 와중에서도 선착장에 아들, 죽은 아들에게 ‘부디 건강하라’는 메모를 붙여 남긴다.

    명예로운 죽음과 불명예스러운 생존, 검은 진실과 하얀 거짓말. 사샤의 어머니에게 진실이란, 진리란 무슨 의미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쩌면 진실이란 사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처럼 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것. 누군가가 공의를 위해 역사 앞에 자신을 내던졌던 숭고한 희생. 오직 이것뿐이지 않을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역사가 되었으면 싶다.

    참혹한 진실, 서글픈 거짓말은 없고 아름다운 진실과 깜찍하고 재미있는 생기발랄한 거짓말만 넘쳐나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 이 교수가 삼국통일전쟁론이나 백제통합전쟁론을 거부하는 중요한 이유는 당대에 세 나라가 동족의식을 지녔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 오늘자(2019/03/09) 연합뉴스 기사 중 일부 (☞ 백제 고구려 멸망 야기한 전쟁 명칭서 '통일' 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