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통령 선거결과 분석 및 평가 : 여권연대 ‘A+’, 야권연대 ‘A-’, 유권자 ‘F’
나(어멍) - 44세 남, 대전 토박이, 전통적인 반 새누리당 지지자이자 자칭 진보적 자유주의자
김△△ - 58세 여, 가정주부, 고향 미상
나 : 간밤엔 편히 주무셨어요?
김 : 아니오. 요 며칠 잠이 잘 안 오네요. 며칠 전에 뜻밖에 좋은 일이 있어서...
나 : 뭔데요?
김 : 박근혜가 됐잖아요! 투표율 보고 진 줄 알았는데 이겼잖아요. 일주일 전부터 기도를 했는데 응답을 받은 것 같아 기뻐서 눈물이 나더군요. 그 날은 꼬박 샜어요. ㅠㅠ
나 : 아...... 그러셨군요. 너무 기뻐도, 너무 슬퍼도 잠이 잘 안 오니까. 감정 추스르고 조금씩 조금씩 기뻐하세요. (ㅠㅠ - 누구는 기쁨의 눈물! 누구는 슬픔의 눈물!)
내내 연락이 없다가 달랑 문자 하나 보내기가 미안했지만... 워낙 중요한 선거라서 투표일 이틀 전에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아이폰 주소록에 있는 지인들에게 부끄럼을 무릎 쓰고 투표독려 메시지를 보냈다.
새누리당에 적을 두고 있는 친구, 박근혜 후보를 찍으실 게 분명하신 집안 형님에게는 보낼까 말까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빠짐없이 무차별적으로 최대한 보냈다. 괜히 차별하고 왕따하는 것 같아서... 혹 서운해 하시지나 않을까 염려돼서...
높은 투표율을 보고 이겼구나 싶었는데 결과는 반대로 나오니... 내 상식과 신념 상 질 수도 없고 져서도 안 되는 선거였는데 허망하게 지니 하루 동안은 그야말로 멘붕이다. 멘붕이 지나니 알 수 없는 슬픔과 나라와 민족의 앞날에 대한 깊은 근심걱정에 입맛마저 떨어졌다. 내가 이토록 애국심이 많은 우국지사였던가?
지금도 의욕이 없다. 그래도 정리는 하고 넘어가야겠거니... 거칠게 몇 자 적어본다. (통계, 도표, 자료를 끌어올 성의가 없으니 근거와 출처는 따지지 마시라.)
박근혜 지지층 : 경상도 중심, 자영업, 농어업, 가정주부, 무직, 저학력자, 506070세대, 월 소득 200만원 이하
문재인 지지층 : 전라도 중심, 전문직,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학생, 고학력자, 203040세대, 월 소득 200만 이상(600만원 이상에서도 우위이나 1000만원 이상으로 범위를 좁히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대충 위와 같다. 지역주의는 한국정치에서 언제나 가장 큰 상수이니 특별히 언급할 것은 없다. 단, 16대 노무현에 비해선 문재인이 부산경남에선 더 얻었고 대구경북에선 덜 얻었다. 세대별 투표성향 역시 예전부터 익히 알려져 왔던 바다. 단, 대구경북에서만은 유이(有二)하게 20대에서도 박 후보가 우위였다. 연령이 올라갈수록 투표율이 올라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나 역시 투표장에서 목발 짚은 남자 어르신 두 명, 휠체어 탄 여자 어르신 한분을 뵈었다. 그러면 승부를 결정지었던 것, 다른 때와 달랐던 것은 무엇이었나?
지역적으로는 서울, 경기도, 충청에서의 박 후보 선전과 50대의 놀라운 투표율이다. 무려 89.9%! 혁명, 봉기 수준이다. 왜일까? 이정희의 당돌함에 발끈해서? 사회에서 대접받지도 못하고 존재감도 없이 퇴출을 앞두고 있는 불안감에서?...? - 박근혜의 높은 지지율은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적적인 투표율을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상기한 김모 여인의 말을 듣고 나는 경악했다. (아~! 이렇게 간절할 수도 있구나. 이렇게 맹목적일 수도 있구나.) 이들, 50대 후반 60대 초반의 여성들에겐 박 후보가 곧 자신이다. 같은 동년배로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가부장적 남성문화에 숨죽이며 살아오던 그림자 인생이었다. 새누리당 선거광고 멘트 “그래! 이제 근혜 니가 한번 해보라카이!”처럼 “그래! 이제 내도 한번 나서볼거구만!”이다. 밥하고 빨래만 하던 여성들이 “와~~”하고 들고 일어났다. 한을 풀고 꿈을 이루리라!
50대 남성은 어떤가. 베이비부머 세대로 독재도 경험했고 민주주의도 경험했다. 10년 전 40대 때는 노무현을 솔찮이 찍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세월에 따른 단순한 보수화, 삶의 불안으로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혹 불안을 넘어 공포가 아닐까? 바로 자산 가치 폭락, 삶의 추락에 대한 공포 말이다. 부동산 자산가든지, 하우스푸어든지 부동산 경기에 가장 민감한 세대다.
부동산으로 치자면 노무현 때 좋았고 이명박 때 나빴지만, 부동산 경기야 전체 경제상황에 따라 춤춘다는 것을 알지만, 아직 새누리 보수세력이 부동산 가치를 보존해 줄 거라는 믿음과 신화가 존재한다. 적어도 같은 부동산 세력이라는 동질감이 있다.
50대 가정주부의 한(恨), 50대 가부장의 공포(恐怖) - 이들은 스스로 자청한 박근혜 새누리당의 심리적, 경제적 인질이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내 짧은 소견에 이것 말고 89.9%의 투표율을 설명할 길이 없다.
선거는 끝났다. 박근혜가 이기고 문재인이 졌다. 하지만 정치는 세력이다. 하지만 규정하기가 만만치 않다. 보수, 진보, 좌파, 우파, 새누리당, 민주통합당으로 규정하기엔 두 세력의 성격이 딱 떨어지지 않는다. 제목처럼 여권연대, 야권연대라는 표현이 가장 합당할 듯하다.
야권연대 잘했다. 여권연대는 더 잘했다. 간단히 여권연대(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잘 한 점만을 몇 자 적어본다. 진보 야권이 배울 점이 많다.
첫째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하지 않은 점. 지난 총선 때 여당인 한나라당을 없앰으로서 정권심판을 비껴간 것도 그렇고 이번에 노골적, 파괴적으로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모두 탁월한 전략이었다. 이것은 국민이 알고도 속아준 것! 속아주는 대신 용납할 수 있는 명분을 준 것이다. 원래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수가 고단수다.
둘째 역사, 정의 등 가치, 관념에 호소하기보단 민생에 호소한 점. 실현가능성은 제쳐두고 하우스푸어와 가계부채탕감 정책을 언급한 것은 그만큼 유권자들의 당면한 고민과 문제를 포착하고 관심을 보여준 것이다. “선거 때 무슨 말인들 못하냐”는 이 대통령의 허풍정치, 시장통을 쏘다니며 오뎅과 풀빵을 시식하는 쇼정치처럼 매번 속고 속이는 빈말일지라도 새누리당이 이것만큼은 잘 한다. 발품을 팔아 일일이 성의를 보이는 발정치, 국민들과 밀착해서 그들의 욕망과 심리를 읽어내고 그들의 평이한 언어로 말하는 현장정치다.
셋째 도덕, 윤리를 떠나 공과에 따른 신상필벌을 확실히 한 것. 충성도를 높여 조직을 강화한다.
넷째 대세, 1인에게 일사불란하게 승복하며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인 것.
종합해보면 새누리당은 삶의 질, 삶의 조건에서는 국민들에게 지난 5년간 고통을 주었지만 선거국면에서만큼은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 적어도 진보 야당들보다는 덜 주었다. 물론 편향된 언론지형이 막대한 역할을 하였겠지만 선거에서만큼은 새누리당의 능력은 줄곧 야당을 압도해왔다. 그들은 프로였다. 야권에서도 프로 - 특히 보통 사람들의 취향, 욕망, 심리, 감성, 무의식과 관련한 선거전문가 - 특특히 그와 관련해 막연한 감이 아닌 철저히 과학적인 마인드로 치밀하게 접근하는 프로가 필요하다.
진보 야권의 총체적 역량이 아직은 보수 여권의 그것에 한참 못 미친다. 야권이 겸손하게 인정하고 좋은 점, 탁월한 점은 배워야 할 것이다.
"이명박근혜와 함께 정권교체! 국민성공!" →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정권심판연장! 국민행복!"
인정할 것 인정하고 배울 것은 배워야겠지만 야권이 크게 잘못하거나 결정적 실수를 한 선거도 아니다. 자잘한 실수들은 있었지만 그만하면 모두 다 할 만큼 했고 최선을 다했다. 페어플레이뿐만 아니라 더티플레이까지 각자 입장에서 최선을 다했다. 정치세력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행위를 할 권리가 있다. 솔까말 반칙, 불법마저도 그러려니 한다. 문제는 심판인 국민이다.
언론, 공권력의 반칙도 심했지만 어쨌든, 결국은, 최종심판인 국민의 몫이다. 아직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수준이 여기까지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국민들의 시험에 통과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역사의 심판에서 낙제했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 어리석은 꿈과 비루한 밥을 위하여 친일과 독재, 반칙과 부패를 자유의지에 의하여 공인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당분간, 아시아 민주주의를 이끄는 최첨단 선도국가, 품격있는 문명국가가 아니다.
총칼에 무릎 꿇기도 하고 스스로 분열하여 패배하기도 했지만 역사상 이런 적은 없었다.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가장 비극적인 패배를 자초한 것이다. 왜인가? 위부터 아래까지 모두 썩었기 때문이다. 아등바등 눈앞의 밥 한 그릇을 지키기 위해 부패와 불의에 무감각해졌기 때문이다. 거세개탁(擧世皆濁)! 온 세상이 흐리고 탁하다. - 대학교수들이 뽑은 2012년 올해의 사자성어라고 한다.
때로는 라면을, 때로는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피 묻은 빵, 토해 놓은 밥을 먹을 순 없다. 한번 자부심과 존엄을 버리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다.
자부심과 존엄은 이미 훼손된 것이고 이제 앞으로의 삶, 박근혜 후보가 말한 민생을 도모하고 대비해야 할 때이다. 이명박 새누리당 정권이 간 길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고 볼 때 지금보다 나빠지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정치는 국민대통합을 말하면서 보수대결집으로 갈 공산이 크고 경제는 복지, 경제민주화를 말하기보단 성장론과 함께 기부, 자선을 강조하면서 국민의 고단함을 감추거나 위로하는 차원에서 끝날 공산이 크다. 그렇게 그럭저럭 굴러가면서 박근혜의 꿈과 박정희 신화의 거품이 서서히 꺼질 수도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감사한 일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네 가지다.
첫째 박근혜 당선인과 그 주위 인물들의 성향들로 볼 때 말 그대로 올드보이들의 유신독재시대, 준 독재의 공포정치, 공작정치시대로 회귀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다.
둘째 박근혜 당선인의 패쇄적 통치행태, 사적 비밀주의적 용인술로 인하여 위기가 조기에 수면위로 공론화되지 않고 박정희씨 때처럼 정권 안에서 갈등, 증폭되다가 터지는 경우.
셋째 비슷한 맥락으로 박 당선인의 너무 느린 업무 처리 속도와 철저히 수동적인 정치 행태로 인한 심각한 국정지체 현상이다. 여당 내 야당 역할을 연출하면서 쑈의 맨 마지막에 출연하는 주인공처럼 모두가 그녀만을 바라보는 최후의 순간에 '결정난 것을 결정한다.'는 전략은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 박근혜로선 좋은 전략이었지만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 박근혜로서는 아무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은 궂은 일도 마다않고 솔선수범해서 선제적으로 대응, 해결해야하는 막중한 자리, 실지로 일을 해야하는 대표공무원이다. 박 당선인이 대통령 자리에 앉아서도 계속 같은 전략을 고수한다면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이 지리멸렬하거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안에서 점점 커지며 꼬여만 갈 수도 있다. 나라 전체가 심각한 무기력증으로 생기를 잃거나 중증 변비로 몸살을 앓을 수도 있다. 숙변이 해결되지 않고 계속 안에서 쌓이기만 하면... 마이... 무척 마이 아프다. ㅠ.ㅠ
넷째 돌발상황, 위기·재난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과 오판에 의해 상황이 악화되어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일상적인 업무야 장관, 보좌관들이 하겠지만 외교, 안보, 경제와 관련한 결정적인 순간과 대규모 재해시에는 최고·최종결정권자의 개인적 역량, 식견이 중요하다. 토론회 등 그간 보여준 박 당선인의 모습은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내가 너무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에 인색한 것인가? 내겐 박 후보 지지자들이 지나친 욕심과 환상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박 후보가 안돼 보일 정도로 자신의 능력 이상의 무거운 짐을 진 것으로 보인다.
진보 야권에게 희망은 있는가? 2017년에는? 장담할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옳다는 것을 증명받기 위해 더욱 더 잘못된 선택을 고집한다. 핑계는 많다. 야권의 비협조, 세계경제침체, 하다못해 정동영 노인폄하, 김용민 막말, 이정희 싸가지도 있다. 경상도는 여전할 것이고 5060도 여전할 것이다. 언론도 사법부도 검경도 여전할 것이다.
방법은 있는가? 언론과 교육을 바로잡아 국민의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 한, 전라도민들이 힘들어도 주구장창 아이를 낳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도 아니면 통일이 되어 수구냉전, 경상도 세력의 지분을 지금의 2/1, 3/1로 줄이는 것이다. 정책, 도덕성, (국정 수행) 능력은 물론, 토론회고 뭐고 다 필요없다. 어차피 쪽수싸움, 지분싸움이다. 이것이 이번에 드러난 적나라한 현실이다.
그러면 진보 야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기적으론 질서 있게 퇴각해야 한다. 강군은 퇴각할 때의 군기로 평가된다. 장기적으론? 가던 길 가는 것이다. 더 좋게, 덜 나쁘게 하기 위해서 협조할 거 협조하고 비판할 거 비판한다. 침묵할 때 침묵하고 싸울 때 싸운다.
힘들고 고단한 길이다. 대한민국에서 진보정치인, 진보지지자의 길을 간다는 것은 암초가 많은 좁은 해협을 역풍을 안고 항해하는 것과 같다.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하면서도 스탠스를 유지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면 곧바로 편안하고 안락한 보수로 편입된다.
매번 지고 마는 만년 약체팀을 응원하는 것은 지치는 일이다. 그럼에도 서포터로 남아있는 것은 승부를 넘어서 그 팀이 좋아서다. 승부와 팬덤을 뛰어넘어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바, 스포츠가 가지는 뜨거운 열정과 순수 그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승리감과 배당을 바란다면 일찌감치 강팀에 베팅하고 응원하는 편이 낫다.
비겁한 정신승리에 머물러선 안 되지만 희망을 버릴 순 없다. 호시우행, 우공이산으로 조금씩조금씩 실력을 쌓고 설득하고 확률을 높여나가면 미래는 분명 밝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은, 희망보다 슬픔을 노래할 때... 충분히 슬픔을 음미하고 슬픔으로 위로받을 때다.
2012년 12월 19일은 대한민국 공동체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이 꺽인 날이다. 그래도 내 아들딸 다음 세대가 살아가야 할 땅이니 박 당선인이 큰 사고치지 말고 최대한 잘해주길 바랄 밖에...... 단, 사회는 더 각박해질 듯하다. 국민들은 각자도생에 더 내몰릴 듯하다.
나꼼수가 지고 종편이 이겼다. 인터넷, SNS가 지고 신문, 방송이 이겼다. 상식이 지고 비상식이 이겼다. 정의가 지고 불의가 이겼다. 노무현이 지고 박정희가 이겼다. 현재와 미래가 지고 과거가 이겼다. '203040'이 지고 '506070'이 이겼다.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이 어른들의 어깃장에 가로막혔다. 광주와 전라도가 왕따당했다. 이 슬픔, 이 분노, 이 좌절, 이 울분, 이 절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청춘이여! 미안하다!
광주여! 전라도여!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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